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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2/04
    <양곤> 남자도 치마를 입는다(2)
    제이리
  2. 2006/02/04
    <끄라비/피피>아쉬운 시간이 흘러간다(5)
    제이리
  3. 2006/02/04
    <치앙라이> 호의도 짐이 된다(5)
    제이리

<양곤> 남자도 치마를 입는다

안숙을 캄보디아로 떠나보내고 하루를 방콕에서 뒹굴거리다 미얀마행 비행기를 탄다. 여행 시작하고 처음 타는 비행기라 그런지 비행시간이 한 시간 남짓인데도 어디 다른 대륙이라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 비행기라는 이동 수단이 아니었으면 <안숙부재로 인한 여행 우울증>에 한동안 시달렸을텐데 환경이 변하니 안숙의 부재도 당연한 듯 받아들여진다. 양곤 공항은 익히 들어왔던 대로 뭐 우리나라로 치면 좀 큰 읍내 터미널 같은 분위기다. 당연 수순대로 삐끼님들의 안내를 받아 택시를 타고 화이트게스트하우스 소위 말하는 백악관으로 향한다.


양곤은 같은 동남아인데도 사람들의 옷차림새부터 거리 풍경까지 인도차이나의 다른 나라들과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먼저 옷차림은 남녀 구분없이 룽지라는 긴치마를 입는 것이 특징이다. 뭐 여자들의 것은 타메인이라고 부른다지만 대략 그냥 룽지라고 불러도 시비거는 사람은 없다^^. 이 룽지라는 옷은 직사각형의 커다란 천의 양귀퉁이만 꿰매놓은 것으로 다리를 사이에 넣고 적당히 접어서 시접부분을 둘둘 말아 허리께에 밀어 넣으면 그만인 편리한 옷이다. -뭐 룽지속에는 속옷도 안 입는다는 미확인 보도도 있다- 남자들 옷은 대략 체크무늬가, 여자들 옷은 꽃무늬가 주종을 이루는데 여튼 이 치마를 입고 자전거도 타고, 축구도 하고, 더우면 걷어서도 입고, 목욕할 땐 가슴께로 올려서 가운으로도 입고 등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다음은 특징은 미얀마만의 특유한 화장 방법인데 여자들과 아이들 가끔 남자들까지 온통 얼굴에 노란색 가루를 칠하고 다닌다. 따렌까라는 나무수액으로 만든 이 화장품은 메이크업이자 썬블록의 역할을 한다는데 처음엔 액체지만 마르면서 얼굴에 노란 가루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아마 이 흔적이 남아야 더 예쁜 것으로 인정이 되는 모양인데 그래서인지 특히 볼부분과 코부분에 간혹 나뭇잎 모양이나 특이한 무늬를 그려넣은 제법 세련된(?) 화장법이 선보이기도 한다. 여튼 이 화장법 역시 마얀마 사람을 구별짓는 독특한 전통이라 할 수 있겠다.


사진에서 보이는 치마가 룽지다


사원에서 만난 아이. 얼굴에 묻은 노란 흔적이 따렌까 자국이다.


이 동네 남자들의 특징은 주로 우리가 죠스바를 먹고 났을 때나 볼 수 있는 벌건 입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처음 보면 흠칫 뒤로 물러나게 될 만큼 섬찟하다.  이는 꿍이라고 부르는 입담배 때문인데 나뭇잎에 하얀 가루를 바르고 무슨 열매인가를 잘게 썰어 싸서 씹는 이 잎담배가 입전체를 붉게 물들이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입담배는 어느 정도 씹다가 뱉아 줘야 하는데 벌건 물이 입에서 확 쏟아지는 걸 보면 비위가 확 상한다. 단지 비위만 상하는 게 아니라 가끔 파편이 튀기로 하는 데 뭐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이 덕분에 그리 깨끗하지 않은 거리는 온통 벌건 물이 들어 있다. 누군가의 조언에 의하면 외국인들에게만 징수되는 비싼 사원입장료를 내지 않으려면 룽지를 입고 입담배를 씹은 다음 징수원을 향해 씩 웃어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지인들이 애용 상품이다.


