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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속의 한국과 일본

모처럼 비 오는 토요일 저녁, 공부쟁이 친구 C에게 이메일이 왔다.

 

전후 일본에 천황제가 존속하게 된 이유에 대해 미국의 반공정책이 거론된다. 이는 일본 국내에서의 공산주의 세력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실은 해방 이후 한국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민주화되었고 한국은 권위주의 체제가 들어선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에서도 권위주의 체제가 이어질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잖는가?

 

이런 내용의 메일은 매일매일 받아도 즐거울 듯하다.

 

일단 대충 생각을 정리해 답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지정학적 맥락이 좀 다른 것 같다. 일본은 미국의 적국이었고, 패전 직후 일본은 미국의 점령국이었다(GHQ가 통치하는 형태로). 이후 일본을 확고한 미국편으로 만들면서도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선 일본 정치체제 민주화라는 게 필요했을 것이다. 물론 보여주기 위한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군국주의자들을 그냥 두기엔 위험했던 측면도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한국전쟁이 일단락 된 데에 소련, 중국도 끼어 있었고, 동일한 반공주의가 자리잡게 되었더라도 냉전-휴전 상황에서 4.19 이후 남한 국내정치의 혼란이 심화되는 것보다는 군사정권이 확실히 잡아 주는 것도 괜찮다고 보았을 것이다. 남북 대치 상황이니 국제사회의 눈치를 볼 부담도 없었을 테고 말이다. 한국에는 해방 이전이나 이후나 외세에 끈덕지게 붙어먹던 놈들이야 있었을지 몰라도 일본처럼 '천황만세' 같은 걸 외치는 그런 세력은 적어도 없었으니까. 한편으로 어떤 이들은 헌법1조 '상징천황제'가 성립하게 된 역사적 맥락을 거론하면서 일본 내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보다 성공을 거두려면 상징천황의 존재를 어느 정도 수용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친구 덕에 일어난 궁금증이 영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다.

 

이전에 읽었던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의 <동아, 대동아, 동아시아>를 다시 뒤적여 본다.

 

그의 말을 빌리면 “일본의 근대화란 유럽에서 발기한 ‘세계질서’ 혹은 ‘세계사’에 자신을 편입시켰음을 의미한다.” 확실히 일본에는 굳이 ‘발견’하려 애쓰지 않더라도 서구의 헤겔, 칸트 같은 근대사상가들이 존재한다.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라든가,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라든가 ... 우연찮게도 머릿속에 떠오른 서구 사상가가 독일인들인데, 확실히 유럽 속의 독일과 동아시아 속의 일본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지니는 듯하다. 비좁은 ‘생활공간’ 문제를 해결하려고 군사적 확장을 시도했다는 면에서까지도 ...

 

일단 근대 유럽사상의 맥락과 관련해서 고야스는 월러스틴의 말을 빌려 “보편주의는 강자가 약자에게 주는 ‘선물’”이라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이 ‘선물’은 순순히 수용하는 자에게는 굴종을, 거절하는 자에게는 패자의 불이익을 부과하는 이중 속박적인 증여이다. 근대 일본은 이 ‘문명’이라는 강자의 증여를, 화혼양재(和魂洋才) 전략을 구사하면서 받아들인 능숙한 수용자였다.”

 

더구나 1930년대에 이르면 일본의 이른바 ‘문명’에의 편입은 명확해지는 듯하다. 고야스 역시 “일본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는 것은 이미 일본이 ‘세계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전쟁은 분명 ‘세계’전이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일본은 1930년대 즈음에 국제사회의 주요 일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공황과 전쟁이라는 격동 속에 세계질서 재구성을 요구하는 동아시아 지역의 리더였다. 그 과정에서 나온 공간적 개념이 ‘동아’와 ‘대동아’인데, 고야스는 “1930년대부터 일본은 스스로 맹주로서 군림할 수 있는 ‘동아’라는 영역 개념을 형성하였고, 거기에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영역으로 ‘남방’을 부가하여 ‘대동아’를 형성해간 것이 제국 일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이른바 ‘전후처리’ 과정이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의 다자적 관계보다는 미국과의 양자관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데 대해서는 이제 폭넓은 합의가 존재하는 듯하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2차 대전과 한국전쟁 이후 일본이 (위로부터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룬 데 반해, 한국이 권위주의로 나아간 까닭은 ... 일본은 ‘제국’이었고,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 큰 듯하다. 고야스는 바로 이 점을 명쾌하게 정리해 준다. “일본은 아시아와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유보한 채 독일과 함께 대전 후 미국이 주도한 서방의 ‘세계체계’에 복귀했다. 그리고 대등한 미일관계가 논의되던 1960년대 이후 일본은 비군사적인 형태로 ‘세계체계’의 유력한 구성멤버였던 과거의 위치로 복귀하였다. 그것은 동시에 아시아에서 일본의 지위를 이번에는 경제강국으로 부활시켰음을 의미했다.”

 


아뭏든, 요즘 일본 정치계도 복잡한 것 같다. 끝내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문제를 풀지 못한 채 하토야마는 물러나고 칸 나오토가 총리로 앉고 ... 이번 참의원 선거마저 잘 안 되고 하면 동아시아 쪽보다는 기존 방식대로 미국 쪽에 붙으려는 방향으로부터 변화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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