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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걸기
  2. 200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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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7/01/13
    '잼'이야 오너라(3)
    말걸기

해질녘

 

말걸기[석양의 토토로] 에 관련된 글.

 

 

토토로가 배경으로 삼았던 노을.

 

 

@ NIKON D200 | Nikkor 18-200mm F/3.5-5.6G ED | 56.0mm | 1/30s | f/8.0 | ISO 100

 

 

눈으로 볼 때는 무척 이뻤는데... 사진은 그에 따르지 못하네.

 

 

에이씨~

 

짜증나...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기

 

과연 뎡야핑님의 [때려도 될까?]에 관련된 글일까 싶긴 하다. 덧글에서 덩야핑님이 "소소한 불의는 조용히 참고 지나가는데"라고 했는데 그걸 보고 아래의 시가 생각났다. 좀 길지만 우선 시 한 편 읽자. 이 시의 정서는 여전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情緖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絶頂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는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위 시는 김수영이 1965년에 쓴 시이다. 김수영은 참으로 훌륭한 시인이다. 그의 시전집을 찬찬히 읽다보면 예술이 예술가의 인생에서 어떻게 다듬어지고 완성되는지를 알 것도 같다. 요절하지 않고 더 오래 살았다면 더 멋진 시를 많이 썼을 것이다. 그나저나...

 

*

*

 

지금도 <시사저널> 사건을 보면 언론의 자유는 개뿔만큼 있고, 월남 대신 이라크에 파병한 걸 보면 40여년 전하고 완전히 다른 세상은 아니다. 그래도 방방 떠들고 다닐 수 있는 점에 있어서는 꽤 큰 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40여년 전 세상에 살고 있던 김수영은 요새 사람들보다 자유를 더 갈망하고 있었을 것 같다. 더구나 불의에 대해 마구 떠들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자유에 대한 갈망은 더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유와 파병 반대를 위하는 것과 '돼지같은 주인년'이나 '야경꾼'에게만 큰 소리치는 걸 비교하는 태도는 맘에 들지 않는다. 비계덩어리 갈비를 비싸게 파는 식당 주인에게 성을 내고, 삥뜯으러 오는 야경꾼에게 지랄하는 것은 정당하다.

 

말걸기는 오래전에는 택시 기사와 싸우지 않았다. 그들의 사정을 좀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00원 때문이라도 싸워야겠다고 맘을 먹게 되었다. 일부러 길을 돌아가거나 난폭(거의 폭력)운전을 하거나 무리하게 합승을 하거나 하면 지랄을 좀 했다. 자신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승객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해서 그들의 부당한 행위를 용인해서는 안된다.

 

*

 

식당에서 택시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항의하는 것은 자신의 이해와 관련이 있는 경우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노력은 오히려 쉽다. 하지만 다른 이, 특히 알지도 못하는 이들의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개입하는 것은 어렵다. 덩야핑님의 글은 그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예전에 파란꼬리랑 늦은 밤에 혜화동 동성고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술취한 남녀 커플과 술취한 남자 네다섯이 시비가 걸렸다. 한 놈이 남녀의 멱살을 쥐고 코너로 모는데 가만 두면 안될 것 같아서 말린 적이 있었다. 경찰이 와서 그들을 싹 데리고 가려 할 때 출취한 여자가 경찰한테 말걸기를 지목하며 자기를 때렸다고 하는 바람에 잠시 난감했었다.

 

또 언젠가는 지하철에서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 몸을 더듬고 있길래 제지한 적이 있었는데, 그치의 어깨를 잡아 끄는 순간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된 적이 있었다. 어깨가 엄청 커서 말걸기 손에 잡히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말걸기가 잡아 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치의 몸이 움직인 게 아니라 말걸기의 몸이 그치 쪽으로 끌렸기 때문이었다. 그치가 말 없이 다른 차량으로 도망갔길 망정이지 "넌 뭐냐?" 그랬으면 그 자리에서 디질 뻔했다.

 

이렇게 누군가 헤코지를 당할 것 같은 상황에 개입하는 건 겁이 난다. 자기 일도 아닌데 참견한다고 면박 받는 것도 싫다. 그래서 이런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용기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 멱살잡이 사건은 파란꼬리가 없었으며 지나쳤을 것이고, 어깨잡이 사건은 가만히 있기가 민망한 상황이었다. 말걸기가 무슨 '열혈청년'도 아닌데...

