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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생긴다던데...
맑스는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기한다고 했는데...
대체 나의 이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 아닌게 아닌가....
나와 남편이 공동의 주거공간에 있으면서 가사분업이 지난 7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코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에 이젠 절망스럽다.
물론 오늘 나의 이 스트레스는 지난 3일간 아이들이 집에 있으므로 해서 그리고 남편은 토욜밤까지 늦은 귀가와 일욜 하루를 탕진하는 음주 후유증으로 인해 가족구성원으로서 아무러한 역할을 하지 않음으로 해서 발생한 사흘에 걸친 가사노동의 지속성 때문이다.
전업주부에게 있어 가사써비스의 대상이 되는 남편과 아이들이 집에 있다면 노동은 그냥 24시간 풀가동될 수 밖에 없다.
사실 내가 많은 노동을 한 것도, 강도 높은 노동을 한 것도 아니긴 하다. 그러나 자기 시간 없이 돌봄노동과 감정노동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3일 째의 저녁, 나는 심신이 쇠약해졌다. 그리고 지병인 손발각화증이 악화되고 혈액순환이 안 되는 발바닥의 저릿함으로 밥 먹을 의욕도 잃고 말았다. 이 불쾌함의 생리적 원인이 단지 배고픔인 것을 모르지 않음에도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태섭아빠가 태섭엄마의 발을 오늘도 주무르고 있는 것을 보며 나는 왜 저런 사람을 곁에 두지 못 했을까에 비관하며 걍 굶고 있었다. 자기가 먹을 밥을 힘겹게 차려 혼자 먹는 것, 자기의 발을 허리 구부려 힘겹게 주무르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 다는 의사표현인 것 같아서...내 신세가 외롭다는 것을 정말로 인정하는 것 같아서....걍 굶고 걍 널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이 불쾌함과 이 희망 없음, 대안 없음의 자각 때문에.
아이를 낳고 키운지 7년, 큰 애가 일곱살이니까 계산은 맞겠지.
처음 결혼을 할 때는 단지 갈 곳이 없어서였다. 불행하게도 그건 과장 아닌 진실이었다. 고시원이라는 데가 평범한 서민들이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곳이라는 걸 그 때 알았었다면 아마 나는 고시원에서 저렴하게 생활하면서 미래를 모색했을 것이다.
운 좋게 남편은 착한 사람이고 모난 성격도 아니었다. 뭐... 내가 찍기에는 일가견이 있으니까...직관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개인을 만드는 사회구조의 규정성, 그 이데올로기의 견고함을 너무 간과했다.
그는 그가 원하지 않아도 이 사회가 만들고 그의 가족문화가 만들어 놓은 가부장적 성격을 자신의 성격으로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코 버릴 수가 없었다. 물적 기반이 그리 하도록 하지 않기 때문에.....
단지 가사분업을 안 한다는 이유로 이혼한 여자의 이야기를 여성학 관련 서적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여자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간다. 나도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나....아이들에게 돌봄활동을 하지 않는 아빠라도 그들의 부녀관계를 해칠 수 없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이혼하지 못 하고 있다.
이혼을 왜 하나라고 묻기 이전에 결혼을 왜 유지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와 나는 가정 안에서 보다 외식을 할 때, 그보다 술 자리에 단 둘이 마주 앉았을 때 더욱 불편하다. 각자의 일을 하고 있지도, 아이들을 돌보면서 식사를 하는 것도 아닌...정말로 상호작용이 있어야만 할 그 단 둘의 술 자리에서 우리는 혹은 나는 참담하다.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므로....
결혼하고 함께 산 지 8년의 기간 동안 우리는 사귀지 못 했다. 시도는 있었으나 서로 안 맞는다는 걸 확인하고 해결을 못 보고 있다. 우리는 정말 안 친해...라고 내가 말하면 그는 맞아하고 침묵으로 빠져든다. 결혼하고 1년 만에 아이가 태어나서 가사노동과 양육의 힘겨움으로 인한 불협화음으로 7년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혹시 우리는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을까....
나의 운동이 패배하고 동지들이 대안을 찾을 수 없어 뿔뿔이 흩어질 때 그와의 결혼을 통해 잠시 안돈할 곳을 마련하면서 나는 어떻게든 돌아갈 곳을 찾고자 하였다. 정말로...돌아가고 싶었다. 그는 그것을 막을 사람은 아니었다. 빨리 찾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거나...낳았더라도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지도...하지만 너무 길어졌다. 아, 나는 아이들이 둘 다 어린이집을 가면 내가 활동을 할 수 있으리라....그리고 해야만 하리라고 강제받았다. 충분한 기간을 쉬었으므로.
운동이 아니라 취업을 하고 그걸 병행하는 것에 실패했다. 가사노동은 직업을 병행하면서 혼자 감당해내기에 내겐 너무 무리였다. 그리고 남편은 도와주는 것 이상 가사분업을 거부했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1년 동안 직장을 가졌다. 그 1년을 남편은 지옥같은 한 해였다고 말한다. 나는 병을 얻었고 우리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다. 이미 큰 애가 태어나고 백일이 되기 전에 우리는 이혼을 입에 담기 시작했었고 내가 직장과 가사에 치여 허덕이면서 잦아진 말다툼은 도를 넘었다. 그는 격앙되는 자신을 추스리는 것에 힘겨워했고 나는 전업주부의 자리로 돌아와앉았다.
그리고 오늘 더이상 인생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에 의욕이 없다. 나는 결혼과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된 여성들이 흔히 그러하듯 여성인력개발센터를 기웃거리고 방통대 공부를 하고 이런 저런 자격증을 수집하면서 해왔던 40대의 빈한한 스펙 만들기를 그만 두려 한다.
남편은 오늘도 함께 재워주기를 바라는 두 아이를 두고 출근을 위해 혼자 구석에서 잔다. 함께 재워주기를 바라는 두 아이에게 번갈아 눈을 맞춰주며 책을 읽어주는 매일밤의 노동에 지친 나는 내일 아침도 늦잠을 잘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간신히 보내고 나서야 내 시간을 갖겠지. 나의 시간,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 라파르그가 말한 게으를 권리를 향유하는 시간....가족구성원들이 귀가하기 시작하는 5시까지. 하루 8시간의 자기 시간을 갖지 않으면 오후 5시부터 시작되는 가사노동을 해낼 수가 없으므로. 가족구성원이 홈 내에 있는 그 집으로의 출근은 시장보기나 미리 해두는 청소, 쨍쨍한 햇볕에 말려야하는 빨래 등으로 인해 자주 당겨진다. 그리고 대인서비스를 기대하는 가족구성원들에게 화 내지 않고 짜증부리지 않고 편안한 쉴 곳을 제공해 주기 위해 나는 감정을 다스려야 하고 시중들기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페이스를 조절해 두어야 한다. 기실 내가 오늘 아침부터 피곤했던 것은 어제 낮에 아이들을 삼촌에게 맡기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러지 말고 걍 아이들과 간단한 밥을 만들어 먹거나 아이들이 노는 동안 좀 쉬었으면... 오늘 그에게 화내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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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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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때라서 저도 요즘 몹씨 힘듭니다. 방학동안 잘 먹이고 싶은 생각에 부엌일도 많고 냄새 안나게 빨래도 잘 해야 하고 그래요.'인생을 재구성 하는 것' 이런 생각 언제까지 하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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