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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라이> 호의도 짐이 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도착한 치앙라이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에는 방이 없다. 것도 한국인들로 다 찬 게 아니라 무슨 자격시험인가를 보러 온 태국 학생들도 만원이다, 주인아주머니의 배려로 안채의 손님방에 짐을 풀고 나니 벌써 저녁 무렵이다. 트레킹을 알아보니 뭐 일반 트레킹도 가능하긴 하지만 주인아저씨 차로 다니는 게 더 나은데 이 분이 방콕에 가셨다가 내일 저녁에나 오신단다. 어차피 트레킹은 모레나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내일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치앙라이 나이트 바자를 한 바퀴 돈다. 치앙마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더 아기자기하니 볼 만하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븐데 하면서 화덕에다 구워 주는 피자와 스파게티까지 먹고 동네 교회에서 공짜 음식까지 먹고 들어오니 제법 북적일거라 생각했던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엔 아무도 없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그간의 주독이나 풀자 하며 일찍 잠이 든다. 특별한 날에는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건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만은 아닌가 보다^^.


피자와 스파케티 먹기 전에 나온 크리스마스 프레젠트, 버섯위에 크림 소스같은 걸 올렸는데 너무 예뻐 먹기가 아까웠다.



피자와 스파게티, 우리의 크리스마스 만찬이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태국에서는 사진이 없다. 이미 밝혔듯이 카메라는 장렬히 전사했으니 미얀마편까지는 그냥 사진없이 보셔야 할 듯 하다.


다음날 돌아온다던 주인아저씨는 무슨 사정으로 하루가 늦어지고 나는 그저 책이나 읽으며, 안숙은 치앙라이 시내나 돌아보며 하루를 보낸다. 그날 저녁엔 술자리를 기다리다 지친 우리가 그냥 판을 벌인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캔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겨울에만 시간이 나 여행을 다닌다는 아저씨와 혼자 여행 온 스케쥴 빡빡한 삼십대 아가씨가 함께 한다. 대체 겨울에만 시간이 나는 직업이 뭘까 궁금했는데 이 아저씨 알고 보니 귀농하신 분이란다^^. 그래 농부는 겨울에는 쉬지, 이른바 농.한.기. 생긴 건 꼭 일본 작가처럼 생긴 이 아저씨는 이후 사흘 동안 우리와 동고동락을 같이 하게 되는데 그나마 이 아저씨라도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님 그 많은 술자리들을 어찌 견뎠나 싶다^^ 여튼 그날 혼자서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 온천을 다녀왔다는 아저씨말로는 매쌀롱이 온천에서 멀지 않다고 해서 오토바이만 탈 줄 안다면 오토바이로 가면 좋겠다.. 오토바이 탈 줄 알면 여행이 정말 편할 텐데.. 했더니 이 아저씨 오토바이 가르쳐 줄 테니 나는 배워서 타고 안숙은 아저씨 뒤에 타고 내일 매쌀롱에 가잖다. 뭐 술김에 그러자고 한다.


담날 나가보니 이 아저씨 자기가 어제 빌린 오토바이로 연습을 해 보자며 이것저것 가르쳐준다. 술김에 큰 소리는 쳤는데 막상 타려고 하니 무.섭.다. 그래도 안 탄다 소리는 못하고 한 번 올라타 본다. 의외로 중심잡는 건 어렵지 않은데 손잡이를 조금만 돌려도 가속이 붙으니 영 불안하다. 그나마 차 안다니는 골목길만 한 바퀴 돌고 내린다. 이 아저씨 그새 상황을 파악한 듯 오토바이 타고 가기는 어렵겠다 하는 표정이다. 그때 때맞춰 비도 내려주셔 그냥 버스를 타고 움직이기로 한다. 막 버스를 타러 나가려는데 소리도 요란하게 이 집 사장님이 돌아오신다. 이 집 사장님과 이 아저씨의 동생은 얼마 전에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 몇날 며칠을 술로 지새다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는데 이 아저씨를 무슨 친형님이나 되는 듯이 정선생님이라며 깍듯이 모신다. 덕분에 어영부영 우리도 정선생님 일행쯤으로 격상(?)한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매쌀롱을 다녀오려 한다니까 느닷없이 같이 가자고 나선다. 본인의 차는 무슨 일로 경찰서에 있다면서 차까지 렌트해 오는데 그 일처리가 워낙 시끄러우면서도 순식간에 이루어져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매쌀롱으로 가는 차안에 있다. 으.. 이게 투언지. 투어면 얼마인지.. 뭐 그런 건 물어볼 틈도 없다.


