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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가이드라인은 쓸모가 없다

시행되기는 했나?

그럴걸 만들기는 왜 만드나?

바이오정보와 바이오인식정보의 구별이라... 이건 도대체 무슨 논리일라나?

디지털도어록이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은데?

하튼...

 

 

생체인식 정보보호 가이드라인 6개월만에 개정

 

 바이오인식(생체인식) 정보의 안전한 이용을 위해 제정된 ‘생체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이 시행 6개월 만에 대폭 수정된다.

 정보통신부는 최근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바이오인식전문협의회와 회의를 갖고 가이드라인 개정을 담당하는 연구반을 운영, 이르면 6월 내 개정을 완료키로 했다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은 기술의 특징을 반영하지 않고 일률적인 보호 기준을 만드는 바람에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본지 4월 12일자 3면 참조

 지문·얼굴 등 개인의 신체적 특징인 바이오정보와 개인인증을 위해 필요한 바이오인식정보는 서로 구분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산업계와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최환수 명지대 교수(테크스피어 사장)는 “바이오인식정보를 다른 개인정보와 똑같이 다뤄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이 문제”라며 “예를 들어 디지털도어로크에 입력된 바이오인식 정보를 어떻게 이용자가 열람하도록 할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사용자가 지켜야 할 내용이 가이드라인에 많이 들어가 있어 소비자의 수요를 막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며 “그보다는 산업계에 규제 의무를 주고 사용자에는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설되는 연구반은 두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해 반영하는 방안을 주요 검토사항으로 삼기로 했다. 이 밖에 △신설 국제표준 등 신기술 등장 △전자여권 등 바이오인식 국가인프라 구축계획 진행에 따른 변화 등을 가이드라인에 반영하게 된다.

 정통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의 불투명한 부분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개정을 결정했다”며 “바이오정보와 바이오인식정보의 구별이 가장 중요하게 논의될 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는 “길게 끌 생각은 없고 안을 마련하는 대로 공청회 등의 절차를 거쳐 개정할 것”이라며 “타 분야 정보보호와의 차별점이나 기술, 시장의 변화 등도 전반적으로 파악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etnews.co.kr  ○ 신문게재일자 : 200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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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사는 법

이 만화... 훌륭하지 않나요?

 

그래도 20대가 낫지 않나? ㅠ.ㅠ

 

차라리 운동을 하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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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의 영원한 가치

어제 '전달'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펌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서

어지간하면 안하려는 입장이었는데...

반대로 '내 얘기'만을 써야지... 하는 강박도 웃긴 건 마찬가지인 듯해서...

당분간 '잘' 퍼오려는 노력을 해볼까 합니다.

 

내가 본 것을 다른 사람들도 봤을 것이라고 무작정 가정하는 것 보다, 중복되더라도 확인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한동안 포스팅을 안할 때, 헛걸음질 치신 분들께도 좀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봐야 내가 퍼오는 건데.. 뭐 영 딴소리겠나 싶기도 하고...

요새는 블로그에 기록되지 않은 건 너무 쉽게 잊혀지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따지고 보면 세상에 펌질 아닌 건 또 뭐가 있나 싶기도 하고...

뒷북이면 뒷북이라는 사실도 알아야겠고... ㅋㅋㅋ

 

암튼. 앞으로는 펌질이 좀 늘더라도 그러려니 해주세요. ^_____^

 

 

아래는 다음에서 제공하는 '와이어드 뉴스 코리아'에서 퍼온 기사입니다.

 

Wired News 

 

와이어드 뉴스는 제가 가끔 조언을 구하곤 하는 선배가

우리나라 정보운동이 이런 걸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한 적이 있어서

관심을 갖게 된 곳입니다.

 

워낙에 유명한 곳이라는데...

뭐 영어로 정보를 습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터라...

다음에서 번역해 놓은 거나 종종 볼 뿐이죠. (근데 번역이 좀 거시기할 때가 많아요.)

 

주로 정보기술과 관련된 뉴스를 다루는 곳임에도 은근히 정치적입니다.

아래같은 기사도 사실 우리나라 뉴스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글이죠.

 

일단은 반가워서 퍼왔습니다만,

요새는 '프라이버시'라는 문제설정 자체에 대해서 이래저래 고민하고 있어서 그런지

의문스러운 구절이 좀 있네요.

밑줄과 녹색 글씨는 제가 덧붙인 겁니다.

 

 

  

프라이버시의 영원한 가치

By Bruce Schneier 2006.5.21(일) 14:34

신원확인과 카메라, 데이터베이스, 데이터 마이닝, 그 밖의 전면적인 감시 수단에 찬성하는 사람들. 이들의 프라이버시 옹호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반격은 바로 “잘못 한 게 없으면 왜 숨는가?”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현명한 대답들이 존재한다. “잘못 한 게 없으면 나를 감시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정부가 잘못된 것에 대한 규정을 끊임없이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 정보를 악용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부 옳은 얘기다. 그러나 이런 말들의 문제는, 프라이버시는 잘못을 숨기는 것과 관련된다는 전제를 일단 인정하고 들어간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고유한 권리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렇게 프라이버시를 기본권으로서 주장하는 건 우리도 종종 써먹는 논법이기는 한데... 영 힘없어 보이지 않나요? 그냥 내 느낌인가?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속담 두 개를 들면,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이다.

