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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North Carolina Independenc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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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ow the Belt
by danyele mcpherson • Tuesday February 10, 2004 at 03:07 PM
On Friday, January 30th, Shira EtShalom brought her touring menstrual health workshop to the Internationalist Bookstore in Chapel Hill to educate local menstruators and non-menstruators alike on the alternatives and problems with corporately produced tampons.
Shira, a resident of Philadelphia has been teaching menstrual health workshops and sewing homemade cloth menstrual pads which are available for purchase on her website for over 3 years. Her tour, aptly titled the Below the Belt Tour began January 24th at the 7th annual National Conference on Organized Resistance (NCOR) in Washington D.C.
Shira spoke to a group of approximately 11 women in her Chapel Hill workshop, detailing the many options available for menstruators and offering the pros and cons of each.
She stressed environmental, health, and social concerns as an impetus to seek alternatives to tampons made by Tampax, Platex, o.b. and other corporate tampon producers.
Waste was cited as a major concern of disposable menstrual products on the environment. "The average woman may use up to 15,000 tampons in her lifetime [and] that's a lot of waste for the environment," claims www.thekeeperstore.com. This website is dedicated to selling The Keeper, a tampon alternative that is reusable with a life of approximately 10 years. The Keeper is made of natural gum rubber, so it has a severely reduced impact on the environment when compared to traditional tampons.
Shira mentioned The Keeper, sea sponges (not vegan), and reusable cloth pads as alternatives which create less waste for the environment.
Also harmful for the environment and menstruators alike, Shira discussed the use of rayon and the bleaching process employed in the production of corporately produced tampons. Shira stated that rayon, a synthetic fiber made of wood pulp, caused small cuts on the vaginal walls, which increased bleeding. She also noted not only do these tampons cut the vaginal walls, but that they leave behind fibers which as a result of the bleaching process can increase chances of endometriosis and cancer.
Tampax's website directly addresses these accusations stating, "Rayon...has been used in Tampax tampons for more than 25 years. Extensive testing by a number of leading scientists at Harvard, Dartmouth, University of Minnesota, and Centers for Disease Control has demonstrated that rayon and cotton are equally safe materials. Fibers can come off any tampon. The natural cleansing process of the vagina removes these fibers with a short time. Medical literature recognizes this process and [it] does not represent a health risk." (tampax.com)
With regard to the bleaching, endometriosis and cancer risks noted by Shira, Tampax maintains their tampons are tested by "the most advanced government approved methods available" and they "contain no dioxin (a cancer causing agent). There is absolutely no scientific evidence that tampons lead to the development of endometriosis or cancer." (tampax.com) Shira counters this stating that the "government approved testing methods" referenced by Tampax were not developed to test for minute dioxin levels and their effects in sensitive areas like the vagina.
Other environmental and health concerns like pollution from tampon production and yeast infections were also discussed in the workshop.
These issues intersected with social and cultural concerns over corporately produced tampons. Participants in the workshop noted that commercials for menstrual products often convey a sense of shame to the menstruator, that it is something which should be hidden from the world. The new Tampax Compak indeed illustrates this point as it was designed to fit in the palm of one's hand, "for maximum discretion." (tampax.com) In a recent commercial, this tampon is designed so small that a woman's boyfriend mistakes it as a sugar packet.
Tampax reminds women that an advantage to wearing tampons is, "you can wear any type of clothing from body hugging workout gear to mini skirts and no one will know." (tampax.com) Another advantage Tampax cites is with tampons, "you stay clean and feel fresh" intimating that menstruation is naturally unclean.
Emphasis on secrecy is obviously part of Tampax as well as other corporate tampon producers marketing strategy. All of these advertisements and minaturized products work together to tell women the same message: menstruation is unnatural and unclean therefore, it should be concealed. Shira and workshop participants rallied against these corporately created norms yelling "tampon" in unison.
Shira presented the alternatives in order of her least to most favorite providing information on organic tampons, sea sponges (not vegan), The Keeper, and cloth reusable menstrual pads like the ones she makes and sells.