양곤 거리는 매우 낡은 건물들이 그래도 무슨 유럽 뒷골목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미얀마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향이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영어도 비교적 잘 통하고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영어 한마디 못 하는 사람이 없는 재밌는 곳이다. 하지만 수도라고 해야 영국 식민지풍의 건물을 제외하고는 전역이 거의 슬럼화 되어있고 보도블록이며 맨홀뚜껑이 거의 깨져 있어 걸을 땐 발밑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대책이 안서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나마 여기는 수도라고 전기나 들어오지 양곤을 제외하면 저녁 두세 시간을 이외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그나마 수도시설이 없어 우기에 내린 비로 이루어진 웅덩이 물을 그냥 길어다 마셔야 되는 열악한 나라이기도 하다.


숙소 옥상에서 본 양곤시내


양곤에서는 쉐다곤 파고다만 보러간다. 만달레이의 마하무니 파고다. 짜익띠요의 골든락과 함께 .미얀마 3대성지로 불리는 이곳은 현지인들은 무료지만 외국인은 5달러인데 굳이 매표소를 찾지 않아도 징수원들이 귀신같이 외국인들을 찾아내 입장료를 받는다는 곳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준 지도대로 버스를 타본다. 미얀마버스는 숫자가 아라비아로 되어있지 않고 자기나라 고유의 글자로 되어 있어 버스타기도 쉽지 않다. 쉐다곤 파고다야 워낙 유명한 성지라 어째 물어물어 타기는 했으나 헉 이 버스 도무지 발디딜 틈도 없다. 5분 남짓이니 어찌어찌 견디긴 했지만 다른 버스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앞으로 미얀마에서 버스 탈 일이 꿈만 같다. 나중에 수도 없이 보게 되는 익숙한 형태의 불탑 주변에서 하루 종일 기도를 하는 사람들 수백 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러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사전 지식도, 가이드북도 없이 탑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뭐 별로 할 일도 없어 기도하는 사람들 틈에서 잠시 졸다가 자다가 다시 나온다.   


쉐다곤 파고다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다음엔 쉐다곤 파고다가 우기에 잠길 때를 대비해 일부러 언덕을 쌓아 만들어서 그 흙을 판 곳은 인공 연못이 되었다는 깐도지 호수 쪽으로 가본다. 호수 주변에 철망이 쳐 있고 입장료가 1000짯 이다. 내지 뭐.. 하고 들어가 호수에 들어간다. 데이트 할 곳이 그리 많지 않은 듯 곳곳에 청춘남녀들이다. 에구 아주 염장을 질러라 하며 호수를 반쯤 도니 다시 입장료 내는 곳이 나온다. 이번엔 1300짯이란다. 살짝 약이 오른다. 뭐 그리 크지도 않은 호수를 부분부분 나눠서 곳곳마다 입장료를 받는단 말인가. 온 길을 되짚어 가기는 싫고, 입장료를 다시 내기는 더더욱 싫어 그냥 밖으로 나와 철조망을 따라 걸어본다, 길은 한산한데 이 호수 크지 않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땡볕을 두시간이나 걸어서 간신히 입장했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삽질을 하고서야 양곤에서의 하루가 간다.


깐도지 호수. 저 다리 위를 걸을 때만 해도 괜찮았다니^^


여튼 아침식사만 훌륭하다는 화이트게스트하우스에서 -미얀마는 거의 모든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준다- 이틀을 묵으며 여행 루트를 짠다. 가이드북도 없고 인터넷도 무지 느린 이 동네에서 의지할 건 노트북에 내려받은 정보가 전부다. 일단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인도네시아의 보르도부르 유적과 함께 아시아의 3대 불교 성지로 불린다는 바간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나머지는 그때그때 정해서 움직이면 될 일이다. 바간으로 가는 밤버스를 끊어놓고 시간이 남아 인터넷에서 누군가 추천한 강건너 달라시로 가 본다. 이곳도 외국인은 따로 돈을 낸다. 왕복 2불. 국가가 앞장서서 달러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달라시에 다녀오니 터미널로 갈 시간이 다 되어 있다. 양곤에서는 한국 사람을 하나도 못 만났다. 미얀마에서도 혼자 여행할 팔자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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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라비/피피>아쉬운 시간이 흘러간다

