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창작중-혜정의 사랑

첫사랑을 잃고 눈 둘 곳은 없었다.

사방이 벽, 벽으로 둘러막힌 듯한 공간, 입시에 매달리는 한편 자기방치에 다름아닌 매일의 수다에 몸을 맡기고 있는 동급생들 속에서 버텨온 1년이 길고 길어서 또다시 시작되는 2학년을 망막한 맘으로 맞고 있었다.

슈토름의 호수를 읽으며 잃어버린 첫사랑을 바람 속에 실려보내고 있던 라인하르트와 같은 얼굴을 하고 혜정은 시니컬하게 웃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런 웃음, 지리 선생님의 공허한 웃음에 갈가리 찢기듯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던 혜정은 주변의 아이들에게 냉소적인 농담을 던지며 웃기 시작했다. 친구가 된 그들은 크게 웃는다. 재밌다며. 지리선생님의 " 우리나라, 좋은나라 ! 자 따라해본다 ! 우리나라 좋은나라 ! " 하는 외침에 크게 웃으며 크게 따라하던 것처럼.

자신을 버리고 이과를 선택해서 가버린 전혜린과 함께 했던 친구를 원망하는 것도 잠깐, 결국 그애가 남기고 간 상처는 그 아래 깊이 패여있던 오래된 상처 때문에 더 아프게 느껴졌던게다. 혜정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라볼 무엇이 있어 생을 지속해야 할까. 죽음 이후 아무런 대안도 없다는 것이 생에 대한 미련을 부여잡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빈 가슴으로 시간의 흐름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고통이다. 존재하지 않는 혜정에게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히 시간들은 곁을 지나갈 뿐이었다. 국어선생님을 만나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지만, 그 분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결혼소식이 파다하게 퍼졌다. 혜정은 즐겨읽던 시집에서 윤동주의 사진을 빼냈다. 가지고 다니던 연습장에서 부룩 쉴즈의 사진 위에 덧끼워두었던 랭보의 사진도 빼냈다.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으리라. 선생님은 이제 자신이 만나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마지막 여지를 없앴다. 아내와 어머니의 길을 걸어갈 그 분과 정립할 수 있는 관계는 스승과 옛제자라는 것 뿐일터이니.

혜정이 좋아했던 역사 속의 여성들, 시몬느 보봐르와 루 살로메와 코코샤넬 그리고 윤심덕을 생각할 때와 같은 이미지가 국어선생님에게 있었다. 입시만 중요했던 고교에서 단지 귀찮은 일꺼리 밖에 안되었을 걸스카우트 대장을 맡으며 나름대로 아이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싶어했던 분이었다. 수업시간에 단편적으로 흘릴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삶에 대한 메시지를 스카우트정신을 통해 알려주고 싶어했던 분이었다. 그분과 사상을, 철학을, 문학과 인간애에 대한 신념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랬지만 그 분에 비해 혜정은 너무 어렸다. 이미 열여덟이었지만 입시 외에 가르쳐준 것이 없는 학교에서 학생으로 머무르고 있는 혜정은 서른세살의 국어선생님, 결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이 땅의 모든 과년한 여자의 하나일 수 밖에 없었떤 그 분의 곁에서 할 수 있는 일도 가질 수 있는 위치도 없었다.

선생님의 댁은 종암동에 있었다. 고려대학교의 국문과 교수였던 아버지의 책에서 인세가 들어오지만 몇 푼 되지는 않는다며 거실에서 남동생과의 얘기를 정리하고 혜정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갓난아이가 누워있는. 표정없는 얼굴로 담담히 아기에 대해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다는 얘기를 한다. " 내가 이렇게 매여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참 이상하게 느껴져. "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결혼을 해야 한다는 압력으로부터. 선생님은 소개를 받고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제 그 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혜정은 더 이상 나눌 말이 없었다. 갓난아기가 누워있는 선생님의 친정집에서 광주를 얘기할 수도, 난쏘공을 얘기할 수도, 노동자파업을 얘기할 수도 없었다. 선생님은 이미 생각하고 논쟁할 수 있는 마음의 기지를 잃고 있었다.

혜정은 돌아와서도 갈 곳이 없었다. 고등학교는 중학교보다 더 나빴다. 결론을 낼 수 밖에 없다. 이 청춘의 나이에 3년 머슴살이처럼 요구받고 있는 수험생활을 끝내지 않고서는 만날 수 있는 사랑이 없다. 대입까지 남은 2년이 너무 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