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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갔다가 일하러 왔다. 결국 못 다 마신 맥주를... 잠실역 근처 가판대에서 사서 도서관에 와 마셨지 뭐냐...

그 다음엔 종이컵에 자판기 커피도.

*

정보 차이가 주는 불평등함에 관하여 곰곰...

글쎄 그 친구 스타일대로, '그건 자기 일'일 수도 있지. 그런데... 글쎄,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은데.

뭐 나도 요즘은 내 할 일에 치어 전전긍긍이라 차분히 생각할 여유가 없지만,

어쨌거나 막연하게는... 내가 생각이 정리가 되면 조심스럽게 참견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사소한 일이지만 막상 당하는 입장에서는 아닐 수도. 분명 화나고 짜증 나는 일, 그런 입장 겪어 봤으니. 순전히 '배려 없음'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배려 없고도 당당한(이기적인) 태도, 싫다.

*

아 나도 참 이런 식으로 발목 잡히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래도 나름 즐거운(?) 업보지 뭐. 에휴.

 

그건 그렇고 내가 벌인 일은 참 즐겁다(무급 인턴).

(소)영웅이나 간호사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했었나.

자존감이 낮은 건가.

생각이 없던 건가.

 

아무튼 지금은 즐거우니 충분하지만

이후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군...

*

아, 오늘 처음으로, 하객으로서도 즐겁고 뿌듯한 결혼식을 보고 왔다.

친구나 지인이 많지도 않지만 어쩌다 결혼식에 가면 갔다 와서 뭔가 스스로 어색함이 남거나

애초 가기도 전에 (입고 갈 옷부터 축의금 오랜만에 사람들 만나기 등등) 부담 느끼거나

그 부담의 무게에 제풀에 지쳐 못 가 버리거나 했는데...

당사자들에게 축하하는 마음, 뿌듯한 마음만으로 커버가 안 되는 형식의 번거로움이 싫었는데 말이지,

뭐 이 정도면(엄청난 건 아니라도 저 정도가 어디야 싶어)  꽤 즐겁고, 갔다 와서도 마음 깔끔하고...

명색이 뭔지 자존심 강한 듯한 주례 분도 투덜(칭얼?!)거리긴 했지만 나름 적응, 즐거워한 것 같고.

신부 신랑, 참 기존의 관습과 어르신들의 지혜와 또는 버릇과 

싸우면서도 타협하면서도 배우면서도 준비하느라 애 많이 썼을 것 같아.

*

내 할 일은. 내 삶은.

언제까지 말줄임표와 땀 삐질 아이콘과 그 밖의 방어적 기호로 버틸 거냐. 얼마나 살려고.

(역시 말줄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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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기기 전에

최근 덧글 덕분에 에니어그램 유형을 보고.. 돕고 싶어하는 사람, 이 꽤 높게 나왔구나, 하였지만,

어쨌든 참 오랜만에, 블로그에, 이런 말을 남기려고 들어왔다.

 

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구나. 참으로......

외로움도 많이 타는 것을 보면, 꼭 일방적인 영향력 행사 또는 권력 행사를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물론 그렇다고 권력욕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의존형'을 좋아하는 것은 분명하구나. 그렇다고 다른 것을 쉽게 받아들이거나 내 부족한 부분을 쉽게 인정하는 것도 아니니 고집이 센 것이 맞구나. 아니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좀더 정확히 말하면, 잘 고치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결국은 사랑의 문제 아니겠는가. 고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가 바뀌고 싶지는 않아하면서 내가 불편을 겪게 만드는 다른 것에 대해선 입을 다물길 원치 않는다. 귀찮아도 싸우기를 원하는 편이다. 그런데 왜 싸움이 계속되는 것에 비해서 바뀌는 것은 적은가? 나 하나의 습관, 나 하나의 허물, 하나를 바꾸기가 이렇게도 어려운 걸 보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한 가지에 몰입하면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점.

감정에 많이 좌우되는 점.

아직도 (특히 강자의 윤리적 부족함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순간)

윤리적 우월의식을 어느새 가지고 있는 나, 게다가 쉽게 독선이 되어 버리는 점.

그 순간부터 나는 내 부족함을 인식하면서 배울 것을 얻기보다, 상대를 비판하는 데에 안주해 버린다.