 

*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권리 침해 사건들은 중요하다. 결코 하찮지 않다. 이런 사건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와 기업, 전쟁을 옹호하고 사람을 죽이러 군대를 보내는 국가에 대항하는 것처럼 역사에 남지는 않을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조그만한 일'이긴 하다.

 

*

*

 

위의 시는 비민주적이고 굴림하는 국가와 공무원에게는 해야 할 말을 하지도 못하면서 주변의 힘없는 사람한테만 화풀이하듯 분개하는 자신을 탓하고 있다. 힘의 서열에 따라 언제나 강자에게는 깨갱, 약자에게는 버럭.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이 '자연스러운' 태도에 젖어 있는 자신에 분노하고 있다. 그 분노를 시에 담았다는 건 그렇게 살고 있는 다른 이들도 스스로의 태도를 돌아보길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한 점은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자연스러운 이치'를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윤리 덕목이다.

 

김수영은 그렇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그는 시와 글로 세상에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시인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훌륭하게 실천했다.

 

그러나,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기"를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에 비유한 것은, 다른 일이 잘 되도록 지원하고 돌보는 노동을 비하하는 것이다. 김수영은 '싸나이'로서 '대장부의 기개'나 '의사의 기상'을 펼치고 싶어 한다. 김수영의 작품에서는 시 이상으로 훌륭한 게 수필인데 그의 수필전집을 읽으면 더욱 잘 드러난다.

 

*

 

요즘 세상도 '대장부의 기개'를 펼치고자 하는 양반들 많다. 김수영만큼이나 '옛날' 분위기는 아니더라도 앞에 나서서 '큰 얘기' 하는 것은 자랑스러워 하고, 뒤에서 '자잘한 일'을 하는 것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서 일상 생활에서의 노동은 빠뜨린다.

 

역사적으로 권력을 지닌 자는 자신을 돌보는 노동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돌보는 노동을 하찮게 여기거나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누구든지간에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권력에 눈이 먼 것이다. 그게 어떤 권력이건.

 

*

*

 

요즘은 택시를 타도 싸우지 않는다. 별로 싸울 일도 없는 게 택시 공급 과잉으로 대부분의 기사들이 친절해졌기 때문이다. 이것도 참... 안타깝긴 하다.

 

다툼이 있을 때 말리기도 싫다. 몸 사려야겠다는 마음 때문인지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여전히 설거지, 빨래는 작정해야 할 수 있다. 그냥 쉽게 쉽게 하게 되는 날이 올란가 모르겠다.

 

 

싸우는 이유

 

ScanPlease님의 [치환] 에 관련된 글.

 

"성폭력이-가해자든 피해자든 그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자본주의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

 

이 주장은 ScanPlease님이 얘기했듯이 '치환'이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사라지게" 하지요. "그래서 가만히 보고만 있"기가 무척이나 힘듭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발끈하면,

 

"히한하게도 성폭력의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이겠거니하는 태도는 참 어처구니없는 수순이었다"

 

라고 하면서 마치 가해자를 옹호하지 않는 것처럼 얘기하면 피가 꺼꾸로 돕니다. 첫 명제는 논리적으로 피해자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의미를 온전히 가지고 있는데 이제 와서 가해자를 두둔하지 않는다는 건 뭐냐구요. 이 바닥에서는 한 마디씩 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러면 "지긋지긋한 패거리 습성들"이라며 '조폭'까지 운운합니다. 자기는 '다구리' 당한다고 억울해 하는 것 같은데 수많은 성폭력의 피해자들과 그 폭력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다구리' 당하는 건 보지 못한 모양입니다. 어쨌든 '다구리'도 다 '자본주의에 저질러지는 것'이니 원망 말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본주의한테 가서 따질 것이지 말걸기더러 사과하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지요.

 

 

그런데... 사건이나 문제를 왜곡하거나 회피하는 말에 일일이 진지하게 대응하면 나아지는 게 있나요? 매번 확인하지만, '그런 주장은 사건이나 문제를 왜곡한다'는 걸 납득도 못시킨 채 지쳐버리지요. 상처는 피해자나 피해자를 옹호하는 편에게 남습니다.