 

새벽에 방콕에 도착해 그날 저녁 끄라비 가는 표를 끊는다. 12월 30일 밤차는 성수기 가격이라며 차비가 1/3정도 더 올라있다. 그래도 31일과 1일에는 차가 운행을 안한다니 새해를 남부 해변에서 보내려면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 치앙라이에서 하루만 덜 놀았어야 하는데 하면서 그냥 표를 끊는다. 게스트하우스 아저씨는 남부로 가는 밤차가 험하니 지갑이니 하는 것들은 자더라도 바닥에 깔고 자라며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다. 낮에 두시간 마사지를 받기는 했지만 이틀 연속 타는 밤차는 고역이다. 게다가 맨 뒤자리에 이스라엘리로보이는 상태 몹시 안좋은 남자들이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확 패 주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 역시 불의(?)를 보면 참는 게 최고라는 진리를 되뇌며 그냥 꾹 참고 잠이 든다. 이 버스는 남부로 가는 모든 인간을 싣고 달리더니 수랏타니에서 인간들을 분류하는데 푸켓.. 끄라비.. 피피.. 푸켓.., 끄라비.. 피피.. 이 세마디로 모든 인간의 분류가 이루어진다. 그래도 끄라비가 사람이 적은 편이다. 다시 세시간쯤 가니 끄라비다.


안숙이 인터넷에서 찍은 숙소인 반짜오파게스하우스를 찾아 헤매다 너무 덥다.. 배낭 무거워 죽겠다는 나의 징징거림에 못 이겨 결국 반짜오파는 찾지 못하고 그냥 짜오파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푼다. -나중에 보니 반짜오파는 바로 앞집이었다는^^- 결국 한해의 마지막날 남부에 도착을 하긴 한 것이다. 숙소 주인의 말로는 저녁에 파티가 있으니 참석하란다. 그러면서 한국남자 하나가 숙소에 있는데 오늘 투어를 나갔으니 저녁에 올 거라고 한다. 잘 생겼냐고 물었더니 이 아저씨 자기를 가리키며 잘생긴 건 자기란다. 원 농담도.. 왕 느끼하게 생기셨두만^^ 그러지 뭐 하면서도 파티라야 서양애들이나 벅적거릴텐데 싶어 시장과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저녁을 먹고 맥주까지 한 잔 마시고 느즈막히 숙소에 들어선다. 숙소 로비에는 서양애들은 간곳이 없고 동네 주민들이 가득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빨리 들어오는 건데 쩝.. 막 방으로 올라갔다는 한국 남자라는 친구를 방까지 찾아가 불러냈지만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 친구 이미 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다시 방에 올려 보내고 동네 주민들과 합석해서 술을 마시면서 해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동네의 또다른 게스트하우스 주인이라는 아저씨가 -그 아저씨의 느끼함도 만만치 않다^^- 안숙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짜식..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결국 새해맞이 폭죽이 터지고 해피뉴이어를 외친 뒤에야 술자리는 끝이 난다. 드디어 해가 바뀌었다. 아듀 2005.. 그리고 2006년 드디어 나는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아무래도 불혹하기엔 수양이 부족한 나는 어느 소설에 나온 그만큼 혹할 일이 많아지는 나이라는 해석에 동의하기로 한다.


