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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일 후원금 송금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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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8-01 13:48:16, Hit : 267, Vote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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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8월 1일 후원금 송금내역
한동안 구경할 수 없던 태양이 무척 뜨겁네요. 저는 옥탑방에서 일하기 때문에 머리위의 태양을 하루종일 잘 느낄 수 있답니다. 무더위에 음식 조심하시고, 괜한 감정의 소비로 지치지 마시고, 유쾌 상쾌함을 창조하고 전달하는 8월이 되시길 바랍니다. 8월 1일 송금내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6월 잔액 140,422원

7월 3일 이윤* 1만
7월 10일 연상* 1만5천
7월 11일 조대* 10만(10달치)
7월 11일 이민* 1만
7월 12일 김예* 1만
7월 25일 이민* 1만
7월 31일 황수* 1만5천
7월 31일 구태* 2만
7월 31일 류은* 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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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모금액 20만원
8월 1일 송금액 150달러+수수료 5천원=149,522원
잔액: 190,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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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뚫렸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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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대환  (2006-07-28 20:37:32, Hit : 305, Vote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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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뚫렸나봐요
없이 사는 사람은 비가와도 눈이와도 걱정입니다.
항상 이 맘때면 비에 태풍에 여기 저기 몸살을 앓게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진자들과 권력있는 자들의 횡포에 몸살을 앓았는데 엎친데 덮친 격이죠.

지금도 비가 내려 여기 저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한적한 곳에서 비소리를 들으며 차 한잔 혹은 술한잔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지만 삶에 지쳐서, 혹은 쏟아지는 비를 막을 길이 없어서 빗물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보면 역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도 비 피해가 없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이 비가 그치면 더운 여름이 이어질텐데, 더위 이상의 고통과 공포도 오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벌써 평택은 8월초에 주택철거를 하느니 마느니 하고 있고, 각 노동현장에서는 노동조합인정을 받기 위해서, 생존권을 지키고 정당한 노동의 권리를 위해서 벌이는 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좀 더 주변을 돌아보는 것을 놓지지 말아야 겠습니다.

오랜만에 들어와서 답답한 이야기만 하고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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핌에게서 온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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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7-25 14:46:35, Hit : 282, Vote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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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핌에게서 온 메시지
오랫만에 핌과 연락을 했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던 난민들이 직접 제작한 영화가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캄보디아에서 열린 난민영화제에서 상영됐다고 하고요. 그러나 영화 출연진들의 안전 문제 때문에 당분간은 태국 내에서는 상영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저에게 DVD를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영화에 대한 특별한 비용은 청구하지 않지만 난민 사회를 위한 후원금을 모아서 보내면 됩니다. 영화가 도착하면 상영회를 가지면서 우리 만원계 최초의 오프라인 모임을 갖도록 하지요.

그리고 국경없는 친구들의 연례활동보고서가 완성됐다고 합니다. 이 보고서가 도착하는대로 여러분과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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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 위험에 처한 난민여성과 아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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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7-19 16:01:53, Hit : 316, Vote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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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신매매 위험에 처한 난민여성과 아동(4)
다들 큰 비에 별고 없으신가요? 어찌된 일인지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해야 할일도 하염없이 불어나서 이번달에는 전혀 글도 올리지 못하고 벌써 하순을 향해 가네요.

모쪼록 주변에 비 때문에 피해입은 분들과 더불어 이 여름을 잘 넘기시길 바라고요. 그리고 휴식도 잘 취하는 여름 되시길 바랍니다.




끝없는 침해: 인신매매 위험에 처한 버마 난민 여성과 아동
(난민여성과 아동을 위한 여성위원회 보고서.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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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 위험에 처한 난민여성과 아동(4)

버마 난민 공동체와 일하는 민간단체들에 따르면, 혼자서 타이로 오는 아동의 수가 지난 4년동안 늘어났다. 또한 가족들이 흔히 타이에서 흩어진다고 했다. 또한 아동은 부모가 일하는 동안에 홀로 남겨진다. 홀로 남겨진 아동은 인신매매와 같은 인권침해에 취약하다.

