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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의 계절

제목 때문에 찾아오는 분은 없겠지....

 

'7월 편집 시작!'을 목표로 열심히 캡쳐하고 있다.

막판에 편집구성안이 너무 꼼꼼해지다보니 좀 시간이 지체가 되었으나

가능성있는 몇 개의 퍼즐들을 같이 가져가는 식으로 해서 일단 마무리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그 곳은 학교였다. 내가 다니던 대학을 닮기도 했고, 한예종인 듯도 했다.

등나무 벤치에는 학생들이 앉아서 한가로이 잡담을 하고 있는 평화로운 교정에서

나는 온통 알몸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늘어진 가슴과 뱃살을 걱정하며 도대체 내가 왜 지금 이러고 있는가 한심해하며

그렇지만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애써 당당해지려 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외면하며

걷고 있었다. 어디로? 그건 모른다.

온통 알몸인 내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 카메라 가방으로, 끈을 조절해가며 가장 은밀한 부분을 가리려 노력하면서

또 애써 태연한 척 걷고 있었다. 감독님은 언제 오시나....초조해하며.

꿈 속에서 내 옷을 가진 사람은 감독님이었다.

 

한참만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감독님이 왔다.

감독님은 지치고 피곤한 얼굴로 벤치에 앉아서 쉬고 계셨다. 

제 옷을 주세요.

아, 어떡하니? 깜박했다.

......

 

꿈이야기에 관심많은 남편은 꿈에서 깨는 그 순간의 직관을 믿으라 했다.

꿈에서 깨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이건 노출에 관한 상징이다.

학기 중에 일본 여성감독이 만든 <파더 컴플렉스>를 같이 보던 학생이 말했다.

"자신의 고통을 내보이며 누가 더 고통스러운가 경쟁하는 듯한 이런 작품....

보는 입장에서는 이제 무감해진다. "

 

독립영화는 상처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개인의 상처. 사회의 상처.

어쩔 수 없는 처지 때문에 '가족과 기억의 상처'를 들여다보았고

이번 작업을 끝으로 그 작업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엄마...>를 만들 땐 출산 전에 작업을 완성하지 않으면 미완에서 멈출 거라는 조바심 때문에

허겁지겁 편집을 하고 얼떨결에 시사를 하고 그 후, 육아에 전념하였으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고백으로 점철된 <엄마....>의 첫번째 시사회에서 관객 중 한 명이 그랬다.

"감독이 내밀한 비밀을 털어놓고는 있지만....그래서 어쩌라고?"

프리뷰를 부탁한 사람들에게서는 쪽지 한 장 없었고 그 상황에서 일정에 밀려 마무리했던 영화.

나는 깊이 상처받았고 되돌리고 싶었으며.....두려웠다.

그리고 여성영화제. 그 날 그 자리에서 얻었던 공감이 나를 밀어왔다.

순회상영이 있을 때엔 두 아이를 데리고 갔었다.

같이 갔던 선배언니가....땀으로 범벅된 내 얼굴을 보며 "너는 정말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구나"할 때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고작 30분의 gv를 위해 이 고생을 하느냐는 안쓰러움의 표현이었겠지만

내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타인과 함께 내 영화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그 자리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교환할 때 나는 내 노출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이번 영화에서도 노출은 화두이다.

꿈 속에서의 나처럼 나는 짐짓 의연한 척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작고도 네모난 카메라 가방으로 부끄러운 곳을 가리려 애쓰며 무척 초조해할 것이다.

'전 영화 때문에 노출을 했을 뿐이예요'라고 억지웃음을 웃겠지만

아아....정말 다른 방법은 없었던가....후회할 것이다.

 

감독님은?

꿈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게 별 도움은 주지 않을 것이다.

매번 작업 때마다 감독님의 조언들은 그림의 떡이었고 오를 수 없는 산이었다.

나는 그의 조언과 내 영화 사이에 놓인 강을 한 번도 건너지 못했고

나중에 긴 시간이 흐른 후, 내 영화를 객관화할 수 있을 만큼의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강을 건널 나뭇잎배 하나 정도를 상상할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나는 내 발끝만 보며 가야한다.

타박타박. 그것만이 유일한 내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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