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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13
    평등교육 포기로 가고 있다.(3)
    풀소리
  2. 2008/07/23
    촛불집회 - 그 충격과 희망(6)
    풀소리
  3. 2008/07/02
    연행 그리고...(22)
    풀소리

평등교육 포기로 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부자들에게 이익이 되면 뭐라도 하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를

아예 날것으로 드러내놓고 관철해나가고 있기 때문인가?

교육정책도 예전에 감히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못했던

평등교육에 대한 도전의지를

시도 때도 없이 드러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 지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청에서는 큰평수의 대단위 재건축 아파트 지역에 중학교를 설립하면서, 그 지역 아이들만 그 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추진하고 있다.

기존의 중학교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이 다른 선택없이 가야하고...

그리고 기존 중학교는 교육환경이 안 좋기로 아주 유명하다....

 

함께 앞장 서서 싸워야만 할 사람들은 적극적이지 않고,

또 많은 이들은 교육적인 배려가 아닌 집값 문제 등 엉뚱한 방향으로 문제를 끌고 가고...

참 답답하기만 하다.

 

사실 사는 게 정신없어 이게 문제가 되는지 안 되는지 신경도 쓸 수 없는 부모들이나 그 자녀들이 문제다. 학교 운영위원들이나, 학부모 대표들은 맘만 먹으면 제도와 상관없이 다른 곳으로 아이를 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학교 운영위원을 이제는 그만두려고 하는데...

이 문제만이라도 해결하고자 하는데... 사실 마음이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학교 운영위원을 하면서 노골적으로 소외받은 것도 그렇고...

 

교육청에서 간담회를 가지면서 노골적으로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을 가지고 '전교조'를 비방하고,

장광설을 늘어놓으면서도 이의를 제기하면 야비한 방법으로 말을 막고...

학부모 대표라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그들을 비호하고, 나의 말을 막고...

교육청 관계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에라이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고 한발 빼고 싶기도 하고...

 

어찌되었든 이 문제와 관련해서 내일신문에서 독자투고를 요청해왔다.

투고를 하면서 교육청과 시청 홈페이지에도 같은 글을 올렸다.

 



고양시교육청, 명분 없는 학구제 강행 철회해야


고양시교육청은 원당지역에 기존 원당중학교 이외에 성사중학교를 설립하면서 학구제를 강행하려고 하고 있다.

학생들이나 학부모의 의사와 관계없이 원당지역 관내에 원당초등학교 졸업생은 원당중학교로, 성사초등학교 졸업생은 성사중학교로만 배정하겠다는 것이 학구제의 골자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고양시 관내에 중학교가 2개 이상 있는 도시밀집지역 중 학구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이 단 한곳도 없었다. 지금까지 고양시는 생활권이 비슷한 지역에 중학교가 2개 이상 있을 경우 학생수급 문제 등을 고려하여 지역을 통합하여 추첨에 의해 중학교에 배치해왔다. 그런데 원당지역에서 중학교를 신설하면서 도시밀집지역으로는 처음으로 학구제를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교육청은 왜 지금까지와 다른 정책을 유독 원당지역만에서 시행하려고 하는 것일까?


원당중학교는 신도시가 개발되기 전에 설립된 학교로 시설이 열악하고, 통학로가 안정되어 있지 않는 등 교육여건이 매우 좋지 않기로 유명한 학교 중 하나이다. 성사중학교는 도심에 붙어서 신축을 하면서 신축학교답게 모든 교육시설이 이미 완비된 채 2009년 개교를 앞두고 있다. 관내 초등학생 또는 학부모들은 따라서 누구라도 성사중학교로 배정받기를 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교육청이 두 중학교를 분리하는 학구제를 강행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양시교육청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통학거리나 편의성, 지역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심사숙고 끝에 이미 2008년 초부터 학구제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통학거리나 편의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성사중학교 바로 코앞에 있는 우림아파트를 비롯하여 우일시장 지역의 경우 성사중학교가 훨씬 가깝고 편리하다. 그리고 마을버스 등 교통수단으로 본다면 원당역에서 시청에 이르는 구길 주변이 마을버스가 없는 주교동보다 원당중학교로 통학하기가 훨씬 편리하다. 따라서 통학거리나 편의성은 전혀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교육청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심사숙고하여 결정하였다고 하는데, 그 또한 이상하다. 심사숙고를 했다면서 정작 원당초교의 운영위원이나 학부모대표들과는 어떠한 상의도 한 바 없었다. 다만, 2008년 초에 원당초교 6학년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바 있었다고 한다. 그 설문조사에서 학부모들 90% 이상이 원당중학교가 아닌 성사중학교로 배정받길 원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심사숙고의 결과는 원당초교생들은 성사중학교로 배정받을 수 없는 학구제로의 결정이다. 당사자인 학생들이나 학부모의 의견은 전혀 반영하지 않은 심사숙고는 누구를 위한 심사숙고인가?