약자에 대한 공감자와 강자에 대한 비판자 역할에 한없이 머무르려고만 한다. 그 이상은 없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것.

 

무엇보다, 착한 역할에 머무르고자 하면서도 능력 부족을 시인하고 싶지 않은 욕심.

이것 때문에 소화 불량에 걸리고, 잠이 불규칙하고, 우울하거나 또는 오버하거나, 하는 것이 아닐까.

욕심을 어느 정도에서 잘라야 할까. 나이가 더 먹고 기회가 줄고 몸이 좀더 건강이 상해서 어쩔 수 없을 때까지 이 욕심 끝까지 쥐고 있으려고 할까. 적어도 지금은 무엇 하나 놓고 싶지 않은데. 더 갖고 싶은데.

 

물질이 아닌 것이라고 해서 갖고 싶은 만큼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건만......

게다가 물질이 아닌 것에 대한 욕망은 점점 더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대체 가능하게 되어 가고 있다. 물질이 아니었던 것들이 모두 물질화되는 데에 비례해서 말이야.

 

구체적인 예를 들면, 요즘 - 일할 컴퓨터가 모자란 것이 계기이긴 하지만 - 노트북 컴퓨터를 알아보면서, 될 수 있으면 싸면서도 가볍고 성능 좋고(빠르고 발열 소음 적고) 배터리는 오래 가고 오래 작업하기 편하게 키보드 감촉도 좋고, 고장이 안 나거나 나더라도 A/S 받기가 나쁘지 않으며 컴퓨터를 많이 몰라도 편히 대략 신경 안 쓰고 쓸 수 있길 바라면서, 디자인 욕심이 없는 게 다행이라 생각하면서(그나마도 없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취향은 분명 고집이다), 그 어떤 욕심도 쉽게 못 털어 내느라 노트북을 못 사거나 하루하루 미루고 있는 것이다. 값은 얼마나 싸기를 바라냐 하면, 공짜에 가까울수록 좋다(말이 되니?!)...

 

사무실에서는, 친척이라서 내가 얻는 것만큼 잃는 것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것을 잃기 싫어서 이렇게 혼자 밤을 새우는데, 밤만 새울 뿐 나오는 게 없어서 쪽팔리다... ㅠㅠ 그리고 내가 잠시나마 이곳에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게 참 반갑고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지만, 뭔가 어딜 가나 한계를 많이 느껴. 이런......

 

요즘 한동안 (워커홀릭으로 지내면서도) 일도 생활도 즐거운 편이었는데 말이지, 이제야 좀 가라앉히고 현실을 바로 보는 눈이 생기고 있는 것인가(이것도 일시적 현상-_-;; 그래야 버티는 건가도 싶고;; 헐)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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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와 잠

*

이 화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눈덩이처럼 굴러 커진 것인지 - 같은 눈덩이라도 그것이 모두 당사자와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내 다른 요인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

 

슬픔도 분노가 억눌려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그리고 나는 다져진 슬픔도 아닌, 날것 그대로의 화 때문에, 이틀 연속 잠을 설쳤다. 그저께 밤에는 거의 완전 꼬박 못 잤고, 간밤에는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으나 여러 가지 꿈이 복잡했고 깨어 보니 아주 잠깐 잔 것이었다. 평균 9~10시간을 자던 데에 비하면;;

 

내 감정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 원인을 잘 찾지 못하면,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할 수 있고, 그럴 경우 그것이 아주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내 다른 가능한 요인들을 생각해 보면 이런 것이다.

요즘 내가 최근의 몇 가지 일들로 힘들고 지쳐서 마음의 여유가 없나? 또는 한 가지 그 상처에 매여 있나?

돈이 바닥을 팠고 들어와야 될 알바비도 안 들어오고, 하루에 몇 번씩 입금 확인을 하고 있어 초조한가?

아직도 덜 끝낸 일로 스트레스는 사라지지 않은 채, 앞으로 일단 한 해를 버틸 엄두가 안 나서 그런가?