가는 길에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소수 민족 마을 한 곳을 들렀다가 매쌀롱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무렵이다. 매쌀롱은 장개석의 국민군이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다 결국 태국 국경을 넘어 정착한 곳으로 마을에 국민군의 기념관까지 있는 전형적인 중국인 마을이다. 사장님 말로는 대만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곳으로 본토 중국인들은 관광도 오지 않는 곳이라 한다. 그곳에서 국수맛이 기가 막히다는 중국집을 찾아갔으나 이미 영업이 끝났고 아침에 내린 비 탓인지 안개가 심하게 끼어 경치도 구경하긴 어려웠지만 간만에 편안한 차를 타고 안개 속을 드라이브하는 기분은 그만이다. 차안에서도 사장님은 계속 자신이 지원하는 소수민족 마을 이야기, 치앙라이를 통해 내려오는 탈북자들과 그 탈북자들을 자신들의 돈벌이와 명예욕에 이용하는 기독교 엔지오 단체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마침 안숙이 탈북자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으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니까 당장 치앙라이로 와서 작업을 하라며 성화다, 모든 소스는 다 본인에게 있으니 와서 찍기만 하면 대박이라고 그냥 오기만 하면 된다는데 안숙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교묘하게 이리저리 피하느라 난감해한다. 여튼 안숙은 미스리도 됐다가 이동생-성이 이씨라^^-도 됐다가 하면서 사장님 관심의 대상이 된다. 덕분에 정선생님과 나는 편안하게 경치나 구경하면서 돌아온다.


미해병대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 외에도 말도 많고, 정도 많고, 술도 좋아하는 이 사장님에게-어느 정도로 술을 좋아하냐 하면 아주머니가 게스트하우스에서 파는 술까지 모조리 다 치워버렸을 정도로 많이 드신단다- 소수민족 마을지원과 탈북자 문제 이외에도 또 한가지 관심사가 있었으니 커피가 그것이다. 한때 마약 재배의 온상이었다는 이곳에 정부와 유엔의 규제로 대체 작물을 심기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이 커피였다고 한다. 그 중 도이창-도이는 산이고 창은 코끼리이므로 대충 코끼리산이라는 곳이다-이라는 곳에서 몇몇 커피 농가들이 우리나라로 치면 협동조합 같은 만들어 공동 생산과 판매를 하는 것은 물론 커피전문체인점까지 내 그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이 사장님이 아마 그 도이창 커피조합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 듯 하다. 사실 본인은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하셨지만 결국 우리는 아무리 추리해도 그 역할이 무엇인지 정리해 낼 수 없었다^^. 여튼 매쌀롱에서 돌아와 거한 저녁과 함께 시작된 술자리는 일이차에 걸쳐 양주를 마시고 삼차로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맥주를 마신 뒤에야 끝이 난다. 뭐 우린 별 말도 못하고 그저 네네 아니, 뭐..를 연발하고 뭐 정선생님이라고 별 수 있나.. 아.. 네네 하다가 내일은 커피 농장에 가자는 말에 얼떨결에 그러죠.. 한다.


다음날 잠도 술도 채 깨기 전에 미스 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채 샤워도 못하고 주섬주섬 나가보니 커피 농장을 올라가잖다. 그러더니 차에 타자 다시 일정이 바뀐다. 탈북자들을 한 번 만나보겠냐며 탈북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곳이 있는데 빵이라도 넣어주고 가자고 하신다. 뭐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 마트에 들러 빵과 물을 사서 간다. 그냥 이 돈만은 우리가 내겠다고 우겨 빵값을 내고 따라가 보니 태국 이민국이다. 말이 이민국이지 그냥 경찰서 유치장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래도 태국땅에서 잡혔으니 이곳에 얼마간 수용되어 있다가 한국으로 보내지는 모양인데 꽤 연세가 많은 할머니부터 귀를 다친 어린 아이까지 그 연령이며 상태도 다양하다. 그래도 한민족인데 목숨을 걸고 빠져나와 결국 이국땅에 수용되어 있는 걸 보니 맘이 편칠 않다. 한국으로 빨리 갈 수 있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돈에 의해 결정된다는데 여기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커넥션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결국 사장님은 이 사람들이 조사받는데 통역까지 해 주시게 되어 그날 커피농장에 올라가는 일정은 무산되고 그냥 미얀마 국경지대인 치앙센과 골든트라이앵글을 돌아보는 것으로 하루가 지난다.