Her pads are made of 100% cotton, come in various sizes, and are machine washable. Since they are used externally and made from cotton, risks of cancer, endometriosis, and yeast infections are avoided and their reusability prevents harmful effects on the environment.
Environmental, health, and social concerns all intersected in the Below the Belt workshop, making it clear that menstrual product alternatives must be sought and education on these issues must continue.
If all this weren't enough to cause some uneasiness in the feminine care product aisle once a month, Shira hit us in the pocket. Her cloth reusable pads are $3-$10 sliding scale. The Keeper with a life of 10 years is $35 and even offers a 3 month trial with a money back guarantee. Sea sponges also offer a similar value as they can be used up to 4 cycles and cost well under the price of a box of Tampax.
All things considered, we can't afford not to give up corporately produced tampons.
Shira can be contacted at belowthebeltshira@yahoo.com
You can purchase menstrual pads and obtain relevant information on menstruation at her website, www.deadletters.biz/belowthebelt/
맑스코뮤날레 제2차 쟁점토론회
<계급 그리고 시민, 민중, 다중>
참관기
-깨철이
1. 계급
맑스코뮤날레 토론회에 다녀왔다. 토론회의 취지는 계급적 관점에서 시민, 다중, 민중을 어떻게 볼 것이고 변혁의 새로운 주체성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토론회의 기본 발제문도 그렇고, 발제자도 그렇고 그런 토론회의 취지에 정확히 부합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시민’에 대해 발제문을 작성한 신광영만이 취지에 부합했고, 김세균의 ‘민중’은 ‘다중’에 대한 비판과 비교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토론회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문제의식은 ‘계급’에 관한 것이었다. 시민, 민중, 다중에 대한 개념적 규정은 서로 이야기되었지만 계급에 대한 개념규정은 사전에 이미 전제되고 합의되었다는 듯이 진행되었다. 맑스레닌주의의 계급개념은 크게 세 가지 기준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것을 정리하면, ‘①착취의 정도 ②생산수단의 유무 ③생산관계에서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소 중 계급을 가르는 가장 중심적인 요소는 ②이며, 나머지는 보조적 기준이다.
맑스레닌주의의 계급개념에서 생산수단의 유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생산관계에서 착취가 생겨나고 지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생산관계’라고 하는 영역이다. ‘생산관계’를 공장이라고 하는 협소한 틀로 한정지어 생각하면, 가치와 잉여가치는 공장에서만 생산되며 잉여가치의 착취 또한 공장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 된다. 그 외의 영역에서는 생산도 착취도 없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 기존의 전통적 맑스레닌주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내에서는 크게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만이 있으며, 자본주의의 발전정도에 따라 그 사이에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나 쁘띠부르주아와 같은 중간계급이 있을 수 있으나 자본주의의 발전 경향은 중간계급이 소멸될 수밖에 없고 주요한 두 계급으로 된다는 것이다. 좀 더 설명을 보태자면 여기서 중간계급은 그 불안정성으로 인해 계급으로서의 동일한 이해를 가질 수 없고 그래서 자기계급으로 조직되기도 힘들다. 따라서 중간계급은 고유한 자기계급으로 형성되지 못하고 자본가계급이나 노동자계급에 흡수된다.
생산수단이 없지만 생산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이 없는 실업자, 학생, 여성 등은 ①과③의 기준에 의해 실업자, 학생, 여성 등은 산업예비군이나 룸펜프롤레타리아 등으로 불렸으며, 이들 또한 독자적인 이해를 지닌 계급으로 조직될 수 없고 노동자계급에 흡수된다. 기존에 우리가 불렀던 ‘민중’이라는 것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착취의 정도와 생산관계에서의 역할 등에 의해 노동자계급과 가까운 피지배자 일반을 통칭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계급구분에 대해 다음의 의문을 가진다.
