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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과 어둠과 생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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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모처럼 일찍 3시에 잤다. 밤 늦도록, 한 시 반까지 실험실에 혼자 남아 고생하는 동생을 데리러 아빠가 출동할 때 따라가면서, 이럴 땐 운전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또는 돈도 차도 없는 것이) 식구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다(그러고 보면 동생이 차가 있어도 되는 건데 맏이 컴플렉스인가). 아무튼 처음 구경해 본 그 실험실은 대단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각종 기구들이 즐비하고 복도에 있는 비상용 샤워기와 안구 세척제라니...



실험실 얘긴 사진까지 올리고 싶지만 원래는 기밀 유출 위험이 있으니 외부인 출입을 허용하지 말라던 그쪽 교수의 말도 있으니 참는다.... 아무튼 어제는 그러고 집에 돌아오니 괜히 피곤해져서(전날 밤새고 낮에 충분히 못 잔 것도 있었군) 일찍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낮에는 10시 반과 2시, 이후 거의 30분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잠시 깨어 시계만 한번 쳐다보고는(또는 생리대를 갈거나 전날 욕실에 널어 둔 생리대를 좀더 잘 마르게 내 방으로 옮기고, 내가 다른 방으로 옮겨 가기도 했다) 바로 잠들고를 반복했다. 할 일이 있지만 안 해도 큰일나지 않는, 아직 얹혀 사는 상태라 그런가, 이번 가을에는 어차피 안 될 것 같아서 자포자기 심정인가, 어제 받은 답문 하나에 바로 연속으로 세 번 보낸 문자 때문인가, 아무튼 자다 깨서 시계를 보면 나는 세상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시간 참 자알 간다, 하지만 아직도 한참 낮이잖아, 하는 생각이 든다. 꿈에서 본 여러 장면과 합창 연습, 내가 업고 있던 남의 아기, 아기 얼굴에 피가 묻어 있던 장면도 있었고(나중엔 다시 멀쩡했지만), 아무튼 꿈을 떠올려 내다가 누워서 여러 고민만 하다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여러 번이나 나는 것을 한참 듣고만 있다가(고프다는 느낌보다는 아마 생리통 기운 때문인지 별 감각이 없다), 오늘 이렇게 또 잠에 취한 것이 몸이 안 좋은 것인가 했다가, 도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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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섯 시에야 일어났다. 현기증이 났지만 이상할 것이 없구나.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그리고 이제는 밤이 되었다. 요즘은 시간이 가는 것을 기다리다가, 낮에 학원이나 과외 같은 정해진 약속이 있을 때에만 화다닥 준비해서 나가는 것 같다. 휴학하던 학기에도 이랬었지. 그 뒤에 학원에 거의 매일 출근하던 때도 사실상 그랬었지. 회사 다닐 적이, 힘든 아침형 생활이어도, 마음 상태는 나았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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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약하게만 있던 생리통이라 뜸을 몇 번 뜨고는 곧 괜찮아졌다. 밥은 누룽지를 끓여 먹었다. 아, 식빵 한 쪽과 포도도 먹었구나 - 역시 먹는 건 잘 챙겨 먹는 걸 보면, 그다지 어둠이나 죽음을 좇는 것 같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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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에 재미를 느끼고 좀더 잘 알고도 싶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말도 글도 없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농사를 짓고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제는 될 수 있으면 텃밭이 있는 곳에 끼어야겠다. 아 그러기 위해선 어서 이번 알바는 끝내야 하는구나. 좋아서 하는 일에도 막상 귀찮은 작업이 많은 것 같다고, 영상 편집을 하는 사람들의 블로그 글을 보면, 내가 번역이 좋아서 해도 (심지어 관심 있는 주제라도) 막상 주어진 의무를 하려면 너무너무 귀찮은 것도 뭐 꼭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위로하면서, 그래 그런 귀찮음 때문에 던져 버리면 안 되지, 세상에 뭘 할 수 있겠나, 하고 힘을 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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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핸폰사진을 이제 좀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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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너무 오랜만이다.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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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줄 왼쪽: 맹자의 말에서, 어느 늦은 밤 퇴근하다 들른 H가 씀.

