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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의 작품 두 편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로 둘리세대를 경악과 슬픔의 늪에 빠뜨렸던 그 작가...

 

#1. 최규석 [100도씨 -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 창비 2009

 

 

강풀의 [26년]이 그러했듯, 한국 현대사의 잊지 못할 한 장을 기록한 만화....

중고등학생 역사 시간의 부교재로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을 이후 '촛불' 상황을 보완해서 대중서로 다시 낸 것이란다.

 

장기수 한 분이,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눈다.

 

"... 이젠 모르겠어요. 정말 이길 수 있는 건지... 끝이 있긴 있는 건지..."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그렇다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남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수십년을 버티셨습니까"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 두면 너무 아깝잖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울컥하는 심정으로 이입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재능과 진정성 덕택이다.

 

 

#2. 최규석 [대한민국 원주민] 창비 2008

 

 

책머리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 일제 강점기에 씌어진 소설에서 성탄절에 유치원생들이 연극을 하는 대목을 읽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나조차 텔레비전에서나 친구들의 이야기로만 듣고 보았던 어색한 풍습이 그 까마득한 시절에도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 내 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도시에서 자란 그 또래의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어째서, 농활을 가고 노동현장에 투신할 만큼 그러한 이웃들에게 특별한 애착을 가졌던 세대들이 어째서 내 누이들을 신기해하는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그들이 본 것은 농민이고 노동자일 뿐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 누이들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것은 나의 외로움이고 모든 '원주민'들의 외로움일 것이다. 그들이 제 이야기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한 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 가장 충격받을 일 중 하나가, 내 또래, 심지어 지방 출신의 윗학번 선배들 중에서도 '유치원'을 나온 사람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 전까지 내 주변에 '유치원 출신'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초중고를 모두 서울에서 다녔지만 말이다....

농활 때문에 과외를 당겨서 하느라 준비 모임에 제대로 참가를 못한 나에게 (방학 때는 과외를 세 탕씩 뛰었다!), '너네 집이 그렇게 가난하냐? 과외를 꼭 그렇게 해야 하냐?"던 한 선배의 짜증은 아직도 인생의 트라우마.... ㅡ.ㅡ

 

원... 주... 민.... 현존하지만 회고되는 존재...

그림은 아름답고 진정성과 재치는 넘쳐났다.

나이가 경험의 깊이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젊은 이 작가의 '나이답지 않은' 사려깊은 시선에 공감하고 감동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내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 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란 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들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아버지는 화려하거나 부유하지 않아도 가끔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나름 예술가요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섞여 있어

그 아이는 그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로 놀림받지도 않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제 부모나 집을 들킬까봐 숨죽일 일도 없을 것이고

부모는 학교 선생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것이며

어쩌면 그 교사는 제 아비의 만화를 인상깊게 본 기억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간혹 아버지를 선생님 혹은 작가님 드물게는 화백님이라 부르는

번듯하게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들 것이고 이런저런 행사에 엄마아빠 손을 잡고 참가하기도 하리라.

집에는 책도 있고 차도 있고 저만을 위한 방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고함을 치지도 술에 절어 살지도 않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서

아이는 아버지의 귀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은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것을 나는 인간의 '염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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