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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의 친구 이야기

혜정의 두번 째 이야기

이렇다 할 친구도 없이 여름이 갔다.

아니 마뜩치 않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을 함께 했던 새로운 친구를 한 명 사귀긴 했다.

그건 그 친구를 사귄거라기 보다 이미 다른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그네들 속에 있느라 자신과의 하교길을 함께 하지 않는 초등학교 시절의 단짝친구와 균형을 맞추는 의미에서 혜정도 다른 이와 함께 한 것 뿐이었다.

그니가 내게 이 정도밖에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그보다 넘치게 사랑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기울어지는 것은 위험했다. 그건 스스로를 상처내는 길이다. 그니에게 있어 내가 적당한 친구인 것처럼 나에게도 그니가 그 정도의 무게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혜정은 그니처럼 다른 친구를 사귀었고 그 애는 혜정을 단짝처럼 대하진 않았어도 꽤 절친한 친구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주었다. 화장실을 함께 가거나 교실을 벗어나 이동하는 주 1회의 예배시간, 체육복을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가면서 곁에 붙어 함께 수다를 떠는 것 등등... 여자아이들에겐 일거수일투족에  의사를 주고 받고 혹은 목적없이 말들을 주워섬기면서 걸음걸음에 적어도 팔짱을 끼지는 않아도 팔꿈치를 스치며 동행하는 친구가 늘 필요했다. 그것이 보기에도 좋았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 애는 같은 분단이었고 한 줄씩 돌면 바뀌는 오른쪽 짝궁이었다. 청소시간 사건 후 왼쪽 짝궁은 더 이상 친해지지 않았고 그 애는 그애의 친구들과 혜정은 오른 쪽 짝궁과 의자를 끌어당겨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 애는 착한 아이 같았다. 혜정이 상위권 그룹인데 비해 그애는 중하 정도의 성적을 가지고 있었고 비교적 비슷한 성적군의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교실분위기 속에서 그 애는 혜정과 친구하기를 기꺼워하는 듯 했다. 그리고 혜정은 뚜렷한 특징 없는 그 애를 그저 그렇게 친하게 지냈다.

그 우정은 한 철도 가지 못 했다. 어느날 그 애와 함께 하교하기를 그만 둔 후, 혜정은 혼자 긴 뚝방 길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버스를 타도 30분, 걸어서 가도 30분 정도 걸리는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그 절반 이상이 차도와 개천을 따라 이어지는 뚝방이었고 그 길은 불안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걷는 사람들이 계속 눈에 보이는 반면,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표정을 가까이 올 때까지는 알 수 없었으므로 혜정은 맘껏 공상의 나래를 펴고 혼자 골몰하며 걸을 수 있었다.

단짝을 잃어버린 후 혜정은 말할 사람이 없었고 비판하지 않는 마음으로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여유가 없었다. 열 서넛 아이들의 일상과 질투, 시샘, 성적이야기 등등을 의미없이 뇌까리는 그 마음 선한 오른쪽 짝궁을 혜정은 경멸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가 없었다. 어느날 일방적으로 외면한 것처럼 되어버린 오른 쪽 짝궁을 혜정은 아주 나중에서야 다소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오래 추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새로운 생활에 끝내 적응하지 못 한 혜정은 혼자 만의 생각과 시간과 생활을 이어나갔다. 점심밥은 어찌어찌 뒤에 앉은 아이와 먹기도 했지만 대부분 혼자서 쉬는 시간을 맞이해야 했다. 45분의 수업 사이에 있는 10여분의 쉬는 시간, 그 시간은 쉬는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아우성으로 수업시간이 채 끝나기 전에 시작되었고 다음 수업 종이 치고도 한참을 웅성거림 속에서 연장되었다. 매 교시 마다의 그 시간들, 그 시간들에 혜정은 하릴 없는 사람처럼 멀뚱거릴 수 가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도 쉬는 시간 마다 책을 보는 습관이 있던지라 혜정은 쉬는 시간마다 소설책을 꺼내 읽어나갔고 소설을 읽는 사이 사이 수업에 열중했다. 문제는 책을 조달하는 것의 어려움이었다. 초등학교는 교실마다 학급문고가 있어 교실 뒤쪽의 긴 책장에 수 백권의 책이 있었다. 늘, 계속 계속 책을 읽고 있는 혜정에게 초등학교시절 아이들은 학급문고의 책을 거의 다 읽은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중학교에는 책이 없었다. 적어도 교실엔 없었다. 이 멋진 기독사립학교는 여중과 여상, 여고가 함께 있었고 붉은 제복과  견장의 금술을 휘날리면서 행진하는 고적대를 자랑했지만 도서실은 여고 교사의 한 쪽 귀퉁이에 있는 것을 사립학원의 모든 학생들이 함께 이용하고 있었다. 사실 주이용자는 여고생들에 국한되는 수준이었지만. 혜정은 도서실을 드나들면서 책을 빌리고 갖다주느라 분주했다. 온 아이들이 우루루 하교하는 시간을 피해 도서실에서 사씨남정기며 구운몽에 이르는 온갖 종류의 소설책을 읽다가 저물녘이 되어서야 혼자 너무 어두워지지 않은 뚝방길을 걸어 근자에 읽은 소설을 떠올리며 공상에 잠겨 집으로 걸어가곤 했다.