 

그래서 ①싸울 데 가서 싸우거나, ②(싸움에 별 지장이 없다면) 조롱이나 하자는 겁니다. 물론, 피해자나 그 사건 때문에 고심하는 이들에게 '공감'하기도 좋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싸움은 어떻게? 사실 싸움의 방법보다는 싸우는 이유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입장의 차이로 갈등이 생기면 양자(다자)가 호혜적 태도로 조율을 하기도 합니다. 갈등이 커지면 논쟁과 같은 싸움이 생기기도 하고 더 커지면 실력행사와 같은 싸움의 기법도 동원됩니다. 갈등이 커져 싸움을 할 때는 둘 중 하나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⑴ 어쨌거나 입장을 합의-도출해야만 한다.

⑵ 어떠한 합의도 이루어지 않을 게 뻔하지만 지켜보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갈등이 바람직한 합의(여기서 '합의'라 함은 '완승'을 포함하지 않는 게 아닙죠)로 마무리 되는 게 제일 좋지만 나중을 위해 합의를 회피하는 싸움을 해야 할 때도 있지요. 그럴 때는 힘을 얻기 위한 싸움이 되어야 합니다. 지켜보는 이들을 고려해야겠지요.

 

그런데, ⑴도 ⑵도 이유가 될 수 없거나 필요 없는 상황이라면 싸움이 허무할 것 같습니다. 그럴 때는 조롱이나 하자는 것이지요. 조롱은 큰 공을 들이지 않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조롱을 너무 남발하면 격이 떨어지겠지만 설득할 수 없는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은 전혀 없지요. 게다가 자신의 격이 떨어지는 게 두렵지 않다면 '신나게' 할 수도 있겠지요.

 

 

아무리 공을 들여도 감정은커녕 논리도 전달이 되지 않는 싸움, 논쟁, 언쟁은 이제 고만합시다. 힘들기만 하잖아요. 차라리 조롱!

 

 

[벙개] 아무래도 '찬' 냉면을...

 

확 열받아 버렸네. 안 그럴려고 했는데...  ㅡㅡ'

열 식히기 딱 좋은 평양 냉면 먹자!

 

 

 

[벙개] 평양 냉면

 

 

○ 2007년 2월 7일(수) 오후 7시

○ 필동면옥 (02-2266-2611)

 

▷ 메뉴 : 물냉면, 비빔냉면, 온면, 만두, 수육, 제육

좀 비싸넹...

채식하는 블로거에겐 좀 안 좋겠당... 쏘오리~

 

▷ 선정 이유 : 유명하긴 한데 말걸기가 아직도 안 가본 데라... ㅋㅋ

 

▷ 지도 : 아래 'A' 지점

 

 

▷ 외로운 벙개는 시로~

- 당일 해 뜨기 전에 쳤으니까 '벙개' 맞지 않남? 너무 늦게 친 건 아닌거야...라고 해야징.

 

▷ 파란꼬리가 설거지 다 하면 냉면 먹으로 가도 된다고 했으니까 낮에 다 해야지. 힘들어도 파란꼬리가 왔으면...

 

 

끄적끄적

 

 

이 시간이라면 어제가 되었군. 이석행 위원장을 만났지. 진보정치연구소가 발행하는 [미래공방](격월간)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찍사 해달래서. 좋은 아저씨더군. 무엇보다도 '위원장'이 갖기 쉬운 오만한 태도나 권위적인 태도는 없더군. 친근하기도 하고. 확고한 철학도 있고. 몇 가지 부분에 있어서는 새겨 들어야 할 얘기를 들려주었지. 여기에다가는 좋게 써야지. 그나저나 무슨 얘기했냐구? 나중에 [미래공방] 3월호 나오면 인터뷰 읽어보든가.

 

 

 

이석행 위원장 사진을 집에 와서 이래저래 살펴 보니 썩 맘에 들지 않더군. 구도는 둘째 치고 역시 흔들림과 초점의 문제가 있더군. 아무래도 VR에 1/125초라도 삼각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군. 이놈의 초점은 해결하기 어렵긴 한데...  스플릿 스크린이 대안이 될까 싶어 한참 검색해 봤지. D200에 스플릿 스크린을 장착할까 고민 중. 스플릿 스크린이 뭐냐면 프리즘인데 초점이 맞아야만 화면이 뚜렷해지게 하는 뭐 그런 거. FM2 시절이 그립군. 초점에 있어서는...