새해 첫날에는 그 남학생과 함께 근처에 아오낭 비치로 간다. 이 친구 태국에 오자마자 끄라비로 내려와서 일주일 가까이 끄라비에 있었다는데 아오낭 비치만 못 가봤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동행을 자처하는 데 결국 아오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자신은 이미 두 번이나 다녀왔다는 레이리라는 해변까지 같이 다녀온다. 덕분에 한국어 가이드 데리고 여행하는 듯 편하게 다닌다. 레이리 해변은 섬은 아니지만 제법 남쪽 해변의 바다 같은 느낌이 난다. 에메랄드빛 바닷물이며 야자수가 사진집에 보던 바로 그곳이다. 더구나 제법 근사한 방갈로가 자리 잡고 있어 한적한 휴가를 보내기엔 <이보다 좋을 순 없다>이다. 담에 밀월여행 오면 여기가 딱이겠다 해가며 서로 밀월여행 못 온 걸 아쉬워한다. 새해 첫날인데 떡국은 커녕 한국식당 하나 없는 이곳에서 뭐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시장에 들러 상추며 오이, 고추 등을 사서 방에서 쌈밥을 해 먹는다. 고기까지 구워 먹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럴 수는 없어 그냥 참치캔을 사서 고추장과 함께 상추에 싸 먹는다. 그래도 한 병 남겨 둔 소주와 함께 제법 한국에서 먹는 것 같은 저녁 기분을 낸다.


이렇게 이틀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1월 2일이다. 안숙이 1월 5일에는 앙코르와트로 가야 하니 1월 3일 밤차는 타야 방콕에 돌아갈 수 있어 피피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뿐이다. 아.. 하루만 더 있었으면 이 근처 섬을 다녀오는 보트 투어를 했으면 좋았을 텐테 특히 이 남자 친구 말로는 피피도 좋지만 그 근처 섬에서 하는 스노쿨링이 환상이라는데.. 여행이 아무리 길어도 결국 마지막에는 날짜가 아쉬워지는 모양이다. 치앙라이에서의 하루가 새삼 아쉬워진다. 끄라비에서 만난 남학생과는 방콕가는 버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피피에서 보낼 마지막 밤을 기대하면서 아침 일찍 피피로 가는 보트에 몸을 싣는다.


피피에 도착하니 성수기중에서도 최성수기답게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선착장에서 숙소를 예약해서 이동하는 모양인데 좀 비싼 숙소에 묵자고 미리 생각했음에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 사진만 봐서는 숙소의 상태를 알 수가 없어 그냥 한 바퀴 돌면서 직접 숙소를 고르기로 한다. 배낭을 짊어지고 해변을 따라 걸어도 해변에 면해 있는 방갈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내친 김에 좀더 걸어보자 해도 그럴 듯한 숙소는 나오질 않는다. 가이드북의 지도를 보며 한시간쯤 걸으니 땀은 비오듯 쏟아진다. 결국 원하는 모양의 숙소는 눈에 띄질 않는다. 방갈로를 찾으려면 조금 떨어져 있는 해변으로 가야 하나 보다 하고 배를 알아보니 가격이 터무니없다. 별 수 없이 다시 걷다보니 어라.. 처음에 내렸던 선착장이 다시 나온다. 어이가 없다. 결국 한 바퀴를 돈 셈이다. 다시 선착장에 있는 여행사에 들어간다. 피피섬에서도 제법 안쪽에 있는 롱비치의 숙소를 알아본다. 해변에 면한 방갈로는 전부 풀이고 언덕에 있는 방갈로는 에어콘방만 있단다. 예약을 할 경우 무료로 실어다 준다고 한다. 다른 대안에 없어 1500밧이라는 거금을 주고 언덕에 있는 방갈로를 예약한다.


여행사에서 태워다주는 보트를 타고 도착한 롱비치는 파란 바다빛과 하얀 백사장이 인상적인 해변이다. 방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고 나니 어느새 오후다. 아 무슨 시간은 이리도 빨리 흐르는 건지.. 게다가 날씨가 그리 맑지는 않다. 잠깐이지만 슬쩍 비까지 내린다. 그래도 애써 빌려 온 수영복을 안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흐린대로 수영복을 입고 해변으로 나가본다. 물에 들어가니 바닥까지 보일만큼 물이 맑은 것은 물론 해변에서 일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는데 고기들이 노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두달 배운 수영실력으로 수영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듯 물장구만 치다가 그냥 백사장에서 누워 논다. 오히려 쨍한 날씨보다 그리 많이 타지 않을 것 같아 더 나은 것도 같다. 결국 사람들이 다 돌아갈 때 까지 백사장에서 누워 놀다가 들어온다. 아. 피피까지 와서 하루 밤밖에 못 자다니.. 아쉽다. 하지만 내일 배가 두시니 아침나절에 다시 한 번 해변에 나와 아쉬움을 달래기로 한다.


