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새로운 생명이..

둘째언니가 아기를 낳았다.

신기한 일이다. 꼬맹이의 얼굴이 오락가락..

제왕절개를 했기 때문에 몸이 금방 돌아오지 않아서 많이 힘들어 하고..

나도 병원에 가는데 시간을 많이 배분하고 있는 중이다.

병원은...나한테는 악몽 같은 곳인데..엄마가 아팠고, 누군가가 아팠고, 또 누군가의 친인척이 돌아가셨고..혹은 내 몸이 아파서 가거나..그런 일만 가득한 곳인데..

이번 경험은 좋은 일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세번째 만나고 인연을 맺게 된 조카...

아낌없이 사랑해주리라...이쁜 것...이쁜 것....

 

지난 주말에는 내 맘을 가져가버린 오다기리 죠가 한국에 왔다.

연예인에 빠지기 쉬운 사춘기때에도 도도함을 잃지 않고 나를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이미지가 아닌 개인으로서 좋아해본 적이 없는데...아..그의 포스는 너무 강했다.

스크린에 가득차 있는 그의 모습은 노처녀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다.

배우로서의 가능성, 아웃사이더와 같은 이상한 선택을 하는 것이 더욱더 맘에 들었다는...

물론...응시하는 잘생긴 옆모습에 정신이 나갔지만..흐흐..

개인적으로 메종 드 히미코의 미남보다 밝은 미래의 낡고 색바랜 모습이 더욱 맘에 든다만...

밝은 미래에서 가, 멈춰를 아사노에게서 배우던 그의 손짓을 따라..

나는 지금 가일까 멈춰일까..

아니면 이미 가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뭐..적어도 오다 죠에 한해선 무조건 가이겠다만...

언제 이렇게 배우를 좋아해 보겠냐만...쫌 한심한 것은 사실이다..

뭐..무슨 상관이랴...그가 있던 없던 나는 오늘 여기에서 할일을 하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면서 살고 있는데..

다만...그가 나오지 않는 영화에 흥미가 없어져 버렸다는 아주 심각한 사태가 문제다..

그가 출연한 빅리버와 스크랩 헤븐만을 기다린다는...

공짜 영화권이 두개나 있는데 보고 싶은 영화가 없으니...거참...

이런 일은 첨이라 당혹스럽고..지갑에 공짜 영화표를 들고도 어떤 극장에도 가지 않는 일이 생길 수 있다니..놀랍고도 놀랍다..

 

내일은 언니의 출산때문에 못다한 일들을 하루종일 공들여서 좀 하고..

새로운 서울생활을 시작한 미숙언니를 축하해 주고, 은진언니의 여행얘기도 듣고..

모레 오후부터 주말은 병원에서 보내야 할 듯...

꼬맹이의 이모소리는 한 일년 걸리겠지. 발음이 어려운지 늦게 배우던데..물론 삼촌보다는 빨리 배우지만..흐흐..

 

오늘 하루를 보낸 나에게 선물...밝은 미래에서의 오다기리 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치기 ost중

- 박치기 ost중  오다기리 죠 '슬퍼 견딜 수 없어(悲しくてやりきれない)'-

 

胸にしみる 空のかがやき

가슴에 사무치는 하늘의 반짝임

 

今日も遠くながめ 涙を流す

오늘도 먼 곳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고

 

悲しくて 悲しくて

슬프고 슬퍼서

 

とてもやりきれない

견딜 수가 없구나

 

このやるせない もやもやを

이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誰かに 告げようか

누구에게 말할까


白い雲は 流れ流れて

새하얀 구름은 흐르고

 

今日も夢はもつれ わびしく揺れる 

오늘도 엉클어진 꿈은 쓸쓸히 흔들려

 

悲しくて悲しくて

슬프고 슬퍼서

 

とてもやりきれない

견딜 수가 없구나

 

この限りない むなしさの

이 끝없는 허무함을

 

救いはないだろうか

구할 수는 없는 걸까

 


深い森の緑にだかれ

깊은 숲속 녹음에 안기어

 

今日も風の唄に しみじみ嘆く

오늘도 바람의 노래에 마음 속 깊이 한숨짓고

 

悲しくて悲しくて

슬프고 슬퍼서

 

とてもやりきれない

견딜 수가 없구나

 

この燃えたぎる 苦しさは

이 타는 듯한 고통은

 

明日も 続くのか

내일도 이어질까

 

明日も 続くのか

내일도 이어질까


 



♪ 오다기리 죠]슬퍼서 참을 수 없다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브레히트] 후손들에게

친구와 통화하고 난 뒤..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브레히트 아저씨의 시집을 오랜만에 뒤적거렸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

 

 

후손들에게

 

 

1.

정말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순진하게 말하면 어리석은 사람으로, 이마에

주름살이 없으면 감각이 무딘 사람으로 여겨진다.

웃고 있으면

끔찍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나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곧

참담한 현실에 대한 침묵을 뜻하여

범죄시될 정도이니, 도대체 어떻게 된 시대란 말인가!

저기 평화롭게 길을 건너는 사람을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이

만나볼 수도 없단 말인가?

 

내가 아직 벌어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사살이지만

그건 다만 우연일 뿐이라는 말을 믿어 다오.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 역시 배불리 살 수는 없다.