 

이런 상황 말고도, 요즘 잘 마음 통하는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별로 없다는,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피상적으로 공감하는' 이야기에는 더 이상 마음이 놓이지 않고 뭔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토대 위에서 마음이나 감정의 공감도 덮여야 비로소 뭔가 갖추어진 듯하다고 느끼는 바람에 아예 소통 시도조차 못 하고 있는(내 일정에 쫓긴다든지... 마음 불편한 상황을 누르고 소통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불편함만 호소할 수도 없고 사실 그럴 데도 없으며 아마도 나는 사람은 결국 누구나 혼자다, 라는 걸 그동안 잘 모르고 살아온 것 같다) 요즘의 상태에서는 웬만한 마음 나눔 가지고는 공허감만 더욱 크게 할 뿐이라 그런가.

 

마음보다 몸이 먼저 화를 내고 있었다. 열이 오르고, 표정과 말투뿐 아니라 온몸이 굳고, 잠도 쫓아내고, 순간순간 분노로 흥분해서 작은 기억을 놓아 버린다.

 

*

실은 답을 알고 있다. 내가 배려하고 기대한 어떤 만큼의 배려나 성찰이 오지 않을 때 느끼는 배신감이다. 그리고 배려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적어도 나는 아직 그만큼의 배려를 할 그릇이 못 되었는데 무리했었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어른의 세계에서는 배려하는 데에 감정 노동뿐 아니라 신체적, 물질적인 대가도 든다. 생각보다 아주 클 수도 있다. 내가 능력 밖의 배려를 해 놓고 예상치 못하게 후회할 만큼 힘든 이유는 그 소통이 좀더 신중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 나름대로 최선의 판단이라고 순간순간 했겠지만, 그래도 서로의 신뢰가 없을 때 그 정도라는 것은...

 

*

하지만 내가 너무 오버인가, 과대망상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이들 둔감하고 무감각한 세상이다. 자기 아픔이 아니라면 말할 것도 없다. 찔리고 아픈 쪽에서 찌른 쪽에게 자꾸 이것저것 귀찮게 물고늘어지는 것이 흉이 된다. 유난스럽고 과민한 일이 된다. 그러나 어쨌든 그런 분위기에서 혼자 예민함을 고집하는 것은 영락없는 과대망상이다. 대체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관계의 유토피아라도 만들고 싶은 것인가? 또는 그것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내 위주의 생각을 강요하는, 나르시시즘과 또 다른 침범과 폭력은 아닌가? 

 

*

좀더 차분히 하나씩 보기 위해 어제 하루(라도)를 돌아본다.

 

눈뜨자마자 잔고 확인을 했다. 소식이 없다. 동생에게 다 못 전한 남은 합의금을 보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동생이 직접 (교통사고) 가해자와 그것도 몇 차례에 걸쳐 나누어 통화하며 입금 확인하고 어쩌고 하는 것이 괴롭고 힘든 일일 것이라 내가 연락하면서 받아서 보내고 있는데, 이번엔 남은 합의금을 다 받았는데도 내 통장에서 휴대폰 요금이 인출되면서 몇 만원이 모자라게 되어 버려 며칠째 미루는 중이었다). 아, 생각해 보니 이것은 알바 계약이나 사전 중간 사후 소통의 문제다. 어쨌든 지금으로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다.

 

일어나서 친구를 만나러 충무로에 갔다. 오랜만에 참 반가운 시간이었다. 점심시간 1시간을 알뜰하게 써서 밥을 먹고 커피도 마셨다. 그러나 친구는 눈에 띄게 몸이 말랐고 몇 개월째 몸을 혹사하고 있고, 끊임없이(전화, 부탁, 심부름, 오가다 만남 등으로) 일터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 1시간의 자유시간 안이나 경계에서도.

 

사진을 찾았다. 노출부터 뭐 아주 엉망이다. 뭐 이런 거야 사실 아무 기대도 실망도 없다. 그러나 사진이나 포토피아에는 내 여러 기억이 묻어 있다. '사진 세계' 어쩌고 하는 이와의 관계의 삐걱임이 찜찜함으로 남았다.

 

문득 숙제를 안 했다는 생각이 나서(아 늘 정신이 없는 상태라는 문제가 여기서도 드러나는구나), 킨코스에 들어가 작업을 해서 보냈다. 친절한 직원이 안내와 배려를 잘해 주어서, 작업하긴 편하고 좋았다(뭐... PC방이 아니고 킨코스니까 당연하겠지만 어쨌든).

 

학원에 갔다.

