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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풀소리가 세상에 내는 작은 목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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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1
    4.9 총선 전후(6)
    풀소리
  2. 2008/04/08
    민주노총에서 보낸 문자(2)
    풀소리
  3. 2008/03/21
    파란풍차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풀소리

4.9 총선 전후

1. 마지막 유세

 

유세 중간에 산오리, 연부가 문소리/이남신과 함께...

 


나이 드신 어르신도 심상정 지지!!

 

나름 튀는 의상을 하고 나온 자원봉사자들/ 문소리는 역시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문소리도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변해 있었다.

 

대표물고기와 아이들

 

임순례 감독과 네이버 조/ 가운데는 유명한 인물이라지만 매우 실례되지만, 잘 모른다는...

 

유세 막간을 이용한 포토타임(?)

 

심후보와 같은 고향인 광탄 출신 안윤태 위원장

 

마지막 유세에 환호하는 자원봉사자와 지지자들

 

사진은 잘 안 나왔지만, 다른 사진이 없어서...

 


선거 내내 고생하신 선거운동원들... 저분들의 밝은 표정이 심상정과 진보신당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


저들에겐 우생순의 감독이겠지만, 우리들에겐 영원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감독 임순례는 젊은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오른쪽 끝은 민동진/ 그 옆은 미국 유학중 잠시 귀국했다가 선본 유세단에 결합한 젊은이, 왼쪽 끝은 결코 미치지 않은 안광인 : 모두모두 수고했슴다~~~

 

2. 선거일 낮

 


부로농원 뒷산의 진달래 고목(?)

 


나무 큰 숲속의 진달래

 

활짝 핀 부로농원의 매화

 


3. 개표


낙선이 유력(?)한 상황에서의 인터뷰

 


낙선인사 하는 심상정 의원



진보신당 승리를 위해 구호를 외치는 심상정 의원

 

심상정 의원이 고생한 사람들을 일일이 열거하다 남편이기도 한 이승재 선생을 부르자 쑥스러워 하고 있다.

 

4. 뒤풀이

 


뒤풀이는 담날 거의 아침까지 이어졌다.

 

5. 다시 일상으로

 


선거 담날은 우리 노조 상근자 체육대회였다. 전날 진한 뒤풀이로 늦게 일어나 허겁지겁 마을버스를 타러 나왔는데, 살구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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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에서 보낸 문자

어제는 민주노총에서 뜸금없는 문자가 왔다.

 

D-2일>

정당투표분열되면사표되고민주노총몰표주면기호4번민노당10명당선

<민주노총>

 

황당함 그 자체다.

어디서 많이 보던 논리다.

 

민주노총 소속 당원들이 이미 양분되었고,

여론조사를 보면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조합원들이 더 많은데,

민주노총은 케케묵은 <배타적 지지> 정치방침을 고집하고 있다.

 

발신전화번호는 0409다

투표일을 발신번호로 썼는지 아님 선거법을 의식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하여 시비를 걸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하옇튼 발신번호까지 변경하여 보낸 문자를 보면서

한편으로 화가나고, 한편으로 한심하기도 하다.

 

어쨌든...

민주노총 문자를 보고

나도 투지가 생겼다는... ㅎ

 

어제부터 주변사람들에게 정당투표 13번 진보신당을 찍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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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풍차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파란풍차.

우리 동네에 있던 빵집 이름이었다.

 

우리는 서울에 내내 살다 1999년 12월에 이곳 고양시 원당으로 이사왔다.

삶이 조금씩 뿌리를 내리면서 이 낯선 동네에서 단골집이 하나 둘 씩 늘어갔다.

파란풍차는 마트 다음으로 처음 단골이 된 집이었던 것 같다.

 

빵도 빵이지만, 주인 아저씨의 따뜻한 미소가 좋았다.

각종 선거 때면 누구하나 관심같지 않고 거들떠 보지 않는 우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로 힘을 주기도 했었다.

 

제법 많은 단골을 가진 파란풍차였지만,

동네에 넓은 평수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사정은 급변했다.

신흥 아파트 주변으로 화려한(?) 상가들이 생기고,

유명 체인 제과점들이 둘씩이나 들어섰다.

 

사람들은 냉정하다.

간혹가다 여전히 의리(?)를 지키는 우리네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어차피 우리들은 소수일 뿐이다.

 

파란풍차 아저씨가 하던 막걸리집/ 빛바랜 청사초롱처럼 문닫힌 지 오래다.

 

경쟁에서 밀린 아저씨는 그 자리에 막걸리집을 냈고,

어쩌다 들르면 장사가 썩 잘 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겨울 어느날

마을버스 차창너머로 '임대문의'라는 쪽지가 붙은

굳게 닫힌 문짝을 봤다.

 

참 쓸쓸했다.

파란풍차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지금도 곳곳에선

떠날까 말까를 고민하는 또 다른 파란풍차 아저씨들이 많겠지...

그들이 떠나 향할 수 있는 곳은 또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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