아동은 타이 학교에 갈 수 없기 때문에 그 취약성이 배가된다. 학교에 등록하는 것이 허용된다 할지라도, 또다른 장벽이 있다. 학교 교복에 드는 돈, 언어 장벽, 스포츠 비용, 교통수단의 부족 등으로 학교에 출석하기 어렵다. 국경 지대에 있는 버마 공동체는 자신들의 학교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이들 프로그램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잘 조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교육 요구는 매우 높아서 등록율이 연간 20-25%씩 늘어나고 있다.

지역 민간단체인 '여성을 위한 사회행동'(SAW)은 Mae Sot 지역에서 여성과 아동을 위한 안전의 집을 운영한다. 임시 쉼터가 필요한 여성들과 버림받거나 부모가 더 이상 보살필 수 없는 아동들이 이런 집을 필요로 한다. 아동들의 나이는 신생아에서부터 10살까지다. 이주노동자 주거지 근처에 자리잡은 비공식 학교가 열악한 건물에서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한다. 교실 한 개인 학교가 150명의 버마 아동들을 담당한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동들 중에는 예전에 인신매매당한 경험이 있는 아동들이 있다.

이 학교 교장선생님은 말하기를 몇몇 아동이 버마 내부에서 인신매매 당해 타이로 넘겨졌다고 한다. 인신매매자들은 직접 국경을 거쳐 Mae Sot에서 다수의 아동을 모아서 방콕으로 데려간다. 인신매매자들은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는데 그 아이들이 “더 편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일단 방콕에 도착하면, 아이들에게 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부모에게 연락할 것을 강요한다. 그러나 점차로 인신매매자들은 부모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아이가 행동이 나쁘고, 일을 충분히 하지 않고 있으며, 아이들이 부모에 대해 전연 기억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부모에게 송금하지 않으면, 부모들은 아이가 일을 잘 못해서이거나 일거리를 얻을 수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아동과 가족간의 유대를 단절시킬 목적으로 이런 식으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쐐기를 박게 된다. 만약 부모가 자녀를 보고 싶다고 계속 주장하며 인신매매자들은 불필요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아이를 되돌려 보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부모들은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고 아이 찾는 걸 단념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 시점에서 인신매매자들은 아이를 다른 누군가에게 팔아넘긴다. 이런 아동들은 자신들이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아이들에게 꽃이나 자질구레한 장신구들을 거리에서 팔게하거나 방콕거리에서 구걸을 시킨다. 만약 아이가 요구되는 만큼의 돈을 매일 벌지 못하면, 밥을 굶기거나 때리거나 거리에서 자도록 한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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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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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7-06 12:39:44, Hit : 196, Vote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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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하여
제가 지난주에 한 인터뷰 기사입니다. 인권오름에 실렸습니다.



샤킬(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전) 수석 부위원장)

작년 4월 “얼굴색이 다르고 언어와 종교가 다를지라도 우리는 한국 노동자들과 똑같은 노동자들”이라며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이 창립됐다. 그 후 채 한달이 못돼 이주노조의 아노와르 위원장은 표적 연행되어 11개월이 넘도록 구금돼 있어야 했고 노조설립신고서는 반려됐다. 그러나 단속과 추방, 뿌리깊은 인권유린에 맞선 이주노동자들의 싸움은 계속됐다. 그속에서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아 가쁘게 달려왔던 샤킬 이주노조 (전) 수석 부위원장을 만나보았다. 지난 6월 11일 총회에서 새로 집행부가 구성되었기에 한동안은 아픈 몸을 추스르겠다는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바빠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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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가 인간으로서나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따라서 인권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큰 문제는 단속이 워낙 심한 것입니다. 단속과정에서 연행되고 강제 추방되고 그 과정에서 단속에 반대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2월과 4월에도 2층, 3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잃었고...건강한 몸으로 돈벌러 왔지만 단속을 피하다가 단속반원에게 맞아 장애를 안거나 시신으로 돌아가거나…단속으로 모든 문제들이 벌어집니다.

