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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과 마다라메 사이의 어디쯤

 

윤성호 감독의 인디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 No Vote No Sex>

 

우디 앨런의 영화들과 일본 애니메이션 <현시연>(現代視覺文化硏究) 사이의 어디쯤 놓여 있는 듯한 작품이다. <은하해방전선>에서도 넘치는 재치와 남성주의 사이에서, 통쾌함과 불편함 사이 어디 쯤에 놓인 느낌을 자아냈었는데, 이 짧은 시트콤에서도 그런 감성이 압축적으로 나타난다. 이제는 노쇠한 우디 앨런이 스칼렛 요한슨 같은 젊고 예쁜 여배우를 졸졸 따라다니며 알 수 없는 멘트들을 주절주절 날린다면(<매치 포인트>, <스쿠프>), <현시연>의 오타쿠 청년들은 동아리방에서 자신들의 사업계획과 섹스에 대한 이야기들을 쉴새 없는 입담으로 주고받는다. 윤성호의 시트콤에서 절묘한 부분은 "창문"인데, 창문 이쪽의 동아리방 느낌의 공간에서 그가 <현시연>의 캐릭터 마다라메가 된다면, 창문 너머 저쪽에서 그는 학보사 여대생을 뒤쫓는 우디가 된다. 그렇다고 꼭 윤성호 감독이 쁘띠부르주아 '속물근성'을 속속들이 까발리고 싶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속물근성이 자아내는 역설을 드러내 보여주고 싶은 것 아닌가 한다. 그는 영화속의 우디처럼 적응 안 되는 대저택에서 어색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리방 같은 친숙한 공간에 머물러 편하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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