첫째, 계급을 가르는 기준인 생산관계의 ‘영역’에 대한 의문이다. 과연 생산은 공장에서만 진행되고, 착취는 공장안에서만 발생하는가? 이것은 자본주의의 생산의 발달과 생산지형의 변화에 대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둘째, 자본주의 발달은 과연 전통적인 계급인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가속화되고 중간계급은 소멸하고 있는가? 즉, 전통적인 계급구분의 기준에 의해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두 개의 계급으로 경향적으로 나눠질 수밖에 없다는 명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셋째, 과연 정치경제학적 이해관계의 측면에서 실업자, 학생, 여성 등등은 자기를 변혁이라는 사회적 전망을 지닌 고유한 계급으로 조직될 수 없는가? 가령, 실업자는 노동자가 되어야만 그리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어야만 계급으로 조직될 수 있는 것인가?
각각의 의문들은 계급구분에 대해 서로 다른 층위를 지니는 의문들이다. 이 세 가지 의문 속에서 나는 전통적인 계급개념에 반대한다.
첫째, 현재의 생산은 공장이라는 틀을 뛰어넘어 생산의 사회화가 삶 전반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그녀가 공장에 있던 오피스텔에 있던 가정에 있든 학교에 있든 거리에 있던 생산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실업자, 학생, 여성 등등이 생산에 참여하고 있으며 착취당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즉, 그런 의미에서라면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라는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눠지는 것이 경향적으로 가속화된다는 명제를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말로 ‘사회적 노동자’라는 새로운 주체성을 발견할 수 있을 때 이 명제는 타당할 수 있다.
셋째, 현실에서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정규직의 이해와 비정규직의 이해가 동일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일한 이해로 자기를 조직하는 계급이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다고 해야 하거나, 전통적인 노동계급의 동일성의 이미지가 종말을 맞았다고 해야 한다. 반대로 실업자나 여성 등등은 공통의 이해를 통해 자기를 조직할 수 없다는 가정은 점점 현실과 맞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현상을 통해 변혁의 주체인 계급개념으로 분석해내고 조직해내야 한다면 우리는 계급에서 동일성의 이미지나 단일성의 이미지를 지워내야 한다. 다양한 자기조직화를 통해 공통의 이해를 향해 나가는 주체성으로서의 계급이라는 재정의가 필요하다.
2. 다중과 민중, 시민
민중과 시민은 주권 속에서 표현해낸 주체 개념이다. 우선 민중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계급적 구분 속에서는 노동자계급을 위시한 피착취 대중들을 가리킨다. 이때 노동자계급과 일반대중을 나누는 기준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생산관계에서의 분석, 그리고 생산관계에서 각 역할에 대해 전통적인 분석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계급적 민중이 주권적 주체로 설정된다.
시민개념은 민중과 다르게 계급적 표현이 아니다. 시민은 기본적으로 생산관계와 독립적으로 설정된 생활영역 속에서 주권적 주체를 설정한 것이다. 이것은 민중이 그렇듯이-생산관계를 공장으로 한정하고 그 외의 영역(생활영역)을 생산영역으로 포함하지 않으며 구분하듯이-시민개념 또한 그러한 영역의 구분(생산영역과 그 외의 영역)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중이 생산관계의 측면에서 본 주권주체라면, 시민은 생활영역에서 본 주권주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중과 시민의 구분법은 ‘사회적 노동자’라는 주체성의 출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시대착오적인 것이 된다.
