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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스타수도원과 절두산성지

▶  당산역 7번 출구 앞에 있는 이정표

 

강변북로 당산철교 옆에 우뚝 솟은 봉우리. 이곳이 1866년 병인대박해 때 수천의 천주교자들이 처형당한 절두산성지이다.

난 천주교신자도 아니고, 감성적인 호감도 별로 없다. 물론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절두산성지는 내게도 성지로 다가온다. 수천명이 기꺼이 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게 한 것이 ‘신념’ 하나였다는 게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천주교를 믿느냐?’는 물음에 ‘아니오.’라고 답하면 그대로 방면되었을 터인데 말이다.

저승사자 같은 형리의 물음에 ‘예.’ 또는 ‘묵언’으로 ‘신앙’을 시인한 목들은 망나니의 칼날에 떨어져 저 높은 벼랑 밑으로 쌓여갔겠지. 차마 볼 수 없을 참혹함이 시간이 지나 역사가 되어보니 떨어진 목들은 수천의 꽃이 되었고, 씨앗이 되었구나. 장엄한 세례와 정화, 막을 수 없는 대세로...


수련회 참가차 마리스타수도원 가는 길에 절두산 성지를 우선 들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으니 저녁 식사시간에나 가봐야지...


▶  마리스타수도원 입구. 엄혹한 시절 민주화의 작은 해방구이기도 했다.

 

마리스타수도원을 와 본 게 20년이 되었다. 86년이었던가. 민주교육추진전국교사협의회 사무실에 볼일이 있어 들렸었지. 아래층에는 ‘운수노보’라는 간판이 있었지. ‘운수노보’. 84년 분신한 택시의 박종만 열사를 추모하며 노조민주화를 추진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였었지. 그게 뿌리가 되어, 민주택시, 민주버스 등이 만들어졌으니 나의 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시절 모였던 이들은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이상하게 변한 임삼진, 배규식 등이 가끔 언론에 출몰하기는 하지만...


▶  옛날 운수노보(1층)와 전교협(2층) 사무실이 있던 건물

 

저녁을 먹고 절두산성지로 나서니 이미 해는 기울고 있다. 박물관은커녕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가봐야지!



▶  석양이 물드는 절두산성지박물관

 


▶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

▶  절두산 절벽. 실제 높이는 보이지 않는 곳이 더 높으니 상당하다.

 


▶ 천주교도들에게  교수형을 집행하던 형구

 

▶  병인박해 때 압송되던 주교와 신부들이 쉬었다는 바위가 옮겨져와 있다. 주변으로는 부귀의 상징이라는 모란이 흐드러지게 펴 대조된다.

 

 

▶  모란과 영산홍은 아름답기만 하다.

 

 

▶  예전엔 이곳에 절이 있었던 듯...

▶  외국인 선교사 묘역으로 저녁해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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