논리가 궁한 교육청 관계자들은 그 밖에 교육적인 고려를 했다고 한다. 교육적인 고려가 무엇인지 여러 차례 물었는데도 이에 대한 답변이 없다. 교육적인 고려라면 당연히 떳떳하고 자랑스러워야 할 것임에도 교육청 관계자들은 그 내용이 무엇인지 떳떳하게 답변조차 하지 못하면서 ‘교육적인 고려’를 했다는 점을 반복하고 있다.


‘교육적인 고려’에 대해 말 못하는 것은 사실은 ‘비교육적인 고려’를 했기 때문은 아닌가?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5월 19일 공정택 교육감 명의로 "강남구 수서2지구 임대주택 단지 건립사업을 재고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서울시장 앞으로 보낸 바 있다. 임대아파트 건립에 대해 `저소득층이 많아져 교육환경이 나빠진다'는 이유로 말이다. 저소득층에 좀 더 좋은 교육기회를 주어 교육이 사회평등에 기여하겠다고 해야 할 교육청이 강남지역 부자들의 교육의 질 하락을 이유로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것 자체를 막고자 시도하는 그야말로 ‘비교육적인 고려’를 한 전례가 있다.


고양시교육청도 이러한 ‘비교육적인 고려’ 때문에 원당지역에서 학구제를 밀어붙이는 것은 아닌가? 주공아파트 지역에 평수가 넓은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고, 이곳에 사는 아이들만 교육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성사중학교로 배정하고,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 살고 있는 주교동지역 아이들은 교육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쁜 원당중학교로 배정하여 분리하려는 것이 교육청 관계자들이 말하는 ‘교육적 고려’의 내용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고양시교육청은 진정으로 교육적 고려를 한다면 원당지역에 학구제가 아닌 학군제를 즉각 시행하길 강력하게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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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 그 충격과 희망

풀소리님의 [퇴화하는 지능, 발달하는 촉수] 에 관련된 글.

-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기관지에 글을 싣겠다고 "촛불문화제와 노동조합운동" 라는 주제로 촛불집회에 참가하였던 후기를 써달라고 부탁을 했다. 글을 쓰다보니 2005년에 썼던 트랙백을 건 위 제목의 글이 생각났다. 세상은 엄청 변하고 있는데, 그 포스팅을 보니 우리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

 

 

촛불집회 - 그 충격과 희망

 

지금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촛불문화제, 촛불집회는 그 의미를 떠나 분석 자체도 매우 다양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 간부로써 노동조합 운동 측면에만 한정해서 촛불문화제 참가기를 쓰고자 한다.


여중생, 여고생들이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들기 시작했을 때, 그 파장이 이렇게까지 크게 번질지 예측하는 이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재개를 발표하고, 분노한 시민들이 대규모 촛불문화제를  개최하면서 촛불집회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나뿐만이 아니고 노동조합 운동을 하는 사람들치고 당혹해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 ‘당혹’의 정체는 무엇일까? 내게 그것은 무엇보다도 ‘뻘쭘’함이었다. 이른바 ‘선수’ 또는 ‘꾼’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간부들인데, 촛불문화제에선 낄 자리가 마땅치 않았고, 깃발 드는 것조차 어색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민들은 초기에 깃발을 거부하기도 했다.)

구호도, 노래도, 집회 방식도 어느 하나 생소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몇 만 명이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모습도 감동이면서도 충격이었다. 거침없는 발언은 또 어떤가. 무질서한 것 같으면서도 생동감 있는 질서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밤을 새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완강함은 또 어떠한가.


