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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명박은 상식을 거부할까?

 지난 대선은 과거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던 사람 중에서도 다수가 이명박을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민주노동당은 정당이라는 생각이 잘 안 들고 민주당은 완전 개차반이었으니 뭐 당연한 분위기라고나 할까.

이렇게 기존의 지지 성향의 여부와 상관 없이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바뀔 수 없는 정치현실이었다. 이 상황에서 이명박을 찍겠다는 이들과 이야기할 때 솔직히 별로 흥이 나질 않았다. 나조차도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를 접은 상태여서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래도 진보정당 찍어야 복지국가 흉내라도 내는데 도움이 된다라고 주장하는 수 밖에 없었다.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이 대통령 되면 박정희 독재 시절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조금은 그런 불안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그렇게 절실하게 느끼지는 않았다. 내 생각에는 박정희 시절과 지금은 사회·정치·경제 상황이 분명히 다르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던 북핵 문제와 세계 경제 침체에 따른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에도 무지하게 힘들 것이기 때문에 어떤 정권도 쉽사리 다른 사회 영역에서 급격한 체제 전환을 시도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부시 정권 임기말을 앞두고 북핵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가 잡힌 것도 이미 2007년 대선 전이었고, 2003년부터 과도하게 부풀려진 부동산과 주식의 거품의 붕괴와 이에 따른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건도 이미 2006년 10월경이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있었다. 국제 유가도 끝 모르게 오르고 있었고,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석유의 공급 측면에서는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유가 상승 국면인 것도 이미 명확했다.

나는 민주노동당에 투표하지 않을 성 싶은 사람들에게 2007년 대선은 북핵과 세계 경제 침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실용적인 대안을 가진 정권을 뽑아야 한다고 에둘러 말했다. 뭐 내가 보기엔 이런 분들 대부분은 이명박의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에 더 많은 것을 따지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나도 이명박의 대선에서 보여준 최소한 이미지는 구체적인 대안은 없어도 이런 명확히 주어진 위기 상황에서 소위 "실용적"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왜냐면 이 두 가지 도전 앞에서 실패한다면 그 정권이 살아남을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은 여지 없이 내 이런 '상식' 수준의 기대를 깨버렸다. 아집과 아마추어 정신 그리고 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은 국가 운영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라는 것조차 무시하게 만드는 것인가보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대선 시기 이명박 캠프는 젊은 사람들로 넘쳐났다고 들었는데 막상 열어보니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는 눈을 씼고 찾아봐도 없었다는 점이다. 시대에 뒤쳐져 버려진 사람들의 귀환 내지는 유령의 귀환이나 될 법한 인사는 가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예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를 보면서 봉숭아학당이라고들 했는데, 딱 그 수준이었다.

솔직히 이명박 정권은 이미 몰락하고 있는 중이다. 다시 지지를 회복하고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럴 능력도 사람도 없다는 것은 명확해졌다. 문제는 이런 이명박 정권을 거치고 나면 더 많은 국민들이 정치가 쓸모 없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는 것이다. 기업에 가지 공무원을 하거나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사람도 더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된다. 딱 민주노동당이 몰락한 이유와 동일한 연장 선상에 있다. 소위 지도부는 상식을 거부하고 능력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배제되고 떠나면서 정치는 더 깊은 실패의 늪으로 빠지게 되는 형국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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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쓴 포스트 RSS링크를 수정했습니다. 기존의 링크가 잘못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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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진보블로그를 보면 "블로거진"이라고 된 뽑힌 글들이 하루에 한 번 정도 바뀌고 "새로쓴 포스트"라는 목록에는 실시간으로 새글이 올라오면 보인다. 나처럼 게으름뱅이들은 요렇게 사이트들에 새로운 글이 올라오는 것을 자동으로 추적해서 모아서 보여주는 RSS 리더를 쓴다. 인터넷익스플로러나 파이어폭수 같은 요즘 브라우저는 이런 리더기 역할도 내장하고 있다.

"블로거진"의 경우는 이미 진보블로그 프로그램에서 "블로거진"이라고 맨 위에 적인 그림으로된 간판을 누르면 들어가는 페이지에서 RSS를 제공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새로쓴 포스트"는 RSS를 바로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내 자신의 편리를 위해서 dapper라는 사이트가 제공하는 아무 웹 페이지에서나 RSS를 만들어주는 기능을 이용해서 블로거진과 새 포스트에 대한 RSS를 각각 만들어봤다.

혹시라도 RSS를 자주 쓰시는 분이라면 자신의 브라우저에서 아래의 링크를 열어보면 이 링크를 등록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로거진 RSS 링크


새로쓴 포스트 RSS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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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마저, 요즘 대세는 역시 망가지는 개그?

오늘 검찰이 이명박 정권의 대세인 "모르면 일단 저지르고 나중에 쪽 팔림은 팔자로 안다"를 따라 결행했다.