감시의 진가를 잘 알았던 리슐리외(Richelieu)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 “가장 정직한 사람이 쓴 여섯 줄짜리 글을 받는다면 나는 거기서 그를 교수형에 처할 구실을 발견할 것이다.” 누군가를 충분히 오래 감시하면 그를 체포할 구실 혹은 공갈할 구실을 찾을 수 있다.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배제될 경우 감시를 통해 얻은 정보가 오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몰래 엿보는 일, 마케터들에게 정보를 파는 일, 정적(政敵)을 감시하는 일. 이런 일들은 언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다.

권력을 지닌 사람들은 설사 우리가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해도 충분히 오해를 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랑을 하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조용히 생각하거나 대화할 수 있는 개인적인 장소를 찾는 것은 의도적으로 뭔가를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비밀 일기를 쓰고, 혼자 샤워를 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비밀 연인에게 편지를 쓴 다음 태워버리기도 한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

오래전 헌법의 틀을 마련한 사람들은 프라이버시가 끊임없이 공격당하는 미래를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프라이버시를 명백한 권리로 주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고결함과 인간의 목적에 따르는 생득권이었다. 자기 집에 앉아서 감시를 당하는 것은 당연히 불합리한 일이었다. 어쨌든 감시는 당시의 신사들 사이에는 생각도 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행위였다. 감시의 대상은 자유 시민이 아니라 범죄자였다. 자신의 집은 자신이 통치했으며, 그것이 바로 자유라는 개념의 본질이다. 참... 이런 부분은 자유주의적인 프라이버시운동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요? 자유의 본질이 '신사'들이 '자신의 집'을 '통치'하는 것이라니요. 근대적인 시민권에 여성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이렇게 솔직히 표현하다니요. 자유시민과 범죄자를 간단하게 구분한 것도 거시기하구요. 그래서 오히려 앞에서 프라이버시를 생득권으로 주장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모든 면에서 관찰을 당하는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반발과 평가, 비난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신만의 독특성을 도용당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감시의 눈길에 속박되어, 우리가 남긴 양상들이 우리를 다시 어딘가에 연루시켜 놓을까봐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그것은 현재 권력이 지극히 사적이며 결백한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성을 잃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감시되고 기록되기 때문이다.

지난 4년 반 동안, 갑자기 누가 엿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대화를 중단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물론 전화 대화에서 그랬을 확률이 가장 높지만, e-메일이나 인스턴트 메시지 교환 중, 혹은 공개적인 대화 중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저는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 지금 미국 시민들이 느끼는 위협이 저 정도일까요? 대화의 주제는 테러리즘이나 정치, 아니면 이슬람이었을 것이며, 말이 새어나갈까 봐 순간적으로 멈칫 했다가 자신의 망상을 비웃으며 대화를 재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의 태도와 말투가 조금씩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라이버시를 박탈당했을 때 겪게 될 자유의 상실이다. 구동독이나 사담 후세인 치하 이라크에서의 삶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침입자가 개인적이고 은밀한 삶을 들여다보도록 허용할 때 직면하게 될 미래이기도 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논쟁을 “보안이냐 프라이버시냐”의 문제로 잘못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자유냐 규제냐의 문제이다. 정부당국의 부단한 감시로 인한 전제 정치는 물리적인 외세 공격의 위협으로 인한 전제 정치와 다를 바가 없다. 자유는 침입을 배제한 안보와, 이에 더불어 프라이버시가 지켜져야만 이뤄질 수 있다. 광범위한 경찰 감시는 경찰국가의 정의이다. 그러니 우리는 숨길 것이 없을 때에도 프라이버시를 옹호해야 한다.  마지막 문장에는 100% 동의하지만... 자유와 규제... 안보와 프라이버시... 뭔가 껄끄럽습니다. '자유냐 규제냐'의 문제설정은 정확히 자유주의적인 문제설정인데... 적은 너무나 명확한 것 같아요... 국가 또는 정부. 이들이 기업에 의한 감시에 얼마나 적극적일 수 있을까요? 또... 안보는 필연적으로 군대를 호출하는 개념인 것 같은데... 과연 경찰과 군대는 얼마나 다르다는 것일까요?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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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이용자 100인 위원회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진행하고 있는 포털이용자운동입니다.

사실, '포털이용자'라는 자기규정이 적당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감성으로는 '탈포털운동'이 더 맞는 것 같거든요. ^^;;;

 

아무튼 열심히 하네요.