살아남은 것은 우연일 따름이다.(운이 다하면, 나도 끝장이다.)

먹고 마시라고, 그럴 수 있음을 기뻐하라ㅏ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내가 먹는 음식이 굶주린 자에게 빼앗은 것이고,

내가 마시는 한 잔의 물이 목 마른 자에게 없는 것이라면

어찌 내가 먹고 마실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먹고 마신다.

 

나 역시 현명해지고 싶다.

옛날 책에 씌어진 현명함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아귀다툼에서 벗어나 짧은 인생

마음 편히 지내고

힘이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고

악을 선으로 갚고

욕망을 채우기보다 마음을 비우는 것

바로 이런 것이 현명함이라 했다.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으니

정말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2

모두 다 굶주리던

혼란한 시대에 나는 도시로 왔다.

폭동이 일어나던 시대에 사람들 틈에 끼어

그들과 함께 나도 격분했었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싸움터에서 밥을 먹고

살인자들 틈에 끼어 잠을 자고

아무렇게나 사랑을 하고

인내심 없이 자연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우리 시대에는 길들이 모두 늪으로 나 있었다.

살인마는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보고

내 미음을 알아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지배자들은

내가 없어야 발 뻗고 잘 수 있었꼬, 나 역시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힘은 없었고, 갈 길은

너무도 멀었다.

또렷이 보였지만, 닿을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3

우린 홍수에 휩쓸렸지만

거기서부터 떠오를 너희들,

우리의 연약함에 대해 말할 때면

너희들이 겪지 않은 이 암울한 시대를

부디 생각해 다오.

불의가 판치는 데도 분노가 없어 절망하면서

신발보다도 더 자주 망명지를 바꾸어 가면서

우린 계급의 전쟁을 겪으며 살아 오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우린 알게 되었다.

천박한 것을 증오해도

얼굴이 일그러지고,

불의를 보고 분노해도

목소리가 수게 된다는 사실을. 아,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한 사회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막상 우리 자신은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너희들, 인간이 인간을 도와 줄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되거든

부디 관대한 마음으로

우릴 생각해 다오.

 

詩. 브레히트(1934년 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녹차의 맛!

근래 들어 본 영화중에 최고!!

느린 전개를 조금만 참고 주인공들의 행동에 몰입하면...

나도 모르게...반짝이 옷을 입고 산모양의 율동을 하며

"야마여 야마여~~"라고 같이 노래할 지도 모른다.

아....좋구만...

이영화가 개봉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슬프다.

영화관에 걸린다면 단숨에 뛰어가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펌]고 김주익 열사 추도사

이것 역시 싸이에 올려놓았던 글...
 
동영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나는 이 글이 가장 절절했습니다.
------------------------
고 김주익 열사 추도사

김진숙

작년 한진중에서 밀려난 아저씨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30년 일해온 일터에서 명퇴란 이름으로 강제로 밀려난 아저씨는 술이 한 잔 들어가자 박창수 위원장 이야기를 하며,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는 아저씨가 자꾸 미안하다며 울었습니다.

50이 넘은 사내가 10년도 더 지난 일로 술잔에 눈물 콧물을 빠뜨리는 걸 보면서 우리 모두에게 박창수란 이름은 세월의 무게로도 덮을 수 없는 아픔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박창수 하나만으로도 우린 아프고 무겁습니다.

두번쨉니다. 대한조선공사를 한진중공업이 인수한 이후 여섯명의 위원장 중 두 명은 구속 이후 해고되고, 한 명은 고성으로, 율도로 하루가 멀다하고 쫓겨나고, 두 명은 죽었습니다.

지난 번 위원장 선거가 끝나고 어떤 아저씨가 그러셨습니다. "내는 김주익이 안 찍었다. 똑똑하고 아까운 사람들, 위원장 뽑아놓으면 다 짤리고 감방가고 죽어삐는데,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김주익이를 우째 또 사지로 몰아넣겠노?"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뭘 그렇게 죽을 죄를 저질렀습니까? 조양호 회장님, 조남호 부회장님, 얼마나 더 하실겁니까? 이 소름끼치는 살인게임이 몇 판이 더 남았습니까? 노동자의 목에 빨대를 꽂고 더운 피를 마시는 이 흡혈게임이 얼마나 더 남았습니까?

LNG선상 파업으로 김주익 지회장이 구속됐을 때 인권 변호사의 이름을 팔아 그를 변호했던 노무현 대통령 각하! 노동자의 가련한 처지를 팔아 따낸 권력의 맛이 꿀맛입디까? 조중동 그 찌라시들의 꼬봉노릇이 그렇게 안락하더이까?

대기업 노조가 나라를 망친다했습니까? 21년차 노동자 기본급 105만원, 손에 쥐는 건 80만원, 그마저도 가압류로 12만원, 129일을 크레인에 매달려 절규를 해도 청와대·노동부·국회의원 누구하나 코빼기도 내미는 놈이 없었습니다.

동지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 하지 말걸 그랬습니다. 교도소 짬밥보다 못한 냄새나는 깡보리밥에 쥐똥이 섞여나오던 도시락 그냥 물 말아 먹고, 불똥 맞아 타들어간 작업복 테이프 덕지덕지 넝마처럼 기워입고, 한 겨울에도 찬물로 고양이 세수해가며, 쥐새끼가 버글거리던 생활관에서 그냥 쥐새끼들처럼 뒹굴며 살걸 그랬습니다.