검찰은 조·중·동에 대한 광고주 불매 운동을 독려하는 글을 올린 시민과 해당 글을 내버려둔 카페 운영자 등을 출국금지시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광고주 불매 운동이 영업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단다. 설사 광고주들이 조·중·동에 광고를 못해서 영업에 차질을 빚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치더라도, 도대체 광고를 싣지 않기로 결정한게 광고주들이지 전화한 사람들인가? 도대체 유치 찬란의 극치다.

일부 언론 보도에서 검찰 관계자가 했다는 말을 들어보면 더 웃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불매운동 관련해서 형사처벌한 경우가 없어서 해외 사례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도대체 위법 행위가 구성이 되서 기소가 가능할지 자기들끼리 공부도 해보지 않고 덜커덩 출국금지부터 했다는 말인데. 자기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지금 웃기는지 전혀 생각도 안해보고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어차피 검찰이 아무리 바보 같은 일을 해도 이게 바보 같은 일인지 아닌지 모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인지 아니면 끝 없는 자신들의 충정을 보여주어야 할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지 도대체 판단이 되질 않는다.

공부를 이제 막 시작한 검사들을 위해서 참고 자료 좀 제공할까 해서 인터넷을 잠시 검색을 했다. 안드로메다 쪽에서 오신 분 같은 느낌인데 미국에 론 폴이라는 사람을 지지하는 사이트가 있다. 개인 블로그 비슷하기도 하지만 2008년 대선에 나간다고도 하고. 흠... 지난 대선을 겪은 우리 시민들에게야 별로 낯 설지 않은 분 될 것 같다.

이 양반 사이트 (http://www.dailypaul.com)에 가면 자신을 폄하하거나 자신이 보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언론의 특정 프로그램 등에 대해서 광고주들에게 보이코트를 요구하는 글이 아주 다양하게 많다. 사이트에 가셔서 search 메뉴에 boycott를 검색해보면 무지하게 많은 글을 볼 수 있다.

이런 글 중에 내가 읽어 본 것은 "Glenn Beck Advertiser Boycott - TAKE ACTION!"(http://www.dailypaul.com/node/7467)이라는 글이다. 여기는 보니깐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테러리스트라고 했다면서 CNN의 글렌 벡이라는 사람의 프로그램에 대해 광고주들에게 매일 오분씩 시간을 내서 광고 내리라고 전화하라는 내용이다. 글에는 당근 광고주들 이름과 연락처가 쫘르륵 달려있다. 거기다가 댓글에는 여러 사람들이 내가 어떤 회사에 전화했더니 반응이 어떻더라 쫙 달려 있다. 한번 보라.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은 양반이다.

좀 엽기적이긴 하지만 이 사례를 보면 최소한 미국에서 광고주에 대한 광고 중단을 요구하는 소비자 운동이 얼마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한 일에 검사가 여러명 달라 붙어서 형사 처벌이 가능한지 공부 중인 대한민국 검찰을 보면서 한숨만 나오는 건 나만이 아닐 것 같다.

이외에도 사례는 널리고 널린 것 같다. 잠깐의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것에서 몇 가지 뽑아보면 토크쇼의 호스트가 동성애를 왜곡·비하하는 발언을 하여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의 Dr. Laura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게이·레즈비언의 광고주에 대한 항의를 통해 광고주들이 광고를 내린 경우가 있고(뉴욕타임즈 기사 Advertiser Shuns Talk Show As Gay Protest Gains Power 참조),  또 다른 경우는 라디오 호스트가 이민자와 이슬람에 대해서 왜곡·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이슬람 관련 단체가 광고주들에게 광고를 내릴 것을 요청하여 몇 개 광고주가 광고를 내린 것도 있다(뉴욕타임즈 기사 Boycotted Radio Host Remains Unbowed ). 방송 등의 언론에서 잘못된 말을 한 것에 대해서 이렇게 광고주를 대상으로 광고를 내릴 것을 중요한 사회운동의 수단으로 삼고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 널리고 널렸는데 도대체 왜 이 나라 검찰은 이제와서 멀쩡한 사람들 출국금지 시켜놓고 해외 사례 검토를 한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다른 나라 검찰도 자신들처럼 돼도 않는 일을 가끔 하는지 알아보고 위안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황당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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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을 꿈꾸며

7월 5일 대규모 촛불집회를 마지막으로 이제는 두달 넘어 계속된 촛불집회가 이제는 숫자만으로 보면 꺽이는 것 같다.

