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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묘사 2

형순의 고향은 경상도 하고도 낙동강 이남의 두메산골이었다. 경사 45도로 비탈진 땅 위의 문설주는 왼쪽이 오른쪽에 비해 반토막으로 짧았다. 딸 많은 집안의 둘째였던 당신에게 한번도 입성 발릴 새 옷 하나 걸리지 않았던 것에 옹이지듯 한이 남았던가, 맏아들에 쏟는 정성만큼 둘째인 딸에게 드는 편역도 보통 아니었다. 그에 비해 철딱서니 없고 이기적이기만 한 막내아들에겐 미처 신경을 쓰지 못 했다. 아니 아마도 그것은 모질고 패악스러운 남자에게 함부로 넘어뜨려진 자신의 위로 몸을 엎디어 준 것이 오직 이 여리고 작은 딸아이였기 때문이겠지...순하고 유약한 오래비와 아직 어리고 세상분간을 못 하는 남동생을 차마 비난도 못 하고 둘째는 늘 엄마의 앞을 막아서며 아비의 손찌검을 대신 받곤 하였다. 그 보들한 뺨에 붉게 도드라지는 핏줄기를 목도하고선 더이상 널부러져있을 수가 없었다. 형순은 더욱 표독스러이 입술끝으로 저주의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리고 문지방에 머리를 부딪고 정신을 놓았다.

그때문일까, 형순은 딸이 둘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서는 몸을 일으키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한 번 두 번 병원을 내왕하고 검사도 받고 수술도 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남편은 그제서야 혼이 나간 듯 두 눈을 희번득 거리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형순은 그의 불안과 초조를 충분히 가늠하고도 남았다. 남편은 혼자 남겨질 것이 두려운 것이다. 입 속으로 웅얼거리듯 불평을 끊이지 않으나 분명히 힘을 다하여 제 허리를 부축해주는 남편의 손길을 느끼면서 형순은 한이불을 덮은 지 오십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이 우위에 서게 되었음을 자각하였다. 속을 끓이다 무심코 욕지기를 내고 마는 아비에게 딸은 그 어느때보다 더 표독스럽게 질타하였다. 당신이 내 엄마를 이리 만든 것이다라며, 형순은 그 말이 과하다 생각했으나 침묵했다. 남편은 두려움에 눌린 눈으로 딸과 아내를 둘러보며 입술을 옴짝거릴 뿐 말을 만들지 못 했다. 벌써 삼년이 넘어섰다. 이 새로운 구도에 형순은 휠체어에 기댄 채 속으로 고솜함을 삼키고 있다. 때로 허리의 통증은 심해지기도 하여 문 안에서의 생활을 며칠씩 길게 늘이기도 하였다. 바깥바람을 쏘이지 못 한채 어깃거리며 일상을 영위하다 보니 감기도 자주 걸렸다. 남편은 우울한 낯빛을 몇 달간 계속하더니 우리에게 돌아갈 고향도, 선산도 없으니 하고 우물거리며 공원묘지를 사 두는 게 어떻겠나 말을 내었다. 형순은 맘대로 하라 하였다. 그러고도 한참을 이리저리 묻기만 하더니 어느 햇살 바른 날 형순이 그럼 구경이나 해 보자,  미리 준비해두면 맘이야 편할 테지하고 쫓아오는 눈빛에 답을 해주니 바로 채비를 하고 나서 납골당 답사를 다녀왔다.

본시 저런 위인이니, 형순은 속으로 혀를 차며 남편의 공원묘지 구입에 힘을 실어준 후 보이는 대로 권하는 대로 다 좋다 하였다. 그런데도 달포를 두고 이리재고 저리재는 남편에게 하마 아무따나 싼 걸로 하나 사두고 말어라고 내뱉듯 말했다. 순간 분기를 참지 못 하고 또 달려들 듯 하였으나 남편은 차마 손을 올리지 못 하고 팽하니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러는 아비를 보며 이리저리 밀담을 나누는 듯 하더니 딸이 저만치 아비를 남겨두고 다가와 형순에게 웃어보였다.

 

" 엄마 좋아하는 볕 바르고 바람 잘 드는 곳으로 정하였어. 나중에 우리 딸들도 소풍 오듯 와서 놀다갈 수 있을테야. 돈이야 좀 들지만, 어차피 엄마아빠 고생해서 모은 돈인데 남길 게 뭐 있어, 저기가 아주 풍광도 좋지 뭐야. "

 

형순은 괜시리 눈물이 맺혔다. 딸의 딸들은 어찌나 작고 어여쁜가, 형순이 서울살이 첫해에 행상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맹물로 목만 축이고 있을 때 저 둘째는 품에 안긴 채 젖배를 곯았었다. 그래 저리 키도 안 크고 매사에 힘아리가 없는게지, 그저 눈만 크게 뜨며 앙칼지게 대어들 줄이나 알았지...형순은 딸의 손을 잡고 속삭이듯 말을 뇌었다.

 

" 내가 니게 부탁 하나 하자. "

" 응, 뭐? "

 

딸은 몇 시간을 헤매이고 있는 공원묘지 안에 아늑한 자리를 골라 어미를 앉히고 곁을 지키며 애잔하게 되물었다.

 

" 내가 죽거든 화장을 해서...내 부모가 묻힌 산자락에 뿌려다고..."

"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여기를 선산 삼자고 사고 있는데. "

" 나는 니 애비 옆은 싫다...내가 나고 자란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니. "

 

별로 오래지 않아 딸은 나직히 뇌이듯 대답해 주었다.

 

" 걱정 마셔, 엄마 원대로 해 드릴 터이니. 나도 외갓집이 좋아. "

 

그리곤 빙긋 웃으며 뒤미쳤다.

 

" 저거 샀다가도 나중에 오빠가 받아안게 되면 아무때고 되팔 수 있어. 아님 아빠만 저기 두고 가지, 뭐. 호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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