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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enstein 할배.. 뒷이야기

참세상 기사 좀 써보겠다고 레벤스타인 할배 만났는데....

질문한 대로 답 안해주고 맘대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바람에 원고 쓰느라 죽을 고생했다. 써놓고 보니 엄청 후진데... 더 고치지도 못하겠다. 이 바람에 혹시 잘리지 않을까? ㅎㅎㅎ

 

사실,

대화 내용이 기사에 쓰기는 좀 어려웠다. 

연구자의 자세라던지, 그동안 살아온 궤적이라던지... 연구자인 나한테는 무척이나 관심있는 것들이었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 사진은 선물(?)로 받아온 책들..Lost Baggage는 할배 시집이다.

 

 


 

 



1.

내가 노조에 대해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한단다.

나 스스로는 그런 환상 따위(?) 없다고 믿는데, 실제로는 안 그런가보다.

금연 사업같은 건강증진 사업에 노조 참여가 활발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런가 물어봤더니만.... 그게 경비 절약에 커다란 인센티브가 되기 때문이란다. 여기 미국은 의료보험을 노조를 통해 가입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홍실: 아니, 그럼 기업이랑 동기가 하나도 다르지 않잖아요?

할배: 노조가 무슨 착한 사람들 모여서 만든 이상적 단체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물질적 토대를 왜 간과하는겨? 진짜 혁명적인 조합 (revolutionary union)도 있고, 기업식 조합 (business union) 도 있어.. 노조 자체를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조직으로 볼 필요는 없다구...  지역 위원회 같은데 가보면, 소위 좌파 노조들은 일반 주민이랑 조합원들 앉혀 놓고 이해도 안 가는 트로츠키가 어떻고 마르크스가 어떻게 떠들어서 사람들이 잘 모이지도 않는데, 오히려 우파 노조들이 일상 요구들을 잘 파악하고 조직화를 더 잘하는 경우도 많아..

 

2.

마르크스나 엥길스, 가깝게는 폴 스위지만 해도 엄청 좋은 집안 출신의 '혁명적' 지식인들이다. 꼭 겪어봐야만 상황을 더 잘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경험은 유전자만큼 강하게 삶에 흔적을 남기는 거 같다. 

할배가 진짜 어렵게 살았단다. 뉴욕으로 이민온 유대인 건설 노동자의 아들... 총쏘고 살인 사건 나고 그런 거는 동네에서 허다하게 봤단다. 명문 코넬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맨날 술만 퍼마셨단다. 대학생, 중산층의 삶 자체가 너무 충격이었단다 (frustrated). 그래서 그 흔한 장학금 한 번 못 받았다고....

60년대  후반-70년대의 시민권 운동이 잠잠해질 무렵, 사람들이 하나 둘씩 활동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할배는 생계가 막막해서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 (중간 계급, 지식인들)은 활동을 하는 동안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자신은 전혀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힘들었던 시기에 첫째 아이도 병으로 죽었다니.... ㅠ.ㅠ

그런 어려운 순간들을 다 이겨내고, 노조 전임자로, 지역 활동가로, 연구자로.... 한시도 실천활동의 끈을 놓지 않은 이 할배의 동력을... 그 다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3.

건강형평성 연구에 대해 엄청 비판 (사실은 비난 ㅜ.ㅜ) 했다.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 거냐구....

사실은 그게 나도 고민인데 말이다...

연구가 사실 밥벌이기도 하고.. 뭐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만. "안 그러면 너 굶어 죽냐?" 그러는데.... 참....

내가 세상과 타협한 중년의 연구자고, 할배는 세상 물정 모르는 기개 넘치는 젊은 학생인 것 같은 분위기였으니.... 어찌 당황스럽던지...

 

4.

할배 시집을 펼쳐보면서, 박노해 시인 이야기를 꺼냈다.

홍실: 한국에 엄청 유명한 노동자 시인이 있었어요. 지하 사회주의 조직을 이끄는 실천가이기도 했고... 근데... 감옥에 갔다오더니 사람이 좀 이상해졌어요.

할배: 너 감옥 가본 적 있어?

홍실: 아뇨

할배: 우린, 시련을 겪은 사람들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돼. 내 친구 중에도 노조활동 하다가 회사 측 폭력 때문에 몸이 완전히 망가진 사람이 있어. 다친 이후에 그이는 활동을 떠나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지... 나는, 그 사람이 지금 그렇게 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홍실: 네 (부끄부끄...)

 

할배에게서 드러나는 그 거침 없음과 유쾌함, 노동과 삶, 활동하기의 즐거움 (왜 즐거움만 있었겠냐만..)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 오.. 멋진 할배....

 

할배도 만나서 수다 떤게 즐거웠다니, 다음에는 술 한잔 해야겠다.

인터뷰 하자고 불러내서 오히려 커피 얻어마신게 민망했으니, 담에는 내가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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