어젠 아니지만 그저께의 기억은, 학원의 한 빈 강의실(자습실로 쓴다) 뒷쪽 에어컨에서 올라오는 악취였다. '잘 관리하지 않은 낡은 건물의 찌든 화장실' 냄새가 바람으로 폭폭 나오고 있었다. 뭐 내가 느끼기엔 폭폭, 이었지만, 자리를 거의 채운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얌전히 앉아 공부만(말로 주고받는 스터디도) 잘하고 있었다. 처음엔 나도 그냥 조금 멀찍이 떨어진 자리로 옮겼을 뿐이었지만, 나중엔 나갔다 들어올 때 강의실에 엷게 퍼져 있는 그 냄새에, 사무실 직원에게 알렸다. 그사람은 그 기기를 꺼 보려고 하다가 스위치를 못 찾고, '이게 지금 (스위치 등이) 다 막혀 있어서 끄진 못하는데, 조금 있으면 중앙 냉방이 꺼지니까 그때까지 좀 기다리시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전체적인 시스템 문제는 아니냐는 물음에 그건 아닌 것 같고 이 기기 하나에 뭔가 음료 같은 걸 흘렸다든지 그래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면서.

 

아, 실내 공기. 내가 마시는 공기. 서울시내 공기. 최근 이틀 동생은 (아마 스모그 때문인 것 같다고) 알레르기 증세를 보였다. 계속해서 재채기가 나고 코와 입천장 등 점막이 가렵고 등등. 동생과 나는 둘다 호흡기가 약해서 먼지나 매연에 민감하다. 천식 경력이 있거나 여전히 가지고 있고. 몇 달 전 '육식' 관련한 책읽기 모임에서, 나는 책은 다 못 읽었지만-_-;; 내가 개인적으로 아토피 때문에라도 관련지어 생각해 봤다고 언급했을 때, 친구가 그런 개인적인 문제는 엄연히 자본주의적 육식 생산물에 거부하기 위한 운동으로서의 육식과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땐 그런가, 하고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이후 그런 개인적 특수한 질병의 문제가 결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님을 점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육식 등 식생활 관련해서, 또는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 아토피나 알레르기는 개인 몸의 건강을 챙기는 문제가 아니라, 그런 부분에서 약하거나 건강치 못한 체질인 사람부터 전체 집단의 병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1급수에서밖에 못 사는 물고기부터 차례차례 죽어 나가듯이.

 