김세균씨는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된 민중’을 그대로 고수하며, 민중권력의 국가를 달성해야한다는 것을 고수한다. 신광영씨는 계급운동으로부터 자신을 나누었던 기존의 시민운동과는 다르게 그 둘의 결합을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신광영씨 자신이 철저하게 의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기존의 노동운동과 기존의 시민운동이라는 영역의 구분이 점점 좁혀지고 있으며, 통합된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을 신광영씨는 계급불평등이 심화됨에도 불구하고 계급정치가 탈구된다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세계화는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빈곤층의 증가와 부의 불평등 심화, 실업자 증가, 환경파괴 심화 등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대응은 생산현장에 중심을 둔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세계화의 피해자들이 생산현장 뿐만 아니라 외부에 더 많이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신광영씨는 현실의 변화에 대해 나름대로 인정하고 적절하게 지적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가 생산영역과 사회영역(생활영역)을 여전히 구분하면서 ‘세계화가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분석하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계화가 사회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빈곤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세계화가 기존의 한정된 생산영역을 스스로 파괴하고(넘어서서) 사회 전체로 이미 생산영역을 확대한 체계를 바탕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시민운동의 요구를 포함하고, 시민운동이 노동운동의 요구를 포함하는 식의 방법으로는 자본의 착취에 저항하는 현실 주체성의 변화를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신광영씨가 “실업, 비정규고용, 저임금 등으로 인한 빈곤층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이 국민국가 내적인 요인보다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출입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전통적으로 계급관계가 국민국가 틀 내에서 형성, 발전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국민국가 외부에 존재하는 지구적 금융자본이 계급성원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여전히 국민국가의 주권적 주체인 ‘시민’이 변혁의 주체가 되기 위해 어떤 변화를 수반해야 하는지 언급할 수 없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적어도 나는 신광영씨의 지적으로부터 변혁의 주체를 국민국가적 틀을 넘어서는 주체성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나아갈 때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국민국가적 틀을 넘어서는, 주권적 주체성을 넘어서는 것에서 우리는 변혁의 주체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민중은 말할 것도 없고 신광영씨에 의해 제기된 시민은 다음의 한계를 지닌다.
첫째, 생산영역과 사회영역을 구분하고 있음으로 인해 생산의 사회화, 그리고 지구화 수준에서의 변화와 새로운 주체성의 등장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여전히 국민국가의 주권적 주체를 변혁의 주체로 설정함으로써 지구화된 자본주의에 제대로 저항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들은 현실투쟁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전통적인 노동운동인가, 아니면 시민운동인가? 전통적인 노동운동을 고수하는 입장은 그들이 구분한 전통적인 사회영역이라 불려지는 곳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의 많은 문제들에 대해 무능하다. 전통적인 시민운동은 인권의 문제로 이주노동자 문제에 접근하고 있으나 ‘비시민’인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문제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것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구분하는 것처럼 사회적 생산과 착취의 심각성에 있어 생산영역과 사회영역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금 신랄하게 말하자면,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이주노동자 투쟁을 사업장 내의 문제로 축소시키며 이주노동자들을 한국의 파업현장과 투쟁현장 즉, 사업장으로 끌고 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런 투쟁에도 불구하고 상호연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주노동자투쟁을 노동운동의 강화라는 노선에 맞춘 이러한 투쟁들은 전체 이주노동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유리한 정국으로 이끌어나가는데 실패한 것이다. 또한 특징적인 것은 전통적으로 노동운동이 아닌 새로운 주체들이 이 투쟁에 결합했는데 그것을 조직하는 것을 방기하거나 회피했으며 단순동원체계로 전락시키려함으로써 연대에 있어 완전한 실패를 맛보았다. 이것은 계급에 대한 전통적인 구분법을 고수한 결과이며 투쟁에 있어 새로운 주체성들의 등장에 대해 둔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예로 반전투쟁을 들 수 있다. 민주노총에서 반전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지만 노동조합을 비롯한 기층의 노동자조직은 반전투쟁에 무관심하다. 노동운동진영의 많은 좌파 활동가들이 ‘반전투쟁의 우경화’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 지적의 타당한 측면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진영의 무관심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 이것은 지금까지 ‘반세계화 투쟁’이라 불려 졌던 많은 의제들에 대해 조직된 노동자들의 냉담한 반응에 대한 후퇴적 변명의 반복이며, 그 투쟁을 전통적인 노동운동이 주도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 투쟁의 새로운 주체성들을 의심하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가는 징후를 보이는 것이다.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결합이라는 문제의식에서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과 같은 개량화된 노선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바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결합이라는 관점이 지닌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시민운동의 문제의식을 받고, 시민운동이 노동운동의 문제의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변혁의 주체성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사회적 노동자’라는 새로운 주체성과 더불어 새로운 조직형태가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중’은 공장을 뛰어넘는 사회적 노동자를 가리키면서 국민국가적 틀을 뛰어넘는 비주권적 주체성을 가리킨다. 여기에 전통적인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이분법적 도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맑스코뮤날레의 이번 토론회는 그 주제의 현실밀착성에도 불구하고 발제자들의 의도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사전에 토론회 주제와 의도에 대한 충분한 사전토론과 숙지, 그리고 합의가 있어야 하리라 본다. 그냥 대충 주제만 정하고 자기 마음대로, 편의대로 주제에 대해 써와서는 토론이 되기 힘들다.