일주일 정도 일을 하면서 인간이니까 휴식도 필요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이 필요하고, 토요일․일요일 외출 나가서 이들도 봐야하고 그런데 토․일요일도 단속이 심해서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인권침해입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몸이 아플 수 있고 병원도 가야 하는데 또 단속 때문에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작은 병들도 키우다가 돌아가신 이주노동자들도 많습니다.  
일을 하면서 사람을, 사람인데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쉬면서 자기 몸에 맞게 일을 해야 하는데 정부의 단속정책 때문에 업주들도 그걸 이용하면서 열 몇시간 일을 시키면서 이주노동자들 피로가 많이 쌓이면서 과로로 돌아가신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한국 와서 처음에 프레스 했어요. 공중전화 만드는 프레스… 사실 저는 14년 됐지만 14년 전하고 지금하고 인식이 조금씩 많이 나아지는 편이고 젊은 세대들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40대나 50대나 아직까지는 이주노동자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우리 이주노동자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88올림픽 치른 다음부터 조금씩 한국에 들어오고 오랫동안 살았쟎아요? 이사람 들어오면 저사람 나가고 이런 식으로 ...

앞으로도 내가 느끼는 건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이걸 할 것 같아요. 인력이 부족하니까. 이주노동자 문제는 사실상 남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 사회에서 살고 노동시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 문제는 남의 문제라고 생각 안했으면 좋겠고, 사람들이 ‘이 문제는 우리 문제다’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한 집에서 이방에는 한국분들 살고 앞방에는 이주노동자 살고, 같은 공장들에서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도 일하고 한국분도 일하고 식사 같은 것도 같은 식당에 가서 같이 식사를 하고, 그거 남의 문제 아니쟎아요? 인권문제나 노동문제나 자기 동네에서 이주노동자 살면 동네문제이기 때문에 함께 고민하고 함께 풀어나갔으면... 이주노동자도 많은 도움이 되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이란 나라의 이미지가 나아지고 좋아지고. 아쉬운 것은 시민분들은 아직까지는 그런 생각 안하는 것 같고 오히려 정부에서 선전하는 그런 것 믿어가면서 한국인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뺏기고 있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아직까지는 많아요.

저도 사실은 오자마자 운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노동운동 하러 오는 이주노동자는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자기 나라에서 뭘 해야 하는데 할 곳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재정문제도 해결하고…저도 마찬가지로 그런 목표로 한국에 오게 됐고, 처음에는 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함께 하는 한국인들도 이주노동자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어요. 언어소통도 안되고 음식도 안 맞고 문화도 다르고 여러 문제들 때문에 쉽게 이해를 하지 않았고, 업주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돼든 간에 저임금에 장시간 일을 시키는 목표로 일을 시키는 데...저도 처음에 들어와서 8시부터 9시까지 일을 했고 연장 일을 하게 되면 연장수당을 받아야 하는데 연장수당도 없고 다른 수당도 없고 일을 하면서 많은 억압이나 무시당하고 그런 부분이 많았어요. 지금 있으면서 이주노동자들에게 많은 연락을 받았어요. 다치고 치료도 안받고 보상도 안해주고, 치료도 간단히 하고 출국시키고, 임금도 달라고 해도 떼이고 이런 모습이 너무 힘들었어요. 94년도에 산업연수생 제도 시작하면서 연수생으로 들어왔쟎아요. 연수로 들어와서 노동일 하니까 노동자 쟎아요, 산업재해를 당해도 산재로 인정을 안해주니까 농성 시작하고… 또 한번 96년도에 ‘우리도 인간이다’, ‘우리를 때리지 말라’ 한적 있어요. 거기에도 가고 외국인 노동자 대책협의회 꾸려가면서 난생처음...그땐 모든 걸 걸어놓고 활동하는 건 아니고 집회나 거리선전에나 결합하면서 98.99년도엔가 인식 시작되고 활동하고, 노동조합은 그때는 없었어요. 2001년도에 가서 평등노조 이주지부가 생기고...2003년도에 명동성당에서 단속 때문에 농성 시작되고...그 이후부터 2005년 4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생기고 창립총회를 하면서 수석부위원장 맡아서 하게 되고...

