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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 열병

예전에 프레시안에 실린 서평을 읽으니 재밌을 것 같았는데,

그냥 서평만 읽어도 될 뻔했쓰... ㅡ.ㅡ

 

사치열병 - 과잉 시대의 돈과 행복
사치열병 - 과잉 시대의 돈과 행복
로버트 H. 프랭크
미지북스, 2011

 

거의 470페이지에 걸쳐 중언부언 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여한없이 다 풀어놓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요약하자면

 

첫째, 부자들의 사치재 소비가 단순히 주체할수 없이 돈이 넘쳐나는 사람들의 돈자랑질에 불과하다면 문제가 없을텐데, 이는 결국 전체사회의 소비기준을 '쓸데없이' 상향이동시키고 그럼으로써 인간복리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자원, 특히 공공서비스/프로그램들이 '돈이 없어' 축소되는 우스꽝스런 상황을 가져온다는 것

 

둘째, 안타깝게도 비싼 물건 산다고 행복해지지는 않으며, 아주 작은 능력의 차이나 우연에 의한 차이만으로도 엄청난 보상의 차이를 가져오는 승자독식 사회는 이러한 사치열병의 근원이자 또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행하게 만드는 원천이 된다는 것

 

셋째, 모든 사람이 시장에서 각자 현명한 선택을 한다는 고전주의 경제학의 기본가정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또한 개인의 현명한 선택 (사치재를 선택함으로써 남보다 두드러지고, 그로 인해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된다면 현명한 설택일 수도 있으니까) 이 반드시 사회전체에도 바람직한 결과를 미치는 것은 아님. 그렇기에 이 사치열병을 고치려면 개인적이 아닌 집단적 수단이 필요하고, 그것은 바로 세금...

 

넷째.... 그리하여 그 답은 누진소비세... 소득이 아니라 소비에 세금을... 그것도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총소득에서 저축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에 세금을 매기면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 10억원 벌어서 사치하느라 8억원 쓴 사람과 저축하며 검소하게 생활하느라 2억원밖에 안 쓴 사람이 있다면 전자에게 엄청난 세금 부담이 돌아가도록 하면 된다는....

 

근데...

 

결국 저자의 주장은 인간본성에 반하는 강제적 규제나 압력이 아니라, 선순환할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어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선택과 개인의 이득을 통일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건데...  

이러한 논리 자체는 무척 공감하나 그렇다고 누진소비세로 몰빵하는게 정말 더 나은 것인지는 도대체 모르겠음. 저자는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영 납득이 안 됨.... ㅡ.ㅡ

 

사람들이 상대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여 돈을 더 벌기보다, 가족/공동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이자는 주장에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나, 과연 한국이나 미국의 그 많은 중하위계급 노동자들이 수천불짜리 바베큐 그릴이나 뽀대나는 신형차를 사려고 그리 일하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이 되지 않음.

 

또한 환경세라는 인센티브 구조를 통해 자발적으로 기업들이 환경보호에 나서도록 만든 것을 좋은 사례로 언급하며 "중요한 것은 공해의 총량이지 누가 오염물질을 쏟아내느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효용극대화라는 경제학의 특성에 비추어 매우 합당하나, 가치지향의 보건학 전공자 입장에서는 영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그리고, 결국 저축을 빼고 총소비에 과세하는 것은, 저자의 다른 표현으로  '저축을 면세하는' 것인데, 중하위계층 미국인 가구의 실질 저축률이 제로인 것을 생각하면, 이걸 보고 효율성과 형평성의 조화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약간 혈압을 상승시키는 처사....  특히나 미국사회에서 저축이라는 게 한국같은 정기적금이 아니라 대개 뮤추얼 펀드를 비롯하여 금융 '투자'의 개념이 강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저축할 여유가 있는 계층에게 다시 면세의 혜택이 과도하게 돌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게 됨. 물론, 저소득가구야 소비를 다 합쳐봐야 얼마 안 되니까 누진소비세의 절대 규모가 작겠지만, 이게 과연 효율만이 아닌 사회적으로 공정한 조처인가에 대해서는 실증자료와 함께 더욱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임...

 

저자는 승자독식사회의 폐해를 이야기하지만, 극단적 소비자본주의로의 이행과 노동시장/세계경제의 양극화를 가져온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조차 없으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대책없이 고수하는 시장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도 좌파는 규제를 선호한다고 비판한다. 도대체 미국 현실정치에 좌파가 얼마나 있다고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으나, "좌파가 독점권력을 탓하는 많은 병폐들은 독점의 문제가 아니라, 미숙련 노동자를 주로 고용하는 노동시장의 문제로 보인다... 미숙련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지 못한 직장에서 일을 하는 이유는 시장권력을 가진 고용주들이 그들을 착취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필사적으로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 양반은 '착취'를 악덕 자본가들의 행태를 지칭하는 도덕적 비판의 언어로 이해하고 있게 아닌가 싶다...  노동자들이 필사적으로 돈을 더 안 벌면 그렇게 아둥바둥 안해도 되는데.... 이런 거였어????

 

합리적인 리버럴이자 실용적 경제학자로서 미국사회에 던지는 제안의 진의는 참 아름다우나,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ㅡ.ㅡ

 

* 사족이지만, luxury good 을 사치품/사치재가 아니라 '명품'이라고 표현하는 괴이한 한국어 용법에 분통이 터지는데, 이 책은 '사치'라로 번역해주셔서 감사...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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