1. 국물은 멸치국물이나 조개국물을 이용
2. 콩나물을 넣고 국물이 끓어 오르면 파, 다진마늘, 국간장을 넣고 간한다.
고춧가루를 넣어 시원한 맛을 낸다.
옵션: 잘게 다져놓은 마른 표고버섯
배추 신 김치
청양고추
1. 고추장, 설탕, 맛술, 물, 물엿, 마늘을 섞어 조림장을 만든다.
2. 조림장을 끓인 뒤에 불을 끄고, 다듬어 놓은 오징어채를 팬에 넣어서 양념을 골고루 뭍혀 주세요
3. 통깨를 뿌린다.
출처: 녹색연합 http://www.greenkorea.org/ [삶속의 초록] 박경화님의 포스팅
비누가 없던 시절엔 무엇으로 얼굴을 씻었을까? 조선시대 궁중의 여인이나 양반집 규수들은 녹두가루나 창포가루를 썼고, 서민들은 쌀겨, 쌀뜨물, 밀가루 같은 곡물을 썼다고 한다. 쌀을 씻으면 나오는 뽀얀 물, 변강쇠전에 나오는 '방앗간집 딸년, 저 하얀 피부 좀 보소'라는 구절 역시 방앗간집 딸이 비누를 자유롭게 쓰는데 유리한 위치에 있었음을 뜻한다. 하루에 세 번, 혹은 한 번 밥을 지으며 그냥 흘려 버렸던 쌀뜨물은 얼굴을 씻는데도 좋지만 영양분을 품고 있어 요리할 때도 물 대신 넣으면 구수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우리 시골집에서는 영양분이 잔뜩 들어있는 쌀뜨물을 받아두었다가 소죽을 쑬 때 넣었다. 집안의 재산목록중 손꼽히는 소에게 따로 좋은 걸 먹일 순 없지만 쌀뜨물과 '당가루'라고 하는 쌀겨를 방앗간에서 가져와서 함께 넣었다. 물을 더럽히는 오염원은 산업폐수와 축산폐수, 생활하수 같은 종류가 있는데 이 중에서 생활하수가 90% 정도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집집마다 밥을 지으니 쌀뜨물 양 또한 만만치 않다. 한차례 세숫물도 아끼고, 피부도 보호하고, 요리에도 쓰는 일석삼조. 오늘부터 주방에 쌀뜨물을 받아둘 양동이 하나 준비하자.
1. 불순물이 많은 처음 씻은 물은 받아두었다가 설거지물로 쓴다. 기름기 묻은 그릇을 씻거나 손에 밴 비린내를 없애는 데 좋다. 김치통이나 생선을 담았던 그릇처럼 냄새가 배인 플라스틱 그릇에 쌀뜨물을 부어서 30분 이상 두면 냄새가 없어진다. 야채를 씻거나 걸레를 빨 때 써도 좋다. 코팅이 벗겨졌거나 기름때가 생긴 프라이팬에도 쌀뜨물은 요긴하다. 프라이팬은 사용한 뒤 열기가 남아 있을 때 귤껍질이나 과일껍질로 기름을 한번 닦아내고 쌀뜨물로 씻으면 손쉽다. 음식물이 눌어붙거나 기름때가 생긴 프라이팬은 쌀뜨물을 붓고 뚜껑을 덮어 끓인다. 충분히 불으면 물을 버리고 나무숟가락으로 찌든 부위를 긁어내고 부드러운 수세미로 닦으면 된다. 알루미늄 제품을 처음 쓸 때도 잘 씻은 뒤 쌀뜨물을 넣고 10분에서 15분간 끓이고 쓰면 더 오래 쓸 수 있다.