한여름 감전사고로 혈관이 다 터져 죽어도, 비오는 날 족장에서 미끄러져 라면발같은 뇌수가 산산이 흩어져 죽어도, 바다에 빠져 퉁퉁 불어 죽어도, 인명은 재천이라던데 그냥 못 본 척 못 들은 척 살걸 그랬습니다.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내일에 대한 희망도, 새끼들에 대한 미래 따위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며, 조선소 짬밥 20년에 100만원을 받아도, '회장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감지덕지 살걸 그랬습니다.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박창수 동지가, 김주익 동지가, 그 천금같은, 그 억만금 같은 사람들이 되돌아 올 수 있다면, 그 억센 어깨를, 그 순박하던 웃음을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수만 있다면, 용찬이 예란이에게, 준엽이, 혜민이, 준하에게 아빠를 다시 되돌려 줄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애비 잘 만난 조양호·조남호·조수호는 태어날 때부터 회장님, 부회장님으로 세자책봉 받는 나라. 이병철 회장님의 아들이 이건희 회장님으로 부자 1위가 되고, 또 그 아들 이재용 상무님이 부자 2위가 되는 나라. 정주영 회장님의 아들이 정몽구 회장님이 되고 또 그 아들 정의선 부회장님이 재계순위 4위가 되는 나라.

태어날 때부터 그 순서는 이미 다 점지되고, 골프나 치고 해외로 수백억씩 빼돌리고, 사교육비로 한 달 수천만원을 써도 재산은 오히려 늘어나는, 그들이 보기에는 한 달 100만원을 벌겠다고 숨도 쉴 수 없고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벌레처럼 기어다니는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순이익 수백억이 나고 주식만 가지고 있으면 수십억이 배당금으로 저절로 굴러들어오는데, 2년치 임금 7만5000원 올리겠다고 크레인까지 기어올라간 사내가 얼마나 불가사의했겠습니까? 비자금으로 탈세로 감방을 살고도, 징계는 커녕 여전히 회장님인 그들이 보기에 동료들 정리해고 막겠다고 직장에게 맞서다 해고된 노동자가 징계철회를 주장하는 게 얼마나 가소로웠겠습니까?

100만원 주던 노동자 짤라내면 70만원만 줘도 하청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신통했겠습니까? 철의 노동자를 외치며 수백명이 달라들어도 고작해야 석달만 버티면 한결 순해져서 다시 그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게 또 얼마나 같잖았겠습니까?

조선강국을 위해 한 해 수십명의 노동자가 골반압착으로, 두부협착으로, 추락사고, 감전사고로 죽어가는 나라. 물류강국을 위해 또 수십명의 화물 노동자가 길바닥에 사자밥을 깔아야 하는 나라. 섬유도시 대구, 전자도시 구미, 자동차 도시 울산, 화학의 도시 여수 온산. 그 허황한 이름을 위해 노동자의 목숨들이 바쳐지고 그들의 뼈가 쌓여갈수록 자본의 아성이 점점 높아지는 나라.

50이 넘은 농민은 남의 나라에 가서 제 심장에 칼을 꽂고 마지막 유언마저 영어로 남겨야 하는 세계화된 나라. 전 자본주의가 정말 싫습니다. 이제 정말 소름이 끼칩니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을 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하던 김주익의 죽음의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국경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이주노동자를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겁니다. 맨날 우리만 죽고 천날 우리만 패배하는 겁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버이날 요구르트 병에 카네이션을 꽂아놓고 아빠를 기다린용찬이. 아빠 얼굴을 그려보며 일자리 구해줄테니 사랑하는 아빠 빨리 오라던 혜민이.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동영상] 내가슴 속의 추도사

이것 역시 내 싸이에 올려놓았던 것...

--------------------------------------------

 

김진숙 동지의 고김주익 열사 추도사 동영상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가슴을 치고 있을 것이다..쪽팔리고..내가 뭐하고 있나 반성하게 만들었던..그러면서..한편으로..김진숙동지의 절절한 진심을 전달하던..그 목소리..가끔..다시 들여다 보곤 한다..

 

김주익 열사 추도사(2003년 노동자대회-시청)
 
플레이를 클릭!!(중간에 갑자기 중단하면 플레이를 다시 클릭!!)

인간으로 태어나 노예로 살던 자의 부끄러움.
그걸 깨우쳐준 전태일. 그분을 열사라고 부르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 분의 죽음에 책임질 일이 없었고, 자책할 일도 없었고, 무엇보다 함께 했던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냥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때때로 흐트러지지 않겠다는 다짐들을 담아 떠올릴 수 있는 바위 같고 산 같은 이름이었습니다.

  
박창수와 11년, 김주익과 19년, 재규 형님과 15년. 군사독재에 치를 떨며 숨죽여 오르내리던 용두산 공원이 있고, 민주노조 세워보자고 새우깡 안주를 놓고 밤을 새우던 다대포 바다가 있습니다. 밤새 등사기로 밀어낸 유인물을 테이프로 감은 채 정문을 통과해야 했던 안전화가 있고 화이바가 있습니다.