루이제 린저의 "슬픔이여 안녕" 때문에 혜정은 슬픈 마음을 계속 계속 유지하며 말없는 소녀로서의 중학교 1학년 생활을 지속해 갔다. 읽을꺼리를 찾다가 주워든 하이틴 소설에서는 모래밭의 사금파리만큼 어쩌다 한 번 심금을 울리는 러브스토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정서를 갖고 마음 속에서 조금씩 자라는 그 애에 대한 생각을 되새김질했다. 그냥 생각만 하고도 만족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단짝친구는 더이상 단짝이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동창생으로서 가끔 교실을 오갔다. 아니 여전히 혜정이 그니의 교실을 찾아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갈수록 가져오지않은 교과서를 빌리거나 체육복을 빌리러 내왕하는 수준으로 변해갔지만 그니의 교실에서 윤진의 모습을 보는 것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니의 반과 혜정의 반은 같은 시간대에 체육수업이 있었고 초등학교 동창생이 아닌 윤진의 모습을 찾고 나면 혜정은 계속계속 그의 모습을 주시했다. 그를 볼 수 있는 모든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혜정은사립기독학원의 모든 학생들이 다 한 곳으로 모이는 주 1회의 예배시간에 강당으로 가기 위해 교실을 일찍 나섰고 혜정의 교실보다 강당에 가까운 초등학교 동창의 교실에서 윤진이 나오는 것과 마주치기 위해 애썼다. 그보다 약간 뒤의 행렬에 있어야 그를 마음 놓고 바라볼 수 가 있었으므로.

키가 큰 그는 행렬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사람좋은 미소를 띠고 아이들 속에 있었고 결코 혼자 있거나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그의 찰랑거리는 단발머리,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안제리크에서 나오는 중세 유럽의 공자들처럼 보이는 단발머리, 그린 듯 단정한 눈썹, 큰 키에 돋보이는 날씬한 다리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하고나 잘 웃고 잘 어울리고 호쾌한 그의 풍모에 혜정은 날로 날로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와 같은 반이 아니어서 자연스럽게 친할 수 없는 운명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초등학교 동창생은 날이 갈수록 속물처럼 되어가서 그런 애와는 친구가 되지 못 하고 늘 허섭한 여자애들과 수다만 떨고 있었다.

아, 그 애는 왜 그 눈을 휘 둘러보아 나를 발견하고 말 걸어주지 않는 걸까....

바보같은 왕자님처럼 멀리있는 인어공주를 결코 발견하지 못 하고 그는 늘 눈앞에서 와글대는 여자아이들하고만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슬픔은 마치 자신의 운명이라는 듯, 혜정은 슬픔과 사랑의 정서를 보듬고 어루만지며 가을을 보내고 포근한 겨울을 맞이했다.

이 사랑을 어찌해야 할까....

혜정은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윤진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쳤다.....

 

 

 

 

 

 

 

 

음...............삘 받아서 좀 끄적여 볼까 했더니 귀가하시는 자녀님들땜에 더이상 못 버티겠네....젠장.....

근데  이건...동화라기 보다 청소년 소설인가....자전적 성장소설이랄까....근데 대사가 너무 없어서 원 당췌 흥미유발이 안 될 것 같네....합평회에 들고 나가면 사람들이 전부 수필 쓰냐고 할 것 같은데....

어케 대사와 사건을 집어넣어서...기승전결을 만들어서 소설처럼 만드나....아니...동화처럼 만드나....큰 일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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