우리도 활기찬 집회를 했었던 적이 있었지... 그런데 그것이 먼 옛날의 추억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지금은 형식만 남아있는 듯한 우리의 집회는 왜 이런 모습을 띄게 된 것일까.

자발성, 소외되지 않는 다수의 참여, 지적인 공유, 완강함 이런 단어들로 정리될 수 있는 촛불집회를 보면서 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노총 소속으로 진보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이 사회의 가장 앞에서 서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촛불집회를 보면서 우리가 시민들보다 저 멀리 처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뒤처져 있는 것일까. 우리를 뒤처지게 한 동인은 무엇일까. 그동안 끊임없이 당해왔던 정부의 탄압과 보수언론의 뭇매에 주눅이 들고, 자신감을 상실해서인가. 아님 우리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인가. 우리는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진전시켜나가야 할 것인가.

난 외부의 문제보다는 내부의 문제를 중시하는 편이다. 우리 자신이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비록 한 때 외부의 탄압에 의해 위축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이길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내가 경험했던 80년대가 그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담 가장 큰 내부 문제는 무엇인가. 80만 조합원이라는 적지 않은, 그것도 다양한 투쟁을 경험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조직화된 조합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렇다 할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만나는 이들마다 해석이 다양했다. 다양한 해석 속에 내 가슴에 가장 와 닿는 말은 ‘진정성의 상실’이었다. 그래. 우리의 문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진정성의 상실’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지긋지긋한 정파의 대립. 다양성의 공존이나, 타협이 아니라, 승자독식이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의사구조. 비전을 보이고, 설득을 하고, 포용을 하고자 하는 이성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이 돼버렸고, 단지 정파의 이익이라는 적절한 페르몬 분비와 그것을 감지할 촉수만 발달시키면 되는 구조. 우리 조직구조의 슬픈 모습이다. 그 속에서 세력을 키우고 혜택을 보는 건 ‘기회주의’와 ‘출세주의’일 뿐이고, 조직의 힘은 내부로부터 소모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번 촛불집회는 그 귀결이 어떻게 될 것인지 난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일정 성과를 내고 종료되든, 설령 성과 없이 종료된다고 하더라도 촛불집회가 남긴 영향은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들 것이라는 것은 분명할 것 같다.

촛불집회에서 보여주었던 자발성, 소외되지 않는 다수의 참여, 완강함. 무엇보다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활발한 상호 토론과 지적인 공유는 우리 사회 의사결정구조와 정치결정구조를 예전과 매우 다른 구조로 바꿔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노동조합운동으로 돌아오자. 그렇다면 노동조합운동은 이번 촛불집회로부터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진전시킬 수 있을까.

과연 노동조합운동은 촛불집회의 세례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난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선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은 외부의 영향이 내부로 전달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내용이 온전하게 전달되지도 않는다. 나쁜 의미로 말하는 게 아니라 구조 자체가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집회의 영향이 당장 온전하게 노동조합 내부로 미칠 것 같진 않다. 그렇게 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란 얘기다.


여기까진 조합원들 얘기다. 그렇담 노동조합 운동을 주도하고 상대적으로 외부와 밀접하게 소통해야 하는 임원들이나 간부들은 어떠한가.

많은 임원들과 간부들이 촛불집회의 세례를 노동조합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조합원들이 한명이라도 더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려고 애쓰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그렇담 희망적이란 말인가. 나는 자신할 수 없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관성이 있는 것이고, 그 관성은 쉽게 변형되지 않는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임원들과 간부들이 이번 촛불집회를 계기로 많은 반성과 각성을 하였고, 앞으로도 하겠지만, 과연 기존의 조직관성을 바꿀 수 있는 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미 촛불집회 참여와 미국 쇠고기 수송저지 및 총파업 등에서 민주노총은 이전과 획기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내부의 한숨소리도 여전하다. 많은 간부들은 떠나고 있다. 획기적인 변화는 집권세력의 자기반성과 혁신에 힘입든지, 또는 집권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대안세력의 출현으로 가능하다. 어찌됐든 지금 당장은 두 가지 방식 모두 불가능한 것 같다.