국내노동자들도 노동운동하면 빨갱이다 그런 얘기하고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예요. 남의나라에서 돈벌러 왔는데 무슨 노동운동을 하겠다고...그런 생각 갖고 있을 수 있지만 한국노동자들의 운동하고 이주노동자 운동하고 다른 점 있어요. 원래 있어야 하는 부분을 우리가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노동일을 하기 때문에 노동자로 인정해 줘야 하쟎아요. 그런데 우리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요...그동안 단속을 계속해 왔쟎아요? 그런데 성과가 없쟎아요? 미등록 노동자로 계속 남아있고... 단속으로 이주노동자 없어지지 않았쟎아요? 그래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합법화 해달라, 노동일을 하니까 노동자로 인정해달라, 우리가 일을 하니까 임금도 달라, 우리가 산업재해를 당할 때는 산재로 인정해달라, 노동자니까 노동3권을 보장해달라, 원래 이것은 기본으로 있어야 하는 부분인데 해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노동운동을 하고 있지만 한국노동자하고 이주노동자 운동 차이점 이런 부분 있고 ... 그저 시민들이 아직 몰라요. 우리가 왜 투쟁하고 노동운동하는지 모르는분 많아요. 그래서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많이 알려지면 많은 관심을 가지리라 믿어요. 이주노동자 운동에 대해서...

이주노동자 운동하고 국내 다른 운동들하고 자주 결합이 돼죠. 예를 들어서 비정규직 운동,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중에서 또 비정규직 노동자죠. 비정규직 운동에도 이주노동자들이 결합하고 현장에 있는 많은 투쟁일정에 그런 사업장도 많아요. 임금도 안주고 부당해고 하고 그런 부분 한국노동자들도 많아서 그런 문제에 연대투쟁하고 국제연대도 하고...

아노와르 위원장은 347일 만에 (구금됐다가) 나왔죠, 347일만에….한달 넘게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지금은 통원치료 받고 있고, 정신과와 정형외과... 어깨도 다치고 해서 치료하면서 나머지 시간 이주노동자를 위해 활동하고 있어요. 6월 11일 총회하면서 다시 위원장 역할 맡고 있어요. 건강이 많이 안 좋죠.

기쁜 일은 없어요. 거의 없어요. 계속 투쟁 하면서 사실 단속을 중단하라, 산업연수생 제도는 사실 노예 제도쟎아요. 이름만 산업연수생이지, 사업장 이동 자유 없고 해지를 해달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부분 얘기 안되고, 그래도 아노와르 위원장은 연행되고 347일만에 나오고…사실 노동자는 하나지만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여러 갈래로 갈라놨어요. 정부 차원에서 중국 동포나 다른 국가들 구분하고…한가지는 이주노동자들이 4만명 정도 결혼을 하면서 아이들이 나왔쟎아요. 그 아이들이 아직까지 학교는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부분 많아요. 부모들이 미등록이라 불안감도 있고…94년도에는 산업재해를 당해도 산재인정 못받았는데 투쟁하면서 그부분 많이 알려지고 산재를 인정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한계가 남아있어요. 일부는 받을 수 있는데, 미등록 산재를 당하면 업주가 산재를 신청하면 벌금 같은 것 물어야 해요. 그래서 업부들이 벌금 있으니까 산재치료 안해 줄려고 하게되고, 이주노동자들도 산재를 똑같이 당하면서 치료를 끝나고 하던 일이 장애가 있으니까 그 이후에는 하지 못하쟎아요. 직업을 바꿔야 하쟎아요. 직업훈련 받아 나머지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직업훈련 노동부에서 훈련 좀 해주는데 이주노동자들은 안돼요. 나머지 인생 살아야 하는데...아쉬운 점이 되게 많아요.

신분 때문에 고향에 잘 못 가쟎아요. 신분불안 때문에 14년 동안 한번도 못갔어요. 가족들하고 전화연락하고 처음에는 편지를 쓰면서 주고받고 많이 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집에서도 많이 부담이 되고, 너무 맘이 안됐으니까...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고, 재작년에 엄마 돌아가시고...가지고 못하고 오지도 못하고... 엄마도 전화할 때면 ‘어서 와라, 보고 싶다. 빨리와라’ 가지도 못하고 갔다가 오지 못하면 불안하니까...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지금 상태 아주 안좋아요. 가야 하는데 갔다가 다시 오기가 참...보고 싶은 사람 못보고 가족들이 돌아가시고...저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그런 문제 갖고 있고 합법화를 해주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가고 싶을 때 가고 가족이랑 부모님 보고 인사하고 와서 일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아쉽죠.

