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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1/02
    시작만 하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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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12/17
    황우석 사태를 보면 휴거가 생각난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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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12/14
    니들이 말하는 '국익' 관점에서 봐도 해롭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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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12/06
    난 대한민국이 점점 더 무섭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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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11/23
    나는 매국노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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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9/14
    시작만 해놓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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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3/16
    누가 아줌마인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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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3/12
    담배피는 여자(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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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1/25
    나는 애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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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1/20
    옛 글을 퍼오다.(양성 쓰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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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만 하자

* 이 여자 어떤가?

 

무슨 연예인은 아니니까 그런 기준으로 말고 그냥 이 여자를 본 느낌이 어떤가?

납북자 가족 협의회 회장 최우영이다.

 

 

* 위와 관련될 얘기- 올드보이가 충격적이었나? 그렇다면 왜?

근친상간에 대해 당신은 얼마나 아는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가 당신의 감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전두환에게 어떤 벌을?

김영삼정권 시절 전두환 노태우를 구속시켰을 때 난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거의 없으므로 구속시켜서는 안된다."

"저 새끼는 사형만으로도 안된다. 김영삼 정부가 전두환을 사형시킬리도 없지만, 그게 아니어도 저런 악마구리같은 놈을 그냥 곱게 사형시키는 건 너무 억울하다. 뭔가 더 악날하게 할 방법이 없을까?"

그런데 난 그당시 사형제도폐지를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사형도 모자르다'고 생각을 했으니 이걸 어째야 하나?

 

 

* 우리 민족은 제국주의를 꿈꾼다 / 군사독재 정권이 주사파를 양산했다.

얼마전 건달바를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됐다. 그때 떠든 얘기를 정리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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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태를 보면 휴거가 생각난다.

오늘 황교수가 해명 기자회견을 했고, 미즈메디의 노성일도 반박 기자회견을 했다.

100% 황교수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이미 황교수 자신이 인정한 것만으로도 용서받기 힘든 사건이다. 황교수의 말장난 실력이 참으로 눈부시다. "중대한 인위적 실수"라고 했던가? 데이타 조작했다는 것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하다니 대단하다.

 

논문이 잘못됐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인데 이건 슬쩍 넘어가고 "원천 기술은 갖고 있다"쪽으로 몰아가면서 국민의 감정에 다시 한번 기대려 하고 있고, 제법 먹혀들고 있다.

 

 

**** 한국과학기술인연합 회원게시판 글 중 일부를 퍼왔다.

 데이터나 진실게임을 떠나 황교수의 씻을 수 없는 오점
- 사이언스 논문 조작의 총책임 (밑의 연구원 하나가 했다 하더라도 총책임)
- 보유하고 있지 않은 줄기세포를 있다고 국민을 기만한 점
- 이번 사태의 진행 과정에서 무엇하나 clear한 태도와 해명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사태를 확대시켜 온 점
- 모든 것을 상세히 밝히지 않고 정치적으로 돌파하려는 노선을 견지하고, 심지어 지금도 그러고 있는 중이라는 점.

 

 

오늘 강원래 인터뷰를 보니 아직 황우석을 믿는다는 것 같다. 강원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논문이 조작됐건 어쨌건 실질적으로 그런 기술이 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 황우석이 더 용서가 안된다. 실용화 되는데는 적어도 20년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강원래에게 "10년안에 일어서게 하겠다"라고 한 것은 사실상 거의 사기에 가깝다. 자신의 연구에 도취되서 앉은뱅이를 일으킨 예수쯤 됐다고 생각했나?

 

이렇게 절박한 분들이 황우석을 옹호하는 것은 가슴 아프지만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 상태는 과연 어떤 것일까?

 

예전에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난리를 친 집단이 있었다.



('휴거'라는 말이 유행했고, 휴거란 제목의 영화까지 나왔다.) 그들의 지도자 되는 이가(사이비 목사쯤 됐겠지) 지구 종말의 구체적인 날자와 시간까지 제시했고 그를 따른 신도들은 철썩같이 믿었다. 우쨌거나 그 날, 그 시간이 오고야 말았고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상적인 사고로 생각해 보자면 신도들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 같지만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지도자는 '휴거가 연기됐다'는 황당한 말을 했고, 황당하게도 신도들은 그 말을 믿었다. 그 당시 난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살다보니 이젠 이해할 것도 같다. 그들은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재산과 가족 등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달으면 정말 죽고 싶지 않겠는가? 그들에겐 자신이 속았다는 걸 인정하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고, 차라리 '연기됐다'는 말을 믿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합리적인 믿음' 이었던 게 아닐까?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닐지라도, 세상에는 참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 명백히 밝혀져도 그걸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난자매매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만해도 황교수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은 "그 분이 그러셨을 리가 없다"라고 했다. 그러다 몇번의 거짓말 끝에 본인이 할 수 없이 인정하자 "훌륭한 연구를 위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로 변했다. 논문조작 의혹이 일었을 때도 "절대 그럴 리 없다. 황우석 죽이기 음모이다"라고 했다가 황우석이 어느정도 조작됐음을 인정했음에도 이들은 이제 말을 바꿔 "실체적 기술이 있는지가 진짜 문제다"쪽으로 다시 방향을 바꿨다. 이들의 열망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조장하고 있는 황교수는  "줄기세포가 하나면 어떻고 세 개면 어떠냐"라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을 하셨다. 하여튼 하나라도 성공했으면 된 거 아니냐는 얘기다. 싸이언스나 세계 과학계가 이 얘길 듣고 어떻게 생각할 지 정말 궁금하다.

