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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앙짠2> 발목이 잡히다

 

라오스로 가는 길은 두 번째라 그런지 별 설레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밤을 달려 새벽 무렵에 태국 쪽 국경도시인 농카이에 도착한다. 다시 툭툭을 타고 국경에 도착하니 7시가 조금 넘어있다. 국경에서 비자를 받는데 수수료가 31불이다. 어라 비자는 30불에 지금은 업무외 시간도 아닌데 왜 1불을 더 받나 물어 봤더니 이럴 수가.. 오늘이 라오스 독립기념일이란다. 고로 라오스의 휴일인 것이다. 아.. 꼬인다.. 라오스가 휴일이면 미얀마 대사관도 휴일이고 내일은 토요일, 모레는 일요일.. 비자는 삼일 뒤인 월요일에나 신청이 가능한데다 라오스에 있는 미얀마 대사관은 급행이란 것도 없어 발급까지는 꼬박 이틀을 더 기다려야 한단다. 그렇다면 죽으나 사나 위앙짠에서 6일이나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별로 볼 것도 할 것도 없는 동네에서 뭐 하고 지내나 막막해진다.


다행히 위앙짠에는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가 있어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책이나 읽다가 책 읽는 것도 지겨우면 사람들 구경이나 하면서 보낸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방콕에서 밤을 달려 도착해선 하루를 묵고 방비엥으로 가버리기 때문에 별로 이야기할 기회가 없지만 두어 명 장기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들과 사장과 친분이 있어 보이는 몇몇 라오스 거주 한국인들이 게스트 하우스 죽돌이 비슷하게 진을 치고 있어 별로 심심하지는 않다. 하루 이틀은 서먹하더니 이삼일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저녁마다 만들어지는 술자리에 끼게 된다. 참 이상한 게 한국 여행자 없는 곳에서는 나랑 조금 다른 사람을 만나도 그러려니 금방 친해지는데 오히려 한국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말 건네기도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그저 옆에 앉아서 고개나 끄덕이고 있는다. 왠지 낄 자리가 아닌데 끼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편한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그런 몇 날이 흘러간다.


그 와중에 게스트 하우스 앞마당에 두개의 가게가 오픈 한다. 앞마당이라야 그저 게스트하우스 입구에 있는 한평 남짓한 진입로가 다긴 하지만 어느 날 아침에 나가보니 선반이며 파라솔 등이 놓여 있고 간단하게 조리가 가능 한 취사도구들도 갖춰져 있다. 이전에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했다는 여자친구 둘이서 사장의 동의 하에 하나는 죽이며 국수를 다른 하나는 쉐이크를 팔기로 했다는 것이다. 오픈한 집 개시는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죽과 쉐이크를 시켜 먹는다. 제법 김치 비슷한 곁들이도 따라 나온다. 한참 맛있게 먹다보니 헉 닭죽이다. 하도 조류독감, 조류독감 해서 가급적이면 닭 하고는 친하게 안 지내볼려고 했는데 뭐 할 수 없지.. 계속 맛있게 먹는다^^.  볶음밥도 국수도 지겨운 판에 잘됐다 싶다. 쉐이크도 처음 만드는 솜씨치곤 그럴 듯 하다. 이날 오후부터 주변의 권유로 국수집의 메뉴엔 라면도 두 종류나 추가가 된다, 신라면과 너구리다.


왼쪽이 국수집, 오른쪽이 쉐이크집


이 두 가게가 오픈하니 뒤론 안 그래도 게으른 인간이 더욱 게을러지는데 그나마 밥이나 먹으로 걸어 나가던 것도 중단하곤 그저 삼시 세때 커피며 쉐이크까지 죄다 이 두 집에서 해결한다. 그렇게 끼니를 때우다보니 국수집 주인인 닛과도 친해진다. 하루는 닛이 김치거리 사러 시장에 가지 않겠냐고 해서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다녀온다. 일반적으로 외국인들이 구경가는 시장이 아니라 말그대로 로컬시장이다. 뭐 어릴때 익숙하게 보던 우리네 재래시장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배추며 당근, 고추 등의 김치거리를 사서 돌아오는데 주면 사람들이 잘 됐다면서 닛에게 김치 담는 법을 가르쳐주란다. 헉 나라고 김치를 담아봤나.. 게다가 그 김치 내가 담은 거 보다 낫더구만.. 그저 옆에 앉아서 간이나 보고 구경이나 한다.


담날에는 다시 시장에 가잔다. 이번에는 중국 시장이다. 그전에 신라면과 너구리를 다섯 개들이 한봉지씩 사왔는데 신라면이 다 떨어져 라면을 사러 가는 길이란다. 이 시장에선 중국에 만든 한국 라면을 판다. 신라면과 김치라면을 하나씩 사려는 걸 그저 한국 사람은 그저 신라면이라고 그냥 신라면만 두 봉지사라고 권한다. 라면 종류 많아봐야 성가시기 밖에 더하겠는가. 안 그래도 꼬들하게 끓이라는 사람, 퍼지게 끓이라는 사람, 물이 많다는 사람, 적다는 사람.. 한국 사람들의 90%는 자칭 라면 전문가들이라 한 종류라도 입맛 맞추기가 쉽지 않은 터에 말이다. 나 같으면 그저 니가 끓여드세요 하겠더구만 그럴 수도 없는 걸 종류까지 늘려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참고로 여기 너구리에는 다시마가 없다는 슬픈 소식도 함께 전한다^^


국수집 주인 닛


쉐이크집 주인 띠아


이 두 가게의 하루벌이가 대략 십불은 되는 모양인데 재료비랑 이것저젓 빼면 반정도가 남는단다. 그럼 이 추세로 나간다면 한달에 백불에서 백오십불쯤은 벌 수 있는 셈인데 이곳 공장에서 일하는 라오스 여자들의 벌이가 50불 정도라니 제법 괜찮은 장사인 셈이란다. 라오스 거주 한국인들이 옆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국수집 주인인 닛과 쉐이크집 주인인 띠아는 그래서 그런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데도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밤에는 제법 두둑한 돈주머니를 꺼내놓고 뭔가를 쓰고 계산기도 두드리는데 뭘 하는지 한참을 그러고 있다. ㅎㅎ 저건 내 전공인데 김치 담그는 거 말고 저거나 가르쳐주라고 하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본다. 여튼 이 두 집 덕분에도 며칠 심심하지 않게 지낸다.

 

이래저래 시간이 흘러 비자 나올 날짜가 되어가고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미얀마 남쪽은 예정에 없던 곳이라 별다른 준비도 안 되어 있고 가이드북에도 별다른 정보가 없는 곳이다. 트레블 게릴라에서 몇 군데 정보를 내려받고 론리 플래닛 지난 버전 하나를 구입하고 저녁에 빡세로 떠나는 버스표를 예약해둔다. 다행히 미얀마 비자가 별 문제 없이 나와 준다. 역시 미얀마 전산은 아직 내 편인 것 같다^^. 앙코르와트에서 방콕, 또 이곳 위앙짠까지는 거의 한국 사람들 틈에서 지낸 것 같다. 며칠 안 보이면 어디 한국사람 없나 싶다가도 또 많아지면 이래저래 심경이 복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제 한 열흘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지내게 된다. 좋기도 하도 다시 막막하기도 하지만 뭐 이게 여행이 아니겠는가.. 남부를 한바퀴 돌고 방콕으로 돌아가면 나도 일행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조금은 덜 외로운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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