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창작중-진, 사랑을 탐구하다 3

진은 자꾸만 혜정을 보고 있고 싶었다. 그 애를 살폈다. 그 애가 어떤 눈빛을 하고 있는 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 찬란한 봄, 말 수 적은 혜정의 입을 벌려 소리를 듣고 싶었다.

편지, 그런 걸 쓰지 말라고 말하고 차가운 밤, 꽁꽁 언 손으로 선물 상자 따위 들고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한 마디를 하면, 자신은 그 열배로 돌려주고자 했다. 왜 그러하지 않겠는가, 우리에게 허락된 청춘의 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애가 자신의 서툰 말주변에 금방 눈물을 떨어뜨리자 감히 더는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 애의 초컬릿이 동경인지, 그 애의 고집스럽게 빛나던 눈에 정원에게서 봤던 것같은 욕망이 숨어있는지 진은 확인할 수가 없었다. 확인이 안 되는 채로 자꾸만 가고 있는 시간이 아쉬웠다. 그 애를 만나는 것은 한 달에 한 번도 어려웠는데 그 시간을 인내하기에 자신의 마음 속, 자신의 허리, 그 팔딱이는 심장은 너무나 빨라진 가속도에 휘둘려 제 것으로 갖고 있기도 벅차했다. 이런 속사정에 아랑곳 없이 혜정은 외박을 아주 장기로 해대고 있었다.

 

" 그럼 언제 오는데? "

" 토요일, 5박 6일이라니까. "

" 잠은 ? " 응? 하고 되묻더니 혜정, 막 웃으며 스카우튼데 당근 텐트지 한다.

" 봄에 오리엔테이션 엠티할 때 텐트 치는 법이랑 다 배웠다니까. "

" 니가? 각자 자기 텐트 치고 잔다구? "

" 아니, 애들이랑 같이. 그리구 남자애들이 많이 도와줘."

아, 그래 보이 스카우트...그 보이들 말이지....

진은 머릿 속에서 동급생들과 함께 떠들어봤던 여성잡지에서 해변가에서의 사고 어쩌고 하는 기사들과 함께 모자이크처리된 남녀의 사진에 배경으로 있었던 텐트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 내가 왜 이러나, 요즘 너무 까십에 민감해진 듯 싶다....

뭐라고 당부하기도 멋적어 진은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응, 하고 혜정은 말하면서 어차피 자신은 체력이 딸려서 등반할 때마다 맨 뒤의 가드한테 꼬챙이로 찔리면서 올라간다고, 그래서 혼자 뒤처지거나 다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진은 그 가드가 보이일까 스카우트대장이라는 그 선생님일까하는 생각을 하며 대체 누굴 조심하라고 해야 할지 헷갈렸다.

그다지 친구가 많지 않은 혜정이 같은 반에서의 몇 명과 겨우 어울릴 뿐 스카우트활동에선 물 위에 뜬 기름처럼 부유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래서 굳이 적성에도 안 맞는 지리산종주같은 걸 따라가는 것이 달갑지 않았지만 자신이 가타부타 할 순 없는 일이고.... 그렇게해서라도  끈질기게 자꾸 보고 싶어하는 혜정의 그 국어선생님이 더 맘에 들지 않았다. 혜정의 말에 의하면 그 여자는 생각보다 나이가 있어서 77학번이랬던가? 암튼 노처녀였다. 처녀총각 선생님들에게 한 번씩은 꼭 하는 " 선생님, 애인 있어요? " 하는 질문에 그 여자는 애인은 없고 남자친구는 있다면서, 그 친구와 10년 이상 오래전부터 사귀고 있다고 근데 너무 오래 사귀어서 결혼하자는데 도저히 어색해서 못 하겠다고 그랬다고 말했다고.... 한다. 허참, 어색해서 못하겠다니...그래서 결혼 안 하고 계속 제자들하고 독서토론이나 하면서 살겠다는 건지....진은 그 선생님이 요즘 대학가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라면서 운동권가요같은 걸 혜정에게 적어준 걸 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 여자는 학생운동을 했을 것이고 어쩌면 지금도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독신주의자인 것 같았다. 혜정은 그 선생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얘기하는 것같은 분위기로 얘기하곤 헀다. 그래? 그 여자를 사랑하니? 이 혜정? 진은 그냥 웃으며 넌 왜 다른 애들처럼 젊은 총각선생님을 안 좋아해? 했더니 좋아한다며, 지리선생님이랑 영어선생님을 좋아한다고 한다. 둘 다 총각이라고. 지리선생님은 좀 못 생겼지만 그 선생님이 수업 중 간간히 흘리는 이야기들에 많은 걸 느낀다고. 영어선생님은 수업 밖에 안 해서 잘 모르겠지만 진짜 잘 생겼다고. 아이들이랑 같이 가 본 그 선생님의 자취방이 너무 누추해서 근처 슈퍼에서 우유랑 간식꺼리를 사서 문 안에 살짝 놓고 오기도 했다고 주절주절 얘기한다. 갈수록 태산이다. 고등학교 들어와 안하던 짓을 하는가 싶었더니 아주 세게 나간다.  그래서 남친도 만드셨나...

