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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10/02/15

1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2/15
    흥부새끼 십새끼
    냉커피
  2. 2010/02/15
    설....
    냉커피
  3. 2010/02/15
    칸트4탄 감성과 오성의 형식
    냉커피
  4. 2010/02/15
    세비야의 타파스바 (3)
    냉커피
  5. 2010/02/15
    세비야에서 본 쪼꼼시들....
    냉커피
  6. 2010/02/15
    세비야의 대성당 풍경
    냉커피
  7. 2010/02/15
    세비야에 있는 알카자르 정원 풍경
    냉커피
  8. 2010/02/15
    세비야의 닭둘기들과 먹이주는 할배
    냉커피
  9. 2010/02/15
    세비야 대성당
    냉커피
  10. 2010/02/15
    파주 (3)
    냉커피

흥부새끼 십새끼

 

난 학원강사이다....

 

하지만 실상은 보육원 보모와 같은 느낌으로 근무할 때가 더 많다....

 

중딩들은 자기들 불리할때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걷고 있는 불완전한 청소년이고.....

 

지네들 유리할때는 알거 다아는데 어른들이 자신들의 잣대로 청소년을 재단한다고 지랄거린다.....

 

하루는 바야흐로 시험도 끝나고 딱히 할것도 없는 어중간한 시험담주 수업시간이었다....

 

재미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길래....최근에 알게된 따끈따끈한 유머를 해주었다....

 

이것이 사단이 될 줄은.......난 단연코 몰랐다....

(여기서 본인 이름을 냉커피로 하것다..)

 

냉커피 왈- 이것들아 잘들어 잼난 이바구 해줄테니....떠들지 말고 아닥하고 들어.....

 

애색히들 왈- 넹

 

냉커피 왈- 흥부자식이 열명이다를 7글자로 뭐라고 하는지 아는 넘있니?

 

애색히들 왈- 몰것어요....몬데요....빨리 말해줘용.....

 

냉커피 왈- 흥부새끼 십새끼라고 하지.....

 

애색히들왈- (웃고 난리가 아주 법석이 났음...)우하핫....쿄쿄쿄....켜켜켜.....무슨 선생이 저따위야......ㅡ,.ㅡ

 

냉커피왈- (급당황, 지네들은 평소에 밥먹듯이 욕하면서 내가 하니깐 선생의 자격논란으로 비화하다니.....)

                   아해들아....이것은 단지 틀에 박힌 사고를 지양하고, 어휘적 다양성을 드높이며, 너그들의 원고지 칸 맞추기를

                   논리적으로 가능케 하기 위한 선생님의 고육지책으로서의 교육방식인데, 그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문자 그 자체로 표피적 해석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야.......

 

애식히들 왈- 웃기고 있네.......너 내가 원장한테 이거 다말할거다.....애들한테 이런걸 갈키냐...쯧쯧쯧.......

 

(우리 학원의 아이들은 나를 동네형이나 만만한 삼촌으로 보는게 분명하다....평소에도 나보고 반말로 이름을 찍찍 부르거나 별명을

만들어 부르고, 와서 툭치고 가고,,,,인상쓰면 씩 웃으면서 뭘그런거 가지고 그러냐며.......쪼개고 간다.....

애들이 나보고 욕하다가 원장님한테 걸리면 원장님은 나보고 애들관리가 허술하다고 지적하신다...오호....통재라......

물론 이런 상황은 내가 조장한 바가 크다....난 평등지향적 강사란 말이다......)

 

결론 : 입조심하자.....

 

            같은말이라도 어떤 포지션의 인물이 하느냐에 따라 파급력은 천차만별이다.....

 

            우리나라도 베네치아처럼 운하를 만들자......내가 하면 아름다운 공상일 수 있다.....

 

            버뜨.....쥐박이가 하면 나라가 사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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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설의 정의(개이버 백과사전 참조....설의 뜻이 이리많은줄 내미처 몰랐소)

