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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의학의 전략] 소개

예방의학/보건학 분야 입문자에게 일종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책을 번역해서 내게 되었어요.

물론 전공자만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건강서비스의 상품화, 값비싼 건강검진이 마치 예방의학의 전부인것처럼 여겨지는 한국사회에서

예방의학의 본령은 그런 것이 아니며 건강문제는 결국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임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번역에 참여해서 참 뭐라 말하기 쑥스러운데, 원저는 굉장히 좋은 책입니다 ㅡ.ㅡ;;

건강과 사회문제의 '분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보건학을 넘어서 굉장히 좋은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책입죠.....  많이 읽어주시길 바래요.... (시중 서점에는 양장본만 판매해서 가격이 비싸니 ㅜ.ㅜ 도서관에 신청해서 보시는 것도 한 방법... 대학 구내서점에는 반양장판도 보급한답니다요... )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역자 후기에 담았습니다....

 

예방의학의 전략
예방의학의 전략
제프리 로즈 외
한울(한울아카데미), 2010

 

 

 

예방의학의 전략 - 역자 후기

 

고(故) 제프리 로즈가 이 책을 통해 제기한 발상의 전환과 그 심원한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해보인다. 원저의 개정판에 마이클 마못과 티케이 콰의 해설까지 덧붙여졌기에, 더 이상의 설명과 해석은 그야말로 사족(蛇足)에 불과할 것이다. 번역자들이 보탤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책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 특히 예방의학과 보건학 분야 종사자들이 숙고해보아야 할 몇 가지 이슈들을 언급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제프리 로즈는 개인 기반의 고위험 접근법과 인구집단 전략이 가진 장단점을 설명하면서,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하되 후자의 잠재력이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자료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전자는 과잉 판매되고, 후자는 정당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건강현상의 의료화, 약물과 신기술에 기반한 치료의학의 과도한 지배는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예방의학과 보건학 영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선별검사 위주의 ‘맞춤 예방의학’ 접근법은 이 책이 우려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로즈는 분명한 어조로 ‘상담과 장기적 돌봄에 필요한 적절한 자원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면 선별검사를 해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즉, 선별검사의 성공은 사후 조치에 달려있으며, 모든 이에게 장기적인 돌봄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보건의료 체계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포괄적인 일차보건의료 체계를 갖추지 않은 미국같은 나라들에서 이러한 선별검사정책들이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은 한국사회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현재 한국의 예방의학, 보건학계에 필요한 것은 좀더 정교한 개인위험평가 (risk appraisal) 모형을 만들거나 새로운 검사방법들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고위험 전략이 작동할 수 있는 일차보건의료의 토대를 만들고, 효과적인 인구집단 접근법을 고안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예방과 치료 서비스를 분리하여 ‘임상예방의학’이라는 전문 분야를 개척하겠다는 일부의 움직임이나 기존 의료 보장 체계 바깥에 ‘건강관리서비스’를 별도 영역으로 제도화시키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이 책의 흐름과는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과학적 접근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고 연구자, 정책결정자, 시민들 모두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가는 법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결정이 완벽하게 평가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러한 확실성이 행동의 전제조건이 될 수는 없다. 특히나 특정 정책이나 제도의 영향을 받는 대상자의 규모가 광범위하거나 (크기는 작지만) 심각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라면, 과학적 증거가 충분치 않더라도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대처하는 것을 비(非) 과학적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현재로서 위험하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 위험하지 않다는 증거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위험의 증거 없음이 안전의 증거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흔하며, 이는 비단 일반 시민과 언론 뿐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만연해있다.

과학적 증거가 제한적인 경우, 의사결정 과정의 민주주의와 (그것이 위험이든 편익이든) 그에 기반한 수혜자들 스스로의 독립적인 판단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전체 사회 구성원들에게 광범위하거나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전문가주의, 정부나 기업에 의한 정보와 의사결정 독점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를테면 광우병의 전파 위험성이 제기된 쇠고기의 수입, 보건의료 서비스 분야의 영리화처럼 시민들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들이 얼마나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되고 있는지 생각해보다. 또한 영업 기밀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 환경에 대한 독립적 조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은 건강의 문제가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임을 상기시킨다. 한편 담배를 피우는 것이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해고위협을 통해 금연을 강제하는 기업 정책도 마찬가지로 정당화될 수 없다.

 

로즈는 건강에 사로잡힌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로 보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의학과 정치는 분리될 수 없으며,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건강’에 몰두하고 있다. 수백만원짜리 건강검진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는 뉴스에 놀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얼마 전에는 VVIP를 위한 연간 수천만 원대의 프로그램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이다. TV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들은 최첨단의 의학 기술을 소개하고, 몸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 팔도강산도 비좁아 세계 방방곡곡을 종횡무진 중이다. 이 정도면 가히 건강 강박증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정작 건강의 결정요인, 특히 근본적 결정요인들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건강의 사회경제적 불평등 현상, 학교․일터․지역사회에서 경험하는 건강과 관련한 다양하고도 중요한 사회적 조건들에 대한 관심이나 대책은 형편없이 부족하다.

이 책은 이분법적 질병에서 연속적인 건강현상으로, 직접적 원인에서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개인 접근법에서 인구집단 접근법으로, 우리 관점을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예방의학, 보건학 분야의 연구자들과 학생들, 현장의 실무자들, 정책결정자들, 그리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모두를 위한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데 이 책이 깊은 통찰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고전’을 먼저 읽고 토론하고, 국내의 독자들에게 소개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우리 옮긴이들은 기쁘고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의미 전달이 불분명하거나 잘못된 번역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옮긴이들에게 있음을 밝혀둔다.

 

2010.08.

옮긴이들을 대표하여 ***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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