도와주시죠? ^^

 

 



포털이용자운동 선언문 및 포털에 관한 12가지 생각 보기



1. 평소 포털이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에 문제점을 느끼신 적이 있다면
2. 영향력이 커진 포털 뉴스에 대한 사회적 견제와 감시의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3. 자율과 서로에 대한 관용, 민주적인 의사소통이라는 인터넷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다면,
위 세가지 중 한가지만 해당되신다면 포털이용자100인위원회에 참여하실 자격이 충분합니다.


1. 포털에서의 이용자권리 침해사례를 제보하고, 이용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의견과 방향을 제시
2. 포털 뉴스에 대한 감시활동을 통해 영향력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성을 촉구합니다.
3. 포털이용자운동의 방향과 사업내용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나갑니다.
4. 포털도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부입니다. 자율과 책임, 서로에 대한 관용과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통용되는 인터넷 공동체를 가꾸어가는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대안을 모색합니다.


1. [포털 이용자 100인 위원회]의 제안 내용들에 관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합니다.
2. [포털에 관한 12가지 생각]의 내용을 포털사들에게 공개질의하고, 답변 내용을 비교 공개합니다.
3. 포털 뉴스의 뉴스편집와 유통의 가이드라인 제정, 포털 뉴스서비스 데이터 공개, 포털 약관 개선, 블로그와 미니홈피 등의 정보이주권 확보, 보편적 정보접근권 보장,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보호 등을 위한 모니터링 사업, 조사연구사업, 대중적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4. 기타 [포털이용자100인위원회]이 제안하는 포털 관련 운동들을 네티즌들과 함께 펼쳐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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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넨! 자네의 인생을 살아야 돼!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선생의 말투를 정확히 옮겼다.

문장도 너무 익숙하다.

내가 저 순간 저 교실에 있었나?

여러번을 읽은 탓에 생긴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새글보기: 온갖 세상만사
 자넨 자네의 인생을 살아야 돼!!!
name : 신강   hits :36    / date : 2005.11.12 00:28:00

그는 마치 모노드라마에 등장한 배우 같았다. 긴 다리로 성큼 성큼 무대 위를 좌우로 오가며 마치 햄릿처럼 독백과 질문을 해댔다. 때로는 우리가 관객인 듯 했고, 때로는 우리가 그의 친구인 듯 했으며, 때로는 학생의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실력 있는 강사나 교수는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내용도 쉬운 용어와 간단한 예를 들어 단순명쾌하게 설명을 하듯 그의 강의는 정말 단순 명쾌했다. 많은 질문이 오갔고 많은 대답들이 돌아왔다. 3시간에 이르는 강의는 10분만 더, 5분만 더, 질문을 받겠다고 하던 것이 4시간으로 이어지고 있었고......어느듯 [동구권의 몰락과 세계질서의 재편]이란 제목으로 교정에 나부끼던 강의가 끝날 때가 왔고 그의 마지막 인사가 남았다.  

 

"이봐 자네들. 혹시 읽어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녹슬은 해방구]란 책이 있지. 그 소설 속에는 빨치산으로 활동을 하다가 수십년동안 전향을 거부하고 감옥에 있는 장기수 정선생이 나와. 내가 만약 정선생을 만나 이런 질문을 던지면 그는 뭐라고 대답을 할까? 

 

정선생님, 당신이 그렇게 꿈꾸어 왔던 소련 공산주의는 무너졌고, 당신이 그토록 내려오길 기다리던 김일성 장군은 내려오지 않았으며, 동구권 현실 사회주의는 모두 몰락했습니다. 정선생님! 당신이 전향을 거부하며 수십년 동안 감옥에서 보낸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선생님은 인생을 헛사셨어요! 이렇게 내가 물어보면 그는 뭐라고 대답할까? 

 

그래, 자네 말이 맞아. 내가 염원하던 소련 공산주의는 몰락했고, 우리를 구하려 오리라고 믿었던 김일성 장군은 내려오지 않았어. 난 인생을 헛살았어. 이렇게 대답을 할까? 

 

아니, 아마도 정선생은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그래, 자네 말대로 소련 공산주의는 몰락했고, 김일성 장군은 내려오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인생을 헛살았다고. 천만에. 내가 소련 공산주의를 위해서, 김일성 장군이 내려와 나를 구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빨치산 활동을 하고, 감옥에서 그 고통을 이겨내며 살았다고 생각하나? 자넨 뭔가 착각하고 있군. 이봐, 난 내 인생을 살았던 거야. "

 

그리고 그는 천천히 둘째 손가락을 들어 강의실에 가득히 들어찬 수백명의 학생들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학생들은 그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그가 둘째 손가락에 힘을 주며 단호하게 마지막 말을 했다. 