 

 

 

1월에는 선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 중 하나가 클럽 갤러리 관리였지. 하는 일이라고는 클럽의 '추천게시판'을 업데이트 하는 게 고작이긴 해도 회원들이 올린 사진이 눈에 들어와야 추천게시판으로 옮기든지 말든지 하지. 지난 토요일 다시 시작했지. 이 클럽은 배움을 주기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가끔 피곤해.

 

 

 

스머프가 꿈도 뒤죽박죽이라고 하니까 말걸기 생각이 났지. 말걸기도 또렷한 꿈을 많이 꾸거든. 어젯밤에는 포커를 치는데 에이스 3장에 또 다른 수 2장을 쥐었지. 큰 소리로 "다 걸어, 다 걸어!' 자신 있게 외쳤는데, 말걸기 다음에 패 깐 녀석은 10 포커, 그 다음에 깐 녀석은 스트레이트 플러쉬 아니겠어? 제기랄! 근데 웬 도박? 요즘 사는 게 도박인가?

 

별에 별 꿈을 다 꾸고 있지. 심심이 허약해서 그런다잖아. 말걸기는 술도 못 먹지. 약을 먹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술 먹으면 진짜 힘들어서. 술 좋아하지도 않고 잘도 못 마셨으니 그리 손해볼 일을 아닌데 가끔 땡긴단 말이지. 술이 중요하지 않지만 하고 싶을 때 하지 못하는 몸을 가진 건 슬픈 일이야.

 

 

 

당고님이 '연애 이야기 포스트'를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 이 일을 계기로 말걸기가 짝꿍 얘기를 블로그에 쓰지 않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봤지. 파란꼬리는 말걸기 블로그에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 걸 섭섭해 하는 것 같은데... 이를테면 [석양의 토토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건 파란꼬리가 토토로를 높이 들어주었기 때문이었는데 정작 파란꼬리 얘기나 사진은 없었다든가... 등등.

 

아무래도 파란꼬리와의 관계는 무척이나 사적이라서 안 쓰게 되나?  파란꼬리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게 파란꼬리한테 실례되지는 않을까? 그러니까 집 밖에 나가서 파란꼬리 없는 자리에서 '파란꼬리는 이러쿵 저러쿵' 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지 않나? 그렇다고 '이쁜' 얘기만 쓰면 기만 아닌가? 좀 어렵네.

 

 

 

이 글 [끄적끄적]을 쓰는 이유는, 이래저래 하고 싶은 말들은 많은데 온통 뒤죽박죽이라서.

 

 

석양의 토토로

 

말걸기의 생일날 청주 결혼식에 갔다가

근처 옥화자연휴양림에 다녀왔다.

토토로와 함께 갔는데 석양이 멋져 그걸 배경으로 토토로 기념 사진 한 장 찍어줬다.

 

 

@ NIKON D200 | Nikkor 18-200mm F/3.5-5.6G ED | 62.0mm | 1/60s | f/4.8 | ISO 100

 

 

노을을 살리고 색도 올리느라 뽀샵질 좀 했는데 화질이 떨어져 버렸네.

다음엔 뽀샵에 RAW 파일을 불러들여야겠군.

 

 

자신의 꿈을 두려워하지 않는 애니메이터

 

이글은 함께 밥 먹다가 청탁받은 글인데 [세계의 사회주의자] 시리즈 25번째로 레디앙에 실렸다.

 

■ 기사 : 자신의 꿈을 두려워하지 않는 애니메이터

 

보름이나 걸려서 쓴 글이다.

왜 이리 오래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레디앙 편집국장 아찌한테 미안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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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사회주의자]

자신의 꿈을 두려워하지 않는 애니메이터
-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

 

 


만화 영화는 재미로 본다. 이런 재미도 있고 저런 재미도 있지만, 미국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주는 재미는 경쾌함과 발랄함, 그리고 무엇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누릴 수 있는 재미이다. 물론,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도 나름의 ‘교훈’이 있지만 미국의 상업 영화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속 보이는 감동’이기 쉽다.

 

디즈니의 만화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 본다면 놀랄 만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바로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다. 그 장르가 다양해서 재미도 여러 가지인데, 사회와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면서도 극적 긴장감 또한 뒤지지 않는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여럿이다. 그 중에서도 기술 문명의 위태로움, 인간 사회의 갈등, 인간과 자연의 긴장을 역동적이고도 재미있게 연출하기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그 철학적 깊이에 놀랄 만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재미로만 볼 수는 없게 한다.