[명사]
1 새해의 첫날을 명절로 이르는 말.
2 새해의 처음. ≒세시(歲時)·연수(年首)·연시(年時). 【설≪월인석보(1459)≫】
[說][명사]견해, 주의, 학설, 통설 따위를 이르는 말.
[舌][명사]=혀.
[泄]‘설하다’의 어근.
[偰][명사]우리나라 성(姓)의 하나. 본관은 경주(慶州) 하나뿐이다.
[偰/卨][명사]<문학> 중국 은나라의 시조. 우(禹)의 치수(治水)를 도와 공을 세웠으며,
                후에 상(商)에 봉해져 ‘자(子)’라고 하는 성(姓)을 받았다.
[設]‘설하다’의 어근.
[楔][명사]<건설>=쐐기.
[說]‘설하다’의 어근.
[薛][명사]우리나라 성(姓)의 하나. 본관은 순창(淳昌), 경주(慶州) 등이 현존한다.
어찌됏건 설연휴다......십하.....씻기 싫다.....
나이먹었다고 설빔도 없고 세뱃돈도 없다...
나이때매 떡국도 먹으면 언챌거 같다..
더이상 나에게 설은 즐거운 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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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4탄 감성과 오성의 형식

서양근대철학 - 서양근대철학회엮음-

 

감성형식과 오성형식

 

 

일단 지난 시간까지 경험론과 합리론의 맹점을 벗어나기 위한 칸트 옹의 외로운 작업을 통해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씨발점을 맛보았당.....오홋..

인식의 기원을 이제 우리는 인식주체의 틀에서 찾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 칸트 옹의 세계로 다시 떠나봄세...

우리의 인식은 직관(감성)과 사유(오성)의 양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합리론이나 경험론 모두 동의해 마지 않는 바이다.

직관=감성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감각기관에 따라 발생하는 감각 또는 지각의 활동

사유=오성

감각기관에 의해 획득된 표상들을 비교 종합하여 개념을 형성하거나 개념에 따라 판단하는 사유작용을 뜻한다..

 

물론 칸트의 비판철학도 이것을 전제함과 동시에 이것들간의 구분을 중요시한다. 왜냐믄 전제된 주관적 형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거시기 왜 유명한 그림중에 빛에 의한 효과를 중요시한 그림있자녀...

밀짚더미 그림인데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그림....

워낙 그림에 문외한이라 자세한건 이너넷에 물어보구.....

 

즉 하고 싶은 이바구는 우리의 인식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의해서 직관을 하게 된다는 거임...외부적으로 감각한 것을 정리할 때 우리는 공간을 통해서 하게 되고, 내적인 감각내용을 정리할 때 시간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하게 된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형식은 객관적 사물로부터 이끌어내진 것이 아니라 사물의 경험 자체가 성립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인식주관의 직관형식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시공을 초월한 사물직관을 할 수는 없는 법인게야.....

직관을 하려면 직관의 대상이 있어야 하기에 시간과 공간은 대상화를 위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외적인 직관도 내적으로 의식되어야 하니깐 내적직관을 위한 틀인 시간은 내적, 외적 직관모두의 보편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사유에 대해서 공부해 봄세....

우리는 대상이 현재 안보여도 그거를 생각 할 수 있다. 비록 고인이 되셨지만 이은주양이나 장진영양을 우리는 여전히 떠올리고 생각할 수 있자녀??

이렇게 능동적으로 표상을 떠올려 연결시키는 것을 우리는 사유라고 할 수 있는겨....

이렇게 사유를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감??

 

우리는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어떠한 범위, 즉 범주를 가지고 그 대상들을 사유한다.

양으로 파악하던지, 질로 파악하든지, 속성으로 파악하던지, 인과로 파악하던지,,,,,,

 

그렇다...우리는 대상을 경험하기 전에 이미 그 대상의 존재방식에 대해서 공통의 범주를 가지고 사유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유의 틀이 되는 개념을 우리는 범주라 부르는 것이고 칸트옹이 생각하시기에 그 범주는 단일성, 다수성. 전체성, 실재성, 부정성, 무한성, 실체성, 인과성, 상호작용성, 가능성, 현실성, 필연성의 12가지 범주이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지각되는 대상에 대해서도 그것을 하나의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이미 우리에게는 ‘하나’라는 단일성의 범주가 있기 때문이며, 서로 구분되는 두 가지 경험을 인과적으로 연관된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우리 자신에게 인과성의 범주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범주적 사유형식은 칸트가 보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이 우리가 임의적으로 택할 수 없는 것처럼 이러한 사유의 12가지 범주형식 역시도 인간이라면 따라야 하는 보편적 사유의 틀인 것이다. 즉, 칸트가 제시하는 기본적 사유틀로서 범주는 어떠한 경험적 내용도 담고 있지 않으며, 단지 우리에 의해 사유된 세계의 순수형식을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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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타파스바

 

 

 

 

 

 

 

 

 

 

세비야에 있는 먹자골목에서도 제일 유명한 타파스 빠입니다.