다음날도 날이 그리 맑질 않다. 그래도 아침을 먹자마자 다시 해변에 나가 한동안 놀다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짐을 싼다. 첨에는 나가는 보트까지 무료라더니 막상 나갈 때가 되니 나가는 보트는 돈주고 타야 한다기에 그냥 배시간까지 롱비치에 머물기로 한다. 배낭을 모래사장 한 곳에 던져두고 수건 하나 깔고 앉아 있으니 그제서야 해가 난다. 여튼 날씨도 협조를 안 해준다. 우째 수영복 입고 있을 때는 얼굴도 안 뵈주더니 옷 다입고 앉아 있으니 해가 난단 말이더냐. 그래도 해는 보고 떠나네 하며 위안을 삼는다. 여튼 카메라는 아무래도 우리의 수영복 사진을 거부하기 위해 고장난 것처럼 보이니 정 궁금한 사람은 안숙의 비디오카메라에 찍힌 테잎을 재주껏 입수하도록.. 그 테이프는 이미 내손을 떠났으므로 더 이상 나에게 사진을 보여 달라고 조르지 마시기를^^


결국 아쉬움을 뒤로 하고 피피를 나와 다시 방콕으로 돌아온다. 20여일을 같이 다녔는데도 헤어지는 시간은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언제까지 같이 다닐 수도 없는 일.. 결국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안숙은 끄라비에서 만난 남학생과 방콕에서 만난 여자 둘과 함께 앙코르와트로 떠난다. 나도 내일이면 미얀마로 간다. 차라리 혼자 다니는 게 더 나았을까 안숙의 부재가 크게 느껴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냥 견뎌 봐야지.. 안숙이 나머지 여행도 무사히 마치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멍하니 있다 주섬주섬 미얀마로 떠날 준비를 한다.


그래도 너무 맨숭맨숭한 것 같아서.. 치앙마이 트레킹 중 폭포에서.. 안숙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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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라이> 호의도 짐이 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도착한 치앙라이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에는 방이 없다. 것도 한국인들로 다 찬 게 아니라 무슨 자격시험인가를 보러 온 태국 학생들도 만원이다, 주인아주머니의 배려로 안채의 손님방에 짐을 풀고 나니 벌써 저녁 무렵이다. 트레킹을 알아보니 뭐 일반 트레킹도 가능하긴 하지만 주인아저씨 차로 다니는 게 더 나은데 이 분이 방콕에 가셨다가 내일 저녁에나 오신단다. 어차피 트레킹은 모레나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내일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치앙라이 나이트 바자를 한 바퀴 돈다. 치앙마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더 아기자기하니 볼 만하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븐데 하면서 화덕에다 구워 주는 피자와 스파게티까지 먹고 동네 교회에서 공짜 음식까지 먹고 들어오니 제법 북적일거라 생각했던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엔 아무도 없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그간의 주독이나 풀자 하며 일찍 잠이 든다. 특별한 날에는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건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만은 아닌가 보다^^.


피자와 스파케티 먹기 전에 나온 크리스마스 프레젠트, 버섯위에 크림 소스같은 걸 올렸는데 너무 예뻐 먹기가 아까웠다.



피자와 스파게티, 우리의 크리스마스 만찬이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태국에서는 사진이 없다. 이미 밝혔듯이 카메라는 장렬히 전사했으니 미얀마편까지는 그냥 사진없이 보셔야 할 듯 하다.


