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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중-사랑, 현신하다.

나는 너의 피조물이다.

네가 원하는 형상을 갖고 네가 바라는 행동을 한다.

손끝으로 숨을 불어넣듯 너의 펜 위에서 눈을 와짝 뜨고

오랜 동면에서 몸을 일으킨 스핑크스처럼

너를 먹어치울 것이다.

 

 

진은 매일, 혼자서 천미리의 우유를 마셨다.  

더 이상 크지 않아도 좋을 만한 신장, 그건 여고에서나  통하는 말이었다. 푸른 콩나물 시루의 검은 보자기를 떨쳐버릴 듯 앞다투어 크고 있는 남학생들을 버스정류장에서 목격할 때마다 진은 불쾌했다. 그,  여학생이라는 신분은 누군가의 마누라가 되기 전의 관례나 절차에 불과하다는 듯 내어놓고 쳐다보며소근대는, 시선과 화제의 주인공들인, 등 넗고 가다좋은 허여멀끔한 남학생들이 혜정의 학교에도 있을 것이었다. 매일처럼 ㄷ 자 모양의 교사 안 쪽에 조성된 정방형의 화단 사이로 난 보도 위를 걸어 상급생들은 도서관을 가거나 체육수업을 받으러 나갈 것이다. 화단을 향해 있는 교실의 창문에서 환호와 수다와 핸드 싸인을 받으며. 그 속에 숨어 눈으로 펜으로 가슴으로 찍은 오빠를 향한 강렬한 시선 속에서. 그들의 드러낸 팔뚝과 커다란 손아귀, 울렁이는 목젓을 훔쳐보며 두근거리는 풍만한 가슴의 처녀들 속에서  무엇으로 그 애을 빼내올 수 있을지를 탐구하며 진은 우유를 마셨다. 고기를 먹었고 밥을 고봉으로 퍼서 싹 비워냈다. 또래보다 작은 몸집에 성격도 까탈스러워 젓가락을 깨작거리고 있던 동생의 경멸어린 시선을 받으며.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체조를 했고 저녁이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조깅을 했다. 중학교 앞의 뚝방길을 따라 우이천의 진원지를 찾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뜀박질을 해서 도착한 인근 자치구에서 새로 조성한 체육공원의 시설들을 유감없이 활용해 주었다. 갑자기 운동매니아가 됐냐며 여자축구에라도 나갈 꺼 아니면 근육 생기기 전에 그만두라는 동생의 핀잔에 주먹으로 응수하며 사내들의 몸짓을 흉내내기도 했다.

품에 안으면 도망치고 싶어도 그 완력에 눌려 꼼짝 못 하게 하고 싶었다. 자신의 넓은 어깨에 기대면 다른 두꺼운 가슴팍 따윈 생각도 안 나게 하고 싶었다.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도 여느 킹카와 함께 걷는 여자들에 지지 않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그 애의 자랑스러운 남자가 되고 싶었다. 아니 사내들 이상으로 열락을 줄 수 있기를 바랬다. 왜 그럴 수 없겠는가? 누가 질과 클리토리스의 만족을 위해 페니스가 아니면 안된다고 말하는가? 진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애의 눈빛과 손짓과 입술의 움직임을 읽고 그 말하지 않고 있는 열망에  현신으로 대답할 것이며 그를 통해 종국에 그 애와 하나가 되리라고 진은 마음먹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손톱 끝에 머문다. 키틴질의 게찜을 통째 부숴먹을 것같은 격정을 안고.

흐트러진 고수머리 사이로 내비치는 인적없는 계곡 아래 암반같은 목덜미에 키스하며

완전히 잠들 줄 모르는 동공이 눈꺼풀 아래서 흔들리는 걸 안타깝게 내려다보며

산골 소녀처럼 애무할 때마다 더 굳게 다물어지는 입술을 벌려  밖으로 나온 내장을 좇아

그 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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