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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앙짠1> 일정이 꼬인다

 

방콕의 카오산 로드는 벌써 성수기가 시작된 건지 아님 일년 내내 그런 건지 거리마다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전에 왔을 땐 태국이 좀 못사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 비하면 여긴 거의 선진국 수준이다^^. 느닷없이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한 아이처럼 세븐일레븐도 있고, 버거킹도 있네.. 하면서 새삼 신기해하며 거리를 다닌다. 원래는 방콕에 도착해 한 일주일 빈둥거리면서 12월 초에 태국으로 온다는 일산주민이나 기다리려고 했는데 막상 연락을 취해 보니 일산주민의 일정이 열흘 정도 늦추어진단다. 어라, 그럼 대략 보름을 빈둥거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대략 난감이다. 일산주민은 태국이든 말레이시아든 아무데나 갔다 오라지만 태국이야 일산주민과 같이 다니는 것이 일정상 훨씬 낫고, 말레이시아 쪽으로 가자니 물가도 만만치 않은데다 볼만한 관광지가 죄다 해변이라 별로 내키지 않는다. 고민 끝에 일산주민에게 일정을 사오일 더 늦추라고 하고 미얀마를 먼저 다녀오기로 한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한다. 일단은 비행기표와 비자가 필요한데 비행기표는 원하는 날짜에 다행히 있다. 문제는 비자인데 대행하면 4일이 걸린단다. 하지만 그 4일이란 게 휴일을 제외한 기간이라 토요일, 일요일 하고도 하필이면 월요일이 태국 국왕 생일이라 공휴일, 이렇게 휴일 삼일을 더하니 이래저래 비자 발급에 일주일이나 걸리는 셈이다. 안 그래도 미얀마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삼주 남짓인데 방콕에서 일주일이나 시간을 잡아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홍익여행사 사장님이 직접 대사관에 가서 급행으로 처리하면 하루만에도 발급이 되니 직접 가보라고 한다. 그러지 뭐.. 대행료도 굳히고 오히려 잘 됐다 싶어 직접 대사관으로 가기로 한다.


비자 신청은 일반적으로 오전에만 업무를 본다고 하니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선다. 접수하러 왔다갔다, 찾을 때 왔다갔다, 네 번을 택시 타면 비자 발급 비용보다 택시비가 더 나오지 싶어 물어물어 버스를 탄다. 다행히 버스에서 헤매지는 않았지만 태국의 악명 높은 트래픽 잼에 걸려 업무 시작 시간보다 20분 늦게 도착한다. 미얀마 대사관 안은 벌써 사람들로 가득하다. 관광비자 신청용지를 작성하고 접수줄을 찾아보니 사람들이 그냥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의자를 따라 줄이 이루어져 있다. 끄트머리에 앉아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려 보니 대략 삼사십 명 수준이다. 업무 시간이 12시까지니까 대략 오전에 접수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앉아서 기다리는데 웬걸 처리 속도가 장난이 아니게 느리다. 한 시간에 다섯 사람이 안줄어드는 데 이건 황당 그 자체다. 다시 가만히 살펴보니 비자 접수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여행사 대행 업자들로 보이는데 이 사람들이 한번에 이삼십 명분을 접수시키니 컴퓨터도 없이 수기로 처리하는 창구에서 저 정도 하면 느린 것도 아니다 싶다.


결국 오전 업무가 끝나고 줄 선 순서대로 이름을 적더니 점심 먹고 한 시간 후에 오란다. 사람이 많아서 오후에도 업무를 보나 하면서 이름을 적는다. 21번이다. 1시에 시작된 오후 업무는 3시가 되자 마감이 된다. 다시 이름을 적더니 다음날 오란다. 이번엔 13번이다. 두 시간 동안 8명이 줄어든 셈이다. 한시간당 평균 네 명쯤으로 계산해 보면 오전 업무 시간이 세 시간이니 내일 오전에도 가능할지 말지 한 상황이다. 하지만 뭐 별다른 방법이 있나.. 그저 오라는 대로 다시 올 수밖에.. 홍익여행사에 돌아가 상황을 설명하니 사장님도 황당해 한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데 뭐 어찌 된 노릇인지 파악이 되질 않는다. 여튼 담날에는 비자 접수가 될 테니 오전에 접수되면 오후에, 최악의 경우 오후에 접수가 되더라도 그 다음날 오전에는 찾을 수 있을 테니 안전하게 그 다음날 저녁 비행기표를 끊어 놓는다.