 


미야자키는 1941년에 도쿄 부근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비행기 공장을 운영했다. 이 비행기 공장은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날아다니는 것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행은 미야자키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수직 상승과 하강이라는 미야자키만의 역동적 애니메이션은 기계와 등장인물의 비행으로 표현된다. 한편으로는 그 비행기 공장에서 산업 사회의 계급적 차별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는 그의 작품에 고도로 산업화된 문명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미야자키는 어린 시절 만화가가 되길 원했다. 그래도 그림을 배우기 위해 미대에 진학하지는 않고 정치경제학부에서 일본산업론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에 일본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사전(白蛇傳)(1958)>에 감동을 받고 애니메이터가 되고자 했다. 대학 시절 아동문학 연구회라는 서클에서 활동하면서 동서양의 많은 문학을 접한 것이 이후의 작품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과정이 없었음에도 미야자키는 ‘그림을 그리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었다. 스스로는 그림에 재능이 없다고 했지만 작화, 원화를 그릴 뿐 아니라 때로는 동화도 직접 수정한다. 애니메이터로 시작했으나 다양한 인문적 지식과 철학적 성찰이 연출 능력을 키웠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청년 시절 사회주의에 큰 관심을 가졌던 미야자키는 대학에 다닐 무렵 일본공산당의 기관지인 [아카하타(赤旗)]의 청소년판인 [소년소녀신문]에 「사막의 백성」이란 제목의 만화를 연재했는데, 그가 밝혔듯이 이 작품은 SF와 마르크시즘을 결합시킨 것이었다. 노동조합의 의뢰를 받아 만들어진 이 만화는 ‘단결하면 큰 힘이 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잔인한 강대국에 맞서는 소수민족의 항쟁을 그리고 있다. 그 그림을 변형해 만들어낸 것이〈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라고 한다. 무엇보다 ‘힘을 합친다’는 연대의식은 많은 작품에서 공동체 사회(마을)로 등장한다.

 

미야자키는 대학 졸업 후 애니메이터로 일하게 된 도에이동화의 노동조합 서기로도 활동하였다. 노조활동은 그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은데 이는 작업 공간에 대한 태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미야자키는 도에이동화에서 만난 다카하타 이사오와 사상적 교감을 나누며 노동조합 활동도 함께했다. 1985년 그들은 스튜디오 지브리를 만들었고, 1990년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과는 달리 스태프를 월급제로 고용하였다.

 

스태프를 작품마다 계약하는 방식이 아닌, 상시적으로 고용하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는 고용을 안정시킴으로써 작품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물론 이는 스태프들을 한 자리에서 일하게 하여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또한 이는 적지 않은 스태프들을 월급제로 고용할 자금을 투자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브랜드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실현될 수 있었다.

 

이런 ‘파격적’ 고용 방식을 두고 <공각기동대(1995)>의 감독 오시이 마모루는 지브리를 소비에트의 크렘린에 비유했다. 그는 지브리의 조직화된 구조가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한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 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창조성을 저해한다며, “그들이 영화를 만드는 것을 아직도 노조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오시이의 발언은, 지브리의 고용 방식이 작업 효율보다는 그 설립자들의 활동 궤적에 기인한다고 여기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시선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지브리라는 제작사를 통해 미야자키는 다카하타 이사오와 하나로 이해되기도 한다. 도에이동화에서 만난 다카하타는 사회주의 사상에 밝았는데 미야자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작품 성격은 다르다. 다카하타는 <반딧불의 무덤(1988)>, <추억은 방울방울(1991)> 등 상당히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연출했다. 미야자키가 기획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은 우화적이기 하지만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강해서 다카하타다운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다카하타의 작품이 미야자키의 작품보다 사회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도 있다.

 

다카하다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1974)>, <엄마 찾아 삼만리(1976)>, <빨강머리 앤(1979)> 등 TV애니메이션들도 연출했다.

 


미야자키는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미래소년 코난(1978)>,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천공의 성 라퓨타(1986)>, <이웃집 토토로(1988)>, <붉은 돼지(1992)>, <모노노케 히메(1997)> 등을 연출했다. 이 작품들은 고도로 산업화된 문명의 위협과 어리석음, 파괴적인 전쟁과 독재 권력,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 인간과 자연의 갈등과 공존을,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경쾌하게 그리고 있다.