 

- 자넨!  자네의 인생을 살아야 돼!


no. title name date hits
1340 정운영 선생을 추억하며 [1] 신강 2005.11.11 59
     정운영, 우리시대 논객을 위한 비망록 "큰 별은 지고" 신강 2005.11.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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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을 잊어야 한다 신강 2005.11.12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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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토록 꼿꼿하고 당당했던 삶 신강 2005.11.12 32
               자넨 자네의 인생을 살아야 돼!!! [2] 신강 2005.11.12 36
                 reqescat in pace 신강 2005.11.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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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석방을 위해 힘을 모아 주십시오!

트랙팩에 한글보다 영문이 먼저 올라왔군요. 마찬가지로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각계의 성명서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꼭 가보세요.






석방을 위해 힘을 모아 주십시오!

인권운동사랑방

현재 인권 시민 평화 등 광범위한 사회단체들이 ‘인권활동가 박래군 조백기 석방을 위한 긴급행동(약칭 긴급행동)’을 만들어 석방운동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두 인권활동가의 석방을 위해 힘을 모아 주십시오!


1. 항의 메일 보냅시다

재판부나 청와대에 이번 구속의 부당함을 강하게 항의하는 메일을 보냅시다. 그리고 대추리 싸움과 구속의 부당함을 말하는 각종 글들을 인터넷을 통해 전달합시다.

노무현 대통령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 청와대 (우 110-820)
<시민사회수석실> 전화: 02-770-2455 팩스: 02-770-4937
<민정수석실> 전화: 02-770-2522 팩스: 02-770-2440

윤광웅 국방부 장관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2번지 국방부 (우 104-701)
전화: 02-748-6004 팩스: 02-748-6026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성지용(판사) 평택지원장
경기도 평택시 동삭동 152-3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우 450-140)
전화: 031-653-5700 팩스: 031-650-3004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 최운식 담당 검사
경기도 평택시 동삭동 245-1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 (우 450-718)
전화: 031-650-3308 팩스: 031-650-3555


2. 기자회견 참여

내일(22일) 오전 9시 광범위한 사회단체들이 주최하는 기자회견이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참석하셔서 정부의 반인권적 행위를 강하게 규탄합시다.


3. 항의 농성 결합

기자회견이 끝나고 곧바로 광화문 열린공원으로 이동해 농성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정부의 반인권적인 행태에 대한 강한 항의를 포함해 평택미군기지확장 저지 운동이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는 인권행동임을 시민들에게 알리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세요.


4. 구속자들에게 편지 쓰기

두 활동가들에게 격려와 지지의 편지를 보내주시고 그 내용을 인권활동가 박래군 조백기 석방을 위한 긴급행동의 홈페이지(hrnet.or.kr/sukbang, 준비중) 남겨주세요.


5. 두 활동가 석방 기금 계좌

국민은행 293201-04-044773 예금주: 변연식(구속활동가 후원회)


* 면회는 인권운동사랑방과 천주교인권위에서 조정하고 있으니 면회가실 분은 각 단체로 꼭 연락해주세요.

2006년03월21일 15: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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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느 사회주의자의 선물 - BIC

비싸고 좋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싸고 좋은 것이야말로 진정한 '명품'이다.

'명품'을 만들어 내는 것, '명품'을 가려내는 눈을 갖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BIC

볼펜은 워낙에 안쓰니까 잘 모르겠지만,

라이터는 정말 좋았다.

라이터는 사는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잘 안사긴 했지만,

가끔 어디서 얻으면, 애지중지하며 가스가 다 닳을 때까지 쓰곤 했다.

 

재밌군. 이런 얘기를 가진 회사였다니.

'명품' 면도기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면도기나 한 번 사봐야겠다.

 

글 전체 보기 : 어느 사회주의자의 선물 - BIC

글 내용 중 재밌었던 부분 :  

 

  • 마르셀 비크(Marcel Bich) 남작은...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 '인민 대중의 생활을 개선'시키기 위해 BIC을 만들어 낸 것이다.
  • 모든 BIC의 공통된 컨셉은 「가장 싼 값으로 팔기 위해 가장 싸게 만들기」이다.
  •  단순할 것, 꾸밈 없을 것, 정직할 것, 유효적절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나 구입할 수 있을 것, 휴대할 수 있을 것, 아무나 흉내낼 수 없을 것
  •  "나는 반영구적인 일회용!"
  •  메이 데이에는 <<정년 전 퇴직제 반대!>>라는 정치적 견해를 담은 광고 아닌 광고를 게재하기도 하고, 프랑스 전력공사의 동맹파업 때는 <<금일, 매우 중대한 정전이 있을 것>>이라는 라디오 광고를 집행
  •  생산수단의 사유폐지 및 사유화라는 사회주의 이념에 골몰한 그는 그 생각을 행동으로도 그대로 옮겼다. 그가 죽은 1994년 당시 총매상고 5조 9천억프랑 가운데 순이익을 3억 7천만 프랑만 남기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차대조표를 남긴 게 그 증거!(프랑이 낯설면 그냥 원화로 생각해 보라. 6조원 어치 팔았는데 3억원만 남긴 셈! 믿겨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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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맞춤법과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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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대추리 들에 서서 ‘국가’를 생각한다.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활동가가 3월 6일, 7일 대추리에서 보낸 이틀간의 경험을 정리한 글을 쓰셨네요. hrnet 메일링리스트로 돌리신 글을 퍼옵니다.
그날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대추리 들에 서서 ‘국가’를 생각한다.