다음날 돌아온다던 주인아저씨는 무슨 사정으로 하루가 늦어지고 나는 그저 책이나 읽으며, 안숙은 치앙라이 시내나 돌아보며 하루를 보낸다. 그날 저녁엔 술자리를 기다리다 지친 우리가 그냥 판을 벌인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캔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겨울에만 시간이 나 여행을 다닌다는 아저씨와 혼자 여행 온 스케쥴 빡빡한 삼십대 아가씨가 함께 한다. 대체 겨울에만 시간이 나는 직업이 뭘까 궁금했는데 이 아저씨 알고 보니 귀농하신 분이란다^^. 그래 농부는 겨울에는 쉬지, 이른바 농.한.기. 생긴 건 꼭 일본 작가처럼 생긴 이 아저씨는 이후 사흘 동안 우리와 동고동락을 같이 하게 되는데 그나마 이 아저씨라도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님 그 많은 술자리들을 어찌 견뎠나 싶다^^ 여튼 그날 혼자서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 온천을 다녀왔다는 아저씨말로는 매쌀롱이 온천에서 멀지 않다고 해서 오토바이만 탈 줄 안다면 오토바이로 가면 좋겠다.. 오토바이 탈 줄 알면 여행이 정말 편할 텐데.. 했더니 이 아저씨 오토바이 가르쳐 줄 테니 나는 배워서 타고 안숙은 아저씨 뒤에 타고 내일 매쌀롱에 가잖다. 뭐 술김에 그러자고 한다.


담날 나가보니 이 아저씨 자기가 어제 빌린 오토바이로 연습을 해 보자며 이것저것 가르쳐준다. 술김에 큰 소리는 쳤는데 막상 타려고 하니 무.섭.다. 그래도 안 탄다 소리는 못하고 한 번 올라타 본다. 의외로 중심잡는 건 어렵지 않은데 손잡이를 조금만 돌려도 가속이 붙으니 영 불안하다. 그나마 차 안다니는 골목길만 한 바퀴 돌고 내린다. 이 아저씨 그새 상황을 파악한 듯 오토바이 타고 가기는 어렵겠다 하는 표정이다. 그때 때맞춰 비도 내려주셔 그냥 버스를 타고 움직이기로 한다. 막 버스를 타러 나가려는데 소리도 요란하게 이 집 사장님이 돌아오신다. 이 집 사장님과 이 아저씨의 동생은 얼마 전에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 몇날 며칠을 술로 지새다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는데 이 아저씨를 무슨 친형님이나 되는 듯이 정선생님이라며 깍듯이 모신다. 덕분에 어영부영 우리도 정선생님 일행쯤으로 격상(?)한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매쌀롱을 다녀오려 한다니까 느닷없이 같이 가자고 나선다. 본인의 차는 무슨 일로 경찰서에 있다면서 차까지 렌트해 오는데 그 일처리가 워낙 시끄러우면서도 순식간에 이루어져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매쌀롱으로 가는 차안에 있다. 으.. 이게 투언지. 투어면 얼마인지.. 뭐 그런 건 물어볼 틈도 없다.


가는 길에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소수 민족 마을 한 곳을 들렀다가 매쌀롱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무렵이다. 매쌀롱은 장개석의 국민군이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다 결국 태국 국경을 넘어 정착한 곳으로 마을에 국민군의 기념관까지 있는 전형적인 중국인 마을이다. 사장님 말로는 대만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곳으로 본토 중국인들은 관광도 오지 않는 곳이라 한다. 그곳에서 국수맛이 기가 막히다는 중국집을 찾아갔으나 이미 영업이 끝났고 아침에 내린 비 탓인지 안개가 심하게 끼어 경치도 구경하긴 어려웠지만 간만에 편안한 차를 타고 안개 속을 드라이브하는 기분은 그만이다. 차안에서도 사장님은 계속 자신이 지원하는 소수민족 마을 이야기, 치앙라이를 통해 내려오는 탈북자들과 그 탈북자들을 자신들의 돈벌이와 명예욕에 이용하는 기독교 엔지오 단체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마침 안숙이 탈북자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으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니까 당장 치앙라이로 와서 작업을 하라며 성화다, 모든 소스는 다 본인에게 있으니 와서 찍기만 하면 대박이라고 그냥 오기만 하면 된다는데 안숙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교묘하게 이리저리 피하느라 난감해한다. 여튼 안숙은 미스리도 됐다가 이동생-성이 이씨라^^-도 됐다가 하면서 사장님 관심의 대상이 된다. 덕분에 정선생님과 나는 편안하게 경치나 구경하면서 돌아온다.