모든 것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오우 완전 할아버지 톤). 이렇게 2008년 봄과 여름을 달군 촛불집회도 끝이 보인다. 이명박 정권은 쪽팔리는 "추가협상"이라는 것에 내몰리고 수차례 담화라는 것을 내기는 해서 별로 없던 그나마 권위와 신뢰마저 바닥을 들어내버렸지만 그래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라는 큰 목표에서 보면 성공을 한 셈이고,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시민들과 단체들도 쇠고기 수입 재개는 막지 못했지만 이명박 정권을 식물정권 비슷한 상황으로 만들었으니 성공한 셈이다. 모두 윈-원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텐데 이러한 결과가 모두에게 해피엔딩으로 비쳐지지는 않는 것 같다.

신문을 봐도 대책회의 등에서도 앞으로의 진로를 두고 촛불을 계속 들지, 불매운동 등으로 전환할지, 주말마다 촛불집회를 열지 등으로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지식인 층에서는 오건호씨 같은 분은 "서민공공성연대"를 만들자고도 한 것 같다.

시작보다 끝을 하는 것이 항상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원했던 목표라는 것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어떻게 끝을 맺어야하는가라는 문제를 생각하는 것만큼 피하고 싶은 일은 없는 것 같다.

촛불을 들었던 어떤 시민들은 진보정당에 자리를 잡기도 하고, 어떤 시민들은 아고라에서 아고라대학생연합이라는 것을 만들기도 한다. 촛불집회를 생중계했던 칼라TV는 새로운 매체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런 모습을 보면 2008년의 촛불집회가 단순히 집회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모색을 그것도 다양한 차원에서 고민하게 해준 계기라는 점은 어느 정도 분명한 것 같다.

가장 좋기로야 촛불집회를 통해서 약간은 모호하고 무질서하게 들어났던 이야기거리와 사람들이 토론하고 모이던 그 방식이 발전하고 정착되어 모든 참가자들이 그속에서 새로운 거리를 찾아갈 수 있겠다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지금의 어떤 틀도(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진보연대, 다음아고라)  좁고 부족한 공간 같다.

서구의 68혁명 세대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가지고 문화공간과 디지털공간을 개척했다고 들었다. 암스테르담 디지털 시티 같은 거대 온라인 공도체를 주도한 사람들도 68세대였다.

내가 꿈꾸는 해피엔딩의 출발은 다음 아고라의 발전된 모습 어디쯤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에 추천기능으로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끌어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모아낸 그 힘이 좀 더 밀도 있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한게 아닐까 싶다.

촛불을 드느냐 마느냐 불매운동이냐 아니냐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과 함께 이야기되었으면 좋겠다. 뭐, 진보넷이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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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월마트가 로컬푸드 운동에 동참?

뉴스 듣다가 기절하는줄 알았다. 돈 밖에 모르고 지역의 상인들 다 잡아먹고 열악한 보수와 작업환경으로 유명한 월마트가 자기네 매장에서 지역 생산 농산물 비중을 확 높인다는 소식이었다. "오잉, 이것들이 개과천선을 하려는 것인가?" 개과천선의 결과는 아니었고 결국은 기름값이 너무 비싸 운송비를 아끼는 방법이었다. "역쉬~,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만."

월마트가 공산품만 파는 매장도 있지만 큰 매장(수퍼센터라고 하던가...)에는 식품 코너까지 있다는 것을 아는 분은 안다.  그런데 그 로컬푸드라는게 매장이 있는 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라는 거지, 우리가 소위 로컬푸드 운동에서 말하는 소규모 친환경 농업에서 생산하고 같은 지역내에서 소비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 기름값이 뛰어서 악덕기업의 대명사인 월마트마저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많이 써보려고 하는데 이런 기회라도 빌려서 우리나라에서도 이 로컬푸드 운동이 좀 더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면 어떤가 싶다. 월마트와 궁극적으로는 갈 길이 달라도 일단 고유가라는 여건은 같은 거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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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의 미래 - 누가 정의할 것인가?

촛불집회가 이제는 두달이 다돼어간다. 소위 말해서 '정치'를 안다는 정당, '운동권', 학자들이 너도 나도 촛불집회의 파괴력 앞에서 당황을 했다. 그리고는 어떤 식으로든 이 '현상'을 이해하고 나아가서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동원 또는 소멸시키려고 노력을 했다. 이 과정에서 진보정당과 촛불집회를 연결하여 토론을 하기도 하고, 서구의 신좌파운동에 빗대어 해석하려고 하기도 하고, 하지만 아직은 이런 시도들이 '당황'이라는 일차적인 감정적 공황 상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명박정권의 계속되는 헛발질도 어찌보면 이런 당황감과 이해 불가라는 자신들의 처지에서는 이해가 간다.


