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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판돈> 시간이 멈추다

씨판은 4천, 돈은 섬이란 뜻으로 씨판돈은 라오스말로 4천개의 섬이란 뜻이다. 메콩강이 라오스 남부로 오면서 강 하류가 넓어지면서 여러 개의 섬을 만들어 낸다고 하는데 그 수가 사천개에 달한다는 것이다. 물론 하롱베이처럼 그 섬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건 아니고 그냥 섬의 개수가 4천개라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그냥 봐서는 그저 육지인지 섬인지도 구별이 되지는 않는다. 여튼 강이 만들어낸 지형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외부의 영향을 벗어나 살고 있는 이곳은 지금도 강을 따라 시간과는 상관없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 4천개의 섬 중에 여행자들이 머물 수 있는 섬은 단 3개인데 그중 큰 섬이 돈콩이라는 섬이다. 돈콩으로 가기 위해 짬빠삭에서 빡세로 나가는 길을 되짚어 오다가 갈림길에서 버스를 내린다. 빡세는 북쪽이고 돈콩은 남쪽이니 갈림길 어귀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트럭버스를 기다린다. 뭐 몇 시에 오는지도 모르니 그냥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한 30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버스 한대가 서곤 돈콩 타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저 배낭만 들고 있으면 말 안해도 어디 가는지 다 써있는 모양이다^^. 잽싸게 버스에 올라타니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라오스 사람들은 눈만 마주치면 싸바이디하고 인사를 하는데 서양애들의 으례적인 핼로우와는 달리 제법 순박한 미소까지 전해진다. 사실 어느 나라를 가거나 그 나라 인사 정도는 외워가기 마련인데 거의 쓸 일이 없는 경우가 많은 데 라오스에서 만큼은 싸바이디란 인사가 입에 붙어 다닌다.


버스는 돈콩 건너 강변에 나를 포함한 두 명의 여행자를 내려주고 간다. 다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니 걸을 필요도 없이 선착장 근처에 게스트하우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 라오스 남부를 일컬어 시간이 멈춘 곳이라더니 여기도 여행자만 몇 명 눈에 뛸 뿐 심하게 조용한 동네다. 짐을 풀고 강변을 따라 조금 걷고 나니 벌써 할 일이 없다. 게다가 이곳엔 정말 인.터.넷.도 없다. 다행이라면 나머지 두개의 섬에는 안들어 온다는 전기가 있다는 정도일까.. 저녁을 먹고 앉아 있는데 으악.. 짬빠삭에서 만났던 스페인 처자 엘사가 아는 척을 한다. 투어를 신청했냐고는 묻더니 5명 이상이 되어야 투어가 가능하니 같이 보트 투어를 하잖다. 그래서 나머지 사람들은 누구냐고 했더니 잉글리쉬 커플과 저먼 커플이란다. 죄다 다시 만나 버린 것이다. 그 사람들이 주위에 모여들고 다시 지난밤의 악몽이 재현된다. 이번에 영국아저씨에게 여행 다니려면 영어공부 열심히 해된다는 충고도 듣는다--:;


돈콩에 있는 두개의 마을 중 여행자들아 머무는 므앙콩


오토바이에 실려 다녀온 반대편 마을 므앙센의 일몰


돈댓과 돈콘이라는 나머지 두개의 섬은 서로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폭포와 이제는 흔적도 없고 기차만 덩그러니 서 있는 철로-프랑스 식민지 시절 화물수송을 위해 만들었다는데 여튼 인도차이나 반도는 죄다 프랑스 식민 잔재가 관광자원화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메콩강에 서식한다는 희귀 동물인 이라와디 돌고래 구경 정도가 볼거리인데 엘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관광 후에 그냥 돈댓이라는 섬에 머물기로 해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그것도 배를 타고 더 나가야 볼 수 있다는 돌고래는 포기하고 그냥 보트로 두 섬을 돌아보기로 한다. 담날 선착장에 나가보니 어제의 6명이 투어 인원의 전부이다. 이제 거의 체념이 되는 게 차라리 맘이 편하게 느껴진다^^. 돈콘에서 폭포와 철로를 보고 돌고래를 보러 나갈 때 이용한다는 선착장에 들렀다 돈댓으로 보트를 타고 이동한다, 돈댓에서 내려 일부는 방을 정하고 엘사와 나는 잠시 돈댓을 둘러보고 다시 돈콩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돈콘에 있는 쏨파밋 폭포


선착장, 여기서 배를 타고 나가면 강에 사는 돌고래를 볼 수 있단다.


돈댓은 열대야자수가 가득한 섬으로 강변을 따라 방갈로가 들어서 있는데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해먹에 누워 강만 바라보는 인간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잠시 내일은 여기나 와 볼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전부 공동욕실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에 그냥 돈콩에 있기로 한다. 한가함.. 낭만.. 이런 것도 밖에서 볼 때나 좋은 거지 막상 겪어보면 보통 심심한 게 아니란 걸 이제 나도 안다. 게다가 사람들에 치이고 일에 치여서 죽어도 쉬어야 되는 상태가 아닌 나 같은 사람에겐 더욱 괴로운 법이다. 살짝 가볼까 하는 마음을 이성적^^으로 누르고 다시 돈콩으로 돌아온다.


방갈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강을 바라보며 해먹에 누워 흔들거린다


돈댓, 십년이 가도 아무 일도 일어날 것 않다

그러고도 아직 비자 만료까지는 이틀이나 시간이 남아 있다. 비자야 만료 전에 나가도 누가 뭐랄 사람은 없지만 얼마 전 확인한 일산주민의 메일엔 암웨이 인간들이 삼천명이나 태국으로 출국하는 바람에 오기로 한 날보다 하루 늦게 도착한다고 되어 있었으니 비자 만료날에 나가야 방콕에서 일산주민과 바로 만날 수 있다. 물론 방콕에 가서 하루 이틀 기다려도 되지만 카오산 로드는 너무 번잡하고 혼자 있으면 좀 이상해지는 곳이라 차라리 여기서 날짜를 채우고 나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렇지만 여기서 뭐하고 이틀을 보내나 그저 한숨만 나온다.


하루는 여행기나 정리하면서 보낸다. 자전거 타기도 지겨워져 오토바이에 실려 마을의 반대편까지 갔다 와도 시간은 지천으로 남아있다. 설상가상 e-book은 윈집이 기간이 만료되었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열리지도 않는다. 나머지 하루를 더 버티기가 싫어져 그냥 빡세로 떠날까 생각도 해본다. 그나마 빡세에서는 인터넷도 가능하고 라오 커피도 한 번 더 마실 수 있고 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냥 빡세로 가야겠다 싶은데 오토바이를 태워준 라오아저씨와 빡세에 같이 가기로 한 약속이 떠올라 그냥 돈콩에 머무르고 만다. 자전거 타기 귀찮아 실려간 오토바이 아저씨가 이것저것 묻더니 모레 자기도 빡세 시장에 간다며 같이 가자고 해 그러지고 한 것이다. 왜 같이 가자고 했는지야 알 수 없지만 것도 약속은 약속이니 일방적으로 깰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드디어 떠나는 날이 온다. 국경을 넘어 밤버스로 하루만 더 가면 일산주 민과 만나는 날이 온다. 마침 그날은 내가 여행을 시작한 지 100일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일산주민과 함께 백일주나 마셔야겠다. 근데 백일주는 디데이 백일 전에 마시는 술인 것 같은데..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언제는 핑계가 없어서 못 마셨나 여튼 일산주민이 과음하게 해 주겠다고 장담했으니 믿어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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