 

젤 유명한 여행책이라는 론니 플래닛(이거 사람이름인가요? 아님 외로운 행성이라는 뜻인가요...ㅋㅋ잘 몰겠네용)에도

소개되어 있는 집인데요....

 

막상 가서 먹어보니 너무 재밌고 즐겁더라구요....

 

물론 음식값도 근처 빠에 비해서 너무 저렴하구요....

 

맥주 1잔에 아마 1유로 정도하구 타파스는 한접시에 1.8유로 정도 하더라구요...

 

저도 이번에 가서 알았는데 타파스가 안주 이름이 아니라 우리 말로 하면 한접시 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거 같애요....

 

거의 뭐 돛대기 시장 분위기구용....

 

거의 스탠딩 바에용....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집가면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뽕을 뽑잖아요....

이네들은 서서 맥주 1-2잔 마시구 타파스 1접시 정도 먹은 다음에 가더라구요.....

 

그러니 순환도 엄청 빠르구.....매상도 엄청 많구......

 

ㅎㅎ...우리나라에서 이런거 한 번차리면 대박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박리다매 전략이져.....

물론 힘은 좀 들겠지만........

 

우리처럼 오래 먹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깐요....

 

글구 일하시는 분들도 우리처럼 젊은 분들이 하는게 아니라 거의 할배들이더라구요....

 

활기찬 할배들의 모습을 보니 존경스럽기까지 하더군요....

 

활력있어보이구.....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해용.....

 

우리는 60정도 되면 퇴물취급하는데 여기는 그렇지도 않은거 같애서 보기도 좋았구요.....

 

나중에 세비야 가실분있으시면 제가 위치 자세히 알려드릴게용......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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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에서 본 쪼꼼시들....

 

얘네들은 4남매랍니다....ㅎ

 

제일 큰 녀석은 지금 저 먼발치에서 아빠랑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구요....

 

이 쪼꼼씨들은 각기 유모차 에다 인형을 싣구와서 재미나게 소꿉장난을 하고 있더라구요....

 

근데 어찌나 이쁘던지요.....

 

가서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였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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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대성당 풍경

 

 

세비야의 대성당....카테드랄이라구 하더라구요....

 

로마에서는 대성당을 두우모라고 하고 스페인은 카테드랄이라고 하던데.....

 

세비야의 이 대성당은 유럽의 4대 대성당에 포함된다고 하더군요.....

 

압도될듯한 느낌......

 

멋있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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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에 있는 알카자르 정원 풍경

 

 

 

 

 

 

 

 

세비야에 있는 알카자르입니다...

대성당 바로 맞은 편에 있더라구요....

 

안에 있는 궁전보다는 역시 밖에 있는 정원이 감흥이 깊이 오더라구요....

아름답더라구요.....

 

세속에 찌든 때가 하이타이뿌린것처럼 허옇게 세척되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더 아름다운 시리즈가 더 많지만....여기도 므흣하더라구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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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닭둘기들과 먹이주는 할배

 

 

 

 

 

 

 

어찌나 평화로운 모습이던지요....

빵을 사다가 열심히 뜯어시더군요.....적어도 1시간은 뜯어시드라구요....

 

그러더니 비둘기들에게 확 뿌리시는데......

저도 뛰어들어 뜯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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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

 

300년이 넘었다고 하는 세비야의 느티나무네요.....

흠.....정확히 느티나무인지는 몰겠구요....

걍 이정도 두꺼운 나무는 왠지 느티나무여야 할거 같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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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영화 파주는 불편한 영화이다...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요구하는 듯 하다.

중식(이선균)과 은모(서우)....

이야기의 축을 책임지는 두 주인공의 시선중 어느 것을 쫓아야 할 지 모르겠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있을 곳을 찾지 못해 허우적대는 중식이나 언니와 형부, 권력자인 나이트 클럽 사장같은 인간 군상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 은모나.......

 

둘 모두 이해할 수 없지만 둘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욕망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욕망이지 이루어지는 순간 더 이상 욕망이 아닌 것이다.

 

누구의 시선을 먼저 따라가 볼까....

음 중식의 시선을 먼저 따라가 보도록 하자...

 

중식은 운동권이다...하지만 그가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모호하다..

수배를 받아 수감중인 선배의 집에서 선배의 와이프(중식이 사랑했으나 선배의 아내가 된)와 선배의 아기와 살고 있다.

중식은 시대적 마조히즘이 요구해서 만들어진 말그대로 '꿘'이다.

자신이 희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행복이 무엇인지 갈구할 틈도 없이...어느새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은모는 중식에게 묻는다. 왜 이런짓을 하느냐고....