어제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서울광장에서 시국미사라는 형태로 '평화적'으로 집회(이제는 미사라고 해야겠지만)를 가졌다. 주변에서 '폭력'이라는 키워드를 두고 촛불집회를 규정하려는 현 정부와 보수 집단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쾌거라는 평가도 많이들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왠지 지금의 상황이 불편하기만 하다. 그것은 천주교의 개입으로 촛불집회가 폭력에서 비폭력으로 기조가 바뀌는가 아닌가와 같은 그런 차원에서의 불편함이 아니다. 보수 집단이 촛불집회를 과거 80년대의 "불법시위", "폭력시위", "전문시위꾼(또는 운동권)" 등의 틀로 편리하게 해석하고 몰아가려고 했던 것이 적절하지 않았던 것만큼이나, 신좌파운동으로 규정하려고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촛불집회는 사실 기존의 사고의 틀 또는 정치적 동원 체제로 쉽사리 규정되지 않았던 것 이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당황스럽지만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이 생겨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폭력과 비폭력을 두고 이슈가 되더니 한순간에 시국미사라는 틀(왠지 80년대 민주화시위나 보수기독교단체의 호국예배가 연상된다)에 끼워 맞춰지는 것 같다.


내가 사제단의 노력을 폄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촛불집회를 만들어낸 힘이 지금 현재 사람이 얼마 모였는가를 떠나서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하고 규정하는 것까지 미치지 못하고 사그러드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명박을 비판하고 이 정국을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촛불을 든 사람들이 여기 모인 사람들이 누구인지, 왜 모였는지, 소고기 문제를 넘어 이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하나의 집단으로서 살아가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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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참 답답한 중생이다.

본격적인 백수생활도 이제는 한달하고도 반이 지나간다. 우리 나이로 서른 여덟살. 오 나이 꽤 많이 먹었다. 직장을 바꾸기를 이미 여섯번을 했다. 이제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각오를 하고 백수생활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헐~

솔직히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고 싶은 일이 손에 잡힐지도 아직은 감이 안온다. 평생을 어찌보면 무난하게 살아온 덕분에 이모양일 것이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돌아보면 내맘대로 살아온 것 같은데 지금까지 해온 선택이라는게 나도 모르게 어떤 정해진 틀에서 이루어져왔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뭐 결론은 뻔하다. 나 역시 잘못된 교육의 희생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은 같은데, 그렇다고 그게 내 게으름을 완전히 덮어주지는 않는다. 국영수와 시험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중·고등학교 시절, 어떻게 하면 폼 날까만 생각하면 산 대학시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질 생각을 못했거나 피했다는 생각이 든다. 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의 선택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싶다.

인생이 어떤 직업을 어떤 일을 하느냐로 다 판결나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부분이니깐. 아직도 고민이다.

고등학교 시절 어영부영 본 적성시험에서는 인문계가 좀 우세하게 나오고 부모님은 역시나 판검사 같은 기대를 하실 때, 의사(그것도 한의사)가 되보겠다고 우겨서 이과를 선택했지만, 이놈의 갈대같은 간사한 나는 첫해 입시에 낙방하고 재수해서는 전산과로 진학을 했다. 자신의 꿈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싶다. 나름 고등학교 시절에는 시간을 내서 한의학 관련 책도 보고 했는데 말이다.

첫 직장을 선택한 것도 병역특례 받아보려고 하다가 아무 준비도 없이 지내다 선배가 원서 내는데 따라 내서 취직되고 유학도 가고 미국에서 직장 생활도 했지만 뭐 특별한 선택 기준이 있었다기 보다는 구하기 쉬운 일자리, 학교를 그냥 선택한 셈이다. 유학을 하고 나서 무엇을 해야지라는 목표가 없이 유학한 뻔한 결과다.

이제는 내 인생에도 목표가 생겼으면 좋겠다. 평생 별보는것이 좋다고 국민학교 시절부터 그 꿈을 지켜 천문학과 교수가 된 형을 알고 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나 자신에게 타이른다. 그리고 이번만은 조바심 내지 말고 생각해보자고 다짐을 해본다.

얼마나 더 개기면 목표가 생길까? 모르겠다. 백수가 목표가 되면 어쩐담.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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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단상 - 너희들의 나라

광우병을 계기로 촛불집회가 연일 계속된단다. 집회에 참여하는 다수가 중고등학생이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또 놀라고 있다. 뭐 어떤 사람들이야 어린것들이 뭘 안다고 나서느냐 아니면 분별이 없어서 선동에 놀아나고 있다고 열심히 떠들어대는가보다.

내가 언론 등을 통해서 보면 학생들이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뭐가 문제라고 이 학생들을 불온시하는지 좀 모르겠다는 생각이 처음에는 들었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학생들이 온갖 정치적 좌와 우로 현 체제 나누고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일거 같다.