2. 쌀뜨물에는 비타민 B1, B2, 지질, 전분질이 녹아 있어 된장국이나 여러 찌개의 국물을 낼 때 물 대신 넣으면 구수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때 불순물이 적은 두 번째 씻은 물이 맑아서 좋다. 카레소스를 만들 때 넣어도 좋고, 우엉이나 죽순, 감자, 토란 무 같은 하얀색 채소를 삶을 때 쓰면 전분입자가 표면을 감싸 산화를 방지하므로 흰색이 더욱 살아난다. 감자의 아린 맛, 우엉의 떫은맛도 없어진다. 죽순은 독성이 있어서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하는데 잡맛을 없애고 맛을 부드럽게 하는데 쌀뜨물이 더없이 좋다. 죽순을 삶은 뒤 찬물에 담글 때 쌀뜨물에 넣으면 수산이 잘 녹아 나고, 죽순의 산화도 막아 주며, 더 부드럽게 해 준다.
3. 화분에서 키우는 화초나 채소의 영양제를 어떤 것으로 살까 고민을 하고 있는가? 쌀뜨물을 주면 물과 거름을 한꺼번에 주는 것이니 더없이 좋다.
4. 더러워진 유리창을 닦을 때 하루 전에 분무기로 쌀뜨물을 뿌려두었다가 다음날 닦으면 반짝거린다. 걸레에 묻혀 마루를 닦으면 왁스칠을 한 것처럼 윤이 난다.
5. 흰빨래를 삶을 때 넣으면 한결 뽀얗게 되고, 삶은 뒤 쌀뜨물에 헹구듯이 몇 번 주물러 주어도 좋다. 이때 첫 번째 나오는 쌀뜨물은 화분의 영양제로 주고, 두 번째 나오는 쌀뜨물을 쓰는 것이 낫다.
6. 쌀뜨물로 설거지를 하면 손이 아주 부드러워진다. 쌀이 담고 있는 각종 영양분이 그대로 녹아내려 쌀뜨물로 얼굴을 씻고 머리를 감으면 훨씬 부드러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각종 비타민류나 미네랄이 풍부한 현미 씻은 물이 더 좋은 효과가 있다.
출처: 녹색연합 http://www.greenkorea.org/ [삶속의 초록] 박경화님의 포스팅
기원전 5,000년경 이집트 사람들은 목욕을 할 때 천연 탄산소다로 몸을 문지른 뒤 ‘샤프’라고 하는 점토를 개서 만든 것으로 몸을 씻었다. 그리고 피부가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향유를 발랐다. 물의 세정력을 높이는 탄산소다가 바로 ‘탄산나트륨’으로, 최초의 세제였다. 희랍어로 ‘강과 강 사이에 있는 토지’를 뜻하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그곳 가까이에 있는 슈멜문명 유적지에서 발견된 점토판에는 설형문자로 비누의 제조방법과 용도가 새겨져 있다. 피부병엔 유황비누를 썼고, 기름 1리터와 탄산칼슘 5.5리터로 비누를 만들었다고 한다. 약 3,000년 전 초기 로마시대에는 사포(sapo) 언덕에서 양을 구워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양을 구울 때 생긴 기름과 타다 남은 나무재가 빗물에 씻겨 내려가 다이빠 강으로 흘러갔는데, 이 물에서 빨래를 하던 사람들은 때가 잘 빠지는 사포의 땅에서 놀았다고 한다. 이 ‘sapo’가 지금의 ‘soap’의 어원이라는 설이 있다.
먼지나 땀 같은 때는 물에 잘 녹고, 세탁물을 물에서 비비고 문지르면 먼지가 떨어진다. 그러나 기름처럼 물만으로는 떨어지지 않는 오염물질이 있다. 이 때 물의 세정력을 높이기 위해 넣는 것이 세제다. 기름때가 물만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기름은 기름끼리 뭉쳐지고 물은 물끼리 뭉쳐지기 때문이다. 물이나 기름 같이 2개가 접하는 경계면을 ‘계면’이라 하는데 이 계면에 작용해서 본래 합쳐질 수 없는 기름과 물을 섞는 활동을 ‘계면활성작용’이라 하고, 그 활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 ‘계면활성제’다.
