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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라는 의제

최근에 '세속화'라는 단어를 가지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세속화'에서 중요한 건 사실 '세속'이 아니라 '화'에 있는 것 같다. 즉,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이 마치 본질적으로 존재하고, 그 '세속'이 되는 것이 '세속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언제나 '성스러운' 세계이다. 종교만이 아니라 국가, 민족, 연예계, 학교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나름의 신성화를 통해 기능하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에는 '속된 것'에 대한 배제가 있다. 물론 이것은 본질이나 정체성으로가 아니라 '성스러운 것'의 부정성으로서만 드러나는 것이다. '세속화'는 바로 이 신성을 무너뜨리는 모든 사건을, 속된 것에게 권리를 찾아주는 모든 활동을 이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속화는 도킨스류의 무신론적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 갈라진다. 그들이야말로 '세속'을 '신성화'하는 이들이다. 종교가 없어진다고 세계는 세속화 될 수 있을 것인가? 그건 불가능하다. 신성함이란 세계 전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신성화에 저항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세속'이 아니라 '세속화'일 수밖에 없다. 예수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냐?"라는 질문은 "사람이 희망이다"라거나, "보편적 인권"을 이야기하며 '사람'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다.(요즘 구제역 문제로 동물과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보아도....) 예수는 안식일이라는 성스러움의 장치를 무너뜨림으로써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무너뜨려짐이 강력한 것이다. 세상에서 신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그것이 설사 보편적 인간에게 부여된다 할지라도-그것이 세속화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바로 이 '세속화'의 운동으로 이해했다. 그것은 그런 점에서 결코 어떤 내용 - 생태, 평화, 비폭력, 평등 등등? - 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 된다. 

 

"하느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다."(사도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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