도대체 좌와 우를 막론하고 그들이 대변한다고 주장하고 공동체의 범주로 제시해왔던 국가, 민족 그리고 계급 어느것하나 이 학생들에게 자신들을 진정으로 대변하고 포괄하는 공동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명박이 어른들에게 대놓고서야 당신들이 원해서 나를 뽑은 것 아닌가라고 강변할 최소한의 근거라도 있겠지만, 이 학생들에게는 어떤 절차와 정당성을  통해 자기가 그들의 대통령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부모들이 이들을 대신해서 정치적인 결정을 해주었다고 아마도 우길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대신하기 위해서는 그 누군가가 무엇을 어떻게 대신해달라고 맡겨주어야 하는 것 같다. 나도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아빠지만, 내가 딸의 모든 의사를 대신해서 결정해주겠다고 한다면 우리 딸이 그러라고 할까 생각을 해보면 절대 그럴리가 없는 것 같다. 나와 딸과의 상호 관계는 그래서 끝 없는 갈등과 협상의 연속일 수 밖에 없는 것일 게다. 나로서는 아직도 완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러한 협상을 현실로 받아들일려고 노력중이다.

이 학생들에게 선진한국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된 조국의 영광을 위해서, 아니면 계급적 단결을 위해서 어른들이 제시하는 이러저러한 일들에 동의(더 정확히는 아마도 복종)하고 조국(민족) 또는 계급에 대한 소속감, 연대의식, 또는 충성심을 가져라라고 주장하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는 명확하다.

이들은 한번도 이 조국(민족)과 계급에 일원으로 자신을 포함시켜줄 것을 요구한 바가 없고, 조국과 계급은 이들에게 들어올지 말지를 물어본 적도 없다. 나이가 들면 그냥 가입되는 거라고 얼버무리고 말뿐이다.

지난 4월 총선의 투표율은 19세미만은 아예 계산에서 빼고도  46.1% 밖에 안됐다. 좋다 투표권 없는 청소년들을 과감하게 유령쯤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구의 나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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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으로 살아남기 (3): 살아남는다는 것은 내가 바뀌는 것이다.

이글로 세번째로 한 주제를 가지고 쓰는 글이다. 솔직히 오만방자하고 너무나 한쪽으로 치우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글을 계속 써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왠지 이렇게라도 적어놓지 않으면 앞으로는 정당의 "정"자만 들어도 기겁을 하고 선거때면 기권하는 과거로 돌아가버릴 것만 같아 적는 것이다.

아마도 앞의 두 허접한 글을 읽었던 분들이라면 도대체가 이 인간은 살아남는 것이 곧 선이다라는 생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 아닌가하고 여길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게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몇 사람의 신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찌보면 어정쩡하고 타협적인 그러나 살아남을 수 있는 정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정당들과 차이점 하나 변변히 없는 정당이 살아남을 수도 없겠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발악을 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것도 아니다.

진보신당에 최근에 가입을 했다. 남들이 진보신당 욕하는 소리 다 듣고 나서 가입한 셈이다. "선거 정당", "급조 정당", "민주노동당과 차별성 없는 정당", "명망가 정당" 뭐 이런 비판 많이 한다. 나는 이런 비판에 거의 100% 동의한다. 그리고 내가 아는 진보신당 상근자나 당원들 이런 비판에 동의들 많이 한다. 그런데 솔직히 당 해산 안 당하고 그래도 3% 가까운 정당투표율 받고 껍데기라고 불리는 한이 있어도 살아남은 것에 나는 일단 기쁘고 놀랍다. 진보신당의 중앙당이나 유명인사가 출마하지 않은 지역에서 선거를 치루어낸 분들을 나는 개인적으로 꽤 많이 알고 있다. 그 사람들에게서 나는 나는 생존본능 같은 것이 있는 것을 총선 기간 직·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느꼈다. 아마도 진보신당 지지자들도 그런 부류일 것 같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어떤 이념과 목표를 가지고 진보신당을 지지하고 참여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마 자신있게 어떤 것을 기반으로 가고 있는지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아직까지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생존본능 또는 위기의식이 희석되지만 않는다면 단순히 생존을 넘어 희망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역시 옆길로 이야기가 셌다. 하지만 주제와 완전히 벗어난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신념이나 사상을 이야기하고 대의를 이야기하는 것에 무척이나 익숙한(아니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아직도 좋아한다. 하지만, 정당을 하겠다면 최소한 살아남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것에서 먼저 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원하는 정당과 이념을 머리에 그려놓고 출발하기보다는 지금의 정치 지형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두 꼭지를 틀어줄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는 정당을 그려보고 출발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정당의 이념이 너무 좌거나 우여서 중도가 득세하는 정치 현실에서 정당이 못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대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인식 수준과 가지고 있는 자원의 한계를 인정하고 거기에 맞출 수 있는 정책·조직을 갖는 것에 대해서 거부하지는 말아야한다는 이야기다. 좀 비꼬는 투로 말한다면 "개량"과 "회색"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뉴타운 정치"를 비난하기 보다는 그 뒤에 숨어있는 욕망을 이해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두번째 글에서 민주노동당과 같은 '든든한(?)' 빽이 있는 민주노동당도 생존 자체의 위기를 겪을 위험이 있는데 도대체 이런 빽도 없는 정당이 이름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었는데, 이에 대한 내 나름의 생각을 적어보기 전에 너무 서설이 길었다. 그래도 생존본능은 없고 이념만 존재하는 정당은 죽어도 생존본능만이라도 있는 정당은 살아서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주장하려고 잡설이 그만 길어졌으니 이해를 바란다.