하지만 의외로 혜정은 그 길거리헌팅을 자신을 주도하여 자기의 패거리들에게 각각 보이프렌드가 하나씩 생긴 것에 대해 아주 크게 자책하고 있었다.

" 애리가...그 후까시랑 계속 만나나봐...다른 애들은 나이트 한 두 번 가고 다 땡쳤다는데, 애들이 별로...모범생같지도 않고... "  혜정은 저의 친구들은 이성교제에 그리 열심이지 않다고, 친구들끼리 놀고 같이 공부하고 그러는 걸 더 좋아하고 연애는 대학가서 ! 라고 다들 정하고 있다고 한다. 근데 그 애리란 애가 아빠가 좀 가정폭력이 있고 해서 가출하고 싶어한다고, 그리고 예뻐서 남자애들이 좋아하는데 그 짝궁된 남자애랑 사귀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만약 걔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 미팅을 주선한 자기는 너무 괴로울 것 같다며 불안해 했다.  진은 그러나 그 것보다 혜정의 그 짝궁- 미팅에서 소지품줍기같은 걸로 짝짓기한 남자애를 이렇게 표현하는 혜정이 웃기긴 했지만 - 은 어떻게 되었나가 더 궁금했고 걱정스러웠다. 아닌게 아니라....혜정도 그 남자애가 하도 따라다녀서 애를 먹고 있었다. 집 근처까지 와서 엄마, 아빠한테까지 걸려서 인사까지 했다는 것이다. 혜정의 부모는 의외로 걱정이나 야단보다, 개랑 결혼할꺼냐면서 웃었다고 한다. 애는 괜찮아보이네 어쩌네 하시며....  아주...가지 가지해요,.. 그래서 어쩔건데? 했더니 빨리 정리해야지. 갠 왜 그리 말귀를 못 알아먹는지...참....하면서 혜정은 진심으로 걱정스런 표정을 한다.

이 모든 상황을 미루어보건대 진은 혼자 방에 앉아 고심에 차서 정리를 시작했다.

그 국어선생님은 독신주의자거나 레즈비언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혜정도 남자들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뭘 모르거나 아니면 레즈비언의 경향성이 농후하다.....

진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보니 더 맘이 다급해졌다. 그럼 자기에 대한 혜정의 감정은 뭔가?  남자에 대해  아직 모르는 거라면 자긴 아예 해당사항 없고, 여자에 대한 사랑으로 치면 그 국어선생보다 못 한게 아닌가? 이런...젠장....3월부터 7월까지 공부도, 피아노도 건성건성하면서 소녀경이니 제2의 성- 그 책은 너무 두껍고 어려워서 겨우 2부의 레즈비언편만 열심히 봤을 뿐이지만....- 을 탐독하고 어여쁜 클리토리스에 대한 사랑과 경외감을 키워온 건 뭔가 되나?  말짱 도루묵?  설마 좋아하는 애도 있는데 이 시점에서 자위하는 법이나 배워야 한단 말인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