미해병대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 외에도 말도 많고, 정도 많고, 술도 좋아하는 이 사장님에게-어느 정도로 술을 좋아하냐 하면 아주머니가 게스트하우스에서 파는 술까지 모조리 다 치워버렸을 정도로 많이 드신단다- 소수민족 마을지원과 탈북자 문제 이외에도 또 한가지 관심사가 있었으니 커피가 그것이다. 한때 마약 재배의 온상이었다는 이곳에 정부와 유엔의 규제로 대체 작물을 심기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이 커피였다고 한다. 그 중 도이창-도이는 산이고 창은 코끼리이므로 대충 코끼리산이라는 곳이다-이라는 곳에서 몇몇 커피 농가들이 우리나라로 치면 협동조합 같은 만들어 공동 생산과 판매를 하는 것은 물론 커피전문체인점까지 내 그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이 사장님이 아마 그 도이창 커피조합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 듯 하다. 사실 본인은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하셨지만 결국 우리는 아무리 추리해도 그 역할이 무엇인지 정리해 낼 수 없었다^^. 여튼 매쌀롱에서 돌아와 거한 저녁과 함께 시작된 술자리는 일이차에 걸쳐 양주를 마시고 삼차로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맥주를 마신 뒤에야 끝이 난다. 뭐 우린 별 말도 못하고 그저 네네 아니, 뭐..를 연발하고 뭐 정선생님이라고 별 수 있나.. 아.. 네네 하다가 내일은 커피 농장에 가자는 말에 얼떨결에 그러죠.. 한다.


다음날 잠도 술도 채 깨기 전에 미스 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채 샤워도 못하고 주섬주섬 나가보니 커피 농장을 올라가잖다. 그러더니 차에 타자 다시 일정이 바뀐다. 탈북자들을 한 번 만나보겠냐며 탈북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곳이 있는데 빵이라도 넣어주고 가자고 하신다. 뭐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 마트에 들러 빵과 물을 사서 간다. 그냥 이 돈만은 우리가 내겠다고 우겨 빵값을 내고 따라가 보니 태국 이민국이다. 말이 이민국이지 그냥 경찰서 유치장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래도 태국땅에서 잡혔으니 이곳에 얼마간 수용되어 있다가 한국으로 보내지는 모양인데 꽤 연세가 많은 할머니부터 귀를 다친 어린 아이까지 그 연령이며 상태도 다양하다. 그래도 한민족인데 목숨을 걸고 빠져나와 결국 이국땅에 수용되어 있는 걸 보니 맘이 편칠 않다. 한국으로 빨리 갈 수 있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돈에 의해 결정된다는데 여기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커넥션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결국 사장님은 이 사람들이 조사받는데 통역까지 해 주시게 되어 그날 커피농장에 올라가는 일정은 무산되고 그냥 미얀마 국경지대인 치앙센과 골든트라이앵글을 돌아보는 것으로 하루가 지난다.