한국 사람도 일하러 다른 나라로 떠나쟎아요.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한테는 인정하지 못하쟎아요. 누구나 필요에 따라 이주를 할 수 있고 이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뭐 이리와서 뭐를 하고 있는지 왜 떠나는지 왜 남아있는지 정부에서 그렇게 선전하기 때문에 시민들도 인식이 박혀있어요. 한마디만 하고 싶은데, 사실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는 공장들 있쟎아요? 사실 월급이나 임금을 1.5배, 두 배를 줘도 한국노동자들이 그런 일들 거의 안해요.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는 공장에는 거의 가 내국인 노동자 없고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이 더 나가게 되면 작은 공장들이 운영하기 힘들어져요. 사실 작은공장, 중소기업공장 대기업이 연결이 돼있어요. 제품들이나 물건들이 납품하면서 대기업으로 가거든요. 또 하나는 한쪽에서 시민들의 의식을 그렇게 만들어가면서 떠나야 하는데 남아있는 것으로...그렇게 선전하면서 또 한쪽에서 이주노동자 새롭게 계속 투입을 하고 있어요. 올해도 10만 5천명? 새로 투입하고 있고 이미 시행하고 들여오고 있어요. 왜? 인력이 필요하니까. 인력이 필요하면서 인력 필요 없다. 다 나가야 한다. 그러면 이주노동자들이 나가야 하는데 한쪽에서 기술 있고 언어, 의사소통되는 이주노동자 추방시키면서 또 한쪽에서는 기술 없거나 언어 소통 안되는 이주노동자들을 투입하면서 일을 시키쟎아요. 이유는 뭐예요? 아예 모든 것 모르고 있는 과정에서 그 사람한테 뭐든지 시킬 수 있어요. 임금도 적게 주고 야근도 시키고 뭐든지 일을 시킬 수 있어요. 그런 것 때문에 그렇게 선전하면서 ...한가지 더 이야기 하면 고용허가제 시행되고 나서 합동단속이 시작됐쟎아요. 2003년하고 2004년, 그때 고용허가제 시행 전에 이주노동자 평균임금, 시행이후에는 오히려 낮아졌어요. 어떤 제도가 시행되고 나면 제도에 따라서 사람들 삶이 나아져야 하는데 안 좋아졌쟎아요. 한국시민들도 유럽이나 미국이나 가까운 일본에 가서 일을 많이 하고 있쟎아요. 누구나 필요하니까 나라를 떠나서 일을 하거나, 그런 문제가 있으니까 떠나게 되고 남의 나라 가서 일하게 되는 건,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전세계적으로 5천만명 정도가 자기 나라를 떠나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 문제예요. 시야를 넓혀가면서 폭넓게 생각했으면...

일상적으로 불리한 문제들 되게 많아서 너무 많아서...사실은 요즘은 조금 좋아졌지만 전세나 월세나 방 한칸 얻을려면 집주인들이 거의 다 안해 줄라고 해요. 생활하면서 큰 문제죠. 사람이 방이 있어야 생활을 해야 하는데... 나라는 언어나 문화가 다르쟎아요. 음식, 밥 다르죠. 냄새도 다르죠. 아직까지 되게 많아요. 먹지 못하는 음식이 있는 걸 보면 이해도 못하고.,.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앞집에서 살면서 한국분들 음식 해먹쟎아요.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음식을 해먹는데 냄새가 나면 뭐라고 말을 많이 하거든요. 무시를 하고...되게 음식 같은 건 할 때도 창문 닫으면서 되게 조심스럽게 해먹게 되고...

누구나 아플 수 있쟎아요. 이주노동자 대다수가 의료보험이 없어요. 일반치료, 비용이 만만치 않쟎아요. 되게 고달프고 부담되죠. 치료를 안받게 되고.