(그러나 힘든 일이 참 너무하게 많아. 오늘 들은 사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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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아랫줄:
시험 전, 마라톤 보충하던 날;; (서로 허락 아래 찍고 찍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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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힘들어도 마음은 넉넉하고, 지금 생각해 보니 더욱, 참 행복했다.
그러니까...... 일이 과포화되어 몸이 아프고 권리를 요구하고 아름답지 못하게 결렬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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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 아니면 결별, 둘 중 하나만 해야 함은, 이 한 곳만도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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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출근길에, 주차장 막는 지지대의 목이 갈라져 있는 것을 보고, 이리저리 치여 다니는 아이들이 연상되어 찍었다. 며칠 후 두 번째 찍을 때는 머리를 묶어 받쳐 놓았더라. 세 번째부터는 맨 아랫줄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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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뎃줄은 믿고 싶지 않았던 기억인 취권(?) 관련, 경악한 내가 조용히 시위(?)한 자국이다. 오른쪽처럼 아이들이 바꾸어 놓아서;;ㅋ 지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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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경찰하고 싸운 그날, 자전거 타고 도망간 아저씨는 단순히 '언어폭력이 심했던' 것이 아니라 분명히 '미행'씩이나 했던 것인데, 나는 오늘 왜 순간적으로 미행 부분은 잊어 버리고, 언어폭력으로만 기억해 말했을 만큼, 사람들에게 걱정을 덜 끼치려는 마음이 지나치게 앞섰던 것일까? 그러고 나니 헤어진 후 이제는 반대로 '"저이는 작은 일 가지고도 경찰에 신고까지 하는 사람인가" 하는 오해를 살까' 걱정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때에 따라 언어폭력만으로도 충분히 경찰에 신고할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역시, 충분한 신뢰가 쌓이기 전인 관계에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충분한 소통이란 것이, 쉽지 않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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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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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학원이 개강해서, 돈은 안 냈지만, 꼬박 잠 못 잔 일요일에 나름대로 수강신청을 하고, 오늘 과외도 펑크난 김에 가 봤다. 결국 또 십 분 안에 도로 나와 버렸다... 한 해나 쉬었건만, 그리고 같은 과목에 강사도 바뀌어 있어서 혹시나 했건만, 바뀐 것은 없지. 바뀌길 기대하기보다 내가 얻었어야겠지. 교사가 너무너무 되고 싶고 자격증이 꼭 필요해서 모든 걸 다 참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것도 안 된 것 같아, 막상 나오긴 하였으나, 소탐대실이 될지 겁도 나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싶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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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리라 예상했던 '아프간 피랍의 진실' 토론회에 갈 수 있게 되어, 유익한 이야기를 듣고 무지하고 얕은 마음의 믿음에 용기도 얻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나 나는 그러나 나는 그러나 나는 그러나 나는 ...... ㅠㅠ

이 기능을 쓰는 데 서툴러 나머지 글을 그냥 날려 버린 것이다...... 붙여넣기가 왜 이리 짧은가 하다가;;OTL

 

한 문단은 그러니까, 문제의 본질을 사람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말하자면 골치 아프게 생각할 귀찮음을 감수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는 강한 체념이 들어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위험한데 거길 왜 가' 하는 말은 '여자애가 왜 밤늦게 혼자 다녀' 하는 말과 같은 논리(?)인데, 폭력의 피해 당사자에게 도덕적 비난을 한다는 점에서 당연히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한편 그 비난의 뜻보다 더 강하게 깔려 있는 전제는 '세상은 험하고, 정의는 멀고 주먹은 가까운데, 약자가 참고 맞춰야지 별 수 있나' 하는, 자기 자신이 그 약자인 경우조차 일관성이 유지되는, 강자에게 순응하는 논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향할 때 또 다른 폭력이 되고......

