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넘어뜨리다

회의는 30분밖에 남지 않았고 심지어 회의 준비를 해야 하는데 몸이 마음처럼 빨리 달려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 마음은 더욱 바빠지는 길, 어차피 회의는 30분 늦게 시작될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늦어질 것이라는 해묵은 경험칙을 받아들이기 싫은 오기쯤은 있어 더욱 바빠지는,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테너 색소폰의 음색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퇴근길, 한 아이를 넘어뜨리고 말았다.

 

철퍼덕 묵직한 땅울림과 다리 사이로 물컹하고 간지러운 아이의 살내음을 느꼈을 때 이미 아이는 엎어져있었고 놀란 내가 아이를 바라볼 즈음 아이는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프고 놀란 마음에 울상을 짓는 아이는 낯선 어른의 목소리가 다그침일까 무서워 차라리 울지 못하고 눈알만 엉거주춤 옮기는 거라. 아이의 바지를 걷어올려 살갗이 벗겨나가지는 않았는지 보았을 만도 한데 미안하다는 말조차 능숙하지 않은 어른은 엉거주춤 걸음을 옮겼다. 더욱 바빠지는 걸음 뒤로 미안해 미안해 자그마한 너를 보지 않고 바쁘게 걸어서 미안해 미안해 그 목소리가 차마 땅에 닿지도 않더라.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질문은 건네지 말고 보듬을 수 없는 상처에 행여 눈길이라도 붙들리지 말자고, 차라리 그런 다짐을 할 수 있다면, 미안한 마음만 쌓이는 시간들은 사라질까. 서러운 눈물들은 사라질까. 

 

물컹했던 아이의 살내음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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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3 22:35 2006/08/23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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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루 2006/08/24 09:2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게 참...오래 남지요?

  2. 미류 2006/08/24 10:5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응... 너무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