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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4/01
    <옥룡설산> 완전히 퍼지다(6)
    제이리
  2. 2006/04/01
    <호도협> 결국 가긴 갔다(7)
    제이리
  3. 2006/04/01
    <리장> 증세가 점점 심해진다(4)
    제이리
  4. 2006/03/15
    <따리> 티벳가는 일행을 만나다(10)
    제이리
  5. 2006/03/14
    <징홍> 조짐이 이상하다(4)
    제이리

<옥룡설산> 완전히 퍼지다

 

두 번째 오는 이 곳은 비교적 익숙하다. 아래층에 방하나를 잡고 짐을 푸니 맘이 편해진다. 호도협에 가서 씻지도 못했는데 욕조에 더운 받아 누워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한국에서도 안 밀던 때도 밀고^^ 한식으로 된 저녁도 먹고, 맥주까지 한 잔 하니 기분이 알딸딸하다. 하지만 저번에는 뭔가 해드리러 온 거였고 이번엔 그냥 신세를 지는 셈이니 밥상 차리기며 설거지 등등을 열심히 한다. 참 그러고보니 설거지 해 본 것도 무척이나 오래간만이다. 문씨 아저씨도 거의 서너달을 이 인적도 없는 곳에서 공사하느라 지치셨는지 이런 저런 말씀이 많으시다. 그저 말동무도 되어 드리고 하면 되겠다 싶다.

 

별로 하는 일이 없는데도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가끔 리장에 가서 시장을 보거나 하는 정도가 고작인데도 어느새 삼사일이 지나 있다. 컴퓨터가 24시간 되니 메신져나 하려고 간만에 접속을 해 봐도 온라인 되어 있는 인간 하나가 없다. 별 수 있나.. 네이트 온으로 문자를 날린다. 메신져에 접속해라 오바!! -참 좋은 세상이긴 하다^^- 결국 별 방법을 다 써 메신져로 수다도 떨고 간만에 이런 사이트 저런 사이트 웹서핑도 하고 밀린 메일 답장도 쓰고.. 그러다 보니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것이 그저 연락도 못 할 상황일 때는 오히려 그러려니 싶은데 조금씩 관계의 끈이 닿으니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싶은 게 두고 것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지더라는 얘기다. 한국에 잠시 다녀올까.. 아니면 북경에 가서 김과장 아니 김차장이랑 수다라도 떨고 올까.. 아니 그냥 티벳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바꿔 먹는다.



객실, 컴퓨터도 있다 물론 인터넷도 된다.


설거지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 부엌 겸 거실


삼사일이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한다. 컴퓨터가 되고 나서 다음 카페에 아직 오픈은 안 했지만 그래도 지나는 사람들은 들르시라는 글이 올라간 탓일까.. 이전부터 아는 동생이라는 한국인 가이드가 데리고 온 손님 7명을 필두로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심심하지는 않아 좋은데 조금 애매한 처지가 된다. 이곳은 산 속이라 따로 밥 사먹을 곳도 마땅치 않은데다 쥔장 성격에 밥 사먹으라고 내보내지도 못하니 그저 삼시 세때 다 밥을 해 먹여야 하는데 요리는 쥔장이 하지만 객식구 주제에 두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처지라 이것저것 거들고 설거지까지 하다보면 도대체 내가 여행자인지 이곳 복무원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주일쯤 지나니 슬슬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무지 개인적인 여유는 없어지고 점점 복무원화되어 가는 내 상태가 영 말이 아니다.


주인장이 스님들을 따라 호도협으로 떠난 어느날 그래도 떠나기 전에 신세는 갚아야지 싶어서 한글XP 까는 작업을 시작한다. 혹시 하는 마음에 쥔장방 컴퓨터는 그냥 둔 채로 내가 묵고 있는 방부터 포맷을 시작한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 XP포맷하는 거 구경만 했지 직접 해보는 건 처음이다. 일단 포맷하는 것 까지는 성공했는데 복사판 한글XP CD가 말썽이다. 프로그램을 한참 깔다가 무슨 파일인가를 찾을 수가 없다고 버틴다. 네이버에 물어보니 대충 CD가 불량이라는 답변이 나온다. 여기가 한국이라면 한글XP CD구하는 게 뭐 어려운 일이겠는가 마는 헉 여기는 중국인 것이다. 컴퓨터는 이미 포맷되어 버렸는데 프로그램은 안 깔리고 이런 난감할 데가 어디 있냐 말이다. 할 수 없이 이곳저곳을 뒤져 보니 한글 XP CD 하나가 더 나온다. 이걸로 다시 깔아보니 애도 또 무슨 파일인가가 없단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파일이 없다는 대목마다 CD를 번갈아 넣어주니 알아서 프로그램이 깔아진다.



