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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이주노동자는 사회적 여성

  • 등록일
    2005/03/12 12:49
  • 수정일
    2005/03/12 12:49

일다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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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는 사회적 여성
- 명동성당 농성에 ‘중독’된 이유

  김숙현 기자
2004-03-22 04:37:32  

요즘 나의 생활은 직장과 명동성당, 이 두 곳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하고, 저녁 때(혹은 야근 후 밤에) 거의 매일 명동성당에 간다. 명동성당에는, 21일로 128일째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와 ‘연행동지 석방’을 외치며 농성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왜 이주노동자 운동에 연대하는가?

처음에 나는 ‘투쟁과 밥’이라는, 일주일에 한번씩 이주노동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연대를 표하는 모임에 친구들과 참여했다. 하나의 ‘조직’이라기보다는 정해진 요일에 원하는 사람 아무나 갈 수 있는 날 가는 약간 느슨한 모임이다. 어차피 음식을 준비하여 조리하는 것은 숙련된 몇몇 분들이 할 수밖에 없기에, 나와 친구들은 배식을 돕고 설거지를 하거나, 뒷정리에 함께 하거나, 혹은 밥만 얻어먹고 매일 저녁 명동성당 계단에서 갖는 집회에 참여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우리는 농성단의 이주노동자들과 얼굴을 익히기 시작했고, 수줍게 말을 걸고 인사를 나누었다.

지금 나는, ‘투쟁과 밥’에서 만난 사람들 몇몇과 함께 꾸린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모임은, ‘투쟁과 밥’보다 조금 더 강한 결합을 원하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이다. ‘활동’이라고 거창하게 얘기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들은 소소하다. 각자의 형편에 따라 화성보호소에 있는 굽타와 깨비, 헉을 면회 가는 사람도 있고, 회사에서 인터넷에 이주노동자들에 관한 글과 사진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농성단 홈페이지에 오른 글을 여기저기 퍼 나르기도 하고, 낮 시간에 농성장에 와서 농성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외부로 외출하는 사람들과 동행하며 보디가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와 밥을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세탁물을 한 짐 지고 가서 빨래를 해다 주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에는, 한글 읽기/쓰기가 약한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낮 시간 활용이 가능한 몇몇 사람들이 한글교실을 열었다. 초등학교 교과서와 차트까지 준비해 진행된 이 수업에, 농성단 사람들의 관심과 집중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진정한 연대란 주고받는 것인 법. 조만간 방글라데시/네팔의 문화, 언어 등을 배우는 교실 역시 생길 것 같다. 우리는 이것을 ‘프리스쿨’이라 부르기로 했다.

우리 모임에 속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현상이 꽤나 낯설었던, 우리 모임의 ‘적극분자’ 중 유일한 남자인 K씨가 며칠 전, 술자리에서 ‘왜일까?’라고 물음을 던졌다. 나는 예전에 친구들과 <불한당>이란 책을 만들 때, 인권운동사랑방 상근활동가인 배경내씨를 인터뷰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 인터뷰에서 소위 ‘부문운동’이라 불리는 분야 활동가 중에 왜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그리고 자문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이토록 이주노동자 운동에 깊이 감정이입을 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것일까.

여성으로서 느끼는 ‘동병상련’

회사 때문에 주로 인터넷을 통해 활동하고 밤에 잠깐 명동성당에 들르는 내 경우, 주위에서 ‘수고한다, 힘들겠다’ 등의 반응을 받게 되면 당황스럽다. 왜냐하면 나는 힘든 것을 참고 있는 게 아니라, 농성단에 가는 게 너무 즐거워서 가기 때문이다. 나뿐 아닐 것이다. 우리 모임 사람들이 항상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이야기가 “명동성당 농성단은 중독성이 너무 강하다”이니까.

그러나 이주노동자 운동에 대해 나는 여전히 이론적이고 명확한 논리들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가지곤 있지만 계급론이나 좌파 이론에 밝지 못하며, 뭔가 싸우고 직접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등의 운동 이론엔 문외한인 나로서는, ‘왜 나는 연대하는가?’라는 자문에도 그럴듯한 답을 찾지 못했다. 이주노동자들이 불쌍해서? 연민을 느껴서?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처음에 머리에 떠올린 것은 이성과 논리의 영역이 아닌, ‘동병상련’이라는 감성적 영역의 언어였다.