또 공장에서 노동 하쟎아요. 똑같이 일을 하는데 누구는 퇴근하고 누구는 계속 일하고 누구는 휴가가고 누구는 계속 일시키고, 한국인 노동자들이 퇴근하고 우리는 일을 하고, 한국노동자들이 휴가가고 일시키고... 그런 회사 있어요. 2-3달에 한번 그 회사 가는데, 물어봤어요. 그 사람들 365일에 쉬는 시간이 사흘밖에 없대요. 한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거리 다니거나 어딜 가거나 이야기를 할 때는 한국분들이 처음 얘기하는 것, 처음 만날때는 나이를 떠나서 존대말 해야 하는데 이주노동자 보면 무조건 반말하고...되게 많아요.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예전엔 지하철 탈 때 밤이 되면 무서워서 지하철 못 탔어요. 술마시면 이상한 행동하고...우리가 피부색이 검쟎아요. 동남아시아에서 오기 때문에... 버스나 지하철 타면 앞에 자리 비어있고 그런 일 많아요. 공장에서도 반말, 심한 욕 많이 하거든요.  마찬가지로 단속을 하면서 연행할 때도 직원들이 가스총이나 전기봉, 무기들 있쟎아요. 그런 것 사용하고 우리가 범죄가 아닌데...잘못한 건 미등록 밖에 없쟎아요. 단속을 하면서 수갑을 채우고 20대?, 나이도 얼마 안된 사람들이 반말하고...존대말 해도 되지만 반말하고 욕하고 때리고...

이주노동자들은 들어올 때도 반말듣고, 일하면서도 반말 듣고 욕 듣고, 나갈 때도 출입국직원들한테 반말 얻어먹고 욕 얻어먹고... 들어온 날부터 나가는 날까지 계속 그런 고통을 받고 나가는 거죠.

사실 고통스런 일들이 많아요....얘기하게 되면 너무 많고...

앞으로도 이주노동자 동지들이 (문제를)어느 정도 해결할 때까지 인권보호를 받을 때까지, 한 시민으로 한 사람으로서 똑같은 사람이면서 함께 웃으면서 살아갈 때까지, 좋은 일 있을 때 같이 웃고 안 좋은 일 있을 때 같이 함께 울면서, 그런 날 올 때까지 계속 같이 해야죠.

마지막으로 제가 한국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어요. 치료 못 받거나 단속 피하다가 자살하거나... 이제라도 없어졌으면 좋겠고, 이제 와서 ‘이주노동자 문제가 뭐’ 그렇게 생각안하셨으면 좋겠고,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다’, ‘사회문제다’, ‘이주노동자들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이고,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보호를 해줘야 한다’는 그런 의식을 한국 시민들이 많이 갖게 됐으면 좋겠고, 한국 시민들도 우리문제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빨리 이런 문제들이 없어졌으면 좋겠고, 정부 차원에서도 제대로 정책을 마련하면서 이주노동자  억압받고 있는 것 그런 부분들 개선해나갔으면... 더 이상 할말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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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후원금 송금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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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류은숙  (2006-07-03 17:53:35, Hit : 254, Vote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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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7월 후원금 송금내역
머리가 많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만큼 가슴에는 습기가 많이 차는 계절입니다. 더운 여름 머리 식히실 일,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이번달 송금 내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5월 잔액 209,014원

6월 1일 이윤* 1만
6월 7일 이민* 1만
6월 12일 황수* 1만5천
6월 12일 연상* 1만5천
6월 23일 조대* 1만
6월 26일 김재* 1만
6월 30일 류은* 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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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모금액 8만원
7월 3일 송금 150달러+수수료 5천원=148,592원
잔액 140,422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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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 위험에 처한 난민여성과 아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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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6-28 11:17:11, Hit : 225, Vote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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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신매매 위험에 처한 난민여성과 아동(3)
끝없는 침해: 인신매매 위험에 처한 버마 난민 여성과 아동
(난민여성과 아동을 위한 여성위원회 보고서.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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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버마 국경지대의 난민캠프에 사는 난민들도 마찬가지로 위험에 처한다. 몇몇 민간단체들이 캠프 안에서 여성들의 소득 증진 활동을 만들어보려 노력했으나 역부족이다. 그 결과, 타이 당국의 정책은 사전에 서면 승인서 없이는 캠프에 들어가거나 나갈 수 없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캠프 인근 농장에서 일하려고 몰래 나간다. 여기서 사람들은 타이인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한다. 많은 사람들은 도시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은 임금을 찾아보려고 캠프를 영원히 떠난다. 이렇게 캠프를 떠난 사람들은 체포, 폭력, 추방, 인신매매에 취약하다.