학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혼자 수동적으로 앉아 수업을 들으려니, 역시 불끈 하는 화와 싸우며(싸우고 누르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동시에 이런 감정에 당황스럽고 의아해하며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직접적인 이유는 아까 친구와 만나느라 몇 시간 뒤로 내가 미뤘지만, 그 직전에 잠깐이라도 그 (교통사고) 가해자와 통화를 한 것에 있다. 그는 '많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라고 했었다. 아무것도 아닌 말 같지만 내 화는 그때부터 완전 부글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많이 다치지 않았다고, 다행이라고? 그게 남 일이냐? 가해자인 네가 할 소리냐! 내 동생이 직접 듣지 않은 게 다행이다') . 역시 말 한 마디에 내가 과민했던 것으로밖에 볼 방법이 (표면상으로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합의하기 전인 한참 초기에, 치료비 등과 관련해  '당연히 그건 제가 해 드려야죠' 이런 표현에 관해서도 나는 화가 나서, 전화로 그 말에 관해 따지기도 했었다. 내가 너무 어휘 표현에 집착하나? 생각하면서도, 서로 부딪친 것도 아닌, 캠퍼스 내 횡단보도에서 멀쩡히 건너고 있던(신호등이 없었는지 있었는지 모르겠다. 있었다면 당연히 녹색불이었겠지만(나와는 달리 그는 절대 무단횡단하지 않으니까) 아마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을 달려와 치고는, 물론 매우 매우 죄송해하며 몸둘 바를 몰라 하셨기에 나도 서로 신뢰가 있는 상태에서 이야길 나눴었지만, 변명이란 말이 '진짜 안 보였어요...' 라니, 내 동생이 무슨 개미도 아니고! 아니, 이건 화나서 하는 말이고,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 정지가 아니면 형사 처벌인데. 당연히 안 보였겠지, 그걸 누가 모르나. 그렇게 '제가 절대 보였으면 멈췄을 텐데 밤이고 또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고 계셔서 안 보여서요... 절대 고의가 아니고...'를 변명이라고 피해자측 앞에 해야 하나. 치인 사람은 그 사람 말대로 '다행히 많이 다치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날 그래, 어두운 밤에, 비 오는 젖은 땅바닥에, 한참 쓰러져 있었단 말이다. 합의 과정에서 너무 많은 배려를 한 것이, 두고두고 홧병이 나는 것이라, 이제는 합의금 그거 도로 내가 몇 달 더 알바 해서 갚더라도, 그런 개념을 가진 사람의 돈 필요 없으니까, 뭔가 이제라도 '형사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철회할 수 있다면, 탈것으로 사람 몸을 치었을 때의 위험함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라도 이게 '보통 일이 아님'을 알고, 그 흔한 교통 사고에서 그나마 안 다쳐서 다행인 게 아니라, 얼마큼 다쳤든 이 일 자체가 큰일임을, 알아 주었으면, 제발 뭔가 한 대 맞듯 정신을 차릴 기회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아마도 분명 보복 심리를 포함한, 내 화가, 나는...... 사소해 보이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치미는 것이다. 솔직히 내가 원하는 것은 법에 의한 강제 처벌도 아니고(그것은 내 보복 심리 정도를 충족해 주겠지만 그래 봐야 나도 허무하고(직접 피해자인 동생은 더 허무할지도) 무엇보다 가해자가 반발심밖에 더 생길까, 그런 권력 행사는 참으로 하기 싫은 '(내 안의) 악의 유혹'일 뿐이다.), 진심으로 하는 대화를 통한 (사태 심각성이나 피해자의 아픔이나 힘듦에 대한) 자발적인 동의의 진심어린 표현이었는데, 그가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인데 내가 내 언어 표현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오해, 매도하는 것은 아닐까. 헷갈려. 또는, 설사 내가 온 힘을 다해 그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고 소통을 꾀하더라도, 그가 그것을 (이미 최근 그랬던 것처럼) 그것을 피곤해하거나 아무튼 아무 말없이 거부해 버리면 끝이지. 역시 사람 마음이, 마음 (서로?) 움직이거나 통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지. 아아. 또는 내가 시간이 많아서 이런 고민을 억누르지 못할 뿐인 건가. 친구처럼 과로하는 데에만도 정신이 팔리거나 미친듯이 전업 공부 중이라면 이러지 못할 텐데, 아쉬움이 없어서(?) 이런 건가...... 그 가해자도 피해자 입장에서 대략 감수하고 넘어간 경험이 있다는 것을 봐도, 다들 그렇게 대략 감수하고 넘어가는 것뿐인가. 역시 내가 인간관계에 너무 많은 기대를 가진 어리석음을 못 버렸을 뿐인가. '타인이 어느 수준까지 ~하기를 기대하는 어리석음'은 분명히 있지. 그 기대 때문에 분노를 떨치지 못하는 내 더한 어리석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가 겪는 문제인 한 내가 수긍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지 못하고는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듦을 버리지 못하는 버릇이 문제인가. 몇몇 사람들의 지적처럼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인가, 과연?

 

(아, 쓰고 다시 보니, 역시 차분히 보기 위해... 라는 건 꿈이었어OTL 차분해지긴 무슨.)

 

학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지하철 에어컨에서 물이 떨어지는 문제처럼, 적극적으로 얘기해서 고쳐지면 다행이고, 아니면 귀찮아서 그냥 지나갔어도 당장 내게 별 큰일이 없는 일이면야, 저렇게 화나진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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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어그램 테스트

긴 호흡님의 [오랫만에 애니어그램~ ] 에 관련된 글.

 

트랙백 이렇게 하는 건가? 블로그 적응은 언제까지...;;ㅎㅎ

아무튼 나도 오랜만에 재미있는 애니어그램 테스트를 해 보았다. 

 

결과는.... 

 65%  
 90%  
 25% 
 95% 
 70% 
 70% 
 30% 
 75% 
 70% 

 



압도적으로 '낭만적인 사람'과 '돕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니. 압축하면 기사도 정신쯤 되려나.