저녁엔 또 술자리가 이어진다. 뭐 내가 아무리 과음을 외쳤기로서니 사흘 연속 음주 게다가 과음은 쉬운 일이 아닌데다 술자리도 그리 즐겁지만은 않으니-사실 매번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 사람과의 술자리는 한 번으로 족한 법이다- 오늘은 좀 피하고 싶은데 이미 이런저런 신세를 진 다음이니 어쩔 수 없는 분위기다. 이 날 저녁쯤 되니 슬슬 황당해지기 시작한다. 도무지 일정도, 몸상태도 말이 아닌데다가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건지, 이게 돈을 내는 건지 아닌지, 아니라면 이  호의의 정체는 무엇인지, 일정은 점점 늘어지는데 앞날을 알 수 없으니 조금 답답한 마음이 된다. 게다가 사모님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화가 나신 것도 같고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결국 정선생님에게 총대를 메게 하고 우리는 술자리를 빠져나온다. 뭔가 개운치 않다. 같이 다니던 정선생님도 그리 개운치는 않은 표정이다. 나중에 슬쩍 이런 기분에 대해 비췄더니 했더니 정선생님도 그렇단다.


글쎄..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도 답을 모르겠다. 상대방의 격의 없는 호의를 받아들이는 방법 아니 좀 일방적인 호의 표시에 대처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건데 사실 여행에는 절대 공짜가 없다고 생각하는 -뭐 어디 여행뿐이겠는가 인생도 대체로 그렇긴 하다- 나로서는 그 분이 생면부지의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이 분명히 호의였음에도 내내 뭔가 확실한 것 없이 진행되는 상황이 불편함을 넘어 짜증스러움까지 이어지는데 참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더라는 거다. 그렇다고 확실한 의사 표시를 하기에는 얼마간의 미안함도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 버렸는데 사실 나의 그 어정쩡한 상태가 더 싫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것도 좀 맘에 걸린다. 여튼 그 정도의 호의를 아무에게나 보일 수 있는 사람도 흔한 종류의 사람은 아닐진대 만약 이글을 읽게 되면-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런 면에서는 진보넷에 블로그를 개설한 건 꽤 괜찮은 선택이었던 듯 싶다^^- 자신의 맘도 몰라주는 싸가지 없는 인간에 대해 아마 맘이 몹시 상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되겠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기중심적인 호의가 주는 불편함에 대해 그 분도 조금은 아셨으면 하는 맘도 한편으론 든다.


그래도 커피 농장까진 들렀다 가자고 안숙과 합의를 보고 담날 다시 차에 실려 도이창에 있다는 커피 농장에 간다. 커피 농장 가는 길은 우기에는 거의 길이 끊기다시피 한다는 굽이굽이 비포장 산길인데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올라간 곳은 커피나무가 산을 덮고 있다. 이곳에서 열매 따는 것에서부터 말리고 가공하는 공정까지 모두 이루어지는데 그 규모가 제법 크다. 이곳에서 뽑아주는 커피 맛은 거의 예술에 가까운데 커피가 가지고 있다는 다섯가지 맛이 절묘하게 섞여 혀끝에서 감돈다. 이곳에서 점심까지 거하게 얻어먹고 내려온다. 내려와서 슬쩍 빠져 정선생민과 셋이서 술자리를 가진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비용 애기가 나온다. 괜히 투어비 운운하면 오히려 화를 낼 것 같아 그냥 적당한 비용을 두고 오기로 한다. 게스트하우스의 매니저 격인 조카를 불러서 적당히 돈을 주고 아침에 일찍 사장님 내외가 자는 사이에 그냥 나온다. 이게 잘하는 건지 어쩐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그러는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막상 나오고 나니 그래도 그 덕분에 그냥 투어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한 소중한 곳이었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든다. 중국으로 배타고 떠나신다는 정선생님과의 인사를 뒤로 하고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아무래도 치앙라이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 인지 그냥 냅다 남부로 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낮차는 힘들 것 같아 다시 치앙마이로 가서 밤차를 탄다. 방콕에 아침에 도착하면 다시 그날 밤차를 타고 끄라비로 내려가는 일정이다. 윽 음주에 몸을 피곤할 대로 피곤한데 이틀 연속 밤차를 타야 하다니.. 체력이 받쳐줄지 모르겠다. 며칠만 있으면 나도 마흔이란 말이닷!! -사실 마흔이 되면 떨어지는 체력대신 그만큼의 배려와 참을성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지만 나도 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건 그저 생기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사람은 그리 많이 변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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