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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80년대란 무엇인가. '
하고 그녀의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것은 과거에 침잠하여 현실을 잊고 싶은 나태함의 변명인가. 하고 이어진다.
90년대를 일관하는 세태의 변화를 무시하고 표표히 한 길을 걸어오게 한 것이 그 80년대의 정서였다.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스무살을 넘긴 세대는 소련의 붕괴에 흔들리기엔 과거의 유산이 너무 크고 깊었으며, 그것이 없었더라면 지탱하기 힘들었을 자존심으로 똘똘뭉쳐 있었다.
그래서 90년대를 어떻게 살아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패배했더라도 순결은 지켰다. 라고 그녀는 자위했다. 허나 세상은 알량한 민주화보상 운운으로 비정규노동자로 오늘을 살고 있는 아줌마의 스무살을 희화화시켰다. 마치 업종회의가 주도하는 민주노총 창립의 이면에서 총액임금제분쇄투쟁이 밀려난 것처럼, 개량은 일반이 되었고 정통은 이반이 되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세기에서 당은 진보하고 전위는 퇴락했다. 그녀가 서른 셋에 더이상 올라갈 곳 없는 커리어우먼처럼 절망하다가 전선을 이탈하고 후위에서 서성이며 보낸 것이 바로 2000년대의 첫 십년이었다. 현재를 착목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과거에서 연원하는 바, 앞말이 뒷말을 배태하는 서투른 글쓰기처럼, 전망없이 오늘을 사는 혁명마니아에겐 불가능한 주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기억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혁명을 사랑하였는가. 라고 말하며 그녀는 습하게 차오르는 눈길을 돌린다.
그녀가 유일하게 존경했던 지식인, 에릭홉스봄이 2012년 10월 1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자서전 중에서 인상깊은 말.
“제아무리 소련을 회의한다 해도, 정서적으로 나는 러시아 혁명과, 세계 혁명의 희망과 탯줄로 이어진 세대에 속한다.”
“자존심. 공산당원이라는 멍에를 벗어던지면 틀림없이 더 잘나갈 것이었지만, 냉전의 한복판에서 공산주의자로 성공해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남았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타협이란 무엇인가' 천일을 넘게 투쟁했어도 일하던 그 자리로의 복직이 아니라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자회사나 하청으로의 재입사란 결국, 그게 핵심이었던 것이다. 회사가 아웃소싱을 달성할 때 현장의 노동자들은 각자의 소속을 따라 분열되는 것, 1997년에 우리가 그것을 몰랐다고 할 수 있는가? 십년이 지나고 더 지나도 소속이 다른 회사의 노동자들은 같은 브랜드네이밍을 쓰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으나 서로를 소, 닭 보듯 하고 있다. 타협이란 그런 것이다. 결정적인 부분에서 눈을 감고 부차적인 이득을 취하며 절반의 승리라고 말하는 것. 위로금을 받고 고소를 취하하면서, 아무것도 없이 거리로 쫓겨난 초기에 비해선 엄연히 투쟁의 성과다라고 우기는 것. 그리하여 스스로에게 침을 뱉으며 우스갯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 만한 놈은 다 알았다. 그 공장거리에서.
그녀는 ' 나는 순결했으나 그것이 무엇을 남겼는가에 대해선 회의한다. ' 라고 쓰고 있다. 그러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지도 모른다고. 우리의 패배는 노정된 것이었을까? 천일에 천일을 더, 그리고도 더 천일을 투쟁했다면 혹시, 이길 수 있었을까, 아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자괴감 혹은 패배의식이란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없었다고 인식할 때 생기는 것이다. 할 수 없었던 다른 원인이 있었다면, 그래서 원인을 통제할 수 있다고 평가된다면 절망이라것이 자신을 잠식해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설득할 수 없었고 그것이 천일 동안 현장을 함께 했고 다시 천일 동안 투쟁을 함께 한 동지들과의 관계의 정도였죠. " 그녀는 입술을 깨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도 바보같이. 하고 이어 말했다.
" 천일을 더 동지들을 붙잡고 있었어요. 마치 바람난 서방을 쳐다보며 집에 들어오기만 해 달라고 애원하듯이. 우리의 결말이 어땠을 것 같아요? "
그녀는 망신창이가 되어 결별하는 것 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십년쯤 지나고 보니 말이 목구멍을 넘어 나오기도 하는 군요. 하고 덧붙이며.
나의 사랑은 반쪽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온전히 하나의 사랑을 구하는 법은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몇 장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 계급 전체를 천민으로 전락시키는 협상안에 싸인을 하고 나왔다. 속으로 모다, 내가 저 시민권을 가지리라. 생각하며.
" 내가 그들을 분할해서 사랑할 수 있을 꺼라곤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물론 공지영을 미워하지만, 그렇다고 쌍차의 노동자들을 더 사랑하는 건 아니랍니다. "
사랑을 잃고 어찌 노래가 가능하겠는가. 그녀는 더 이상 순결을 지키는 것에도 지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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