번갈아 가며 면회를 오고가던 감방이 있고, 한진노조 때문에 세배로 늘려야 했던 영도경찰서가 있습니다. 시장 아주머니들이 싸다준 김밥을 최루가스에 비벼먹던 6월 항쟁의 거리가 있고, 멸공의 횃불아래를 부르며 침묵의 공장을 해방의 광장으로 만들어가던 대투쟁이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착하다는 이유로, 너무 말이 없어 깝깝하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재단하며 때때로 미워하기도 했던 애증의 세월들이 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주익 씨가 자랑스럽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그 큰손을 붙잡고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았는데 이제 어디에다 그 얘기들을 다 해야 합니까?
  

85호 크레인의 달력은 129일의 시작 6월11일에 동그라미가 쳐진 채 멈춰지고, 그 칠흑 같은 밤으로부터 비는 참 그악스럽게도 내렸습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늦은 밤, 011-554-1469. 이제 다시는 받을 일도, 걸 일도 없는 전화번호 하나.

  

저녁은 먹었어요? 예…. 비가 많이 와서 어떡해요? 비야 맨 날 오는데요 뭐….
전 그때까지만 해도 용건이 궁금할 따름이었습니다. 용건이 없는 전화는 겉도는 얘기가 몇 마디 더 이어지다 그럼 수고하시라는 잔인한 인사를 그에게 남긴 채 끊어졌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그 황소 같은 사람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곰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막막했을까.
단 한 발짝도 내려설 수 없는, 땅보다는 하늘이 가까운 그 꼭대기가 얼마나 아득했을까. 얼마나 내려오고 싶었을까.

봉다리에 매달아 크레인까지 밥을 끌어올리던 그 밧줄에 목을 걸어야 했던 그 처절한 절망을 이제야 헤아리는 이딴 게 무슨 동지입니까.
   

죽을 각오로 올라갔으나 그는 살고 싶었던 겁니다. 9월9일 유서 한 통을 써놓고 기다리고, 10월14일 또 한 통을 서놓고 목이 메이게 간절하게 기다려보고. 단식도 해보고, 삭발도 해보고, 수 십 번 집회도 해보고, 태풍도 혼자 견디고, 추석도 혼자 견디고, 아버지 제사도 혼자 견디고, 이제 더는 올라갈 곳도 없는데,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해볼 것도 없었던 그 처절했을 절망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견딜 수가 없습니다.
  

백만 번을 생각하고 천만 번을 생각해도 아까워서, 사무치게 아까워서 미치겠습니다.
다른 애들 다 가진 힐리스 한 켤레 사들고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애비. 아빠 얼굴을 몇 개나 그려놓고 일자리 구해줄 테니 돌아오라고 했던 10살짜리 딸내미보다, 백만 배 천만 배 더 그 딸내미를 어루만지고 안아보고 싶었을 애비.
129일의 아빠의 부재로도 눈에 띄게 기가 죽었다는 일곱 살 막내가 이제는 영영 아빠 없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을 애비가, 그 아이들을 그 올망졸망한 새끼들을 기어이 상주로 만드는 세상.

   

10월17일 그 날 이후 크레인과 눈이 마주칠까봐 하늘을 올려다 볼 수조차 없는 아저씨들. 너나 없이 '미안합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정작 미안한 건 우리가 아닌데도 그 한마디가 인사가 돼버린 고통의 시간들. 재규 형님도 그랬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때 "형님이 뭔 죄가 있습니까" 그 한마디를 못한 게 또 이렇게 남습니다. 재규 형님은 그렇게 라도 지회장을 따라가서 그 한마디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들은 유서가 없으니 단순 추락사랍니다.
김주익 지회장이 빤히 내려다보는 4도크에 피로 써내려 간 유서. 얼마나 더 처절한 유서가 있어야 합니까? 바로 그 4도크에 매어있던 배를 새벽에 잠수부까지 동원해서 빼내가고, 배가 출렁이던 자리엔 조합원들의 한숨과 패배감이 넘실거리고, 그 넓은 도크바닥을 종이 삼아 몸 뚱아리를 붓 삼아 써내려 간 얼마나 더 처절한 유서가 필요합니까?
안기부와 한진자본이 죽인 박창수 위원장은 유서가 없어 13년 동안 의문사입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답니다.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노무현, 문재인, 그들은 민주화 됐습니다. 도둑놈도 살인마도 그들이 집권하는 순간 민주화가 완성되는 거 한 두번 봤습니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누가 지 입으로 내 독재자요 합디까. 누가 내가 도둑놈이요 내가 살인마요 합디까. 도둑놈도 정의사회 구현이요, 도둑놈의 애비들도 위대한 문민의 정부요, 국민의 정부였습니다.
  

수능시험이 끝났으니 이제 아이들 차례입니다. 집이 강남도 아니고, 수백만원짜리 과외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노동자의 아이들이 어차피 실업자 아니면 비정규직으로나 살아가게 될 아이들이 차례차례 옥상에서 뛰어내릴 차롑니다.

영등포 경찰서장 짝 날까봐 내놓고 말은 못해도, 아이들의 잇따른 죽음엔 전교조의 기획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입들이 한둘이 아닐겁니다.

