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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도 사치겠지...

1.

제도권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하니 이제 누구나 아는 일이다.

민주노총 간부의 성폭력 사건 말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건 꽤 오래 전 일이고, 민주노총에 그 사실이 알려진 것 또한 꽤 오래 전 일이다.

나도 오랫동안 집행부의 일을 해왔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피해자를 생각하기 이전에 조직에 어떠한 파장이 올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습성 말이다.

어쨌든 일은 벌어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올바른 방법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첫째, 피해자 중심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

둘째, 민주노총이 보수정권, 정치권, 사용자 집단에게 요구했던 도덕적 기준을 자신에게 철저하게 적용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정면돌파다. 요즘은 '정면돌파'가 민주노총에서조차 무모한 아집을 관철하는 것으로 변질되었지만 말이다...

민주노총은 최근에 늘 그러하듯이 이번에도 그렇게 떳떳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위기는 사실 이러한 조직적 모습만으로도 그 심대한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어떻게 해야할까? 정말 민주노총을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할까? 그래도 오랫동안 민주노총 언저리에서 간부랍시고 살아온 나로서는, 그리고 이제 현직을 사퇴한 나로서는 강력한 요구를 하기도 쉽지않고, 주제넘어 보이기도 하다...

 

2.

오늘 하루종일 우울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우울의 정체를 명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하루가 다 가는 시점에서 이제는 그 정체를 정확히 알 것 같다. 나는 내가 뭐라고 생각해도 민주노총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고, 아무리 내 스스로 민주노총을 비판해도, 민주노총을 나와 매우 동일시 한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 그렇게 하루 종일 힘들어하고 헤매였다는 것을...

지난 12월 말부터 나는 복수노조 시대에 조직확대방안을 연구해왔다. 연구의 핵심은 관련 활동가들과 면접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면접조사를 하면서 나는 너무나 힘들었다. 사람들의 냉정한 평가를 들으면서 세상에 비춰진 민주노총이 이런 모습인가 새삼스럽고 뼈저리게 느끼면서 말이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오랫동안 독방에 갇혀 있다고 나왔을 때 자신이 세월의 흐름만큼 당연히 늙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은 자신이 상상하던 것을 훨씬 뛰어넘어 더 늙고 추해져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도 일을 마치기 위해 꾸역꾸역 사람들을 만났었다. 희망을 걸 곳이 필요했고, 내가 아는 한 희망을 걸 곳이 그곳 뿐이었기 때문에...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회의를 하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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