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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빠삭> 영어가 웬수다

 

짬빠삭은 왓푸라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있는 메콩강변의 조그만 마을이다. 사실 빡세에서 30km쯤 떨어져 있는 곳이라 빡세에서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다녀오면 되는 곳이지만 어차피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니 굳이 다시 돌아오기도 번거로운데다 있는 거라곤 시간뿐이니 그냥 짬빠삭에서 하루이틀 묵어 가기로 한다. 정보에 따르면 9시와 11시에 남부터미널에서 사람이 다 차는대로 트럭버스가 떠난다고 하니 대충 9시 경에 터미널로 나가본다. 뭐 터미널이래야 흙먼지 풀풀 날리는 벌판에 버스 몇 대와 좌판 몇 개 벌여놓은 게 다긴 하지만 그래도 남부로 가는 차들은 죄다 이곳에서 떠난다는 교통의 요지다.


물어물어 찾아간 짬빠삭행 버스는 제법 큰 트럭버스다. 언제 출발하냐고 물었더니 땅바닥에 11이라고 쓴다. 아직 9시도 채 안됐는데 9시 버스는 벌써 떠났는지 흔적도 없고 이 버스는 11시에 떠난다니 그 시간 동안 뭘하나 하며 터미널 주변을 기웃대고 있는데 30분도 채 안 지나나 갑자기 기사가 타라고 손짓을 한다. 나 하나 싣고 떠날 리는 없고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싶어 그냥 타고 보니 온 길을 되짚어 시내 근처의 시장 쪽으로 간다. 그러더니 트럭 지붕에서 끝도 없이 짐을 내리고 또 싣는다. 이 버스의 기능은 단지 사람만 수송하는데 있는 건 같지는 않다^^. 그러더니 사람이 하나둘 타기 시작한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남부터미널이 출발지라고 했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모르겠다. 바닥은 어느새 각종 보따리와 비닐봉지도 가득찬다. 그러더니 정말 11시가 조금 넘어서 출발한다.


빡세의 남부터미널, 물론 북부터미널도 따로 있다^^


대략 사람이 이 정도는 차줘야 차가 떠난다.


한시간이나 달렸을까.. 이번에는 강이 가로막는다. 차를 배에 싣고 내리는데 한시간.. 결국 30km 떨어진 마을까지 오는데 4시간이 걸린 셈이다. 마을 입구에서 하염없이 짐을 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이번엔 또 언제 가나 하고 있는데 사람 좋아보이는 아저씨가 말을 붙인다. 손님 픽업 나온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다. 이름을 들어보니 가이드북에 있는 이름인 건 같아 얼른 내린다. 아저씨의 뚝뚝을 타고 메콩강이 바라보이는 숙소에 짐을 푼다. 방값은 2달러, 비록 더운물은 안 나오지만 그래도 개인 욕실이 달려 있는 방이다. 짬빠삭은 워낙 작은 마을이라 픽업당해 온 1km 남짓한 길이 메인도로이자 마을의 전부이다. 동네 구경이나 나가야지 하고 갔다가 그저 골목의 집들만 실컷 보고 돌아온다.  


선착장, 이곳에서 차를 배에 싣고 강을 건넌다.


산책 나갔다 만난 동네 아이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작은 마을에 오니 사람들도 착해지는지 저녁을 먹으려고 혼자 앉아 있으니 일군의 다국적 인간들이 같이 저녁을 먹자고 권해 온다. 영국인 부부, 호주 아줌마, 스페인 처녀 그리고 독일 커플이다. 이름도 수에 파멜라에 그레이엄에 엘사까지 뭐 영화에나 나옴직함 이름들이다. 그나마 처음에 여행 영어를 할 때는 이래저래 묻기도 하고 대답도 되더니 점점 일상 대화로 흐르니 말도 무지무지 빨라지고 대략 내용의 30% 정도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것도 내가 이런 내용일거야 짐작한거지 사실인지 아닌지야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저녁 먹는 두세 시간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하고 있다가 새삼 영어 공부 안하고 뭐 했는지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후회는 후회고 현실은 현실인터 내일 저녁 먹을 때는 저 사람들을 꼭 피해서 먹어야지 다짐해 본다^^.

 

다음날은 자전거를 타고 왓푸에 다녀온다. 앙코르와트를 만든 크메르인들이 만들었다는 이 사원은 앙코르와트보다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탑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산을 따라 지형을 높이하면서 만든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곳이다. 짬빠삭에서 왓푸까지는 8km 떨어져 있는데 자전거로 1시간쯤 걸린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 사이로 벼베기가 끝난 논들이 펼쳐져 있고 중간 중간에 그림 같은 마을들을 지나친다. 다행히 구름이 약간 끼어 있어 햇살도 그리 뜨겁지 않다. 왓푸도 여느 유적들이 그렇듯 원래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무너져 있다. 그나마 앙코르와트는 세계 각국의 도움이라도 있어 계속적인 수리를 하고 있지만 여기는 그냥 더 이상 안 무너지게 대충 갈무리만 해 놓은 듯 여기저기 잔해들이 굴러다닌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 중앙 성소에 이르니 힌두석실 안에 금박을 입은 부처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국교가 힌두교에서 불교로 바뀌면서 생긴 현상이라는데 그러보니 앙코르와트에도 여기저기 불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앙코르와트의 불상은 그렇지 않더니만 이건 금박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이물감이 느껴진다.


왓 푸, 얘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이다


중앙 성소로 오르는 길


중앙 성소에서 바라본 왓 푸


왓푸는 왓푸 자체보다 중앙 성소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근사하다. 가깝게는 욋푸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멀리는 메콩강도 보이고 넓은 라오스의 평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천몇백년 크메르인 누군가가 깍았을 돌 위에 한참을 앉아 있는다. 앙코르와트처럼 관광객이 떼로 몰려 다니는 곳이 아니라 조용하게 앉아 쉬기에는 그만이다. 내려오는 길에 그저 구색이나 맞추려고 지은 듯한 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다. 어둡기 전에 돌아오려고 조금 서두른다. 도로는 평평한데 군데군데 길이 패여 어두워지면 자전거를 타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숙소에 돌아와 보니 어제 본 일군의 인간들은 모두 떠났는지 보이지 않는다. ㅎㅎ 다행이다. 주인아저씨에게 다음 행선지인 돈콩 가는 길을 물어보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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