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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한심한 스머프...님의 [변태의 어려움..] 에 관련된 글. 

1. 「중독된 사랑」

 

'중독'이라는 단어는 내게 묘한 매력을 지닌 그 무엇이었다.
중독은 어쩌면 '열정'이라는, 내게는 많이 부족한, 그래서 늘 갈망하는 개념과 떨어져 설명할 수 없는 말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난 ‘중독’을 매력적으로 여기면서도 '중독'을 떠올릴 때면 멋진 얼굴에 남은 지울 수 없는 상처처럼 「중독된 사랑」이 떠오르고, 그와 관련된 중첩된 기억의 덩어리가 떠오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덩어리는 악성 종양에서 일반 종양으로, 이제는 좀 보기 흉한 사마귀 정도로 그렇게 변했지만 말이다.



이미 ‘옛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벌써 10년도 더 됐으니 말이다. 프랑스 영화 「중독된 사랑」이라는 영화가 개봉됐었다.
난 '중독'과 '사랑'이라는 단어에 끌려 이 영화를 봤다. 그것도 혼자서. 물론 이제는 내용조차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넓은 극장 안에는 혼자 와 영화를 보는 사람들 중에 남자는 나 혼자(혼자 와서 보는 여자들은 매우 많았다.)였다는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난 잠시 활동을 접고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그리고 그 얼마 전에는 2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진 상태였다. 그 친구와 사귀기 전에 4년 정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헤어질 당시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그 친구를 일방적으로 배신했다고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을 만큼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난 다른 친구를 사귀고 있었고, 되돌리기엔 상황이 너무나 복잡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로 사귄 친구는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른 것은 사귄지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서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만 2년 동안이나 연애(?)를 했다.

주변으로부터 내게 향한, 드러내놓고 하는 비난은 없었지만, 나는 겉으로 표현하는 건 자제했을지라도 죄의식에 늘 괴로워했고,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최대한 배려해주었다.

 

하지만 새 친구는 달랐다. 새 친구와 내 주변 사람들은 서로 낯설어했다. 그 낯섦이란 처음 만나는 자리여서가 아니라 서로 너무나 다른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였다고 본다. 그런데 새 친구는 그 낯섦을 내 주변 사람들이 나의 옛친구에 빗대 새 친구를 괴롭히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이 그 친구가 나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오기로 작용했다.

 

난 나대로, 새 친구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 이때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최대한 인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옛친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둘의 이유야 서로 다르고, 엇갈리지만 결론이 같았다는 게 불행이도 서로에게 지독한 상처를 주면서도 2년이나 연애를 지속시키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어찌됐든 예정된 이별은 현실이 되었고, 난 낯선 직장생활에도 낯선 솔로 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2. 「중독」

 

내가 문득 ‘중독’이라는 낱말을 꺼낸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민주노총이 지탄을 받았고,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옆에 두고 얘기를 꺼낼 땐, 어떤 식으로든지 위로를 하든가 또는 에둘러 비난을 하든가 하였다. 어찌됐던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함께 활동했던, 지금은 전문직 직업인으로 살고 있는 후배와 함께 차를 타고 오면서 또 예의 곤혹스러운 상황이 되었을 때 난 문득 ‘중독’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나 스스로 '중독'이라는 말을 꺼냈음에도 그 말이 내게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난 말이야. 중독된 것 같아. 민주노총에도, 민주노동당에도. 때로 짜증나기도 하고, 벗어나고 싶기도 하지만, 벗어나면 못 살 것 같아.'


글쎄, 처음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일단 '중독'이란 말이 떠오른 순간 난 체면에 걸린 듯 슬슬 내 얘기를 했다.


그렇구나. 난 중독되었구나. 한편으로 요즘 나, 지난번 ‘잘 못 사는 것 같다.’를 쓸 때 내 마음이 설명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가려 노력하는 젊은 열정이 아니라, 붉은 광장에 옛날 군복에 훈장을 달고 나온, 이제는 늙어 추억밖에 붙잡을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노전사의 힘없는 눈동자를 보는 것 같이 쓸쓸해지기도 하였다.

 

정희진은 '사랑과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인생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자기 부정이다. 사랑과 운동은 목적에 헌신하기 위해, 그들 몸의 일부가 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역량이다.'이라고 했는데, 내겐 사랑보다도 사회운동보다도 중독이 먼저구나....

 

어쩜 김동윤 열사 앞에서 분노하지 않았던 것도, 강승규 사건 때 처음엔 무덤덤(?)하기까지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가 증폭되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중독된 활동가(?)의 복잡한 회로를 거친 사유의 변환 때문이 아니었을까?

부정(否定)이나 변화보다는 조직적 손실 없는 유지(維持)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구나....


추억은 시간이 지나면 비수가 되기도 한다. 추억이 있는 곳은 지금은 없는, 함께 있던 사람이 유령처럼 떠나지 않고 기억의 영상 속에 여전히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곳은 아름답기보다는 가슴저림이 앞서는 곳이기 십상이고, 근처에 가기는커녕 생각조차 이어가기 힘들게 한다. 능내는 내게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앞서 얘기한, 죄의식에 시달리며, 날 오랫동안 잡아두었던 사랑의 아픈 기억이 내 글에 묻어 있는 것 중 하나인 ‘다시 능내에 가다’란 잡문의 앞부분이다.

 

민주노총이 나보다 훨씬 빠르게, 또는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고, 민주노동당이 변질되고, 그리고 내가 떠난다면, 난 어떻게 할까. 역시 죽음만큼이나 막막하다.

 

어찌됐든 나 자신의 아픔보다는 기꺼이 ‘부정’하고 자기를 ‘변화’시켜야 하겠지. 그러나 관성의 각도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 나는 안다. 쉽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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