 

이와 달리 최고 정점에 오른 작품성을 보여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0)>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은, 한편으로는 미야자키의 면모를 이어가고 있지만, 사회․정치적 문제 등과 같은 다소 무거운 주제에서는 벗어났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미래소년 코난>은 초강력 전자력 병기가 세계의 절반을 일순간에 소멸시킨 2008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만든 ‘거신병’이라는 무기로 세계가 불타버린 먼 미래가 배경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로 이어진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도 기술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때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전쟁과 파괴 기술 때문에 인간 사회가 위기에 처했지만 여전히 인간들은 그 파괴 기술을 독점하여 남은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는 어리석음을 보인다. 이들 작품들은 인간적 가치가 발전할 수 있도록 기술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야자키의 작품은 억압과 착취의 사회와 조화로운 공동체 사회를 대조하기도 한다. <미래소년의 코난>의 인더스트리아와 하이하바,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원작인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도르메키아, 도르크와 바람계곡이 그러하다.

 

인더스트리아, 도르메티아, 도르크와 같은 도시와 국가는 <붉은 돼지>의 주인공이 스스로 사람이길 포기하고 차라리 돼지가 되어버린 이유를 제공한 전쟁과 파시즘 국가와 관련이 있다. 그것들은 악독한 계급 사회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나 국가를 폭력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제국주의이기도 하다.

 

이런 대군사 제국에 저항하는 사회는 다분히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하이하바와 바람계곡과 같이, 개인이 상품가치를 지니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그리고 있다. 미야자키는 “일정한 공동체 속에서 일정한 일을 하고 있으면 능력차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회가 된다. 어지간한 게으름뱅이가 아닌 한에는, 마을이 굶주릴 때에는 함께 굶주리고 마을이 풍요로울 때에는 자신도 풍요로워지는” 사회상을 그리고자 했다.

 


미야자키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또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마스크를 뒤집어쓴 채 곰팡이로 뒤덮인 음침한 폐허를 지나는 한 여행자의 독백, “마을이 또 하나 죽었군.” 이 대사로 시작하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1950년대 발생한 미나마타병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미야자키는, 대표적인 ‘공해병’을 낳은 이 사건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오염 물질의 끔찍함을 목격함과 동시에, 강력한 복원력으로 그 오염 물질을 빨아들여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자연을 보았다.

 

미야자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개봉 10주년 기념으로 하게 된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당대를 반영하지 않은 예술작품이란 없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70년대에 등장한 환경론적 세계관이 반영된 작품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미야자키는 인간과 자연의 긴장감을 많이 다루었다. 그렇다고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평면적으로 그리지는 않았다. <모노노케 히메>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걸 뚜렷하게 보여준다. 인간은 숲을 파괴하고 무기를 만들지만 그것도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그러한 행위에 저항한다. 인간이 자원을 이용하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산업 기술 문명을 이룩했다는 것 자체가 자연과의 대립을 영원히 피할 수 없게 한다. 대립적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웃집 토토로>는 전후에 사라져가는 일본의 숲을 소재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식을 동화적이고도 신비롭게 그리고 있다.

 


미야자키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자가 되길 원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의 국경 분쟁은 과연 그 국가들의 사회주의가 진실한가를 의심하게 했다. 그래도 그는 1990년대 이전까지는 마르크시즘에 경도되어 있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결국 동구권의 몰락은 그에게도 고통이었다. 왜냐하면 현실 사회주의가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붉은 돼지>를 제작한 후에는 “정치를 좌우로 가르지 않는다. 다만 물질문명에 비판적이라는 진보적 경향은 남아 있다”고 했다.

 

미야자키는 평화롭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루고 자연을 착취하지 않는 인간 사회의 이상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는 작품을 통해 이상주의적인 사회주의를 그렸을 뿐 그다지 실천적 활동을 보여 준 사회주의자는 아닐 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의 어느 작품에서도 ‘흑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인종주의’의 혐의를 받고 있다. 미야자키는 단지 ‘색감의 문제’라고 하지만 오히려 이 말이 ‘검은 피부색’은 아름답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한 그와 교감으로 평생 동료로 지내고 있는 다카하타 이사오의 <반딧불의 무덤>이 전쟁의 가해자인 일본을 마치 피해자인 양 그렸다며 비판을 받기도 한다.