아무리 생떼를 써도 정당의 생존의 결국 누군가의 지지를 받느냐 못 받느냐로 결론난다. 노동당 모델을 통한 지지를 얻는 것의 한계는 앞글에서 지적한대로다. 지지를 확대하는 전략으로 노동당 모델에서 가능한 선택은 민주노총 같은 대중조직이 꾸준히 성장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하거나 아니면 비례대표를 확 늘려서라도 소수 정치세력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활동할 의회공간을 확보하거나 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어느 한 가지 가까운 현실에서 노동당 모델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바뀔 것 같지 않다. 당연히 정치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 삶이 좀 나아지기 위해서라도 이런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이런 노력을 하는 분들을 나는 존경해마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어려움에 처한 노동당 모델을 지금 고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형태로 규정이 가능한 지지층을 다른 방식으로 지지자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정당의 모델을 시험해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지금 당장 평등, 평화, 생태, 연대라는 말에 그나마 들어주기라도 할 그런 사람들이 어디에 있을까를 찾아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출발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을 노동자계급이니 중산층이니 30대니 하는 말로 정의하는 것이 가능한지 따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에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많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단 10%라도 잠시 시간내어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의 욕구와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그리고 그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정당이라면 현재 시기에서 생존본능을 가진 정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2004년 총선부터 2008년 총선까지 한나라당과 민주당류의 거대 양당에 투표하지 않고 기타 정당에 투표하는 사람들이 최소 약 13%정도 되는 것 같다. 2004년 총선에서는 민주노동당이 13% 정당투표율을 보여줬다. 나는 이 사람들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욕구가 균일할 것이라고 전제하기는 무지하게 어려울 것이지만 말이다. 2004년 민주노동당은 13% 정당득표율을 지켜낼 방안이 전무했다. 이들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한 적도 없고 이들을 위해서 제시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노동자·농민·서민을 대변한다는 자기만족을 벗어나보지 못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얼마나 잘 지내는가가 도대체 민주노동당 또는 대중운동의 발전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민중경선제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껍데기만 서로 보아왔다. 자리 몇개를 주는가가 도대체 노동자중심성과 무슨 관계라도 있나? 도대체 노동자중심성은 뭔 소린가? 연대라는 말은 공동투쟁에 분담금 얼마내고 이름 걸고, 집회에 조직 소속원들 동원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쯤으로 전락했지는 않았나 싶다. 조직 대 조직의 관계로 모든 것이 환원되고 도대체 조직과 개인, 개인과 개인의 관계는 생략되는 구조가 굳어져가는 이런 환경에 누가 개인으로서 참여하고 싶어지고 그 속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정작 노동자를 외치는 '조직'이 노동자를 소외시켰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책에 쓰여있는 계급·계층을 바탕으로 정당을 그려보는 일을 그만 두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런 가상의 계급·계층을 들먹이며 정치하겠다는 사람들은 내가 겪어온 바로는 대부분 세상을 자신의 머리 속에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세상을 바꾸는데 별 관심이 없으면서 작명에 유난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내 인생에는 별로 도움 안되었다.

내가 바뀌면 살아갈 길은 여러군데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바뀔 생각이 전혀 없다면 살아갈 방법은 오직 하나 세상이 그걸 허락해주는 경우뿐이다. 원칙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이지만,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철저하게 주어진 틀 안에서 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솔직히 과거를 비판하기는 쉬워도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지금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남을 방법도 궁리해보지 못하고 내가 바뀔 여지는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나의 정의와 이상을 가지고 정당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왠만하면 말리고 싶다. 정당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에서 행복해하는 사람인 경우는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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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으로 살아남기 (2): 민주노동당 분열 어떻게 봐야지?

복습이 예습보다 중요하다는게 내 공부론의 핵심이지만, 여기서 복습하자고 하면 글 읽는 분들 화낼 것 다 알아서 간단하게 줄인다. 간단 복습의 핵심은 창당은 조직 어느 정도 있으면 가능한데 제대로 기능하는 정당을 만드는 것은 열라 어렵다 되겠다.

잠시 이번 글에서는 일반론을 벗어나서 민주노동당의 최근 분열 상황을 살펴보면서 제대로 기능하는 정당의 조건을 만드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살펴보자.