 

나머지 문단은 잘 기억이. 맥주 한잔 하고 누군가를 잠시 그리워했지. 역시 잊는 김에 완전히 잊으라는 계시(?)라고 생각하고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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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역시,

희망이 있을 때가 좋아.

곧 체념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대도 말이지.

 

죽은 사람은 상처도 안 나니까...

- 에휴 써 놓고 보니 궁상맞고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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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

나 자신으로부터 거부당해온 듯한 느낌...

또는 그런 착각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꽤 오래된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부담...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고민하며 살아 왔어.

 

할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일까?

그건 또 점점 작아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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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자신감

싸이월드에서 선뜻 옮겨 오지 못하는 이유를 오늘 잠깐 얘기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자신감 부족인 것 같다.

 

물론 싸이월드가 제공하는 온갖 음악이나 잡동사니 올리는 포맷 등에 익숙해진 것도 있고, 그동안 가진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데로 옮기는 귀찮음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 솔직한 심정을 끼적인 것들을  '일촌 공개(그것도 꿈얘기 같은 건 몇몇 특별한 일촌들에게만)'할 수 있다는 것이 포기하기 가장 어려운데, 그 이유가 바로 자신감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내가 솔직했을 때 그에 대한 반응으로 나를 얕본다거나 미워한다거나, 가장 크게는 다른 이가 나에게 '실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 서로가(적어도 나는 상대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막 대하지 않으리라는, 타인이어서 상처 주고 받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 진실됨의 힘으로 극복하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검증(?)했을 만큼 신뢰가 쌓인 사람이 아닌, 그런 신뢰가 덜한 사람이 내 약하고 부족한 마음 상태와 표현에 무어라 얘기하거나 평가하는 것이, 그것을 보고 내가 자유롭기보다는 상처받을 수 있는 경우가 두려운 것이다.

 

아직은 못 열겠군...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그런 신뢰가 있다고 판단한, 또는 상대도 나를 그렇게 판단한 경우에도 서로 실수로 또는 오해나 변화로 판단이 유보되거나 바뀔 수도 있는 것인데...

 

여기 분위기를 더 보고 익숙해지면 좀 안심이 되려나? ...

;;;;;;

 

친구 블로그만 가지 말고, 다른 블로거들 것도 보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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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 have changed.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 당연히 딴 건 모르겠고 내 삶에서 말이다. 여기 첫 글을 올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비공개로 적어 둔 두 개의 글이 무색하게, 덧없고 덧없지만 또 나를 성숙시킬 거라 믿는(아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 일이 하나 일어났으니,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이 달라진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오전에(!) 잘 못 일어나며 '돈 처들인' 학원을 빠져 가며 그럭저럭 살고 있다...

 

밤에는 왠지 잠들기가 두렵고 낮에는 (깨어나기가 두려웠다는 듯 오래 잔 후에도) 기운 없이 헤매기를 계속한다. 



주말에 갈 데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 근교에 있는 외가(또는 큰아버지 댁에서도 아마 반가이 맞아 주실 거라 기대하는데)에 가면 농사 흉내를 낼 수 있다는 거다...

 