  

강남의 집 값이 1주일에 7억이 오르고, 야당이 한 자본에게서만 100억을 받고, 철도에서, 부안에서, 전교조에서 정부가 했던 약속들이 손바닥처럼 뒤집어지고, 어느 것 하나 정상인 게 없고 어느 구석 하나 상식이 통하는 게 없는데도 용케도 정권이 유지되는 그리고 언제나 비슷한 행태가 되풀이되는 유일한 힘.
 

경상도에선 자본가도 1번 노동자도 2번, 전라도에선 자본가도 2번 농민도 2번. 이 희한한 연대가 유지되는 한 아무리 피터지 게 싸워도 세상은 안바뀝니다.
노동자가 죽고, 농민이 죽고, 노점상이 죽고, 장애인이 죽고, 아이들이 죽어도, 그때마다 다시는 울지 말자 수백 번을 맹세해도, 죽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죽었으면, 그 아까운 생목숨들을 그만큼 바쳤으면 영남대승론, 호남필승론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필승론이 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제발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자금을 쌓아놓기 위해 빌라 한 채가 통째로 금고가 되는 시대에, 한푼 두푼 모았던 돼지저금통이 아직도 감개무량하십니까? 자본가에게서 나온 검은 돈으로 정권을 사는 대통령이 노동자 편이기를 바라셨습니까? 조중동의 입이 곧 정권의 이데올로기가 되는 체제에서 민주주의를 갈망하셨습니까? 효리에게 알몸을 보여달라는 스포츠신문들을 돈 내고 사보면서 세상이 바뀌길 바라셨습니까? 삼성해복투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도 라이온스를 응원하는 노동자가 있는 한, 울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줄줄이 개죽음을 당해도 현대 호랑이 축구단이 이기는 날 축배를 드는 노동자가 있는 한 우리는 저들의 손바닥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조남호만 나쁜 놈입니까? 김문기만 죽일 놈입니까? 착한 자본가는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는 단 하루도 살아보지 않은 자들만이, 남의 눈에서 쏟아지는 피눈물을 달게 마시는 자만이 자본가가 될 수 있고, 그게 자본주의입니다.
 

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게 애국이 아니라 효순이 미선이를 위해, 핵폐기장 반대, 파병반대를 위해 촛불을 밝혀드는 게 애국이요, 대~한민국을 외치는 게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게 계급적 단결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생산해낸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영남․호남의 연대가 아니라 농민․여성․이주노동자․장애인․노점상, 그들과의 연대가 진정한 연대입니다.

철도 동지들, 화물연대 동지들, 쓰라린 만큼만 다시 일어섭시다. 한진중공업 동지들, 세원테크 동지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동지들. 우리가 흘린 이 피눈물만큼만, 꼭 그만큼만 다시 갚아 줍시다.

         

전국에서 오신 수많은 동지들.
그리고 하도 오래 싸워서 이제는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또다시 맨몸으로 이 시린 겨울을 맞설 장기투쟁 사업장 동지들. 작은 노조라서 신문에 한 줄 안나고, 집회 한번 뽄때나게 안되던 수많은 투쟁사업장 동지들.
 

돈 없고 권력 없는 노동자들이 몸뚱이로 써내려 왔던 피눈물의 역사. 목숨으로 노동해방 횃불을 밝혀왔던 노동자들의 처절한 역사. 그 역사의 승리를 위해 이제는 검은 머리띠말고 노동해방의 붉은 머리띠를 다시 맵시다.

숨쉬는 것조차 죄스럽고, 지금은 죽을 만큼 힘들어도 기필코 살아서 단결 투쟁 노동해방으로 총진군합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스크랩]스스로가 만든 덫에 걸린 우리들

내 싸이에 올려놓았던 김진숙동지의 글...
-----------------------------------------
 
몸은 다운되는데..잠은 오지 않아..벗들의 홈피를 오락가락하다..
문선언니네 집에서..김진숙동지의 글을 읽다..
97년 노동법 개악 총파업 당시 경주에서의 잊혀지지 않던 그분의 교육..다시 만난 것은 작년 김주익열사가 돌아가셨을 때..
가슴을 울리던 그 조사 낭독이었다..
(김진숙동지는 한진중공업 김주익열사와 박창수열사와..그리고 박성호형의 입사동기로 알고 있다.)
올해 메이데이에 했다는 그동지의 연설문을 읽으면 온새벽에 자꾸 눈물이 난다..내가 올해 메이데이에서 아니..작년 노동자 대회에서 아니 작년의 메이데이에서 아니 그작년의 어디..그그작년의 어디에서..
자꾸만 상실해가는 감동과 그만큼 생기는 분노를..당신도 느끼고 있었던가...
--------------------------------------------
스스로가 만든 덫에 걸린 우리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김진숙 동지가 4월 30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집회에서 조합원들에게 바친 연설문을 올립니다.
-------------------------------------------------------------

부치지 못하리란 걸 알면서도 밤새워 쓰는 편지도 있고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기다려지는 편지가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리게 되는 사람이 있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밤은 자꾸 오고 술마저 취하지 않는 밤. 새벽이 얼마나 더디 오는지 새벽을 견뎌 본 자는 압니다.

그런 밤, 신 내린 무당처럼 산에 올라 부를수록 상처가 되는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언제나 늦게 오던 사랑. 다시는 볼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그게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일은 얼마나 쓸쓸합니까?