처음에는 멋져보였고 나중에는 하다보니 일이 자꾸 생긴다고 답한다....

여기에 중식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흔히 좌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안고가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있는, 하지만 그 강박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면서도 결국 되돌아가는.....

예수와 같이 십자가를 지고 있어야 행복해지는 걸까.....하지만 질 수 없음을 언제쯤 알게 될까??

 

선배아내와의 불륜을 벌이는 그 순간 방치된 아기는 끓는물을 뒤집어쓴채 화상을 입게되고 그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식은

파주에서 목회를 하는 선배의 집으로 다시금 도망친다....현실을 개혁하려는 운동권이지만 자신의 삶으로부터 끊임없이 도피해야하는

부조리의 연속....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자가 누구를 구원할 것인가.....

중식은 은모가 언니의 죽음이 자신때문이라는 것을 알게될까봐 그 모든 죄의 굴레를 자신이 뒤집어 쓰려한다.

99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중요함을 역설하면서.....

 

99마리 양이 평온할 때에야 비로소 한 마리 양에 대한 시선이 올곧게 투사될 수 있는거다...

 

철거촌 투쟁은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누구나 옳은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옳은 것이 무엇인지 대답하지 못한다.

 

요즘 션과 정혜영이 나오는 공익광고가 있다.

누구나 해야된다고 생각하지만 하지 않고 있는 사랑의 실천,,,나눔의 연대......

용산참사에서도 사건의 본질은 호도된다.

철거민이라는 이익단체의 자기보전이라는 이기심이 불러일으킨 비극이라는 조중동식의 흑색선전....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보다는 편안한 허구를 욕망한다.

불편한 진실속에 참가하는 순간 나도 불편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자괴감,,,,

중식의 포지션은 바로 이 지점이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 지점.....중식이 파주에 있지 않았다면, 서울에 있었다면.....그는 철거촌 투쟁이 아닌 또 다른 투쟁속에

자신을 던져야 했을 것이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물었지....의미도 알 수 없는 쳇바퀴굴리는 투쟁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작은 것이라도 내게 의미부여가 되고 나에게 삶의 충만함을 만끽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좋다....

 

작은 진실을 외면하지 말자....

우리는 여전히 흑백논리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

운동을 하느냐.....운동을 접느냐.....

이러한 이분법의 자의적 해석.......바로 중식을 통해서 박감독은 이것을 지적하고 싶어하진 않았을까??

 

 

그러한 지점에서 보자면 은모는 훨씬 현명하고 훨씬 적나라한 고민속에 자신을 던져둔채 괴로워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그 남자를 사랑하는 언니, 그 언니와 결혼한 서울에서 온 대학생....

 

이런 비극적 현실 속에서 은모의 선택은 역시나 도피이다.

하지만 중식의 도피가 포장된, 즉 정의라는 외피를 뒤짚어 쓴 채 자신을 정당화하는 도피라면 은모의 도피는 자신을 있는대로 까발리며

자신의 연약함을 호소하는 인간적 도피이다.

 

은모에게 자신을 정당화할 외피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나이트 클럽의 사장은 은모에게 또 하나의 오브제 a이다.

하지만 그러한 대상을 은모는 붙잡아야 할 지 버려야 할지 알지 못한다.

솔직히 우리 모두가 알지 못하는 지점인 것이다.

 

은모는 왜 형부를 형부라 부르지 않았을까....

중식은 자신이 보호자의 포지션에 머무를때 은모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지 못했다.

하지만 은모가 자신을 형부라 부르는 순간 부모의 입장을 벗어나 수평적 관계의 회복으로 돌아선다..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는 이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관계로 전환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때 은모는 잡을수 없는 욕망이 잡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그 욕망을 집어 던지고 만다.

 

은모는 도피를 한다...그리고 되돌아온다. 그리고 또 도피한다...

왜??

 

영화는 은모의 귀환으로부터 시작해 은모의 도피로 막을 내린다.

우리는 잡을 수 없는 것을 욕망하고 있지 않은가?

 

은모와 중식은 끝끝내 서로의 속내를 확인하지 못한다.

아니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 이유조차 알지 못하는 군상들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아마도 감독이 그러한 비약의 가능성을 암시했다면 파주는 그렇게 어려운 영화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고...

이러한 호평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파주라는 신비스러운 '이미지'의 공간.....

현실이지만 비현실적인 공간....

 

우리는 어떠한 공간에 살고 있는걸까.....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으로부터 도피해야 하는가.....

 

이것이 파주가 우리에게 묻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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