평택 대추리에서 보낸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 이틀


3월 7일 아침 7시, 막 K-6 미군기지 위로 붉은 해가 솟았다. 옅은 서리 속에서도 쟁반만한 붉은 해, 대추리에서는 떠오르는 해도 지는 해도 유달리 붉고 크다.
아침 바람을 맞으며 들에 내려선다. 옅게 서리가 깔리고 지난 가을 추수 뒤로는 빈 들인 이 논바닥에서 물꼬를 손보는 농민을 만난다. 농사를 지을 채비를 하는 것이다. 시야가 닿는 곳 모두는 논이다. 들이다. 아침 들녘에는 냄새가 있다. 밭과는 다른 물기 배인 흙냄새가 바람에 실려 온다.
들은 아직 잠자고 있다. 햇발이 퍼져 햇살의 따사로움이 이 들에 내리쬐는 이른 봄 한낮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것이다. 안개처럼. 들 가득히 내려앉았던 오리 떼가 인기척을 느끼고 비상한다. 이처럼 넓은 들이면 농민들이 흘린 벼 이삭들을 주워 먹는 것으로도 저 많은 오리 떼가 겨울을 충분히 날 수 있었을 것이다.
발끝은 벼 끄트머리에 자꾸 걸린다. 아직은 흙이 채 목지 않아 성에가 남아 있다. 논갈이를 하기에는 이른 철이다. 새가 깨어나듯이 수런수런 들도 깨어난다. 문인상 가는 길에 허수아비를 세우고 미군기지 확장 반대 구호들을 적은 헝겊 쪼가리들, 문인상 이곳은 절반도 되지 못한다. 안성천까지 걸으려면 1시간은 족할 것이다. 안성천 끝으로는 서해 바다가 넘실대겠지. 내가 걷는 이 벌판도 바닷물이 들어오던 갯벌이었을 것이다. 염기 머금은 땅에서만 자라는 칠색초, 나문재, 갈대만 자라는 버려진 갯벌, 그 갯벌을 오늘의 옥토로 만들기까지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의 노력을 잠시 생각한다.

버려진 갯벌, 옥토로 되기까지
기록에는 1943년에는 일본에 의해서 원대추리에 살던 농민들이 쫓겨났다. 오늘의 미군기지 그 터에 있던 농민들은 밀려났다. 해방 되고 다시 전쟁 중이던 1952년 미군은 아무런 통보도 없이 포크 레인으로 밀어붙였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아무런 보상도 없이 쫓겨나 오늘의 대추리와 도두리 마을을 형성했다. 이들이 살 방법은 버려진 갯벌을 간척하는 일밖에 없었다. 어딜 가나 먹을 것 없어 굶주리던 전쟁 그 전후에 농민들은 버려진 갯벌을 정성껏 개척했다. 이 나라의 간척사가 그랬듯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량증산정책에 의해 강제로 바다를 메우는 간척사업, 1970년대 박정희식의 대대적인 간척사업을 뺀다면 농민들이 자구책으로 갯벌을 일구어 농토로 바꾸었다.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제방을 쌓아 바닷물을 밀어내고, 돌을 골라내고, 개토를 하기를 몇 번씩, 새벽별 뜰 때 나가 저녁 별 뜰 때까지 어느 농민의 말마따나 “죽을 똥 살 똥” 다 싸면서 농토를 일군 것이다. 손은 갈라지고, 갈라진 손바닥에 피가 고이면서도 리어카 하나 변변히 없는 사정은 번한 것, 그들은 거의 맨 손으로 이 농토를 만들어냈다. 땅만 평평하게 한다고 작물이 자라는 것은 아니어서 보통 갯벌을 일군 땅에다 벼고, 보리고, 콩이고 심으면 마지 제초제를 맞은 것처럼 소금기-간기- 때문에 빨갛게 타들어 가 버린다. 거기에 바닷물은 안 되므로 저 멀리서부터 물을 끌어와야 했지 않겠는가. 그 모든 일에 좌절하지 않고 이 천만 평에 가까운 농토를 일구어냈고, 그 안에 미군기지로 사용하겠다며 강제 토지수용 절차를 밟고 있는 2백 8십만 평의 땅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전국 공통의 과정인데, 기껏 농민들이 버려진 갯벌을 피땀 흘려 개척해 놓고 나니까 땅 주인이 나타난 것이다. 왜 남의 땅에 허락도 없이 농사를 짓고 있냐며 당장 땅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급기야는 법의 이름으로 집달관을 앞세워 그 땅을 빼앗았다. 참다못한 농민들의 투쟁으로 가까스로 타협을 이루어 이 들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추리, 도두리 들판에는 유난히 부재지주가 많고, 그러므로 그들은 미련 없이 맨 먼저 국방부에 협의 매수하고 넘겨줄 수 있었고, 이것을 마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의매수에 응한 것이 대부분인 것처럼 정부에서 선전해대는 것이다.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은 그러기에 더 자부심이 있다. 바다를 메우고 갯벌을 일구어 만들어낸 옥토, 그 들에서 난 식량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고, 자식들 공부시켰다. 전국에서 가장 맛좋은 쌀이 이곳 쌀이라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러니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의 손은 단단할 수밖에, 그러니 이 농토는 목숨과도 같은 곳이다. 그 땅을 지키겠다는 농민들의 마음은 절절할 밖에. 그곳에서 나고, 그곳에서 땅을 일구고, 그곳에서 늙은 이곳 마을 주민들에게 보상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들이 사람이고, 사람이 들이 되고, 속 쓰린 가슴으로 들의 주인들이 우니 “들이 운다.”
K-6 미군기지에서는 소음이 커진다. 곧 전투기가 이륙하고, 아파치 헬기가 뜨고 내린다. 어느 것 하나 생명을 죽이는 연습이고 훈련이다. 이 아침, 들에서는 생명의 소리가 들리는데, 철조망 너머의 식수탑, 감시탑이 서 있는 미군기지에서는 생명을 빼앗는 죽음의 소리가 들린다. 그 죽음의 소리는 이제 법의 이름으로, 공권력의 이름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헌정한 이 들까지 확대될 것이었다. 이곳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이 몸을 던져 막지 않았다면 말이다.