숙소에서 바라본 옥룡설산


숙소 앞의 호수, 물막이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가 완료되면 숙소 앞에 제법 큰 호수가 생긴다고 한다.


여튼 우여곡절 끝에 한글XP를 깔고 나니 이제 대충 신세는 갚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설거지하기 싫어서^^ 내려간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그저 오늘 내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엔 감기가 온다. 열심히 다닐 때는 감기도 안 들더니 막상 쉬니까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별 수 없이 며칠을 더 보내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은 어느 날 짐을 싼다. 이런저런 고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원래 가려고 했던 루트대로 움직이기로 한다. 며칠 쉬면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마치 처음 떠나는 길처럼 발걸음이 무겁다. 결국 삼주 만에 리장을 떠난다. 믿거나 말거나 여행자들의 전설에 따르면 삼주 안에 못 떠나면 석달 이내엔 못 떠난다는데 간신히 기간 안에 떠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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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협> 결국 가긴 갔다

 

<낭만일생>으로 다시 돌아오니 채 풀지도 않은 짐이 그대로 방에 놓여 있다. 다행히 옆 침대는 그대로 비어 있다. 잠시 침대에 누워 있는데 여주인인 승경씨가 방을 좀 옮겼으면 하고 찾아온다. 커플이 한 방에 묵을 예정이니 옆방 침대로 옮겨 달라는 부탁이다. 그러마 하고 옮겨보니 그 비구니 스님과 한 방이다. 그 사이 호도협에 다녀오셨단다. 스님과 하루밤을 묵은 뒤 스님은 루구호로 떠나시고 표준방으로 방을 옮긴다. 원래 도미토리로 지은 곳이 아니라 씻는 것이 영 불편한데다 승경씨가 가격도 조금 낮춰 줘 그냥 며칠 편하게 지내자 하는 맘으로 옮긴 것이다. 그날 저녁 게스트하우스로 한 쌍의 남녀가 찾아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둘도 그냥 어딘가에서 만난 사이일 뿐 커플은 아니다. 호도협 같이 갈 일행을 찾으러 왔다는 거다. 둘이 가면 되겠구만.. 그건 좀 그런가 싶어 새로 들어온 커플에게 물어보니 이미 다녀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밖에 없다. 하긴 나도 호도협에 가긴 갈 예정이다. 단지 언제 갈지 결정을 안했을 뿐이다^^ 언제 갈 거냐고 물었더니 내일이나 모레 아무 때나 좋단다. 그래 이 기회에 갔다오자 싶어 다음다음날 떠나기로 약속을 한다.


다음날 호도협에 같이 가기로 한 일행 중 중 남자가 숙소를 낭만일생으로 옮긴다. 혹시 숙소를 옮기게 되면 같이 방을 쓰자고 했던 여자는 그냥 원래 숙소에서 묵겠다고 한다. 방값이 조금 부담되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다. 간만에 혼자 방을 쓰니 그 편안함이 돈에 비길 바가 아니다. 그날 은행 관련 일처리를 부탁하려 메신져에 들어갔다가 결국 문제가 생긴다. 은행 문제를 부탁하기엔 내 후임인 명희가 제격이라 명희에게 뭔가 부탁을 하고 난 뒤 인사말로 결산은 잘했냐고 물으니 결산 서류를 좀 봐달라고 한다. 잔액이 딱 떨어지게 안 맞는다는 거다. 일단 파일을 받아 봐도 잘 모르겠다. 이 복잡한 숫자들을 이전에는 어찌 맞췄단 말인가^^ 결국 하루종일 메신져로 이야기를 해봐도 이 서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결산 제출을 하루 이틀 미뤄보라고 하고 다음날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다. 여행하고 처음으로 밤새 액셀과 씨름을 한다. 결국 답이 나온다.


