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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진보신당 홈페이지에서 이런 저런 동영상과 글을 보고 기분이 좋아 응원하고 싶어졌다. 물론 내 처지가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만한 실천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직 아니다. 그저 마음으로 응원할 뿐이다.

 

진보신당이 최근 보여주는 모습에서 볼 때, 내 느낌으로는 적어도 현실의 모순에 대한 인식과 이를 회피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홍세화 대표의 당 통합대회 연설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이 연설문은 한편으로 적어도 내게는 매우 낯선 것이었는데, 그 자신의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일부러 감추려고 하기 보다는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소통을 시도하는 모습도 괜찮았다. 마음 같아서는 중국어로 번역을 해서 지인들과 돌려 읽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 명문이었다.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

http://www.newjinbo.org/n_news/news/view.html?page_code=&area_code=&no=448&code=netfu_89053_16079&s_code=20120209113707_6761&ds_code=

 

물론 홍세화 대표에게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한반도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다시 말해서 식민과 분단, 내전과 냉전, 개발독재, 민주화 등 우리 사회가 겪어온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내부적으로 추출되고 참조된 사유가 연설이나 글에 거의 부재하다는 점이다. 나는 우리의 대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데 이러한 역사적 사유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추동력을 구체적/현실적 모순에서 끌어내는 것이 진정한 정치의 전제가 된다는 점에서 진보신당에 희망을 걸 수 있지만, 그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이와 같은 '민족'적 역사 현실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전지구화된 자본에 대응하여 세계적인 수준에서의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공동의 역사적 과제를 마주하고 있지만,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를 비롯해서 역사적 사회는 무차별적으로 무에서 와서 무로 가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저항과 연대는 현실의 보편적 모순을 매개로 할 수 밖에 없지만, 대안은 역사적 그리고 민족적 인식으로부터 주어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대안은 기다려서 얻는 것도 아니고,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며, 역사적 인식 속에서 내적 성찰을 통해서 얻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이러한 대안을 강제로 박탈당한 역사를 갖고 있다. 바로 분단과 내전, 그리고 냉전이다. 나는 우리의 좌익운동이 그동안 이 역사적 과정, 즉 망각의 역사와 왜곡된 자본주의적 현대화의 역사를 동시에 극복하는 것을 민족적 과제이자 민중적 과제로 인식해왔다고 본다. '민족'적 대안 없는 '민중'적 저항은 궁극적으로 무력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의 모습을 보면서 이전에 전리군 선생이 종강 시간에 이야기했던 말씀이 떠오른다. '악을 누르고, 선을 발양하라'. 어떤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 있지만, 정말 '소멸을 무릅쓰는 용기'에서 어떤 선함이 보인다. 새로운 좌익운동의 희망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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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과 내전 그리고 분단/냉전의 동아시아

제목은 이렇게 붙여봤지만, 그에 대한 충실하고 풍부한 서술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다. 그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설적으로 던져보는 것일 뿐이다. 제목이 이렇게 길어진 것은 분석적 수준에서 그 어느하나에 선험적으로 중요성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고, 실제로 그런 왜곡된 역사서술을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분단/냉전을 식민과 분리하기도 하고, 역으로 식민을 그 이후의 내전 및 냉전과 분리하여 사고하기도 한다. 전자가 당대의 탈역사화된 정치중심적 사고라면, 후자는 당대를 모순을 회피하거나 또는 역사를 통해 당대를 우회하는 역사학자의 자생적 정치학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특히 식민과 내전을 거친 이후 분단과 냉전의 조건 하에서 사상적 작업의 전통은 일정하게 강제적으로 단절되는 과정을 겪었고, 이는 서구적 현대성을 정신적으로 제도적으로 모두 내재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한 가운데 일정하게 식민적 경험과 연관되는 대안적 비판사상 자원을 찾는 노력들이 진행되었는데, 남한에서 선택된 참조점은 일본이었던 것 같다. 본래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탈현대적 전망을 가졌던 동아시아의 국제주의는 냉전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와해된 가운데, 남한에서는 일본이라는 매개를 통해 비판 사상을 재구성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일본의 좌익과 일본 사상 전반이 갖는 어떤 전형성(아마도 좌익/우익 보편주의)은 궁극적으로 그 참조 효과를 제한했던 것 같고, 남한에서 그 효능이 적지 않았음에도 궁극적으로 남한 내부의 개별성을 역사특수적으로 조망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일본 내부에 이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 이러한 논의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소개되지 않았고, 그것이 훗날 조금씩 소개되었지만, 이 역시 식민과 내전 및 분단의 역사적 경험을 겪지 않은 일본 사회의 맥락에서 진행되는 비판과 반성은 역시 한계적이다. 본래 일본을 통해 서구 비판사상을 접했던 남한은 탈냉전과 맞물리면서 점차 일본이라는 매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서구를 지향하게 되는데,지식 사상적 주체성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일본이라는 매개를 거쳤던 시기에 대한 성찰 없이 서구로 직접 진입하게 되었다. 이 효과는 무엇일까? 결국 1970년대 이후 대학과 연구기관을 통해 양성된 해방 이후 또는 한국전쟁 이후에 출생한 세대들 가운데는 '사상가'가 존재하지 않고, 학문적 주체성을 갖는 고유한 이론이나 학파도 출현하지 않게 된다.