이 결과는 스스로와 타인들에게 '자랑스럽되 창피하다'. (? 이 감정 역시 관계지향적 반응인가)

 

당신은 낭만적인 사람...(4번 유형)

낭만적인 사람(4번 유형)은 자신의 감정을 깊이 경험하고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어하며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그들은 또한 평범한 상태를 피하려는 욕구에 따라 행동하곤 합니다. 이들은 최상의 상태일 때 따뜻하고 연민이 많고 자기 내부를 잘 들여다보며 표현을 잘 하고 창조적이고 직관이 발달했으며 타인에게 호응을 잘 해줍니다. 그러나 최악의 상태일 때는 우울하고 자의식이 강하고 죄책감을 잘 느끼고 위축되기 쉽고 고집이 세고 기분에 따라 좌우될 뿐 아니라 자신에게 몰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낭만적인 사람들과 잘 지내려면

-나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세요. 칭찬은 내게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
나를 지지해주는 친구가 되어 주세요. 나 자신을 사랑하고 가치있게 여기도록 도와주세요
-
나의 특별한 재능인 직관과 통찰력을 존중해주세요
-
우울하고 슬픈 기분을 느낄 때 항상 기운을 차리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밝혀줄 누군가가 필요해요
-
나에게 신경과민이나 과잉 반응을 보인다는 등의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내가 낭만적인 사람이라서 좋은점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을 느끼는 능력
-
다른 사람들과 따뜻한 유대관계를 맺는 능력
-
인생에서 고귀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을 찬미하는 것
-
창조성, 직관, 유머감각
-
독특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독특하게 비치는 것
-
심미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 것
-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쉽게 헤아릴 수 있는 것

내가 낭만적인 사람이라서 좋지 않은 점

-공허하고 절망스러운 어두운 기분을 경험하는 것
-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자신을 미워하고 부끄럽게 느끼는 것
-
사람들을 실망시켰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것
-
내 자신과 인생에 대해 너무 많이 기대하는 것
-
버려질까봐 두려워 하는 것
-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것

알맞은 직업

4번유형은 예술(음악, 회화, 무용 등)과 글 혹은 말과 관계된 일(시, 소설, 언론, 가르치는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영향을 미치고 설득하길 좋아합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심리학자나 상담자로서 사람이 지니고 있는 좋은 면들을 끌어내곤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들 소유의 작은 사업에 긍지를 느끼기도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 적합합니다.

충고

  1. 자존감을 가지세요
    당신의 특별한 소질, 능력, 지식 등을 자랑스럽게 여기세요
    자신을 갈고 닦는데 몰두해 보세요
    현재의 삶을 가치있게 생각하세요
    매일의 의무와 책임을 창의적이거나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발견해보세요
    당신이 지닌 최상의 것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창의적인 일에 몰두해보세요. 그리고 그 일을 통해 돈도 벌 수 있도록 해보세요
    창의력을 발휘할 만한 직업을 가질 수 없다면 따로 시간을 내어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세요
  2. 많은 친구를 사귀세요
    당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으 말하는데 있어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해보세요
    다른 사람이 생각없이 내뱉은 말에 격분하지 말고 그 말의 속뜻을 읽도록 하세요
    당신의 정서적 욕구를 완전히 채우기 위해 여러 명의 친구를 가져보세요
  3. 감정을 창조적 활동으로 발산하세요
    결코 부치지 않을 편지에 가능한 한 유창한 언어로 당신의 감정을 적어보세요
    감정 자체 보다 감정의 격렬함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세요 ㅆ
    감정을 조절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때에는 관찰자가 되기 위해 한 발자국 떨어져 보세요
  4. 우울증을 피하도록 하세요
    당신을 화나게 만드는 사람들과 가능한 한 이성적으로 맞서 분노가 당신의 내부로 돌려지지 않도록 하세요
    소속감을 추구하고 속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척들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세요
    당신이 감사해야 할 목록을 만들어 자주 읽어 보세요