내가 스물 하나 일 때 박창수도 스물 하나였고 내가 스물 셋일 때 스물 하나였던 김주익을 만났던 언제나 거기서부터 떠오르는 이 형벌 같은 기억들은 얼마나 잔인한 일입니까?

참 잘 자란 용찬이가 지 에미가 가슴속에 눈물의 저수지를 파놓고 그 물 떠 먹여가며 그 물로 씻겨서 키웠을 용찬이가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물한 살. 소나무처럼 푸르르 던 그 때 그 애비의 나이가 되었건만 아직도 죄스럽기만 한 우리는 준엽이 그 아이가 그 애비만한 나이가 될 때 그 때 우린 그 아이 앞에 무엇이 되어 서 있을까요?

내게 남은 시간들을 다 내주고 그들이 단 하루를 더 살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 하루 동안 아이들만이라도 볼 수 있게 했어야 했습니다. 그 따뜻하고 보드라운 것들을 비벼보고 만져보고 빨아도 보고 부서지도록 안아도 보고 그랬어야 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너무너무 미안하다는 그 말이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감빵 안에서 징벌방에서 그리고 대공분실에서 혼자 당하는 일의 처절함, 혼자 견뎌내야 하는 그 참혹함을 알면서도 하나는 감방 안에서 하나는 크레인 위에서 하나는 도크바닥에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던 겁니다.

박위원장이 주익씨를 만나지 않았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저승에도 북극이란 게 있고 남극이란 것도 있어서 그들의 거리는 천리나 만리나 되게 멀어서 그들이 우연히라도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예수님께 빌고 부처님께도 빌었습니다.

박위원장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보냈냐고 주익이를 어떻게 이렇게 보냈냐고 얼마나 원망을 하겠습니까? 그 착해빠진 사람이 혼자서 목에 밧줄을 걸 때까지 니들은 도대체 어디서 뭘했던 거냐고 물으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산 자는 누구나 죄인이었던 그 날 이후. 우리는 각자의 양심에 검은 리본을 달았었고 스스로에 대해 반성이란 것도 했습니다. 129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목매달아 죽은 시신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을까? 함께 하지 못했던 자책감에 몸부림을 했었고 우리 모두의 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속죄한 재규형 때문에 한 동안 서로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 두려워했습니다. 누구나 복수를 다짐했었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맹세도 했습니다. 그들이 남기고 간 새끼들 또래의 아이들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살가죽이 불에 닿는 느낌이었고 키가 큰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고 했었습니다.

연대해야 더 이상 죽지 않는다고 수천번도 더 외쳤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깨달은 노동자는 하나란 사실을 다시는 잊지 말자 했습니다. 우리 그 때 그러지 않았습니까? 우리 그 때 다들 그러지 않았습니까? 부산 노동자도 그랬고 울산 노동자도 그랬고 여성노동자도 그랬고 남성 노동자도 그랬고 늙은 노동자도 그랬고 젊은 노동자도 그랬습니다. 정규직도 그랬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그랬고 금속노동자도 그랬고 병원노동자도 그랬고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그랬고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그랬습니다.

그 일로부터 2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난 것도 아닌데 그토록 철폐를 외쳤던 신자유주의는 우리들의 자연스런 일상이 되어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먹고 살기 위해 잔업철야를 해야 하고 정규직은 짤리기 전에 한 대가리라도 더 하려고 잔업특근에 목숨을 겁니다. 연대투쟁 열심히 하는 집행부는 재선에 실패하고 임금 많이 올리고 성과급 많이 따내는 집행부는 인정받습니다.

성과급 받아서 차 바꾸고 그 차 값 할부금 때문에 잔업을 또 하고 뼈골 빠지게 잔업한 돈 모아서 큰 집으로 이사했으니 ㅁ융ㅁ자ㅁ 갚고 관리비 감당하려면 특근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큰 아이 학원비는 점점 늘어나는데 작은 아이마저 학원을 시작해야 하고 그렇게 키운 새끼들을 죄다 비정규직이 되고 비정규직과 실업자는 각자 알아서 알맞은 방법으로 자살하고 정규직은 과로사와 산재로 죽습니다.

열사람 하던 일을 다섯 사람이 해도 충분하다는 걸 우린 점점 늘어나는 과로사와 근골격계를 감수하면서 입증해줬고 그렇게 우리는 저들의 구조조정을 합리화 시켜줬습니다. 결국 다섯 사람이 하던 일을 세사람이 해도 된다는 또 다른 구조조정의 무덤을 우린 우리 손으로 열심히 파고 있습니다.

이제 자본가들은 더 이상 그들의 손으로 덫을 놓지 않습니다. 노동자들 스스로 덫을 만들고 그 덫에 걸릴 순서를 알아서 정하고 1번 비정규직, 2번 여자, 3번 늙은이 순으로 차례대로 그 덫에 밀어 넣습니다.

공장 한쪽에서 비정규직은 투쟁하고 그 코앞에서 정규직들이 탁구를 치고 족구를 하는 것도 더 이상 낯선 광경이 아닙니다.

