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빡세> 다시 길을 떠나다

빡세로 가는 여행자 버스가 풀이라 로컬버스를 탄다. 예약을 미리 해두긴 했지만 픽업을 하러 오는 게 아니라 남부터미널까지 직접 나가야 한단다. 시내에서 거의 10킬로 떨어진 곳까지 닛이 오토바이를 태워준다. 기름값이나 하라고 얼마간 쥐어주긴 했지만 언니 언니하며 데려다준 그 마음이 고맙다. 다시 라오스에 올거라고 그때 다시 보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닛은 영어가 안되고 나도 라오스말이 안되니 그저 꼭 껴안았다 놓는 걸로 말을 대신한다. 닛을 보내고 버스를 탄다. 빡세로 가는 밤버스는 로컬버스긴 해도 V.I.P버스라 그런지 시설도 좋고 도시락이랑 물도 준다. 이전 밤버스의 경험으로 긴팔을 입고 차에 있는 담요까지 뒤집어 썼는데도 추워서 잠이 오질 않는다. 아무리 에어컨 버스라도 그렇지 날씨가 이리 쌀쌀한데 에어콘을 끝까지 틀어대는 이유는 정말 알 수가 없다. 자다깨다 바라본 창밖에는 쏟아질 듯 별들이 반짝인다. 내 생전 저렇게 많은 별들을 본 적이 있을까. 별들은 밤새도록 버스를 따라 온다.


라오스 남부의 중심도시인 빡세에 도착하니 중심 도시 같지 않은 한가함이 느껴진다. 그저 여느 도시에 도착해서 하는 것처럼 강가도 거닐어 보고 사원도 들러본다. 어디를 가도 조용하고 느긋한 시간들이다. 트래블 게릴라에서 봐둔 커피집을 찾아간다. 베트남 커피뿐 아니라 라오 카피도 질이 좋기도 유명하다는데 그 대부분이 이 남부 지방의 볼레본 고원에서 생산되는 것이라 한다, 어디나 맛있는 집이 그렇듯 이집 커피도 다른 커피에 비해 대략 두배 쯤 되는 가격을 받고 있는데 두배 아니라 세배를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맛이 탁월하다. 베트남  커피도 집마다 다 맛이 달라 정말 맛있는 곳은 두세 곳에 불과했는데 그 집들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시간이 되면 다시 한 번 들르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건 쉽지 않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온다. 나가기 전에 신청해둔 볼레본 고원투어가 인원이 안 되서 무산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내 뒤로 4명이 더 신청되어 있다.


세돈강 다리에서 바라본 빡세 시내


다음날 일찍 볼레본 고원 투어를 간다. 현대 1톤 트럭 뒤에 지붕을 씌우고 좌우에 의자를 만들어 앉을 수 있게 해놓은 이른바 트럭버스를 탄다. 뒤 칸에 투어신청자 여섯명과 가이드가 함께 타고 흔들리면 산길을 간다. 4개의 폭포와 차와 커피 플랜테이션 그리고 소수민족마을 한 곳을 돌아보는 일정이다. 대략 고원이란게 다 비슷한 환경인건지 베트남의 고원지역인 달랏에서도 폭포며 커피, 소수민족 마을 등이 주 여행상품이었는데 여기도 비슷하다. 그래도 산이 국토의 대부분인 라오스는 동남아의 다른 나라에 비해서 폭포가 좀더 많은 것 같은데 종류도 다양해 흔히 볼 수 있는 폭포부터, 협곡으로 냅다 떨어지는 놈, 옆으로 퍼져 다양한 물줄기를 만들어내는 놈, 대여섯개가 아기자기 모여 있는 놈 등 꽤 볼만한 거리를 만들어낸다. 차 재배지나 차 만드는 과정의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라 그리 신기할 건 없지만 커피의 경우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라 그런지 제법 눈길을 끈다.  


볼레본 고원


4개의 폭포 중 하나, 이름은 도무지 기억할 수 없다.


점심을 먹고 다시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달려 도착한 곳은 무슨 무슨족이 사는 소수 민족 마을이다. 투어 중에 들르는 소수 민족마을이란 게 무슨 동물원에 동물 구경 가듯 사람 구경 가는 것 같아 썩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내린다. 사실 지들은 소수민족이라지만 내가 보기엔 옷 좀 다르게 입고 있는 것 말곤 다 똑같아 보이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라면 하나겠다. 파인애플 등을 팔고 있는 마을 입구를 지나니 마을 어귀에 학교가 보인다. 학교가 파한 시간인지 아니면 휴일인지 학교에는 몇 명의 아이들만 놀고 있다. 아이들에게 뭔가 주려거든 돈은 주지 말고 펜이나 교육에 필요한 것을 주라는 가이드의 말이라도 들었는지 아이들은 따라 다니면서 펜을 달라고 한다. 사진을 찍은 댓가로 펜이라도 주면 좋으련만 라오스에 가기 전에 펜이라도 몇 개 가져가라던 사람들의 충고를 무시한 것이 후회가 된다.


마을 어귀의 학교


칠판에 낙서하는 아이들은 어디나 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른바 스모킹 빌리지라는 이 마을은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대나무 파이프로 된 담배들을 피우는데 열두어살 된 여자애들이 담뱃대를 물고 있는 모습이 묘한 느낌을 준다. 스모킹 빌리지라는 관광 자원을 놓칠 수 없어서 그런건지 아님 정말 마을의 전통인건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여기저기 앉아 담배를 피우는 일 말고 아무 할 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앉아 있다. 일상이 멈춘 것 같은 이 마을에도 학교도 있고 아이들이 자라는데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될 무렵 이 마을은 어떻게 되어 있을지 마을을 돌아 나오는 맘이 그리 가볍지는 않다.


여자 아이가 들고 있는 것이 담배 파이프다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마지막으로 폭포를 하나 군데 더 보고 돌아 나오는데 당연한 수순처럼 차가 퍼진다. 모든 라오스 여행기에는 차가 퍼지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외는 없는 모양이다. 누군가가 농담처럼 쓴 글에 차가 퍼지고 한참을 기다려도 다른 차가 안 오길래 항의하려다가 니네 나라 차가 퍼져서 그런달까바 암말도 못했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 차도 현대 트럭이다. 우리나라에서 폐차 직전까지 시달리다가 라오스까지 팔려와 성형 수술까지 당하고 수명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는 트럭이며 버스들에게 경의라도 표해야 할 것 같다. 다른 차가 오기까지 꼬박 두 시간을 기다린다. ㅎㅎ 데리러 온 차는 일제 토요타다. 트럭 뒤에 앉아 추위에 떨면서 쏟아질 듯한 별들을 보며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