 

배급을 위해 미국의 거대 미디어 재벌 디즈니사와 제휴를 맺은 점, 무엇보다 지브리의 설립자들은 상업적 성공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 이 때문에 그들의 작품에 드러나는 주제의식과는 별개로 그들이 과연 사회주의 사상을 실천하는 이들인가 의심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에는 이러한 주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고 평가 받기는 하지만- 미야자키의 작품에 드러나는 주제의식, 이상적 사회상이나 인간관계는 사회주의 철학에 가깝다. 미야자키는 자신이 꿈꾸고 있는 바를 작품에 담았다. 오히려 미야자키는 현실 사회주의나 사회주의 정당과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아 자신의 꿈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을지라도 자신의 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칭 사회주의자들이 미야자키에게 배워야 할 덕목은 그의 작품 속 주제의식보다 자신의 꿈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일지 모른다.

 

 

책에 관한 뻔한 질문들. 그보다 더 잼없는 대답들.

 

레이님의 [책?] 에 관련된 글.


 

1. 책상에 늘 꽂아두고 있는 책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


읽지 않는 책들.

말걸기가 읽고 있는 책들은 방바닥에 굴러다닌다.

 

 

2. 어쨌든 서점에서 눈에 뜨이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종류의 책들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


그림책.

한때는 철학-사상가들의 책들을 충동구매했지만 지금은 절대 아니다.

ㅋㅋ 지금은 서점 가도 돈 있으면 DVD를 산다.

 

 

3.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올해? 원고 땜에 읽고 있는 책. 몇 권이나 읽었다구...

작년으로 치자면 기억나는 책 없다.

 

 

4. 인생에서 가장 먼저 '이 책이 마음에 든다'고 느꼈던 때가 언제인가?


중학교 땐가... <어린왕자>

말걸기는 책을 읽을 때 한 페이지도 못 넘기고 딴 생각한다.

책 읽을 때만큼은 집중력이 없음에도 <어린왕자>는 거의 단숨에 읽었다는...

너무 감동하면서 읽느라고 머리가 쭈뼛쭈뼛해던 책은 <천년 동안의 고독>.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느꼈던 책들도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읽은, <철학 강의>라고 주체사상식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기술한 책인데 완전 쓰레기였다.

이 책은 누가 줏어가서 볼까봐 한참 동안 버리지도 못했다.

 

 

5.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책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아마도 성경책이 아닐까 싶다.

사실, 말걸기는 경험과 대화에서 지식과 지혜를 얻기 때문에 책 읽었다고 별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6. 단 한 권의 책으로 1년을 버텨야 한다면 어떤 책을 고르겠는가?

 

성경책. 일단 두꺼워야지.

읽어본 적은 없지만 불경집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7. 책이 나오는 족족 다 사들일 만큼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가?


지금은 없으나 예전엔 마르께스 책은 족족 사들였었다.

신기한 건 죄다 읽기도 했다.

 

 

8. 언젠가는 꼭 읽고 싶은데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책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천 년은 더 된 책들.

성경. 불경. 코란. 동서양의 고전들.

 

 

9. 헌책방 사냥을 즐기는가, 아니면 새 책 특유의 반들반들한 질감과 향기를 즐기는 편인가?

 

그림책 살 때 가끔은 헌책방을 찾았다.

헌책방에서 '헌책'만 파는 게 아니거든. 할인가에 파는 신간 그림책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

그림책이 아니라면? 책을 팔 때나 가겠지.

 

 

10. 시를 읽는가? 시집을 사는가? 어느 시인을 가장 좋아하는가?

 

과제가 아니라면 시는 거의 읽지 않는다.

지금은 과제 낼 일도 없으니 시를 읽지 않는다.

과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김수영의 시를 읽는 즐거움은 컸다.

쌩마초 김수영을 좋아하게 된 건, 그의 시보다 수필 때문이다. 수필이 더 역동적이다.

 

 

11. 책을 읽기 가장 좋은 때와 장소를 시뮬레이션한다면?

 

늦은 밤 TV도 재미 없고, 블질도 재미 없고, 게임도 재미 없다면... ㅎㅎ

긴 구간을 가야 하는 지하철. 할 일도 없고 시간도 잘 가고...

 

 

12. 혼자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주말 오후를 보낼 수 있는 까페를 한 군데 추천해 보시라.

 

주말 오후에 조용히 책 읽으며 보낼 수 있는 카페라면 문 닫을 때 된 거 아냐?

이런 데가 있나? 몰라.

 

 

13. 책을 읽을 때 음악을 듣는 편인가? 주로 어떤 종류의 음악을 듣는가?

