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키우기

from 우울 2007/07/23 15:29

예전에 예전에, 당근꼬투리를 야채가 담겨있던 스티로폼에 키운 적이 있었다.

대략 이 주가량 키웠던 것 같은데,

말라가는 당근 꼬투리와

21세기형 청소년들과 비슷하게 여리여리 비실비실 연한 연두색의 기~인 줄기들을 보면서,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결국 그냥 버렸다.

 

한겨울이었는데, 햇볕을 받게 해주겠다고 창가에 내 두었더니,

긴 줄기들이 한 시간만에 바닥으로 누워 버렸다.

그렇게 극단적인 나약함도 충격이었지만,

누운 줄기들이, 따듯한 아랫목에서 다시 꼿꼿하게 섰던 것은 더더욱 큰 충격이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그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나는 결국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아이에게 미래가 있는가에 대해서,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다.

당근의 줄기는, 먹는 부분도 아니다.

당근의 뿌리는 자꾸 작아져 간다.

어느 순간 이 아이는 더이상 자라지 못하고 수명이 다해 죽을 것이다.

그 끝은 곧 온다.

 

돌이켜보면, 그리 급할 것이 없었다.

가끔 물을 주면서 제 수명이 다하게 두면 될 것을.

 

무언가 책임을 진다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나는 당근을 버렸다.

 

 

그 뒤로 우리집에서는 2마리와 한 떼(한 화분에서 살던)의 식물들이 살다가 버려졌다.

 

한마리는 2년정도나 함께 살아서, 정이 많이 들었던 L군이다.

L군은, 하트모양으로 생긴 선인장이었다.

말이 선인장이지 가시도 없고, 보는 사람마다 플라스틱 장난감같다고 했던 귀여운 녀석이었는데.

하트모양이라서 LOVE군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름이 너무 쑥스러운 것 같아 L군이라고 불렀었다.

L군은 새 집에 이사온지 얼마 안되어 죽어버렸다.

죽는 모습이 너무 처참해서, 죽은 뒤에도 사실 정말 죽어버린 건지......무서워서

한동안 건드리지도 못했다.

꽃가게에 데려갔을 때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두고 보는 수밖에...결국 그냥 죽어버렸다.

 

또 한마리는 최근에 어느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서비스로 받았던 봉숭아였는데,

한 2주 만인가, 손가락만큼 자라다가 죽어버렸다.

 

나머지 한 떼는, 고양이들에게 먹이면 좋다해서 산 잡풀이었는데,

생명력이 어찌나 좋던지 그냥 두기만 해도 그야말로 미친년 꽃다발처럼 불어나긴 했는데,

초코가 매일 뜯어먹고 매일 토하더니 살도 빠지는 것 같아서,

죽은 봉숭아를 버릴 때 같이 버렸다.

 

다시는 식물을 기르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식물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그들이 너무 무심하기도 하고, 나도 너무 무심하다.

 

그리고 버릴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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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3 15:29 2007/07/23 1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