답은 나왔지만 아침에 명희와 얘기도 해야 하고 잠도 거의 못자 도저히 호도협을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7시 30분에 어디서 만나기로 한 것 외엔 묵고 있는 숙소도, 이름도 모른다. 7시 반에 약속 장소로 나가 사정을 설명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늦게 잠든 탓인지 눈을 떠보니 벌써 8시다. 그래도 다른 일행이 있으니 괜찮겠지 했는데 아침에 나가보니 웬걸 그 남자, 재철씨도 약속장소에 안 나갔단다. 둘이 서로 황당해한다. 이 친구, 일행 찾으러 일부러 한국인 게스트하우스까지 왔는데 이렇게 바람맞다니 무척 황당했겠다 싶다. 미안하지만 방법이 있나.. 그저 잘 다녀오겠거니 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다시 한나절을 메신져와 씨름을 하고 나니 겨우 그럭저럭 결산 문제는 해결이 된다. 호도협 일정이 이렇게 어긋나 버리고 나니 그저 숙소에서 빈둥거리는 것 외에 별로 할 일이 없다. 낮에는 여주인인 승경씨와 농담 따먹기나 하고 밤에는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과 술이나 마시고 그도 심심하면 방마다 설치되어 있는 DVD나 보거나 장기 체류자에게서 빌린 스피커로 음악이나 들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 모두들 궁금해 하실 장기 체류자는 그새 어떤 중국 여인네에게 낚이셨다고 하니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기로 한다.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며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그렇게 이삼일을 보내고 나니 어느 날 저녁 승경씨가 미안한 듯이 말을 건넨다. 언니가 언제까지 있겠다는 말을 안해서 방예약을 모두 받아버렸다고.. 그래서 내일 하루는 옆집에서 묵을 수 없겠냐며 미안한 표정이다. 순간 기분이 상한다. 미리 언제까지 묵겠냐고 물어보지도 않아 놓고 묵고 있는 방을 옮기라니.. 뭐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짐 한번 싸는 건 쉬운 일인가.. 사실 그것보다 정붙이고 있던 곳에서 버림받은 것 같은 마음이 더 크다. 그냥 홧김에 내일 방 빼겠다고 말하고 방으로 올라와 버린다. 그리고 나서 짐을 싸려 하니 마음이 영 편하지가 않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어차피 내일은 방이 없다니 호도협이나 다녀오기로 한다. 호도협은 어차피 1박 2일 코스이다. 그 다음 일정은 다음에 결정하기로 하고 아침 일찍 짐을 맡기고 호도협 가는 버스를 탄다. 막상 버스표를 끊고 보니 돈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난다. 원래 일정에 없던 일을 하면 꼭 이런 일이 생긴다. 버스정류장 근처에 은행을 들러 봐도 아침이라 그런지 ATM기는 사용이 되질 않는다.


버스를 타고 처우터우 호도협 입구에서 학생증을 내미니 다행히 반액할인이 된다. 앗싸.. 그래도 가지고 있는 돈은 80원 정도 밖에 없다. 하루밤 방값이랑 세끼 식사, 리장으로 돌아가는 차비까지 그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산속이라 물가가 비쌀텐데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래도 어찌되겠지 하며 호도협으로 들어서는 산길로 접어든다. 이미 들어 왔던 대로 마부 하나가 뒤따라 붙는다. 호도협은 28밴드로 불리는 약 1시간 30분에 이르는 산길을 제외하면 비교적 평탄한 굽이길인데 이 곳에서 말을 타게 하기 위해 거의 두어 시간을 마부가 뒤따라 붙는다고 한다. 뭐 초기부터 표적이 된 모양인지 그리 많지 트레킹족들 중에 유독 내 뒤만 졸졸 따라온다. 그래 뭐 상태로 봐서 표적을 잘 찍긴 했는데 미안하다. 돈이 없다^^ 하며 그냥 걷는다. 누구는 말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거슬려 나는 스테파니야.. 저건 목동의 방울소리고.. 하는 최면을 걸기도 했다는데 아무도 없는 산길에 마부라도 따라와 주니 차라리 안심이 된다.



호도협 입구에서 본 금사강


저 말이다. 저리 앞서가다가도 어디선가 보면 옆에 다가와 있다.


점심을 먹은 곳인 나시객잔, 반대쪽에서 오면 여기서 자게 될 지도 모르겠다.


두 시간쯤 산길을 오르니 점심을 먹는 장소인 나시객잔이 나온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볶음밥 하나를 시키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탁자에 놓인 콜라 하나를 집어 든다. 아무리 산 속이지만 설마 콜라 하나에 20원이야 받겠어 하는 맘이다. 다행히 볶음밥과 콜라를 합쳐서 10원이 나온다.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서니 그때부터 28밴드가 시작된다. 나를 따라 오던 마부는 그새 중국인 관광객 4명 중 하나를 싣고 저만치 앞서간다. 이제 말을 탈래도 돈도 없고 말도 없다^^. 냅다 걷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한 삼십분을 헐떡이며 걸어가니 말을 타고 가던 일행이 쉬어 가는 곳이 보인다. 잠시 쉬었다 다시 말타는 일행보다 먼저 길을 나선다. 저만치에서 말을 타고 오는 일행이 보인다 싶더니 이내 나를 앞지른다. 말에 타고 있던 중국 아저씨 하나가 걸어가는 나를 보더니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하는 말이 니가 말보다 낫단다. 얼떨결에 쎄쎄 해놓고 가만 생각해보니 이게 말이야 말뼉다구야 싶다^^. 다시 한 시간여를 부지런히 올라가니 정상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대충 내리막길 내지는 평지다. 까마득한 협곡을 아래에 두고 부지런히 걷는다. 이제 미부도 따라오지 않고 모두들 어디에 갔는지 앞뒤를 둘러봐도 나 혼자다. 세 시간여를 걸으니 숙소로 점찍어 둔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보인다.