계면활성제의 분자는 물에 잘 섞이는 친수기와 기름에 잘 섞이는 친유기 두 가지 성분인데, 친유기가 더러움에 붙고 친수기가 물과 결합해 때를 물로부터 분리시킨다. 이 활동을 한층 효과있게 하기 위해 손으로 비비거나 세탁기를 돌리는 것이다. 문제는 합성세제에 들어있는 이 계면활성제가 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 세제에는 세정력을 높이려고 형광표백제와 효소 같은 화학물질을 첨가해서 넣는데, 때를 없앨 뿐 아니라 하얗게 물들이기 위해 넣는 형광표백제가 쌓이면 발암위험이 있다고 한다.
거칠어진 손, 갈라진 손, 습진이 모두 이 합성세제의 왕성한 활동 때문이다. 빨래를 씻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손으로 흡수되고, 옷에도 미세한 성분이 남아 있다. 샴푸나 린스, 치약에도 들어 있어 두피나 머리카락, 혀와 입 점막에서 우리 몸 세포를 파괴한다. 계면활성제가 든 주방세제로 과일과 그릇을 씻은 뒤 남아있던 잔여물이 입 속까지 들어간다. 비누는 일정 농도보다 낮아지면 계면활성작용을 잃어버리고 하루만에 분해가 된다. 하지만 합성세제는 아무리 약해도 계면활성작용을 잃지 않고 분해도 좀처럼 되지 않는다.
본래 자연에는 물을 정화하는 힘이 있다. 유기물이 물에 들어가면 우선 박테리아가 분해하고 그것을 원생동물이나 동물성 플랑크톤이 먹고, 다시 새우나 물고기가 이것을 먹는 방식으로 연쇄를 통해 분해되고, 맨 나중에 남은 유기물은 물과 탄산가스로 바뀐다. 유기물에 함유된 질소나 인은 무기물로 변하고, 물풀이나 돌에 붙어 있는 부착조류 같은 것을 흡수한다. 그러나 하수구로 흘러든 합성세제는 물 속에 사는 박테리아를 죽인다. 유기물을 분해하는 박테리아가 죽어버리면 정화능력이 떨어져 유기물 오염이 진행되고, 생물간의 균형이 깨진다. 또, 합성세제는 하수처리 능력을 떨어뜨리고 강물과 바다까지 오염시킨다. 마지막 헹굼물에 넣는 섬유유연제, 청소할 때 쓰는 락스, 변기 안에 넣어두는 변기 세정제 역시 유효미생물을 죽이는 세제들이다.
냄새를 없애고 싶다면 청소 마지막에 식초를 뿌려두면 되고, 폐식용유를 재활용하여 만든 무공해비누나 천연세제가 많이 나와 있다. 집에서 만들기 번거롭다면 생협에 가면 빨리 분해되고 우리 몸에도 해가 없는 천연세제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주방용, 세탁용, 목욕용으로 종류별로 구할 수 있다. 이사한 집을 방문할 때도 합성세제보다 무공해 비누나 식물성 천연세제를 선물하자. 거품이 일어나듯 좋은 일이 많이 생기라는 마음을 전하는 선물이 이왕이면 해가 없고, 우리 땅에도 좋은 것이라면 더 기분 좋지 않은가?