신분증이 없고 불안한 생활 조건 때문에, 타이 내의 버마인들은 인신매매 당할 높은 위험에 처해있다. 인신매매는 국경에 도착하기 전, 국경을 넘는 중에, 타이에 도착하자마자 등 이주 도중 다양한 지점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인신매매는 폭력, 강제, 사기로 인한 것이다. 인신매매된 후에 여성과 아동은 일련의 인권침해 상황에 놓이는데, 강제 성매매가 여기 포함되며 아동은 방콕의 거리에서 구걸할 것을 강요받거나 다른 도시 지역에서는 어린 여성들이 가정부로 일하거나 전 가족이 섬유공장, 어류가공공장 등에서 위험하고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한다.

때때로 인신매매 당한 사람들은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거나 약속된 것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는다. 인신매매된 사람들의 노동조건은 전반적으로 끔찍한 것이다. 장시간이며 신체적으로나 성적으로나 학대받는다. 가정부로 일하는 여성들은 타이어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아주 외로운 생활을 하며, 주인집에 살고 있는 환경 때문에 학대받는 일에 아주 취약하다.

신분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추방의 공포에 사로잡힌다. 타이 당국에 노동을 위해 등록을 한 노동자들조차도 불안하다고 말한다. 타이법에 따르면 그 카드를 항상 지니고 다녀야 하는데, 일부 고용주들이 그들의 등록카드를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경찰서에서 등록카드를 보여줬다 할지라도 여전히 뇌물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여성과 아동은 특히 학대받기 쉬우나 불평(항의)하기를 꺼려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경험한 인권침해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타이에서의 불안한 신분과 떨어질 수 없는 문제이다. 노동조건이 아무리 열악하고 가혹해도 이들이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만약 추방된다면 버마에서 처벌받을 것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돈을 벌지 못하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두려움이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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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 위험에 처한 난민여성과 아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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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6-21 13:49:17, Hit : 263, Vote :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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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신매매 위험에 처한 난민여성과 아동(2)
끝없는 침해: 인신매매 위험에 처한 버마 난민 여성과 아동
(난민여성과 아동을 위한 여성위원회 보고서.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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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는 최근에 급증하는 인신매매 현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왔다. 2000년, 초국적 범죄에 관한 유엔협약에 따라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에 대한 인신매매를 방지, 억제, 처벌하기 위한 선택의정서가 발표됐다. 이 의정서의 목적은 인신매매를 방지하고 그에 맞서기 위한 것으로 특히 여성과 아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선택의정서가 기존의 국제인도주의법, 인권 및 난민법에 따른 당사국들의 의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1951년 난민조약과 1967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선택의정서가 포함된다.

그러나 타이는 1951년 조약의 가입국이 아니다. 타이 정부는 난민을 “전투를 피해 도망한 피난민”으로 정의하는데, 이런 정의는 국제법을 따른 것이 아니며 버마로부터 온 다수의 난민을 배제하고 있다. 이 정의는 또한 “실제 전투를 피해 도망한” 사람에게로 협소하게 적용되고 있다.  많은 난민들, 예를 들어 카렌과 카레니 같은 소수민족이 국경지대 캠프에서 수십년을 수용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민 캠프는 “임시 거주지”로 표현된다.

이런 협소한 해석 때문에 다수의 버마인들은 난민으로서 인정되지 않으며 타이로 온 이유와 관계없이 “불법”으로 간주된다. 여기에는 수십만명의 이주 노동자가 포함된다.