서울 촌놈이 두 주 연속 갔다가 그 사이 한 뼘이나 자란 고추 줄기에 감동한 뒤 그 다음 주(바로 지난 주말이다)에는 못 갔다고 향수 비슷한 증세마저 있는 듯했다. 막상 가면 컴퓨터 작업을 하거나 밀린 자료를 정리하게 되지가 않고 영 밖으로만 돌게 되어 작심하고 서울에 남았으나 못내 허한 마음 어쩌지 못해 난생 처음 슈퍼에서('3분' 어쩌고가 아닌) 카레 가루를 사서 요리를 해 먹질 않나(단지 카레밥일 뿐이지만 어쨌든 일산에서 혼자 지낸 한 해 동안에도 배고픔을 버티다 기진맥진 기어 나가 혼자 밥을 사먹는 한이 있어도 또는 반찬 몇 가지와 채소나 몇 가지 사다가 쌈싸 먹은 적은 있어도 혼자 이것저것 도마에 놓고 썰어 볶아서 헉 이러긴 쪽팔려도 할 수 없이 완전 처음이어서 전화기로 사진 찍어 화정에게 보내고 신이 났었다), 혼자 집에 있는 내내 고추 줄기와 앵두와 오디와 몇 그루 안 되지만 오이 같은 것(?)의 넝쿨 등등이 눈에 자꾸 밟히지 않나, 집앞 버스 정류장의 채소 상인 아주머니 물건들에 묻은 촉촉한 흙 냄새가 코에 스칠 때는 콧구멍으로 냄새를 잡아챌 듯 들이마시며 가슴이 다 뛰질 않나(담배 끊은 이가 남 연기 따라가는 기분이 이러겠다 했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부터는 될 수 있는 한 주말 중 하루 또는 반나절이라도 가서 보고 버스 타고 와야겠다 결심하게 된 것이다.

 

혼지 뭘 해먹는 시도(!)를 하게 된 것도 그러고 보면 흙이 준 선물 같은 것이다. 나와 생각은 많이 다르지만 어쨌든 그 어른들(외할아버지, 이모 등등)과 어울려 고춧잎 뜯은 것 무쳐 먹고 상추 뜯어 쌈싸 먹고 하면서.

 

물론 실은 외가 앞 텃밭보다는 말 그대로 농사를 생업으로 지금껏(빚도 많이 져 가면서 그러니까 농가 부채...) 다리가 망가질 정도로 이래저래 땅에서 허리 굽히고 고생하며 살아오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댁에서 제대로 일도 배우고 싶지만...

 

친가에 가면 엄청 가부장적인 외가보다도 더 가부장적인 어쩔 수 없는 답답한 분위기(아마도 외가는 내가 애초에 그들 성을 따르지도 않았기에 별다를 것이 없지만 친가는 그들 성을 따른 내가 커갈수록 단지 여자라 출가외인이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게 더 상대적 소외감이 큰 게 아닐까 싶다)가 있지만...

 

아무튼 텃밭이든 소작이든 자영농이든 뭐든 농사는 흉내만 내도 이렇게 좋은걸... (이제야 알다니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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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문제지만...

2~3년은 더 일단 노력해 보라든가, 또는 언젠간 떠나라든가...

하는 것도 좋지만-_- 대체 마음 가는 대로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뭔가 그와 나와의 사고방식의 차이로, 고민이 자꾸만 '열린 고민'이 아닌, '닫힌 고민'이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어떻게 하면 뭔가 행복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반대로 어떤 것이 두려워서, 그 행복을 미리부터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상처 받는 것, 아니 그보다도 자기 세계가 침범받는 것이고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것, 내 사랑을 증명해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증명해 보여야 할 사랑이라는 것은 더군다나 무엇이란 말인가.

 

이미 옆에 있다. 충분히... 아니 충분치는 않지만, 이미 꽤 많은 부분 함께이다.

그런데 나는 더 갖지 못해서 안달한다.

 

그의 사랑 방식도 존중해 주어야겠다...

반성이 좀더 필요하겠다.

 

그가 옆에 있어서 행복하다는 내 마음이, 지금까지 그랬듯이, 후회되지 않기를 바라고, 아마도 내 소망대로 될 것이라고, 감히 자신한다. 그것은 설사 언젠가 그나 나나 누군가 서로를 떠날지라도, 내가 지금까지 내 행복을 위한, 또는 그를 사랑하는 내 행복을 위한, 또는 그를 사랑하는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의 사랑과 행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 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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