아래쪽으로 까마득한 협곡이 보인다.


실처럼 보이는 것이 길이다.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 이른바 중도객잔이다.


게스트하우스는 다행히 도미토리가 있는데다 가격도 10원이라는 감동적인 수준이다. 이 정도면 대충 돈이 없어서 리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낭패는 없겠다 싶다.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에 있으니 아침에 버스에서 만났던 일행들이 속속 도착한다. 그러면 그렇지 니들이 가면 어딜 가겠냐 싶은데도 이상하게 트레킹 도중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하긴 굽이굽이 산길이니 조금씩만 떨어져 있어도 인적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하프웨이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에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 티나객잔에 도착한다. 보통 이곳에서 다쥐꺼지 트레킹을 계속하면 2박 3일 일정이 된다는데 뭐 2박 3일까지는 엄두가 안나 그냥 버스를 타고 리장으로 돌아온다.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폭포. 지금은 건기라 그렇지만 우기 때는 저길 어찌 지나가나 싶다.


리장에 도착하자마자 은행에 들러 돈을 찾는다. 돈을 찾고 나니 안심이 된다. 그리고 잠시 고민에 빠진다. 짐을 맡겨 두었으니 낭만일생에 들르긴 해야 할텐데.. 오늘은 늦어서 어디 다른 도시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일도 내키지는 않는다. 그냥 하루밤 더 묵는 수밖에.. 짐이 거기에 있으니 일단 낭만일생으로 가 본다. 승경씨도, 원래 호도협에 같이 가기로 했던 재철씨도 심지어 앤디도 보이질 않는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장기체류자에게 물어보니 어제 문씨아저씨가 내려와 모두들 술한잔하고 한밤중에 옥룡설산으로 올라갔단다. 그래.. 옥룡설산에 가도 되겠구나 싶다. 혹시나 하고 받아두었던 번호로 전화를 해보니 오늘 사람들과 함께 내려 올테니 기다리고 있으란다. 그래 그럼 옥룡설산에나 가서 며칠 쉬었다 가야겠다 맘을 바꿔 먹는다. 아직 중덴으로 올라갈 준비는 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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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 증세가 점점 심해진다

 

리장에 도착하고 이틀간은 비교적 정상적인 여행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벌써 기억이 아득하다^^. 티벳까지 동행하기로 한 친구가 이전에 가본 적이 있다는 나시족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그간 한국인 숙소를 다니며 늘어졌던 맘도 조금은 긴장이 살아나는 것 같은 게 웬지 거리도 새롭게 보인다. 리장은 들은 대로 한옥을 연상시키는 집들이며, 미로 같은 골목길 그리고 그 옆을 흐르는 수로들만으로도 맘을 빼앗길 만한 도시다. 그러나 그 골목길이 전부 상점으로 변해있고 어느 골목이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으니 누구 표현대로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재앙이 된 도시라는 감상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체 관광객이 붐비는 메인 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70년대 도시 변두리에서 보았음직한 골목길이며 집들, 시장을 만날 수 있으니 어디서나 발품은 조금 팔고 볼 일이다^^



언덕 위에서 본 리장고성


이층 객실에서 내려다 본 게스트하우스 마당, 이 지역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집을 개조한 것이다.


도착한 날 오후부터 동행한 친구가 이 길로 가면 이전에 보았던 어디가 나올 것 같은데.. 해가며 헤매는 통에 골목 구석구석을 몇시간 누비고 다니다 시장통에 앉아서 저녁을 먹는다. 당근 술이 빠질 리 없다. 둘이서 서너 병 먹어 주고 나서야 저녁 식사가 끝난다. 근데 이 친구 보기보다 말이 좀 많다. 주로 자기 옛날 여행담이 주 레파토리인데 사실 남의 여행 이야기처럼 지겨운 게 어디 있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행기를 매번 읽어주시는 여러분들도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긴 한다. 뭐 대략 사진만 보시는 분들도 많다는 사실도 알고는 있다^^- 슬며시 술 먹는 일이 고문이 된다. 담날도 고성 주변이며 리장 신시가지를 돌아다니는 걸로 하루를 마감한다. 이제 다음날이면 리장을 떠나 중덴으로 움직일 차례인데 문득 내가 이렇게 정신없이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든다. 리장에서 며칠 더 있고 싶기도 하고 호도협도 다녀오고 싶고.. 하는 맘이 다시 고개를 든다. 게다가 따리에서 만난 노과장 왈 리장의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에 장기 체류자가 하나 있는데 매우 괜찮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지 않았냐 말이다^^