"나는 일상이 아무리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가치있게 여기고 긴장을 풀고 현재를 즐길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름답고 능력있고 사랑스럽다"라고 말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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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참, 낭만적인 사람이나 돕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참 꼭 맞는 (요즘의) 내 모습 같은데, 나머지 중에 (아마 예전에 나온 유형이었던 '관찰하는 사람?'이라든가, 내가 스스로 생각한 '성취욕' 또는 '완벽주의'는 영 거리가 먼 것같이 되었네. (결과를 본 첫 느낌은 그러니까 '오!(대견), 웬일(설마), 어쩌다 이렇게(까지... 지경이...;;) 되었지?' 였다) 사람이 이렇게 많이 바뀐 것인가? 아니면 애초부터 그냥 완벽이나 성취와는 거리가 먼, 관계지향, 관계중독적 성격이었던가? 이 테스트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하면 두 측면이 동시에 있는 거지 뭐. 서로 밀어내는 배타적 요소는 아닌 것 같고 말이지...

                                           

그러나 마치 '일'과 '관계'가 완전 배타적이기라도 한 것처럼, 몇 년 사이에 많이 '독립적'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전혀 그렇지 않고, 알면 알수록 주구장창 외로움만 타고 예민하고 소심하다는 걸(예민 소심하다는 건 '완벽주의라서 그래'라고 생각해온 오래 전부터 알았지만) 깨달아 오긴 했다. 아무튼,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애니어그램상의 (또는 어떤 면에서든) 현재의 내 성격과 지난 연애(들)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관계 진전의 원인이자 관계 실패의 원인이기도 하고..... 그렇담 계속해서 성숙하고 있는 거니까,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솔직히 낭만 어쩌고 하는 결과가 너무너무>.< 좋은데, 심지어 오랫동안 비낭만(?) 또는 메마름이 오히려 컴플렉스가 될 정도로 예술성이나 감수성에 대한 '닿지 못하는 갈망'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래서 누가 날 그렇게 봐 주면 고맙고 반가웠는데, 이제 오니 한편으로는 성취하고 돈 버는 낭만주의자, 그런 거 없나, 하고도 생각한다...... (애니어그램을 또 인생 해결사로 임명해? 도망은 이제 그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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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번역

알바 번역을 하다가 생각한다. 참 아마추어로 살고 있구나......

 

성질 더러워서(좋게 말한다면 성질 곧아서) 어딘가에서 튀어 나왔다면,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능력이 있든가, 아니면 욕심이 많이 작든가 해야 하지.

뭐 적어도 다른 데에 능력이 없어도 좋으니 적어도 저건 아니야, 하고 이번에도 나오긴 나왔는데,

......

 

계속 아마추어로 (부모님에게 물질적으로) 빌붙어 살지 않기 위해서 참 늦게 재수하게 생겼다.

아니면 또, 다른 데에서 방황을 할지도 몰라(헤매길 길게 할수록 자신이 가장 힘들어질 텐데).

 

꿈과 자원. 꿈과 자원. 꿈과 자원. 꿈과 자원.

능력의 한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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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매미

정오가 가까워 오자 

어디 있었는지 슬며시 울음을 시작했다가

멈추었다가 작게 울다가 쉬다가

아무튼 간신히 울긴 운다

 

밤은 귀뚜라미에게 내주었어도

낮에는 아직 남아 운다

 

며칠 전에는 까치에게 물려 간 

그의 마지막 긴 외침과 멎음을 들었다

 

이래저래

그들도 가을이 무섭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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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광고_ 나는 달린다

2007. 8. 7. 

 

지하철 2, 8호선 잠실역



 

 

 

 

벽면을 달리는 고급 상인 앞에서 오늘도 달리는 '잡상인'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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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광고_ 남자는 뒷모습으로 말한다

2006. 12. 25.

 

지하철 광고



 

지하철 광고판 교체 작업 중인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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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광고_ 내일을 위한 선택

2006년 11월과 2007년 1월

 

지하철 5호선 전광판 광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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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07_공부가 공부가 아니야

2006-2007

 

학원 출퇴근길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한겨레 21 읽다가
- '학비와 인권' 칼럼과 '에쿠우스' 광고

* 학원 출퇴근길, 근처 학원 건물
- 내가 있던 학원 건물 한 층을 차지하던 다른 학원이 나가기에 없어졌나 했는데, 며칠 후 근처에서 같은 학원의 건물 한 채를 보게 됐다. 클릭하면 좀더 자세한 공갈협박 간판 내용을 볼 수 있다.

* 역시 한겨레 21

* 아파트 단지 안의 게시판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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