그러나 타이로 온 동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주노동자들은 거의 정치적 억압, 무력분쟁, 그로 인한 경제의 황폐화라고 대답한다. 예를 들어 샨 민족은 버마 군부의 처형을 피해 도망했다는 증거가 충분함에도, 타이 법률로는 “불법 이주자”로 간주되어 어떤 보호도 거부된다. 분명히 “불법”이란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부정확하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대다수가 아닐지라도)은 난민같은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타이 내에서의 신분이 어떠하든지간에, 다수의 버마인은 먹고 살 방법이 극히 제한돼있다. 그들은 겨우겨우 생존을 유지하며, 타이 경제에서 주변부화되어 있고 싼 노동력으로 착취받는다. 그들은 가족부양(타이에서 같이 살거나 버마 고향에 있는)은 물론이고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렵다. 그들은 타이 당국의 수색을 두려워하며 산다. 버마로 추방될 위험뿐만 아니라 불안한 신분을 이유로 뇌물을 뜯기기 때문이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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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 위험에 처한 난민 여성과 아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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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6-19 22:23:51, Hit : 273, Vote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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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신매매 위험에 처한 난민 여성과 아동(1)
끝없는 침해: 인신매매 위험에 처한 버마 난민 여성과 아동
(난민여성과 아동을 위한 여성위원회 보고서.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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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에 나오는 모든 난민의 이름은 신변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Kaung은 타이에서 버마인 부모님사이에 태어났고, 엄마가 일시적으로 집을 떠난 사이에 양아버지가 1,000바트(약 3만원)을 받고 인신매매자에게 Kaung을 팔았을 때 10살이었다. 인신매매자는 Kaung을 갱단에 다시 팔았고, 갱단은 방콕에서 구걸을 시켰다.

Kaung은 구걸을 시키는 갱단과 함께 일하는 동안 다른 두명의 소년과 한명의 여자아이와 함께 살았다. 이 아이들은 인신매매자의 집에 갇혀있었고, 담요나 모기장 없이 바닥에서 잠을 잤다. 매일, 인신매매자들은 Kaung에게 한컵 정도의 라면을 줬고, 이것을 다른 소년들과 나눠먹어야 했다. 이것이 유일한 음식이었기에 항상 배고팠다.

Kaung에 따르면 인신매매자들은 금속 줄로 때리고 바늘로 찌르고 담뱃불로 지졌다. Kaung은 또한 다른 아이들을 학대하는 것도 봤다.(뒷부분은 너무 끔찍한 내용이라 생략합니다)


지난 20년동안 수십만명의 버마 난민(그들중 상당수가 여성과 아동인데)이 도망쳐서 이웃국가인 타이로 왔다. 무력 분쟁과 인권침해를 피해 고향을 떠난 이들 난민이지만 타이 국경을 넘는 동안에도 넘은 후에도 ‘안전’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된다.  타이가 그들에게 의미있는 보호를 제공하지 않으며 인신매매를 포함한 지속적인 인권침해에 처하게 한다. 여성과 아동은 특히 인신매매에 취약하고, 성적․신체적 착취와 강제노동이 여기에 결합된다. 왜냐하면 여성과 아동이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하고 가족을 부양할 방법을 절망적으로 찾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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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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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6-15 14:29:02, Hit : 253, Vote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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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민 블루스
*WH Auden이라는 사람이 쓴 시라는 제목 때문에 골라봤어요.


난민 블루스(Refugee Blues)

이 도시에는 천만명의 영혼이 살고 있대요
어떤 사람은 호화주택에 살고요, 어떤 사람은 형편없는 곳에서 살지요.
그런데요, 우리가 살 곳은 전혀 없어요. 여보세요. 우리가 살 곳은 전혀 없어요.

한때는 우리에게도 나라가 있었고, 우리는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지도책을 들여다보면 거기에 있지요.
우린 지금은 거기에 갈 수가 없어요. 여보세요. 우린 지금 거기에 갈 수 없다구요.

마을 묘지에는 오래된 주목이 자라고 있죠.
매년 봄이면 그 나무에서 새싹이 나오는데
옛날 여권은 그렇지가 못해요. 여보세요. 우리의 옛날 여권은 그렇지 못해요.

영사는 책상을 꽝꽝 치며 말했죠
“당신에게 여권이 없다면, 당신은 공적으로 사망한 겁니다”
하지만 우린 여전히 살아있어요. 여보세요. 우린 아직 살아 있다구요.

위원회에 갔어요. 그들은 의자를 권했어요.
그리고 공손하게 내게 권유했죠. 내년까지는 돌아가라고.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나요? 여보세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공개 토론회에 갔어요. 연사가 일어나서 말했어요.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이면, 그 사람들이 우리의 밥그릇을 훔칠 겁니다”
그 사람은 당신과 나에 대해 말하고 있던 겁니다. 당신과 나요.

나는 하늘을 울리는 천둥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죠.
그건 유럽을 호령하는 히틀러의 소리였어요. “그들은 죽어야 한다”
그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우리였어요. 우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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