 

하지만, 촛불집회의 성과가 사회에 골고루 퍼지고, 조합원들이 그 성과에 널리 공감한다면 그 힘은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언젠가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다만 그때가 언제쯤 가능할 지는 나로선 예측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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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 그리고...

1.
촛불집회를 보면서 많은 시민들 뿐만아니라,
정치권은 또 정치권대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충격을 받은 것으로 하면 어쩌면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누구 못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들이 이 사회를 바꾸는 데 가장 앞에 서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는데,
촛불집회는 자신들이 일반 시민들보다 한참 뒤쳐져 있는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찌됐든 지금 민주노총은 그 특유의 뚝심도, 자신감도 잃어버린 것 같고,
촛불정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그나마 내가 속한 운수노조는 화물파업 등을 거치면서 수송거부 등으로 시민들로부터 과분한 관심과 찬사를 받았을 뿐입니다.

미국쇠고기 수입이 고시되고,
검역이 끝나고, 이제 공공연히 출하를 하겠다는 상황에서 우리는 용인에 있는 강동냉장 창고앞으로 갔습니다.

강동냉장은 아시다시피 360여톤에 이르는 수도권에 두번째로 많은 미국쇠고기가 냉장되어 있는 창고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일행이 겨우 20여명에 불과했고,
경찰은 닭장차만 20대정도 와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간부 중심으로 100여명의 조합원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모두 잡혀갈 것을 각오하고 일전을 불사할 것인가.
아니면 소수의 희생자만 나오는 전술을 쓸 것인가 선택만 남았었습니다.

물론 100여명이 일전을 불사하고 덤벼도 진압되는 것은 순식간이었을 것입니다.
소수의 희생자만 나오는 전술을 쓰는 것은
어쩌면 몰락한 종가집에서 체면치례 제사를 준비하는 것처럼 구차하고, 한편 가슴 아픈 것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소수의 희생자를 내자는 안이 결정되었고,
상대적으로 깨끗한(?) 이력을 가진 사람을 뽑다보니 저도 뽑혔습니다.
몸이 몹시 좋지 않은 상태였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마디 외치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제압.
각오는 했었지만 쪽팔리는 일이었습니다.


2.
체포된 후 성남 중원경찰서로 이송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형사들 참 싹싹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간부들이라 미리 그렇게 지침을 받았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나를 조사한 형사계장은 경찰대학을 나온 20대 뽀송뽀송한 청년이었습니다.
마치 자신이 죄지은 것처럼 말을 낮추는데,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었습니다.

형사과장은 오종렬 의장의 고동학교 제자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자주만난다며 괜히 말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조사를 마쳤습니다.
조사 끝나고 약도 사다줬고요.

저녁 8시쯤 유치장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유치장은 오랫동안 쓰지 않았었다고 하였습니다.
냄새나는 담요, 먼지쌓인 바닥, 막혀있는 환기창
말 그대로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래도 치솔, 치약, 수건을 제공하고,
책도 마음대로 볼 수 있도록 많은 책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간수(?)들은 커피도 주겠다며 친절하게 굴었습니다.
우리 일행도 대부분 이런 환경에 이골이 난지라 서로 능숙하게 상황을 넘겼습니다.

나는 몸살로 냄새나는 담요를 덮어쓰고 먼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3.
연행되기 전에 동료들이 '푹 쉬었다 오세요.' 하며 일면 부러움을 보였습니다.

사실 환경만 좋다면 1박2일 또는 48시간 구금되는 것도 나같은 상근자들에게는 나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함께 연행된 이들도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습니다.
오랫만에 맘놓고 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구금 24시간을 넘기면서 서서히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갇혀있다는 부자유를 몸이 느끼나 봅니다.

어찌됐든 저녁 7시쯤 석방된다는 통보가 왔고,
7시 30분쯤 수속을 받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일행은 술먹기 좋은 시간이라며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는데,
저는 몸이 안 좋아 그냥 집으로 왔습니다.


4.
별일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소식을 전해왔고, 면회를 왔습니다.
심지어 빠리에 가있는 김해근으로부터 위로 문자가 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면회를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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