 

전혀.

음악을 들을 때는 딴짓을 못한다.

 

 

14. 화장실에 책을 가지고 들어가는가? 어떤 책을 갖고 가는가?

 

전혀.

쌀 때는 싸는 것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15. 혼자 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가? 그런 때 고르는 책은 무엇인가?

 

전혀.

먹을 때는 먹는 것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16. 지금 내게는 없지만 언젠가 꼭 손에 넣고 싶은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

 

모든 종류의 고전들.

어차피 읽지는 않겠지만 손에 넣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17. e-book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e-book이 종이책을 밀어낼 것이라고 보는가?

 

먼 미래에 다시 물어 보길.

 

 

18. 책을 읽는 데 있어서 원칙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원칙이라기 보다는 습관.

차례를 꼼꼼히 보고 나서 읽는다. 본문을 읽기 전에 책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온통 짜증이네

 

1. 대가리가 짜증내고 있다.

 

당 지역위에서 선거일을 하고 있다. '선본짱' 정도의 일이라고 보면 되지만, 조직 사업 빼고는 죄다 말걸기가 했다. 정책, 공약안도 기술하고 이를 두고 토론하면 정리하고, 가공하고. 홍보물도 만들고. 홍보물은 마스터 인쇄용 한글 편집본과 웹자보 두 종이었다. 후보 공청회 때 필요한 논리도 하나 만들고. '선본' 운영 일정도 잡는다.

 

뭐? 지역위 선거가 그리 대단하냐고? 대단하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한 얘기가 아니다. 후보가 8명인데 말걸기 혼자 실무 뒷치닥거리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선거 준비는 다같이 시작했지만, 막상 닥쳐서는 후보들한테는 전화 돌리거나 당원 만나라며 일은 떠안은 거다.

 

게으름으로 제때 제때 모든 게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꾸역꾸역 때우고 있다.

 

 

2. 가슴이 짜증내고 있다.

 

속이 터질라 한다. 그놈의 <사회연대전략> 때문이라고 하면 말이 안될라나? 어쨌든 이놈이 공격을 받고 있는데, 공격하는 것들이 '의도적 오독'을 바탕으로 '거짓 선전'을 해대고 있다.

 

<사회연대전략>은, ①만들어가고 있어 완결성이 떨어지고, ②지금까지 제시된 내용도 미세한 제도 설계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을 수 있고, ③무엇보다 일정수준 이상의 소득을 얻는 노동자들도 복지 예산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으로 인하여  '정규직 책임론'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거짓에 기초해서 비판하면 안된다.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의 환심을 얻어 정치세를 확장하기 위해 저~ 분파가 거짓말을 해가면서 <사회연대전략>을 씹어대고 있다. 생까고 싶지만 당 지역위 선거에서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었으니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어제도 이 때문에 글을 하나 쓰다가 완성하지 못했다.

 

아, 지나가는 개도 쳐다보지 않는 주장 땜에 언제까지 속이 끓어야 하나.

 

 

3. 마음이 짜증내고 있다.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냥 '알바 원고 마감'이라고 하자. 14개 원고를 언제 다 쓰냐? 에휴~. 게으름은 한 순간의 행복이지만 반드시 형벌을 불러온다. 마음 졸이는 것 만큼 큰 형벌이 있겠나.

 

게다가 짐을 하나 더 얹었다. 레디앙에서 원고를 부탁했는데 거절할 명분이 별로 없어졌다. 선거 땜에, 알바 땜에 미룰만큼 미뤘으니까. 근데 쓰려고 자료를 검토하다 보니 너무 뻔한 내용이 될 것 같아 재미가 없다. 무엇보다 기사 컨셉에 맞는 내용을 찾을 수가 없다. 얇팍한 수를 부려야 원고가 나올 것 같다. ㅠㅠ 이 원고는 앞으로 2시간 안에 써야 한다. 컥!

 

 

4. 몸이 짜증내고 있다.

 

1월 20일로 말할 것 같으면 말걸기의 생일인데, 저 멀리 충청도에 가야 한다. 누구 결혼식에 가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좀 놀아볼라고 한달 전부터 준비한 나들이가 있어서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일로 몸과 마음을 쥐어 짰더니 가기가 싫다. 아마도 막상 가면 잼나게 지내긴 하겠지만.

 

에휴~ 원고나 얼른 쓰고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