사실 티벳 가는 길이란 게 이 친구를 따라 간다고 해서 육로로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같이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게다가 같이 다니는 일이 썩 즐거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밤에 다시 맥주를 마시다가 혹시 육로로 못가면 어떻게 갈 꺼냐고 물었더니 이 친구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단다. 대책이 없다ㅠㅠ. 실제로 공안에 잡혀서 되돌아 나오는 사람이 있는 것이 현실인데 그런 생각을 안 해봤다는 건 무슨 오기란 말인가.. 그랬더니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몬살아.. 그래도 만에 하나 걸리면 어쩔 거냐고 했더니 꺼얼무로 돌아서 들어갈 거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못 들어갈 일은 없다고 호언장담이다. 혹시 문제가 되면 그 다음 루트도 나랑은 다르다. 어떻게 하나.. 어떤게 잘하는 결정일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리장에 며칠 더 있겠다고 한다. 다행히 쉽게 받아들인다.


리장의 골목길


담장너머 봄꽃이 환하다


길에서 만난 꼬마, 지가 모델인 줄 안다^^


다음날 중덴으로 떠나는 그 친구를 보내고 한국인 여자 승경씨와 대만인 남자 앤디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낭만일생>으로 방을 옮긴다. 해발이 비교적 높다는 리장에서도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을 배낭을 메고 오르니 숨이 턱에 까지 찬다. 이곳은 도미토리가 주가 아니라 욕실이 딸린 소위 표준방이 주가 되는 곳인데 욕실 없는 트윈방 두개를 그냥 침대당 20원을 받고 내주고 있다. 방하나를 다 쓰고 싶으면 나머지 침대 가격까지 내면 되는데 이 비수기에 손님이 들까 싶지도 않아 그냥 침대 하나만 쓰기로 한다. 사실 한국인 게스트하우스라고는 하지만 주인이 늘 붙어 있는 것도 아니라 주로 중국인 복무원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 복무원들 중 영어가 가능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게 현실이라 이 정도 이야기를 하려면 온갖 손짓과 발짓이 동원되어야 하는 바 이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막 짐을 풀고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운영하는 카페에 앉아 있는데 따리에서 만났던 비구니 한 분이 들어온다. 함께 온 일행이 이전 따리에서 넘버3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시던 문씨 아저씨다. 셋이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새로 만든 옥룡설산 밑 게스트하우스 이야기가 나온다. 따리의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하고 새로 만든 이 게스트하우스는 아직 오픈은 하지 않은 상태로 공사를 마치고 인터넷은 깔았는데 다음 카페에 글이 써지질 않으신단다. 지금은 중문 XP가 깔려 있는데 한글 XP로 바꾸셨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함께다. 쿤밍에 있는 동생들에게 부탁했는데 공사기간 넉달이 지나도록 한 놈도 안 온다고 속상해하신다. XP는 몰라도 다음 카페에 글 정도는 쓰게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지금 당장 같이 올라 가자신다. 비구니 스님도 좀 도와드리라고 역성이다. 뭐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옥룡설산에 가보겠냐 싶어 짐은 게스트하우스에 둔 채로 따라나선다. 도대체 장기 체류자 얼굴은 언제 본단 말이냐^^


옥룡설산


옥룡설산 아래 호수


리장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옥룡설산은 한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는 산으로 멀리서도 그 위용이 한눈에 드러난다. 입장료가 120원이라는데 문씨 아저씨의 차를 타고 올라가니 무사통과다. 매표소를 지나 20분이나 달렸을까.. 드디어 게스트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게스트 하우스라기 보단 무슨 펜션 같다. 도미토리가 아니라 개별 방에 욕실, 방마다 컴퓨터까지 설치되어 있는 최고급 숙소다. 방에 있는 전면 유리창을 통해 호수며 멀리 설산이 한 눈에 보인다. 배낭여행하는 학생들이 묵기에는 좀 고급 숙소다 싶은 느낌이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바쁘게 움직이는 배낭여행객들보다 그저 며칠 조용히 쉬었다 가는 사람들이 묵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만든 곳이란다. 언제 오픈하시냐고 물어보니 공사하느라고 너무 지쳐서 쉴 때까지 쉬다가 내키면 하시겠다는데 글쎄.. 그게 언제일지는 모를 일이다.