뭐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 창당을 주장하는 세력 중에 일부는 초기에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주된 이유로 들었다. 나는 그 두가지가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이유였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만으로도 민주노동당을 탈당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도대체 내가 저런 사람들하고는 같이 당 못하겠다고 탈당하는데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종북주의와 패권주의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데 이를 이유로 나가는 사람들을 비난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나는 이 두 가지가 민주노동당에 해악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노동당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정당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고 일부 내용은 그런 설명을 적절하게 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며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는 사람들을 "배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그 정신 상태가 솔직히 의심스럽다. 사기꾼한테 어떤 사람이 넌 사기꾼이야 그래서 난 너랑 친구 못해 했다고 하면 그런 말한 사람이 잘못했다해야 하나? 민주노동당 전체를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난다면 그건 좀 이해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건 혼자 속으로 화내고 말 일이지, 그런 말 나올때까지 입 닥치고 있던 사람들이 할 얘기는 아니다.

좀 이야기가 옆길로 센 듯하다. 그래도 그리 주제에서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다. 하여튼 종북주의·패권주의 논란과 함께 가시화된 민주노동당 분열 사태가 그런데 급속도로 확대되고 진보신당이 출범할 수 있었던 동력이 어디에 있을까? 분당에 대해서 회의적이던 심상정도 돌아서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것이 일종의 생존본능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민주노동당은 안 돼"라는 생각이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자신들이 대변하겠다고 주장하는 이해 당사자들로부터 지지도 받지 못하고 이해를 대변할 힘도 갖추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민주노총의 배타적지지로 성장한 당이다. 정당의 성립 모형이 민주노총과 같은 노동자 조직의 성장과 배타적 지지를 기반으로 정당도 성장한다는 모형이다. 한마디로 민주노총이 잘 되면 흥하고 못 되면 망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노동자계급 중심성", "대중정당", "계급정당", 뭐 같다 붙이는 말은 많아도 실제 돈 나오고 표나오는 것은 바로 이 '노동당' 모델의 작동 방식에서다. 잘 알다시피 민주노총 요즘 많이 힘들다 노동운동 자체가 어렵다.. 민주노동당 잘 안 되는 것은 이 노동당 모델에서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는 잘 될 까? 이 노동당 모델에서는 그 해답을 제시해야 할 제일 주체는 노동운동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비정규직을 되내이는 수준에서 크게 나아간 것 같지 않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잘 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음 써놓고 보니 오만한 태도는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어차피 처음부터 내 한계가 분명하다고 밝혔으니 감안하고 읽어주시는 센스를 기대함다.)

조금 더 이 '노동당 모델'이 민주노동당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했는지 살펴 보면서 그 한계와 가능성을 좀 살펴보자. 우선 좀 단순화해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만들기의 과정을 살펴보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민주노동당은 헌법소원도 내고 해서 적은 의석수나마 정당명부투표제를 도입해서 비례대표를 통해서 국회에 진출할 길을 열었다. 일정 수준(현재는 3%)의 지지율을 넘기면 비례대표 의원이 탄생하게 된다. 이 비례대표 한 자리를 따기 위해서 여러가지가 필요하지만 항상 필요한 것이 표와 돈이다. 민주노총 열심히 돈도 모아다 주고 표도 모아왔다. 민주노총과 상관 없이 노력한 당원과 지지자도 많지만, 어쨌든 노동당 모델과 민주노동당 현실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은 막대했다. 2004년 총선 구도도 나쁘지 않았고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상근자, 당원 모두 열심히 노력하고 해서 비례 8명, 지역 2명이라는 정말이지 기적같은 성과를 냈다. 산업화와 도시화 초기의 서구 국가도 아니고 21세기 한국의 척박한 환경에서 노동당 모델이 이런 짧은 시간 안에 이런 성과를 낸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기적이고 그 앞날을 기대해도 좋은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이렇게 정당명부투표제를 잘 활용했고, 앞으로 이렇게 당선된 비례 국회의원들을 다음 총선에서 의무적으로 지역으로 보내기로 결정을 했다. 한 번 생각해보시라. 매 총선마다 5명 정도가 비례로 당선된다고 치고 이 사람들이 다음 총선에서 지역에서 비례로 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당선된다면 몇년이면 국회의 절반을 차지할까? 첫번째 총선에서 5명, 두번째 총선에서 10명, 세번째 총선에서 15명, 네번째 총선에서 20명...  이런식으로 하면 현재 민주당 수준인 80석을 채우는데 필요한 총선은 16번이다. 64년 걸린다. 하지만, 사실 과반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일단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20석만 채우면 또 국민들의 인지도도 달라질 것이고 재정 상황도 이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개선될 것이다. 매번 총선에서 비례가 5명이 아니라 10명, 20명으로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니 그 시간은 급속하게 단축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한 10년 20년 보고 해볼만한 계획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계산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2008년 총선을 보자. 민주노동당은 3명의 비례 국회의원과 2명의 지역의원을 당선시켰다. 진보신당은 한명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야할 점은 진보신당이 총선을 치룬 형식을 살펴보면 정확하게 민주노동당 모델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노회찬과 심상정이 당선 되었더라도 그건 진보신당의 새로운 모델이 제시되고 성공한 사례로는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비례로 인지도 쌓고 지역 출마하는 모델 말이다. 2004년에 비해서 민주노동당은 반쪽이 났다. 정당명부투표제가 민주노동당에게는 2004년에는 득이 됐지만 2008년에는 내가 보기엔 손해였다. 친박연대와 같이 급조 코미디 정당이 실제로 정당명부투표에서 3위를 함으로해서 지역에 충분한 출마자를 낼 수도 없던 정당(?)이 엄청난 의석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창조한국당도 뭐 비슷한 득을 봤다. 다시 돌아가서 무한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하던 모델이 살짝 뒤짚어보니 끝도 없는 나락의 길로 밝혀지는 순간이다. 비례대표후보를 두고 벌어지는 당내 자리 다툼으로 인한 당력의 소모와 분열은 빼고도 말이다.

