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선배의 눈길을 따라 그녀를 쫓았다. 90년대 초반, 대학의 운동권은 갈팡질팡 하고 있었고 예인에게 사회문제는 그저 시사뉴스를 교양처럼 흝어보는 것 이상 다가 오지 않았었다. 그만큼 신입생들에게 학생운동은 손을 뻗치지 못했다. 눈도 돌리지 못했다. 자신들의 사상을 점검하고 보수하고 혹은 갈아치우느라 바빴기에. 그녀는 그 와중에 조용히 고립되어갔다. 그렇게 보였다. 그녀는 캠퍼스 안에서의 집회현장에 참여하지 않았다. 가끔 그녀의 대학과 예인, 아니 선배의 대학 사이에 있는 유흥가에서 그녀를 보았으나 늘 혼자였다. 운동처럼 소심해져가고 있는 사회과학 서점 앞에서 그녀는 유심히 가판대의 신문과 포스터를 살폈으나 누군가와 만나거나 얘기를 하고 있는 걸 본 적은 없다. 술을 마시지도 커피숖을 가지도 그렇다고 강의를 열심히 듣는 것 같지도 않은 그녀는 서점 앞을 지나는 지하철역 방향의 언덕길을 한낮에 오르고는 했다. 느리고 피곤한 몸짓으로 한 손을 쳐들어 땡볕을 가리며. 북한의 김일성이 죽기도 하는 구나. 하고 중얼거리며.
예인은 신촌 사거리의 어느쪽에선가 선배를 보았고 그 반대편에서 그녀를 보았다. 선배는 지하철역의 출구 앞에서 전경들에게 검문을 당하고 있었다. 여름에 검정색 사파리같은 걸 입고 커다란 배낭을 매고 뛰기도 좋은 운동화를 신고 있으니 당연. 반면 그녀는 전경들이 5미터 간격으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는 도로를 바라보며 한갓진 표정으로 프릴블라우스에 칠부바지를 입고 샌들까지 끌며 타박타박 지나갔다. 아무도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고 세브란스를 우회하여 연대로 진입하는 길 어디쯤에서 모습을 감췄다. 예인은 선배가 다시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걸 보면서 눈으로 길건너를 흝었으나 그녀를 다시 볼 순 없었다. 며칠 후 예인은 몇 번 째인가의 분신소식을 들었다. 예인은 흠칫, 여학생이라는 말에 이름을 확인했었다. 하긴, 그녀가 그럴 분위기는 아니었지. 그녀는 운동권이 아닌 것 같았는데. 무리에 있지 않은 그녀는 그럼에도 거리에 있었다. 그녀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찾고 어디로 가려하는지 예인은 알 수 없었다. 미친듯이 그녀를 찾아 헤매는 선배를 보면서 모르기는 마찬가지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녀가 없어졌으니 선배를 홀로 두고 보리라 하였으나 예인은 줄을 이은 조직원들의 잠적을 보듯 선배를 놓치게 되었었다. 2000년대를 기다리던 겨울 어느날까지 예인은 선배도, 그녀도 볼 수 없었다.
그녀의 테이프를 보게 된 것은 예인엔터를 만들기 위해 방송제작자들을 미팅하고 다니던 즈음, 어느 작은 미디어센터에서였다. 자신을 진보진영의 네트워커라고 소개하던 기술자는 예인에게 비디오자료들을 저장하는 기자재에 대해 설명을 해 주면서 몇개의 프로그램을 띄웠다가 내리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 그거, 잠깐 보면 안돼요? "
" 이거요? 인터넷뉴스프로인데요, 우리 방송국 기자와 카메라맨이 직접 현장에 가서... "
그녀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볕에 그을린 이마, 마른 뺨을 하고서. 그때보다 길어진 머리를 뒤에서 동여맨 듯 얼굴만 조막만하게 비치고 있었다. 담벼락 앞에 앉아있는 듯 카메라앵글이 그녀의 드러난 목과 함께 감색 가디건 안에 받쳐입은 나시티와 가느다란 프릴의 네크라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간간히 수줍은 미소를 띄우며 그녀는 투쟁은 악조건 속에서도 연대의 힘을 받아...하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이어진 화면에서 농성중인 천막과 깃발, 원직복직이라고 쓰여진 플랭카드가 나오지 않았으면 공단지역의 투쟁현장이라는 걸 잘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전혀 단단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언제나 거기 있었다. 가두투쟁의 거리, 전경들과 대치하고 몸싸움을 벌이는 공장노동자들의 대열 속에.
그녀를 찾아볼까 하였으나 기술자는 그 필름은 이미 몇 년 전 것이라고 했고 그들의 투쟁은 패배한 후 주체들이 흩어져서 소식을 모른다고 하였다. 적어도 진보진영의 네트워킹 안에는 없는듯.
그녀도, 그녀의 테이프도 '열정의 그녀' 안에 오롯이 담겨있으리라 짐작하였다. 선배의 눈은 늘 그녀를 쫓고 있었으니까. 예인이 선배의 데모테이프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남의 탓이었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