다음 카페에 글이 안 써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방화벽 때문에 activ-x라는 프로그램이 안 깔려서 그런 건데 방화벽을 몇 개 낮추고 프로그램을 내려받으니 해결이 된다. 내친김에 한글XP까지 깔까 하다가 혹 깔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이 산중에 AS부를 데도 없는데 하는 생각에 그냥 두기로 한다. 저녁을 거하게 얻어먹고 담날은 차로 옥룡설산 아래 산길을 따라 따쥐까지 다녀온다.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기는 했어도 산 중턱에 있는 마을 어귀마다 복숭아꽃을 환하게 피워 올린 나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봄날을 실감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낸다. 결국 하루만 자고 내려가려 했던 것이 이틀이 된다. 며칠 더 머물고 가라시는 걸 짐이 아무것도 없어서요.. 했더니 그럼 리장에 며칠 묵다가 오고 싶으면 전화를 하면 데리러 오시겠단다. 말씀은 고맙지만 뭐 그럴 일이 있을까요..하는 맘이었지만 그저 네.. 하고 대답은 해놓고 리장에서 호도협이나 갔다가 중덴으로 올라가야지 하는 맘으로 다시 리장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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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리> 티벳가는 일행을 만나다

징홍에서 따리까지는 버스로 18시간이 걸린다. 다행이라면 앉아가는 버스가 아니라 누워 가는 버스라는 점일텐데 이 또한 단점이 있으니 지독한 발냄새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버스를 경험해 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인데다 심지어 강제로 양말을 나눠 주기도 한다는 주인장의 언급까지 고려해 보면 그 정도가 보통은 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조금 가라앉은 것 같은 체기가 버스에 오르니 좀더 심해진다. 뭐 발냄새는 각오를 한 탓이지 아님 후각이라는 게 워낙 금새 익숙해지는 탓인지 그저 견딜만하다. 버스를 탄 시간은 오후 4시 30분, 정상적으로 도착한다 해도 담날 아침 10시 30분 도착 예정이다. 열여덟 시간을 내리 잘 수는 없으니 해가 질 때까지는 창밖이나 바라보기로 한다. 그저 배가 지금보다 더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저녁도 굶고 아침도 굶고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버스는 연착없이 터미널에 도착해준다.

 

이놈의 따리행 버스는 예외없이 따리가 아닌 근처에 새로 생긴 신도시인 샤관에 사람을 내려주는데 샤관이냐고 물으니 기사는 따리라고 박박 우긴다. 그래 행적 구역상 여기도 따리인가 보다 그냥 수긍해 주기로 한다. 미리 알아둔 대로 터미널 앞에서 4번 버스를 타고 40분쯤 가니 따리 고성이 나온다. 이곳에서도 역시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인 넘버3를 찾아간다. 이 곳에서 10년간 넘버3를 경영하던 문씨 아저씨는 게스트하우스를 처분하고 리장 근처의 옥룡설산으로 거처를 옮기셨다고 하고 이곳은 제임스라는 한국 아저씨가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새로 오픈 했다는 숙소는 두 달이 채 안 지나서 그런지 다녀 본 어느 곳 보다 깔끔하다. 비록 도미토리이긴 해도 공용 욕실 등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침대도 개인등이며 칸막이 등이 달려 있어 사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는 점도 맘에 든다. 게다가 침대에는 전기장판도 깔려 있다. 그래 이제 더운 곳에서 추운 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이제 티벳 올라가는 길에 들어서면 훨씬 더 추워질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아닌 게 아니라 한낮을 제외하고는 제법 추운 기운이 느껴진다.

 

도미토리 한구석에 짐을 풀고 나니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나무야>에서 만났던 쿤밍에서 차공부 한다던 원섭씨와 리장으로 떠났던 화사동료 세 명이 따리로 내려온 것이다. 이삼일만에 다시 만나니 십년지기라도 만난 것 같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삽겹살을 구워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결국 따리에서도 그냥 뒹굴거리다 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담날은 원섭씨가 한국에서 찻집을 내는데 필요한 소품이 필요하다고 해 따라 나선다. 따리를 중국의 인사동이라고 표현한 누구의 글이 떠오른다. 잠시 다녀 본 따리 시내는 인사동 같기도 하고 그냥 거대한 영화세트장 같기도 하다. 대체 사람들은 어디 사는 거야.. 투덜거리며 온통 상점뿐인 거리를 헤집고 다닌다. 그래도 여기는 리장보다는 나아요. 같이 따라 나선 회사 동료 셋 중 청일점인 노과장의 말이다. 리장은 여기보다 사람도 더 많고 상점도 더 많고 진짜 영화세트장 같다니까요.. 한다. 뭐 그래도 도시는 예뻐요. 하는데 웬지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귀찮아서 사진도 안 찍었다. 올릴 사진이 없다ㅠㅠ