민주노동당의 의석 늘리기 전략과 관련해서 조금 더 비관적인 상황을 짚어본다면, 솔직히 이번 비례대표로 당선된 3인 중에 다음 총선에서 지역에서 당선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비례의원이 지역에서 살아돌아오는 것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마도 현실성 있는 판단일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지속적인 정당지지율 상승으로 비례의석만 꾸준히 늘려가는 방법뿐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그것으로는 정당지지율이 거의 40%가 되어야 겨우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수준 밖에 안된다. 그런데 이 정도 지지율이면 이미 집권 가능한 수준 아닌가.

너무 국회의원 수로 정당의 성패를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론을 제기할 분도 있을 것이다. 백번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대변한다고 말한 사람들의 지지가 정당투표율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명백히 지지자와 정당의 결속이 잘 안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점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그리고 의회를 통해 지지자의 이해를 반영한 법률과 예산이 배정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의원이 필요하다. 2004년에 민주노동당 내에서 "거대한 소수"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현재까지도 그런 이야기 쓰는 사람들 많다. 국회 의석수는 작아도 대중적인 운동의 힘과 연결하여 의석수 이상의 힘을 국회에서 사용하자. 나는 이 전술이 전술 자체로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분명 민주노동당의 의원들은 국회의원 수로 보아서는 불가능한 일들을 국회에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거대한 소수"가 항상 "소수"에서 벗어날 방법은 제공하지 못했다고 본다.

민주노총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가 되고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지난 17대 수준의 활동만 해준다면 글쎄 앞으로 한 10년은 민주노동당은 5%, 의석수 5명 정당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반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민주노동당에 남아있건, 탈당을 했건 간에 민주노동당에 애정을 가졌던 사람들 이런 상황에 만족하고 행복해할 사람들이 아니다. 숨이 턱 막히고 머리 속에 "한계"라는 단어가 자꾸 떠오르는 것이다. '노동당 모델'의 한계 말이다. 조합주의적이다, 개량적이다, 의회주의에 빠진 정당이다 이런 좀 고상한 이야기말고 그냥 국회에서 제 목소리 제대로 내보고 싶은데 그게 왠지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아서 진보신당이 만들어졌다고는 보기 어렵다. 민주노동당이 따르고 있는 이 모델을 버리고 새로운 정당 모델을 찾아보자 정도가 진보신당의 추진 동력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민주노동당 안에서 이 모델을 버리자고 할 용기가 또는 힘이 없었던 것도 아닐까 싶다. 참으로 여기서 난감한 것은 민주노동당 모델은 실패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걸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야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모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모델을 운영하고 발전시키는 사람들이 게을러서 또는 무능력해서라고 주장한다면 참 반박하기 거시기해진다. 이 문제는 결국 열심히 노동운동하고 정당운동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분히 비실증적인 방식으로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진보불로그에 이런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신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이런 분들이 이야기를 이어주시면 좋겠다.

너무 국회의원 수만 가지고 민주노동당의 성패와 분열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이글의 한계가 분명하지만, 당원과 지지자들의 기대와 민주노동당의 성취가 불일치하고 있고 이것이 개선되기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로 '노동당 모델'이 현실에서  방황하거나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 정도를 지적했다고 이해해주시라.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련다. 다음에는 좀 이야기를 일반화시켜서 그럼 도대체 민주노총이라는 든든한 빽을 가진 민주노동당도 한계가 있다면 한국에서 지역주의, 명망가의 인기, 돈을 떠나서 제대로 기능하는 정당이라는게 살아남을 수 있는 뭔가 비빌 언덕이 도대체 있기는 한건지 좀 따져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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