겨우 10여명의 인권활동가들
문인상 앞에서 발길을 돌려 서둘러 마을로 돌아왔다. 그곳까지 걸어갔다 오는 데만도 1시간이 걸렸다.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오늘 상황을 알려달라고 쉴 새 없이 물어온다. 서울에서 울산에서 일이 있으면 알려달란다. 어제처럼 오늘도 경찰을 앞세우고 국방부 놈들이 대추분교를 집어먹겠다고 덤벼들 지 모를 일.
어제는 참 아찔했다. 우리는 기껏해야 3백도 안 되는데, 저들은 천명도 넘는다. 거기에 법의 권위를 앞세우고 있지 않은가. 오전 10시 이후부터는 다급한 상황이 이어졌다.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대추분교 정문을 막기로 했다. 대추분교도 이곳 농민들이 한푼 두푼 모으고, 서로의 힘을 모아서 세웠던 학교다. 이곳을 국방부가 현장 사무소로 쓰겠다고 접수하겠다는 것이고, 주민들과 범국민대책위 사람들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으니 법원의 인도명령을 받아서 그것을 집행하겠다고 들어오는 것이다. 국가가 지어준 학교가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세운 학교인데도 그들은 거침이 없다.
대추분교 정문과 학교 울타리 안쪽으로 트랙터를 비롯한 농기구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연행하면 전원 잡혀가겠다고 집회를 열고 있었다. 대추분교 정문이 뚫리면 그들은 대추리 주민들의 공동체를 지탱해주던 상징적인 장소를 거침없이 짓밟을 것이었다. 인권활동가들은 겨우 15명 정도, 우리는 쇠줄로 엮어놓은 정문 앞에 섰다. 무슨 힘으로 그들을 용역과 경찰을 막겠다는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곳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하니까, 연행하면 어쩔 수 없지 하는 심정으로 그 앞에 섰다. 몇은 쇠사슬로 몸을 감고 연좌했다. 전국 152명의 인권활동가 명의로 미군지기 확장 반대 선언을 했다. 얼굴을 서류로 가린 집달관을 앞세우고 용역과 경찰이 몰려왔다. 주민들이 소릴 지르며 항의했지만 주민들도 기세등당한 그들에게 위축이 된 듯 우리와 합류하지 않았다. 오로지 15명 정도 되는 인권활동가들이 정문에서 고립된 채 싸워야 했다.
먼저 한자로 집행이란 글자를 새긴 검은 복장의 집달리들이 나섰다. 주민 대표를 불러달란다. 서류를 보자 했지만, 묵묵부답, 여전히 서류로 얼굴을 가린 집달관으로 눈짓으로 지시한다. 그들은 법원의 결정 내용도, 인도명령서의 내용도 제시하지 않았다. 집달리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어 비키라고 하고, 비키지 않으니 쇠줄을 자를 심산으로 절단기를 동원한다. 몸으로 막는다. 어떻게 쇠줄의 한 가닥이 잘려 나갔다. 그래도 완강히 버티자 이번에는 경찰이다. 법원의 집행을 가로막는 공무집행 현행범이므로 3차 경고 후에 전원 체포하겠다고 메가폰을 들고 경찰 지휘자가 떠든다. 3차례의 경고가 끝나자 항의하는 우리를 한 사람씩 달려들어 사지를 들어 연행한다. 주위에 있던 주민들이 “네 놈들은 어느 나라 경찰이냐! 미국 놈들 경찰이냐!” 항의했지만 그들은 끄떡없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 연행되어 경찰 봉고차에 실렸다. 허탈하다. 이렇게 무너지는 것 같았다. 투쟁의 거점이었던 대추분교는 이렇게 짓밟힐 것 같았다. 그런데 1시간여가 지났어도 대추분교 정문은 뚫리지 않았다. 한 인권활동가가 정문을 묶은 쇠사슬 틈새로 팔을 집어넣어 버텼던 것, 저들은 어떻게든 이 활동가를 끌어내려 했다. 절단기를 동원해 정문의 철망을 뜯어냈지만, 결국은 그 활동가를 떼어내지 못했다. 문정현 신부가 정문 안에서 그 활동가와 손을 맞잡고 버텼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떨구고 하염없이 울어야 했다. 여기가 어딘데 저놈들에게 내어줄 수는 없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팔은 피가 통하지 않아 저려오고, 팔의 통증도 이곳만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는 일념 앞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도 모두 울었다. 전국의 동영상으로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이들도 울었다.
그 완강한 저항 앞에 저들은 물러났고, 연행되었던 19명의 인권활동가-그중에는 한겨레신문 기자도 있었다.-들은 한 시간여 만에 풀려났다. 현행범으로 체포한다고 호기 있게 덤비더니 격리 차원이었다나.