from Independent Media Nagai Homeless Fest- A successful People's Dignity fest! 現在の点数: 1 jen より Eメール: kindlady76 (nospam) hotmail.com (未確認!) 09 8 2004 Osaka Nagai Park's first ever homeless festival was a success for both those with and without a home. Though hardships still exist, the festival brought soldidarity and fun into what will hopefully be a traditional free space for years to come. Read here for more... Nagai Homeless Fest A Successful Dignity Fest! It had taken months for the Nagai Park homeless residents to plan the July 24 and 25th matsuri (festival) event. Being the first of its kind for them, it was a well planned out event organized under the blue tarps of Nagai Park’s homeless squatter community. The community has existed for about 4 years and has been under constant threat by the Osaka government to move further and further away from the park. Currently they occupy the outskirts of the park, but during a tour of the park, I saw barbed wire, fences, and intimidating signs that barred them from most of the park. The “Dairin” matsuri, Big wheel festival, was created to encourage solidarity between both those with and without homes. The desire was to create a space of dignity where people could dance, drink, speak out, share, do sumo, make instruments, eat, and just have fun together as nakama- friends, comrades. With over 100 volunteers and homeless helping to create the event and over 200 participants, most thought of the event as a success. Being a foreigner interested in the movements in Japan, I have always felt that the one thing that is generally missing from activism here is empowerment and…fun. So when k and I suggested that Nagai Park do what everyone else does in Japan, a matsuri, but make it their own, they took the idea and rolled with it, being an idea that was something they had already been thinking about. Contrary to my knowledge, a homeless matsuri is nothing new to the homeless communities in Osaka as the Kamagasaki area, the heart of the day laborer’s struggle in Japan, has been doing fests for years and Ooigimachi park has been doing it for the past 2 years. While I sensed some division amongst different homeless groups in Osaka, there was support on making this event possible for Nagai Park. And many groups helped to create the event: Nagai Park, Nakama no kai, Kamagasaki patrol, Kamagasaki Elder’s Union, Nishi-nari park homeless support group, Yuai Koubou- the handicapped people’s work warehouse, youth and students, those with DIY sentiments, and more… I contacted one organizer and good friend, Jill, who has been working with Nagai Park for over 4 years now. While critical of the event, his feeling (and mine as well), was that one of the biggest successes was that there were a lot of youth helping to create this event, something both of us rarely see in activist Japan. The event included music ranged from enka to punk to a samba line around the stage area, making the event way more appealing to youth than the typical “senso hantai!” no war monotone chants. People danced, sang both old and young. And for my girlfriends, and me the sumo ring was one of our highlights as women have always been banned from entering the sumo ring in Japan. (I won once, yata! But then totally lost on the second round.) To end the event, one of the main organizers got up on stage and made a powerful speech about the struggle of the homeless to the tune of emotional and encouraging drum beats, yips and yells. While getting half of what he said (getting bits and pieces of translation), his voice and the music evoked a strength that left all of us entranced. When the drumming stopped, the samba line began and what a wonderful way to end 2 days of workshops, music, fun, speeches and solidarity. There are 2 more fests planned for August which I encourage all to join and you are all welcome- 8/13, 14, and the 15th at Kamagasaki, this is the largest homeless festival with a long tradition. Contact Kanatsu san- (both English and Japanese ok)- kamapat (at) infoseek.jp and Oogimachi park’s fest will be on 8/22. Contact Jill (both English and Japanese ok)- rebel_jill98 (at) yahoo.co.jp While being a success in most people’s eyes I spoke to at the event, Jill made some good criticisms, something that will hopefully be changed for next year’s event. One was that there was some division between the homeless themselves and some chose not to join the event due to disagreements. Another was that there was not enough English and Japanese information to explain the history of Nagai Park and their amazing activism and how people can volunteer and get involved. While there was communication between homeless and participants, maybe making a better defined space for questions both in English and in Japanese would have encouraged more dialogue. But, while not perfect, it was really better than what we had imagined. It was great to see people getting together and really creating something for free. We left the park feeling elated, feeling like community and support is really possible in Japan. If you are in Osaka or plan to visit, I recommend you contact Jill and visit Nagai park, Jill or someone can give you a personalized tour of the place and other areas if time- or ask him about volunteering for the Nagai park’s organic garden, night patrol, and soup kitchen. Nagai Park has really has been one of the most remarkable experiences for me in Japan. I thank them for opening my eyes not only to homeless issues here, but in my home country as well. This is not just something about people receiving food and shelter, but it’s about all of us being able to have dignity in our lives, by choosing to live where we want, how we want. It’s about being able to create our own communities and having jobs that support us, not kill us. これも見てね: http://de.geocities.com/nagaipark_nakamanokai/ http://www.geocities.co.jp/WallStreet-Bull/8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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