 

이틀이 지나고 다시 모두들 다음 도시로 떠난다. 그래도 따리 뒤에 있는 창산은 한 번 올라 줘야지 싶어 그냥 하루를 더 머물기로 한다. 창산은 해발이 사천미터가 넘는다는 따리 북쪽에 있는 산인데-하긴 따리 자체의 해발이 이천이 넘는다- 대부분 꼭대기까지 가기보단 산중턱에 나 있는 긴 산책로를 한 번 걸어주는 것으로 트레킹을 마감한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은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는데다 그걸 타기 싫으면 말을 타고 오를 수도 있고 일단 올라가기만하면 11km에 이르는 등산로가 아니 산책로가 완전히 포장되어 있어 비오는 날도 문제없이 갈 수 있다는 쉬운 코스이다. 숙소에 같이 묵었던 한국인 몇몇과 산을 오른다. 말타는 게 걷는 거 보다 더 힘들다는 소문도 있고 해서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탄다. 그리고 쭉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산 위에서는 따리 시내뿐 아니라 멀리 얼하이 호수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내려오는 길은 그냥 걸어서 내려온다. 이곳 따리의 산은 진달래며 민들레가 벌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 완연한 봄산이다.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논밭에도 푸른색의 채소며 노란 유채가 한창이다. 아.. 서울도 봄이겠구나 잠시 아득해진다.


 창산의 운유로, 평탄한 길이다.


창산에서 내려다 본 따리, 멀리 얼하이 호수가 보인다.


벌써 봄꽃이 피기 시작한다.

 

트레킹을 하고 내려와 내일은 리장으로 가야지.. 하고 있는데 한국 남자 하나가 체크인을 한다. 마침 내 옆 침대다. 어디서 오셨어요? 했더니 쿤밍에서 오는 길인데 티벳가는 길이란다. 아싸!! 나랑 행선지가 같은 사람을 드디어 만난 거다. 어떻게 가실건데요? 했더니 그냥 버스타고 간단다. 거기 퍼밋 없이는 육로로 못가잖아요? 했더니 그래도 그냥 갈 거란다. 안되면 트럭 히치라도 할 거란다. 잘 됐다 싶어 같이 가자고 한다. 그 친구도 흔쾌이 오케이다. 다만 자기는 이전에 운남을 두 번이나 여행해서 따리니 리장은 그냥 지나가는 길이라 리장에 그리 오래 머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요. 그럼 리장에서 이틀만 자고 가죠 한다. 아.. 호도협도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은 들지만 지금같은 비수기에 티벳 가는 일행을 만나기는 쉽냐 말이다. 게다가 이 친구.. 술 무척이나 좋아한단다. 따리도 안들리려다 한국사람하고 술이나 마실려고 들렸다니 말 다했다^^. 저녁에 같이 술 한잔하고 다음날 따리를 떠난다. 이 친구 덕에 따리에서는 그래도 사흘 밖에 안 머물렀다. 병이 나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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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홍> 조짐이 이상하다

 

징홍에 있는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 <나무야>에 짐을 풀고 나니 갑자기 맥이 풀린다. 집이 나갔다고는 하지만 몇 가지 처리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는데다 만약 한국에 가면.. 하고 마냥 미뤄두었던 일들도 이것저것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도무지 그 일들이 뭔지도 잘 정리가 안되는 게 머릿속만 복잡하다. 다행히 숙소에는 성수기가 지나서인지 아님 징홍이 운남의 주요 여행지가 아니라서 그런지 여행자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며칠 복잡한 맘이며 지친 몸이나 추슬러야겠다 싶어 하루 이틀을 게스트 하우스에서 빈둥거린다. <나무야>의 여주인인 선영씨가 가져다 놓은 구슬 꿰는 일이나 거들며 수다나 떤다. 역시.. 단순노동이 체질인 듯 구슬만 꿰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그래도 어디론가 움직여야지 싶어 가방 깊숙이 넣어 두었던 론리 플레닛 쪼가리-분철했다^^-를 다시 꺼내 징홍과 징홍 주변의 갈만한 곳을 살펴봐도 그리 내키는 곳이 없다. 마침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는 프로그램 중에 주변의 소수 민족인 하니족 마을에 다녀오는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같이 가겠느냐고 누가 물어온다. 옆방에 묵고 있는 아이 셋과 함께 여행하는 일가족의 아빠다. 사실 고산족이나 소수민족 투어는 더이상 가보고 싶은 맘은 없지만 그냥 일반적인 투어 프로그램이 아니라 숙소 스탭인 하니족 친구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라는 점과 숙소 주인인 선영씨가 소수 민족을 돕고 있는데 그 마을로 간다는 점 등에 마음이 끌려 다녀오기로 한다.