비정규직의 숫자가 정규직을 넘어선 공장에서 노조간부들이 사무실에 앉아 각자 등 돌리고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도 이제 자연스런 일상이 돼버렸고 에어컨 빵빵한 노조 사무실 소파에서 노조간부들이 연예인 X파일을 논할 때 엉덩이 붙이고 앉을 데라곤 화장실 바닥 밖에 없는 청소용역 아지매들에겐 회사의 냉대보다는 노조의 무관심이 더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이은주의 자살에 대한 관심만큼 이용석의 죽음에 우리들이 관심을 쏟았더라면 박일수는 안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직도 저는 합니다. 최희섭이나 박주영에 대한 관심의 반만이라도 우리가 과거사법, 사립학교법에 대해서 가진다면 자식을 먼저 보낸 늙은 부모님들이, 줄줄이 돌아가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전교조 동지들이 그들끼리만 거리를 헤매는 수치스런 일만큼은 막아낼 수 있다고 저는 여전히 믿습니다.

농민들이 제 손으로 키운 과일을 불태우며 울면서 싸우는데 수입과일을 사먹는 노동자가 어찌 세상의 주인일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쏟은 오물을 청소용역 아지매를 전화로 불러 치우게 하는 노조간부가 누구의 존경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규정이라는 이유로 역 구내에서 노점상 할머니와 노숙자를 눈물 한 방울도 없이 쫓아내는 노조간부가 집회에 나와서 외치는 평등과 해방은 얼만 큼이나 진실입니까?

배차 시간 때문이란 걸 알지만 장애인이 온 힘을 다해 손을 드는데 그냥 지나치는 버스 노동자가 자신들이 투쟁할 때 누구에게 당당히 연대를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지율스님의 그 일관된 진정성이 김주익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그 생각을 왜 우리는 안합니까?

이주노동자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칠 건 빨리빨리와 "씨"발"놈"이 아니라 연대와 인간의 가치입니다.

1300만 중에 840만이 비정규직이 되는데 10년이 채 안 걸렸습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무궁화와 고속철이 아니라 같은 열차의 앞 칸과 뒤 칸일 뿐입니다. 1호차부터 10호차까지 비정규직을 인질로 태우고 지옥으로 돌진하는 이 죽음의 고속철을 11호차부터는 정규직이 실려 있고 자유석엔 우리 아이들이 실려 달려가고 있는 겁니다. 300KM로 달리는 고속철에서 혼자 뛰어내릴 수 없습니다. 다 죽지 않으려면 멈춰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게 콩 한쪽뿐이라 하더라도 그걸 나눌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진정한 연대입니다. 대우자동차 창원 공장처럼 부산은행처럼 정규직이 나서서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일부터 합시다. 비정규직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다 죽지 않으려면 그래야만 합니다.

스물한 살 용접공 제게 그 때 가장 두려웠던 건 아침이 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매일 그런 아침을 맞을 비정규직들에 실업자들에게 우리가 희망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14년째 되풀이하는 다짐이지만 내년에 좀더 달라져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재미야~~

어딨니? 일루 와서 나랑 놀자..

재미야~~재미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네가지라..진짜 곤란해..

체게바라님의 [네가지.. 어려운 숙제] 에 관련된 글.

너무 하는 거 아니셔? 이런이런....

옛정을 생각해서 받아주겠어요..까짓...흐흐..

지금 교지아이들 교열보느라 서울와서 오랜만에 교지사람들의 서울회동을 마치고 들어왔는데..

이무슨 과제람..

 

Four Jobs I’ve had in my life(일생에 가졌던 네 개의 직업)

- 학원강사 : 애들 등치는 것 같아서 다시는 안하겠다 결심했던..다시는 안할 직업

- 영업경리 : 이건 거의 최악! 왜? 커피 안타고, 사투리 안고친다고 짤렸으니까...그러나 자본의 시스템에 대해서 조금 알게 해줬던 알고보면 고마운 직장이기도 하지...

- 문화단체 상근 : 회사 짤리고 운동단체에 들어섰고, 문화운동에 대한 진로를 잡아준 곳..내인생에서 아마 가장 중요한 경험이었을 듯..게다가 6년 일했으면 무지 길게 했으니까..이런 경험은 또 없을 것이당..상근은 그만뒀지만..어쨌든 ing....

- 문화학교 : 가난의 재생산, 그 쳇바퀴의 굴레가 어떻게 세습되는지를 실감하게 해줬다. 반면 아이들의 눈빛을 가슴에 안고 살게 가르쳐준 곳...어쨌든 역시 ing

 

I can watch over and over(몇 번이나 다시 볼 수 있는 네 가지 영화)

- 파니핑크 : 좋잖아. 말이 필요없지. 혼자 사는 여자..나의 얘기라고나 할까..

- 길 : 젤소미나를 아이디로 쓰게 만든 영화...어릴적부터 좋아한 영화..

- 붉은시편 : 내용도 내용이지만, 형식에서도..멋지다.

- 밝은미래 : 가장 속물적으로...단순하게...아사노 타다노부와 오다기리 죠가 주연이니까..

 

Four places I have lived(살았던 적이 있는 네 곳의 장소)

- 경주 : 고향이자 20대 초반 청춘을 보낸 곳.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가장 그리운 곳..

- 울산 : 여고시절을 보낸 곳. 현대공화국안의 학교라 대학이후 이것저것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재미있는 곳이다. 이상한 곳이기도 하고..

- 서울 마포일대 : 지금도 살고 있는 곳. 홍대일대를 좋아함. 마포는 왠지 오래된 느낌. 처음 서울와서 살았던 곳이라 이 삭막한 도시에서도 조금 정을 붙인 곳이라고나 할까.

