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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의 모놀로그

당신의 앞에 오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만 노년의 자유를 갖고 싶다. 늙고 싶다, 빠르게. 더욱 빠르게.

 

- 퇴임하고 싶은 갈망의 오후

 

당신이 보이고 또 가르친대로 살기 위해 애써왔다. 밀어내진 채의 가슴에 식은 열정을 안고.

아무 소득없이 빈 손으로 돌아왔다.

가슴은 식은 열정 마저 없이 텅 비었다.

빈 껍데기의 골뱅이처럼 당신의 무릎 아래 꿇어앉는다. 발끝으로 꾹꾹 누르다가 이윽고 손을 내밀어 내

단단한 껍질을 벗겨주길... 나는 언제나 속을 털어 내보일 준비가 되어있다.

손가락을 밀어넣어보라 나는 반대편의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당신의 손가락을 보게 할 것이다.

당신이 보이고 또 가르치는 대로 만들어질 것이다. 나는 당신의 피그마리온,

하지만 숨을 불어넣진 말아주길, 다시한번 삶을 살아낼 자신은 없으니.

 

마흔, 마흔 하나, 마흔 둘, 마흔 셋, 마흔 넷, 마흔 다섯! 사사오입으로 오십. 다시 사사오입하여 백.

이제 생의 뒤켠에서 있고 싶다.

무릎 관절염이 도져요, 선생님. 당신이 옆에서 늙고 싶다는 게 내 유일한 소망이에요.

 

당신의 앞으로 돌아오기 위해 살아왔다.

이젠 함께 죽고 싶다. 죽은 듯이 살터이니 제발, 밀어내지 말아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이번엔 진짜로 죽어버릴테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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