‘여성은 이 시대 마지막 흑인’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인종주의를 재빨리 몸으로 익힌(그것도 백인중심주의적, 사대주의적으로) 한국인들 중 한 명이긴 해도, 저 말에 사용된 ‘흑인’이라는 단어가 갖는 그 절절한 의미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 건 사실이다. 오히려 나에게는 ‘흑인은 이 시대 마지막 여성’이라고 표현해야 의미가 다가온다. 그건 아마도 내가 ‘여성’, 특히 ‘노동자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저 문장에서 사용된 ‘여성’이라는 단어가 생물학적 여성을 지칭한다기보다 ‘억압 받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을 가리키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다른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픈, 혹은 연대해야 한다는 나의 바람을 투영시킨다면 저 문장의 주어 ‘여성’의 자리는 수많은 다른 존재들로 대치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동성애자는 이 시대 마지막 여성, 장애인은 이 시대 마지막 여성, 혹은 이주노동자는 이 시대 마지막 여성.

이러한 ‘사회적 여성’들이 받는 고통과 억압은, 그 본질은 다를지라도 형태와 외양은 비슷하다. 혹은 형태와 외양이 다를지라도 그 본질은 비슷하다. 이들의 운동을 매도하고 왜곡하며, (합당한 비판이 아닌) 비난을 하는 언어들도 마찬가지다. 노동운동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의 논리에서, 혹은 ‘노동귀족’을 비판하는 논리에서, 장애인 운동에 무심한 사람들이 뱉는 무심한 말 한 마디에서, 동성애자를 희화화하는 표현들에서, 페미니스트들을 폄하하고 조롱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논리와 표현과 반응과 왜곡된 지점을 찾아낼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 중 특히 남성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는 성별의 측면에서, 국적의 측면에서, 우리의 기득권을 묘하게 교차하며 갈등지점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와 내가 똑같이 노동비자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주노동자가 원하는 것이 ‘물리적인’ 노동비자라면, 한국인 ‘여성’으로서 내가 원하는 것은 ‘상징적인’ 노동비자다. ‘상징적인’ 노동비자를 원하는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남성, 비자발적 실업자 남성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여기에 또다시 연대의 새로운 범위가 추가된다.

연대의 그물을 잇는 한 희망은 있다

지난 3.8 여성대회 집회 때, 이주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참여했던 건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 이유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연행과 강제출국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게 집회에 참여하는 이주노동자들이 특히 열심히 참여하는 집회는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다. 지난 14일 건설일용노조집회에서는 1시간 먼저 같은 장소에서 사전집회를 가진 후, 본 집회에 함께 하기도 했다. 책상 앞에서 생각만 하기론 가장 적대적인 관계일 것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일용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이 그렇게 거리에서, 집회장에서 연대의 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주노동자 운동에 연대하는 한국인들 역시 비슷하다. 이주노동자들의 농성단 천막을, 그리고 연대주점을 찾아오며 가장 강하게 연대를 보이는 사람들 중 한 무리가 장애인이동권연대 사람들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천막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사실, 이주노동자들의 천막에 함께 결합해 있는 단위엔 민주노총도, 또 각종 사회운동단체도 있지만 ‘불완전고용철폐연대’ 역시 있다는 사실.

이렇게, 수많은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여성들’은 비(非)여성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이에 씨줄과 날줄을 엮어 연대의 그물을 짜고 있다. 그렇다. 농성장을 방문하고 이주노동자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나는 하나의 줄로 된 연대의 끈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끈이 길이가 길어질수록, 내가 알게 된 사실은 그것이 ‘한 줄의 끈’이 아니라 가로 세로가 복잡하게 얽힌 ‘그물’ 형태라는 것이다. 내가 감동과 기쁨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농성단 방문에 강하게 ‘중독’되어 버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아마도 나와 비슷한 감동과 기쁨을 찾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희망’이란, 그렇게 우리를 찾아왔다. 아니, 그렇게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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