- 서울 영등포 : 진짜....싫다. 당산 일대..아..정말 공사장 소리에 도망치고 도망쳐서 결국은 다시 마포로 돌아가게 만든 무서운 곳...대학 교지 만들 때 경주에서 당산까지 와서 편집했는데 그때도 당산은 공사중이더만 서울와서 벌써 8년째인 현재에도 여전히 공사중이다. 대단한 동네이다. 기계소리를 끔찍해 하는 나로서는 그동네에서 2년넘게 살았는데 인내심이 바닥이 나더라.

 

Four TV shows I love to watch(좋아하는 네 가지 TV 프로그램)

- TV 별로 안좋아하는데..진짜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네..반갑다 친구야? 글쎄..올드앤뉴? 글쎄...가끔 웃기다 생각하지만...좋아하는 정도는 아니고..그다지 보는 편도 아닌데...긁적긁적..

음..생각해보니..요즘 열심히 보는 것이 있었군..일본드라마 시효경찰? 쿠쿠..

 

Four places I have been on vacation(휴가 중 갔었던 네 곳의 장소)

- 영월 : 단종유배지 청령포의 소나기를 잊을 수 없다.

- 남해 미라리 해수욕장 : 햇빛 짱짱하던 휴가 피크인 7월 말에 그 해수욕장은 5명 정도가 점령해있더라. 알려지지 않은 그 섬..(나중에 민박아저씨 땜에 짜증났지만)

- 일정치 않지만 : 4박 5일 봉고에 실려 전라도에서 강원도에서 서울..하염없이 떠돌았던 어떤 장마철

- 지리산 소의재 : 박선영열사 기념관인 그곳...눈쌓인 노고단..어머님, 아버님과의 대화....

 

Four websites I visit daily(매일 방문하는 네 개의 웹싸이트)

- lcnet.org : 원죄가 있어서 아직은 일정의 관리책임이 있는 관계로...당근 들어가는 곳..

- nodongmana.net : 노동만화넷 기획자이니까.

- cyworld.com : 인간관계상..구경하러 다님

- 여기 이 블로그 : 글쎄, 글도 별로 안남기면서 그래도 들어와본다..

 

Four of my favorite foods(가장 좋아하는 네 가지 음식)

- 회 : 바닷가 아이라서 너무나 익숙한 음식..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 야채/과일 : 맛있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 술 : 역시 맛있다.집안 내력이라고나 할까..

- 차 : 홍차, 녹차..없는 살림에 나름대로 종류별로 꽤 많이 가지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몇가지 사치 중의 하나...

 

Four places I would rather be right now(지금 있고 싶은 네 곳의 장소)

- 오끼나와 : 2월에 가려다 일정이 연기되는 바람에 못가게 된 곳..으흐흑흑...눈물이...

- 바다 : 어디라도 좋다. 짠내만 느껴진다면...

- 종로 뎀셀브즈 : 좋아하는 찻집.

- 꿈속 : 자야되니까..빨리 자야한다. 내일 회원총회가 있기 땜시로..

 

Four bloggers I’m tagging(태그를 넘기는 네 명의 블로거)

- 보라돌이 http://blog.jinbo.net/pink

- 별똥별 http://blog.jinbo.net/sta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몇일사이 만난 일본영화들

안봤다기 보다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못봤다가 정답이겠지.

영어를 비롯한 유럽권 언어가 듣기 싫은 시즌이 잠깐 도래하야 그쪽 영화는 거들떠도 안보고 있다. 생각해보니까 몇년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아마 미친듯이 중국영화를 봤던 기억이..

한국영화는 작년에 너무 많이 봤고, 근래 별로 눈에 차는 영화가 없어서 밍숭미숭한 상태였는데 나에게 찾아온 메종드 히미코...갑자기 일본 영화를 보고 있다.

밝은 미래, 맞아 극장 개봉때 갔어야 했어, 오페레타 너구리저택도 갔어야 했고..흑흑...

둘다 훌륭하다. 길게 쓸 생각 없으니까..

몇일 사이에 본 세편의 영화와 보고 싶은 영화 이미지 몇컷만 올리고..

(쭉..올리고 글자 편집하려고 처음부터 보니..결국 오다기리 죠였군..쿠헤헤헤...)

 

<메종 드 히미코. 2005>

오다기리 죠라는 배우를 만나게 한 영화.

  

 

<밝은 미래. 2003>

--재미삼아..3개국가 포스터를~~

가슴이 좀 답답해서 보다 쉬고 보다 쉬고...아직 다 못봤다..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 2005>

일본극, 혹은 일본 뮤지컬 형식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는 영화..

한컷 한컷을 빚어놓은 것 같다고나 할까.

배우의 위치, 동작과 컷과 컷의 연결..

엄청 정밀하게 계산하여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내내 감탄함.

호호 할아버지 감독의 상상력에 또한 경의를!!!

 

<박치기. 2005>

영화는 좋았다. 영화자체보다 이런저런 생각과 궁금증을 일게 만든 영화.

박치기는 다음에 다시 한번 단상을 쭉 늘어놓아볼까 생각중.

 

 


-------> 보고싶은 영화

 

<스크랩 헤븐 2005>

 

<빅리버 2005>

지금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영중...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