주민들이 누워 버리다
오후에 경찰은 정문 앞에 1001 기동대를 깔아놓더니 이번에는 논을 가로질러 학교 측면으로 두 차례나 공격해 왔다.
그렇지만 상황은 오전과는 딴판이었다. 인권활동가들이 지키던 정문 앞에는 동네 아주머니들-나이로야 할머니들이지만-이 먼저 주저앉았다. 우리가 세운 학굔데 우리가 지킨다, 저놈들은 자격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세금은 꼬박꼬박 걷어가고, 해준 게 뭐야, 백성 지키라고 경찰도 있고, 군대도 있는 거지, 백성 죽이라고 있는 거냐, 미국 놈들 앞잡이 노릇 그만해라, 아주머니들은 경찰들 앞에서 당당하게 주장했다.
인권활동가들 모두는 쇠사슬로 몸을 묶었다. 오전 투쟁의 승리가 있었으므로 결의는 드높았다. 인권활동가들은 그렇게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묶었고, 주민들과는 절절한 마음으로 서로를 묶었다. 오전에는 떨어졌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논을 가로질러 학교 측면을 경찰들이 공격하자 아주머니들이 길바닥에 누워버렸다. 나를 밟고 가라, 나를 죽이고 가라, 이놈들아 미국 놈들 전쟁기지 맹글어 줄라꼬 이 땅을 뺐냐, 이 날강도 같은 놈들아. 어떤 이는 야단을 치고, 항의하던 끝에 겨워서 울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 스크럼을 짜고 드러누워 버렸다. 경기남부의 노동자들, 학생들, 단체 회원들이 그들과 함께 했다. 차마 그들을 짓밟고 넘어서지는 못했던지 그들은 해가 지기도 전에 논길을 따라 철수했다.
그렇게 3월 6일 행정대집행 첫날을 이겨냈던 것이다. 선도투쟁으로 기꺼이 연행되고, 끝내 정문에서 팔을 낀 채로 저항했던 인권활동가들의 인기가 높아졌다. 촛불집회장은 승리감으로 넘실댔다. 자신감과 일체감이 절로 느껴지는 밤이었다.