다음날은 트래픽 잼을 감안해 꼭두새벽에 길을 나선다. 여덟시 반경에 대사관에 도착하니 벌써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다. 이러다가 대기번호가 무용지물이 되는 건 아닌가 싶어 얼른 끄트머리에 가서 줄을 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사관 문이 열리자 어제 대기 번호대로 줄이 정렬된다. 다시 지루한 시간이 이어지고 이번에는 좀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사십 줄의 한국남자 하나가 비자 신청서를 쓰고 있는 게 보인다. 차림새로 보니 여행자는 아닌 것 같은데 사업차 미얀마에 가나 싶어 말을 건네 본다. 미얀마에서 6년째 선교를 하고 있는 목사님인데 늘 비자를 대행시키다가 일정이 급해 직접 왔다고 한다. 내 경우를 미루어 보면 이 목사님 지금 줄을 서봐야 낼 오전 접수도 힘들지 싶어 내 것과 같이 접수를 시켜주겠다고 한다. 뭐 일종의 새치기라고 보면 된다^^다행히 내 앞에는 개인여행자가 몇 명 있어 오전에 접수가 된다. 목사님의 비자신청서도 다행히 같이 접수가 된다. 오후 4시에 비자를 찾으러 오라기에 점심이나 먹고 시내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비자를 찾으러 다시 대사관으로 간다.   


그러나 당연히 발급될 줄 알았던 비자는 발급이 거절된다. 목사님과 나 둘 다 거절이란다. 나의 거절 사유는 직업난에 회사 이름을 미디어센터라고 썼다는 것인데 미얀마에서는 기자나 저널리스트 등의 미디어관련 종사자에게는 비자 발급이 안 된다는 것이다. 참 미디어 관련된 일이 기자만 있나 원.. 짧은 영어로 미디어센터가 그런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고 설명해 봐야 신청서에 붙어 있던 사진과 발급 비용을 돌려주곤 그만이다. 그 사이 다른 담당자와 미얀마말로 이야기를 하고 있던 목사님도 상황은 마찬가지인지 그대로 돌아선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이 목사님은 탈북자 문제랑 연관되어 미얀마에서 추방된 상태였다고 한다. 다시 들어가는 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한국대사관과는 이야기가 되었다는데 그 이야기가 미얀마 정부랑은 안 되었던 모양이다^^ 거절 사유가 내 직업 때문인지 아님 그 목사님과 일행으로 보였기 때문인지는 아님 둘 다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일년에 한두 건 있을까 말까한 사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갑자기 막막해진다. 비행기표는 할인항공권이라 환불도 안 되는데다 꼼짝없이 방콕에 이십일이나 발이 묶여 있어야 하나 심란하기 그지없다. 홍익여행사로 돌아가 일단 비행기표를 연기시켜 놓는다. 다행히 비행기표는 환불은 안되도 유효 기간은 넉넉한 편이라 다른 방법으로 미얀마 비자를 받을 방법을 알아본다. 홍익여행사 사장님이 라오스에도 미얀마 대사관이 있다고 귀뜸해 준다. 라오스는 비자 기간이 십오일이니 비자를 받고도 남부 지역을 한바퀴 둘러볼 만한 시간이 된다, 문제는 태국에서 거절당한 비자를 라오스에서 발급해 줄까 인데 밑져야 본전인데다 미얀마의 전산이 그리 훌륭하지 않다는데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다. 부랴부랴 일산주민에게 다시 연락을 취해보니 다행히 아직 항공권을 끊지는 않은 상태다. 사오일 늦추었던 일정을 다시 앞당겨 16일경에 만나기로 하고 12월 1일 밤버스를 탄다. 위앙짠 도착이 금요일 아침이니 당일로 미얀마 비자를 신청하고 바로 라오스 남부로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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