 

흥미롭게도 소련과 동구의 몰락과 맞물리면서 모종의 '전반서화'가 진행되었던 90년대, 특히 1992년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 그동안 냉전으로 배제되었던 중국이 열리게 된 것인데, 주의할 것은 이 중국은 이미 1980년대 이후 학문적 미국화 또는 서구화가 대대적으로 진행된 중국이라는 점이다. 현재 중국의 학문 체제는 문혁 이후 사회주의 전반기 30년에 대한 전반적 부정으로 출발했고, 1990년대에 접어들어 기본적으로 서구적 참조체계를 중심으로 서구를 모방하고 내재화한 연구풍토와 연구자들이 대규모로 출현하게 된 듯 하다. 물론 중국적 전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중국의 개방은 다시 중국의 지식인을 서구와 직접 대면하게 하면서 중국/서방이라는 기본적 이원구도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사유하도록 하였고, 1990년대의 신좌파/자유주의 논쟁은 그런 맥락에서 중국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주목 받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북한을 인식론적 층위에서 충분히 내재화하지 못하는 남한에서 중국이 일본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역사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참조대상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중국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참조하기 위해 1980년대 이후의 보편주의/특수주의적 흐름을 성찰하고, 다시금 1949년 이후의 모택동 시기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볼 때, 2012년 전리군錢理群이 남한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게 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특히 전리군이 정신사 3부작을 거쳐, 최근 출판한 <또 하나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성찰을 거친 이후에 새로 쓰여진 역사서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서 남한에서 참조할 수 있는 성찰의 지점이 몇 가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

1) 대안적 역사인식과 역사서술; '당대' 속으로

- '20세기 중국문학'

- '정신사 3부작'

- <또 하나의 역사서사>

2) 문학정치론: '노신좌익'

3) 민간의 계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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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전리군 신간 토론회가 6월 9~10일 홍콩에서 열리는데, 구체적인 일정을 처음 받았다. 어떤 논의를 어떻게 거쳐서 결정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이상한 느낌이다. 공식적인 참석 요청을 받은 적도 없고, 어떤 부분에 대한 발표를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둘째날 <또 하나의 역사>에 대한 해석 두번째 토론에서 발표를 맡게 되었다. 서울대 중문과의 이정훈 교수도 같은 세션에서 발표를 한다. 다른 종합토론에는 백영서 교수도 참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참가자들의 면면을 보면 문화연구나 사상연구를 포함하지만 대체적으로 문학연구를 중심으로 훈련받은 연구자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일본의 중국연구자의 반응도 궁금하다. 나는 우선 문학사 연구에서 역사 연구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제기된 방법론에 따라 쓰여진 '또 하나의 역사'가 갖는 차별성을 몇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검토하는데 집중하는 글을 준비하게 될 것 같다.

 

지난 주말엔 여성영화제 통역을 도우러 갔다가 재미있는 작품도 보고 권 감독도 알게 되었다. 남성과의 관계에 있어서 '소유' 자체를 문제화해서, 여성적 고유성과 주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메시지가 매우 귀엽게 전달되었는데, 내 생각 속에서는 이 메시지가 다양한 주체성이 보수적인 집단적 가상에 억압되는 지점에서 충분히 원용될 수 있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사실 이 문제는 노신과 전리군 선생이 '개체'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이타주의에 우선시하는 것 또는 그 전제로 삼는 것과도 관련된다.

 

한편 1960년대에 이미 대만을 매개로 해서 홍콩, 싱가폴 및 동남아시아와 상호 연결된 한국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당시 영화사 제작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잠깐 들을 수 있었는데, 참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식과 참조점이 서구 또는 미국에 고정되어 있던 '냉전' 기간을 문제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참조점의 다원화로서 '인터-아시아'라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냉전' 시기에도 '인터-아시아'는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으며, 일정하게 '국제적인' 조건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탈냉전에 들어와 자본의 지구화 및 지역적 재구조화 그리고 이주노동자 흐름의 인터-아시아적 형성 등을 통해서 아시아를 내부로부터 다시 이해하고자 하는데, 이와 같은 역사는 겉으로 보기에는 '냉전'의 효과에 불과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국제적 흐름은 단순히 정치 이데올로기나 또는 상업적 목적에만 갇히지 않는 다양한 효과를 낳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재조명하는 것은 냉전의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는 또 하나의 자원이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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