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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만남

오랜 만에 20년 전 선배들과 동기들을 만나게 됐다. 한 친구가 몇년동안 영국에 나가 있다가 들어와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자리다. 그동안에도 이런 일 저런 일 있을 때 몇 년만에 한번씩 봤고 이번에도 그렇게 4-5년 만에 만나는 거 같다. 이번에는 똥파리와 팔삼까지 연락이 됐다고 하니 십여년 만에 만나는 이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동기 중에 한 친구는 여의도 국회에서 또 한 친구는 별로 멀지 않은 과천에서 나는 영등포에서 그리고 선배들도 서울의 어느 한 곳에서 아침부터 밤을 보냈던 거다. 뿔뿔히 흩어진 채 연락하지 않고 잘들 살고 있겠지하면서...말이다.

 

이들이 누군인가? 한때는 최루탄을 함께 맞아가며, 골방에서 뭔 소리도 모르겠는 책을 들고 씨름했던 이들 아닌가. 밖으로는 풍물 동아리로 묶이고 실제로는 의식화모임에서 더 나가 조직적으로 엮이는 운동집단이었다.

 

하지만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86년 암흑기에 남자선배들은 달랑 여자 선배한명 남겨놓고 군대로 가겠다고 했고, 남아 있던 동기들과 선배들은 우리 써클을 유지할 것이냐  말것이냐 심각하게 논쟁을 벌었던 것. 그 때의 기억이 어른 거린다. 누가 맡아서 유지할 것이냐는 게 가장 핵심이었고,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한 채 해산하기로 했던 아픈 기억들....

 

결국 각자 자기의 길을 갔다. 공부만하는 학생(?)으로 돌아온 내가 꼬들김을 당해 학생회 선거에까지 나가게됐고, 같은 써클에 있었던 친구와 경선을 했고, 당선되면서 나는 지하 써클 영역보다 학생회 활동을 중심으로 한 대중활동을 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 여기 노조운동조직에서 실무 노가다(?)를 하고 있다.

 

내일 만나게 될 선배들 중에는 군대를 정리할 생각으로 노동부를 점거했으나 결국 군대에 끌려갔다 온 사람, 맹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지금은 다른 사업하는 사람, 현장에 들어갔다가 병만 얻어 나온 사람, 당시 군사독재시절 피끓는 분노와 옳은 것을 알려내야 한다는 양심때문에  결코 순탄치 않게 산 사람들도 있다. 그런 반면 우리 동기들은 ....사실 잘 모르겠다. 취직해서 돈 벌고 있다는 것 말고 그들과 인생을 얘기해 보지 않았기에...가끔 만나는 한 친구를 빼곤 말이다.

 

그렇지만 언제가는 이렇게 또 만나고 앞으로 또 만나게 될 것 아닌가? 이 사회의 한 영역, 40대초반, 386세대, 똑같은 사회적 고통과 어려움에 직면해서 아둥 바둥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렸을 적에는 운동판을 떠난 이들을 굳이 만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이 얼마나 외골수적이고 편협한 인간관계인가. 그들도 느낄 거라 생각한다. 옛날 운동을 했던 기억 속에서...아주 가끔은 현재의 자신을 반추하면서...

 

죽을 때까지 사람의 관계는 알 수 없는 거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20년 전 선배와 동기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애뜻함과 푸근함같은 것을 별로 없다. 당장 서로 치열하게 부딪히는 지점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세월에서 녹여낸 상대방에 대한 배려일까.

 

사실 몇년만에 모이면서도 날짜와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만날 요일과 모이는 장소를 두고 설왕 설래 했다. 어느 쪽으로 해라. 어떤 요일은 안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내가 가장 바쁜 날 만날 약속이 잡혔고, 대신 내가 가기 좋은 곳으로 장소를 잡았다. 다음 날 출근들을 해야 하니 따져볼게 많은 갑다.....이렇게 삶은 먼 곳에서 온 친구도, 오랜 만에 만난 선배와 동기들도 부대끼게 만들고 있다. 내일은 그 삶들과 내 삶이 술잔이 되어 짠 하게 부딪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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