 

담날 아침 일찍 나서보니 옆방의 부부와 아이 셋, 나랑 같은 방을 쓰던 청도에서 유학하고 있는 여학생 둘, 그리고 회사에서 연수차 북경에 왔다가 여행 중인 회사 동료 셋 그리고 주인인 선영씨까지 모두 12명이나 되는 대부대다. 여느 투어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대중 교통수단을 타고 움직인다.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가서 근교 도시인 멍하이로 다시 멍하이에서 하니족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어느 산길에 내려 30분을 걸어가니 드디어 마을이 보인다. 그냥 마을이다. 맘이 놓인다. 최소한 소수 민족 마을을 빙자한 관광지는 아닌 듯싶다. 그저 어릴 적 외가집에나 가듯 마중 나온 주인아주머니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선다. 중국의 마을들은 지붕이 기와라 그런지 그냥 우리나라 어느 시골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하루를 묵었던 하니족 마을의 숙소


마을 전경

 

프로그램도 소박하다. 마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마을 어귀 뒷산에서 참게를 잡으러 간다. 제법 큰 개울인가 했더니 조그만 실개천이다. 그래도 아이들 셋은 신나게 논다. 참게를 잡아다가-뭐, 우리는 한 마리로 못잡고 주인 아주머니와 그 딸래미가 다 잡긴 했지만- 장작불에 구워서 대나무밥이랑 역시 대나무통에 삶은 계란과 함께 먹는다. 참게 밑에 깔아 함께 구운 돌미나리의 향이 향긋하다. 논밭이 눈앞에 펼쳐진 전경이며 야트막한 산들이 그저  우리나라 어느 교외에 하루쯤 나들이 나온 것만 같다. 저녁에는 숯불을 피워 구운 돼지고기와 함께 맥주며 중국술인 바이주가 한순배씩 돈다. 사람들과도 적당히 친해지고 그래.. 한국 사람들하고 트레킹을 하니 이런 게 좋구나 싶은 맘이 든다.


굽기 전 참게


대나무밥을 만드는 주인 부부

 

그리고 나선 다시 게스트 하우스에서 뒹굴거린다. 떠나야 하는데 웬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제법 친해진 일행들은 아침마다 오늘도 안 나가요? 하며 놀리는데 아.. 예.. 뭐 별로 갈 데도 없고.. 하면서도 뭘 하는지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결국 유학생 친구둘이 쿤밍으로 떠나고, 회사 동료 셋이 리장으로 떠나고, 일가족 다섯이 태국으로 떠난 뒤에야 슬슬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따리로 가는 버스를 끊어 놓고 잠이 들었다가 한밤중에 잠이 깬다. 머리가 어질어질한게 뱃속이 울렁거린다. 저녁에 먹은 사발면이 잘못된 모양인지 속이 영 거북하다. 후레쉬를 꺼내들고 배낭 어딘가에 넣어둔 소화제를 꺼내 먹고 다시 잠을 청한다. 아침에 일어나도 상태는 그대로다. 전날 체크인한 한의대생 친구가 이리저리 맥을 집더니 체한 것 같다더니 양약으로는 안된다며 한방 소화제를 사다 준다. 역시 룸메이트는 잘 만나고 볼일이다^^ 결국 따리가는 버스를 하루 연기하고 선영씨가 끓여준 죽으로 하루를 연명한다.

 

결국 징홍에 8일이나 머무른 셈이다. 여행하고 처음으로 아무 것도 보지 않은 채 그 도시를 떠난다. 여행하기 전 1년 4개월을 여행하고 돌아 온 하우아시아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한달, 6개월 그리고 1년 되는 때가 고비라고.. 한번씩 내가 뭐하러 여행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무기력해지는 시기가 그때인데 그때는 빨리 환경을 바꿔주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여행 시작한지 어언 6개월이 되어 간다. 돌이켜보면 베트남 넘어가기 전 쿤밍에서 내가 뭐하는 짓이지.. 하며 꽤나 우울했던 것도 여행 시작하고 약 한달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게 장기여행 증후군인가 싶으면서도 설마.. 하며 버스를 탄다. 


하니족 마을에서 찍은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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