저녁엔 또 술자리가 이어진다. 뭐 내가 아무리 과음을 외쳤기로서니 사흘 연속 음주 게다가 과음은 쉬운 일이 아닌데다 술자리도 그리 즐겁지만은 않으니-사실 매번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 사람과의 술자리는 한 번으로 족한 법이다- 오늘은 좀 피하고 싶은데 이미 이런저런 신세를 진 다음이니 어쩔 수 없는 분위기다. 이 날 저녁쯤 되니 슬슬 황당해지기 시작한다. 도무지 일정도, 몸상태도 말이 아닌데다가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건지, 이게 돈을 내는 건지 아닌지, 아니라면 이  호의의 정체는 무엇인지, 일정은 점점 늘어지는데 앞날을 알 수 없으니 조금 답답한 마음이 된다. 게다가 사모님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화가 나신 것도 같고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결국 정선생님에게 총대를 메게 하고 우리는 술자리를 빠져나온다. 뭔가 개운치 않다. 같이 다니던 정선생님도 그리 개운치는 않은 표정이다. 나중에 슬쩍 이런 기분에 대해 비췄더니 했더니 정선생님도 그렇단다.


글쎄..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도 답을 모르겠다. 상대방의 격의 없는 호의를 받아들이는 방법 아니 좀 일방적인 호의 표시에 대처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건데 사실 여행에는 절대 공짜가 없다고 생각하는 -뭐 어디 여행뿐이겠는가 인생도 대체로 그렇긴 하다- 나로서는 그 분이 생면부지의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이 분명히 호의였음에도 내내 뭔가 확실한 것 없이 진행되는 상황이 불편함을 넘어 짜증스러움까지 이어지는데 참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더라는 거다. 그렇다고 확실한 의사 표시를 하기에는 얼마간의 미안함도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 버렸는데 사실 나의 그 어정쩡한 상태가 더 싫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것도 좀 맘에 걸린다. 여튼 그 정도의 호의를 아무에게나 보일 수 있는 사람도 흔한 종류의 사람은 아닐진대 만약 이글을 읽게 되면-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런 면에서는 진보넷에 블로그를 개설한 건 꽤 괜찮은 선택이었던 듯 싶다^^- 자신의 맘도 몰라주는 싸가지 없는 인간에 대해 아마 맘이 몹시 상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되겠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기중심적인 호의가 주는 불편함에 대해 그 분도 조금은 아셨으면 하는 맘도 한편으론 든다.


그래도 커피 농장까진 들렀다 가자고 안숙과 합의를 보고 담날 다시 차에 실려 도이창에 있다는 커피 농장에 간다. 커피 농장 가는 길은 우기에는 거의 길이 끊기다시피 한다는 굽이굽이 비포장 산길인데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올라간 곳은 커피나무가 산을 덮고 있다. 이곳에서 열매 따는 것에서부터 말리고 가공하는 공정까지 모두 이루어지는데 그 규모가 제법 크다. 이곳에서 뽑아주는 커피 맛은 거의 예술에 가까운데 커피가 가지고 있다는 다섯가지 맛이 절묘하게 섞여 혀끝에서 감돈다. 이곳에서 점심까지 거하게 얻어먹고 내려온다. 내려와서 슬쩍 빠져 정선생민과 셋이서 술자리를 가진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비용 애기가 나온다. 괜히 투어비 운운하면 오히려 화를 낼 것 같아 그냥 적당한 비용을 두고 오기로 한다. 게스트하우스의 매니저 격인 조카를 불러서 적당히 돈을 주고 아침에 일찍 사장님 내외가 자는 사이에 그냥 나온다. 이게 잘하는 건지 어쩐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그러는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막상 나오고 나니 그래도 그 덕분에 그냥 투어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한 소중한 곳이었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든다. 중국으로 배타고 떠나신다는 정선생님과의 인사를 뒤로 하고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아무래도 치앙라이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 인지 그냥 냅다 남부로 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낮차는 힘들 것 같아 다시 치앙마이로 가서 밤차를 탄다. 방콕에 아침에 도착하면 다시 그날 밤차를 타고 끄라비로 내려가는 일정이다. 윽 음주에 몸을 피곤할 대로 피곤한데 이틀 연속 밤차를 타야 하다니.. 체력이 받쳐줄지 모르겠다. 며칠만 있으면 나도 마흔이란 말이닷!! -사실 마흔이 되면 떨어지는 체력대신 그만큼의 배려와 참을성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지만 나도 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건 그저 생기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사람은 그리 많이 변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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