전망 좋은 집을 수리하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3월 7일에는 저들의 공격이 없었다. 절반 정도는 멤버가 교체되어 다시 10여명이 되어 버린 인권활동가들은 인권단체 공동의 집을 수리하기로 했다. 대추리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2층 집이었다.
대추리 마을에는 지난 해 하반기 들면서부터 빈 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보상금 받고 떠나는 집들이 늘자 남은 주민들도 마음이 산란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필시 국방부 사람들이 시켜서 한 짓인지는 몰라도 나가면서 집을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살 생각도 못하게 엄처 파괴한다. 수도도 끊기고 전기도 끊고, 보일러도 파괴하고, 유리창은 유리창대로, 문은 문대로 파괴된 2층 집. 꽤나 돈 들여서 집은 집이었지만 바닥에는 깨진 유리가 즐비하고, 여기저기 가재도구가 널려 있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엄두가 나지 않던 집이었다.
우리는 1층은 포기하고, 2층만 수리해서 쓰기로 했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치우기 시작하니까 어느새 집 꼴이 돌아왔다. 감탄할 지경이었다. 가구를 옮기고, 쓰레기를 분리 처리하고, 문짝을 떼다 달고, 옆집에서 물을 끌어다 청소를 했다. 전기가 연결되어 2층에 불이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팔짝팔짝 뛰었다. 그날 연장을 구하랴, 아메리카 타운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날라 오랴, 노인정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허락도 없이 끌어다가는 엄청 타고 돌아다녔다. 거기에 흰 모자까지 눌러쓰니까 동네 이장이라고 깔깔대고 웃어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두 먼지를 뒤집어쓰고 빈집 수리를 하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어서 와서 밥 먹으라고 독촉이다. 밥 떨어진다고, 밥 먹고 하라고 일부터 와서 손을 잡아끈다.
결국 그날 집수리는 완전히 끝맺지는 못했다. 수도를 연결하고, 외부 침입자를 막기 위해서 문을 달아야 하는 일이 남았지만, 대체로 성공적으로 우리는 일을 끝냈다, 위대한 협동의 힘을 보인 하루였다. 저들이 파괴한 그 폐허 위에 우리는 생활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곳 농민들이 올해도 농사짓자며 일상의 생활을 계속 하는 것으로 저항하고 있듯이 우리도 그 폐허 위에 공동체의 일상생활을 건설할 것이었다. 저들은 늘 파괴하고, 철조망으로 분리하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의 저항은 삶과 연결되는 저항이다.

우리는 저항한다.
그 이틀 동안의 투쟁에서 우리는 위태로운 상태지만 헌법적 가치인 평화적 생존권을 지켜낼 수 있었다. 저 생명의 땅이 미군의 세계침략지기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것, 이곳을 지키는 것은 농민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일이고, 세계평화를 지키는 일이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기초한 미군 재배치 계획을 저지하고, 파탄시키는 일이다.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미국이 이곳 평택에서 그 침략 야욕의 꼬리를 내려야 하고, 그래서 결국은 미군이 철수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물러설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국가는 국가라야 국가로 인정받는다. 백성의 생명, 평화를 지켜주어야 할 의무를 국가는 지고 있다. 국가의 목적은 인권이다. 그 목적을 위해 국가는 국민들로부터 대표성을 위임받는다. 이 논리는 불온한 사상이 아니라, 이 나라의 정상배들이 그토록 입에 달고 사는 자유민주주의의 원리이고 원칙이다. 만약 국가가 그 목적을 등지고 국민을 억압한다면, 그래서 더 이상 법이 법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그 권력을 변경하는 것으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 정부는, 그 국가는 뒤집어야 하고, 권력을 변경해야 한다. 그것이 이 나라 정치가들은 입에도 담지 않는 저항권의 원리다. 이 저항권의 원리는 자유민주주의 인권관의 근간이 되는 로크란 사람이 말이다. 어느 사회주의자의 말이 아니다.
지금 평택 대추리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스스로 저항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회가 미군에게 평택 땅을 미군기지로 넘겨주는 법을 만들었고, 정부는 그 법을 집행한다. 주민들의 말마따나 지금까지 해준 것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고, 오로지 고통만 선사했던 그 국가가 급기야 삼권분립의 한 축인 법원마저 야간과 휴일에도 집행이 가능한 행정대집행을 허가한다.
내 나라의 백성들이 피땀 흘려 일군 땅을 그 땅의 주인인 농민들의 동의도 얻지 못한 채 법과 공권력으로 빼앗으려 한다. 가진 자에게는 철저하게 보장해주는 사유재산제 원칙도 여기서는 예외다. 왜? 이들 농민들은 힘도, 돈도 없으므로, 무시해도 되는 상대이므로….
그러나 우리는 본다. 인권과 평화의 꿈으로 일어나는 주민들, 이제 그들은 쉽게 통치되는 백성이 아니다. 법을 무서워하고 공권력을 두려워 떠는 무지랭이가 아니다. 그들은 삶 속에서 세계의 군사적 패권을 향하는 미국의 군사전략을 간파한다. 그들은 저 빈들을 논갈이하고 그곳에 벼를 심어 전국에서 가장 맛난 쌀을 생산하면서 미국에는 한없이 아부하는 집권자들의 간특한 속임수를 정확히 분석한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있다. 이번 대추리에서 지낸 이틀은 우리가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해줬다. 그래서 우리는 그 저항의 땅, 그래서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인권적 가치를 지키는 그 일, 그 저항의 길에 분명히 선다. 인권의 원칙을 거스리는 국가를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의 꼭두각시 춤이나 추는 대한민국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와 국회와 사법부에 저항한다. 그것이 정의이므로, 그것이 인권이므로.

다시 대추리에 가면 미군기지 위로 붉은 해가 뜨고 지평선 너머로 붉은 해가 지는 그 너른 들에 꼭 설 것이다. 그 들 앞에 서서 그 들이 우는 사연을 생각할 것이다. 그 들과 더불어 그 들의 주인인 그 곳 농민들과 함께 할 것이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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