 

작년에 이미 황교수는 줄기세포를 한 개 만드는 데 성공을 했다.(요즘은 이것도 의심받지만 어쨌든 사실이라 치고) 그런데 그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245개의 난자를 사용했고, 세계 과학계는 "245개나 사용하여 겨우 하나 성공한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번에 11개나 만든 것이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17개당 한 개를 성공시킨 셈이니 획기적인 성공률인 것이다. 성공률을 높인 것이 이번 논문의 핵심인데 이제와서 미친척하고 "성공한 게 한 개면 어떻고 세 개면 어떻냐"고 말하면 어쩌자는 것이냔 말이다. 나중에 '빵'에 가시면 책이라도 한 권 보내드려야겠다. 변증법관련 서적 중 '양질전화의 법칙'에 빨간줄 쳐서 말이다.

 

황교수지지자들의 상당수는 아마도 예전엔 이러지 않았을까?
"황교수가 논문을 조작했다고? 말도 안돼.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나부터도 황교수 타도에 나설꺼다"
아니면 아예 조작됐으리란 것을 상상조차도 안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 휴거를 믿는 광신도와 광신도 가족의 가상 대화를 만들어 봤다.

"그날 그 시간에 지구가 멸망하지 않으면 어쩔꺼야?"

-절대 그럴리 없어.

"하여튼 진짜 아무일 없으면 이젠 그 교회 그만 나갈거지?

-절대 그럴리가 없기 때문에 그런 가정 자체가 말이 안된다니까.

"아휴, 그러니까 혹시라도 아무일 없으면 이젠 그 목사가 사기친 게 확실하니까 더 이상 그 목사 안쫒아 다닌다고 약속해"

-아, 절대 그럴리 없다니까 그러네. 넌 지금 사탄의 꼬임에 빠져 눈과 귀가 멀어서 아무 것도 몰라. 그러지 말고 너도 빨리 나랑 같이 휴거를 준비하자.

 

내가 보기엔 황교수가 완전히 사기친 거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난다 하더라도(단정적으로 사기쳤다는 말은 아니고) 여전히 그를 버리지 못하는 이들이 꽤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정부와 언론에 놀아났듯 황우석 죽이기로 돌아설 언론에 다시 한 번 휘둘려 과도하게 광분하는 이도 있겠지. 조중동은 언제 그랬냐는 듯 미친척하고 황우석을 물어뜯을 것이고 말이다. 물론 사과나 반성할 리는 절대 없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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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말하는 '국익' 관점에서 봐도 해롭다

진보네님의 [트랙-팩 22 : 황우석과 국익] 에 관련된 글.

뒤늦게 산 말지 12월호에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 있었다.(누구에겐 '말'이란 잡지가 아주 거지 같기도 하겠지만 10년 이상 보아 온 내겐 여전히 괜찮은 학습지^^다.) 아직 인터넷 말에는 실리지 않아서 직접 워드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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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아줄기세포 연구에 '국익'은 없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기성언론들은 '윤리냐 국익이냐'라는 이분법으로 사태를 몰아가고 있다. 마치 윤리를 택하면 엄청난 국익을 손실한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초록정치연대 우석훈 정책실장은 월간 말에 급히 보내온 원고를 통해 "그런 이분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국익이라고 말로만 떠들 게 아니라, 대체 무엇이 '국익'인지 보수세력이 끔찍히 좋아하는 시장논리로 한번 따져보자"고 제안한다(편집자 주)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경제학 박사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 자신 경제학자이면서도 경제학을 사랑하기 가 어렵다는 걸 번번이 느낀다. 이 학문에는 도대체 돈밖에 없고, 피도 눈물도 없이 계량화될 수 있는 수치들만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황우석 교수의 연구성과를 '국익'이라는  잣대로 굳이 계산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이 '국익'이란 게 문제가 되고 있다. '국익'이라는 담론을 제공한 것은 황우석 교수 그 자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국익이라는 용어는 법적인 용어도 아니고, 더군다나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국익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과연 국민경제 내에서 어떠한 이익을 발생시킬까?

 

 

민간기업은 왜 투자하지 않는가?

 

먼저 민간기업의 관점에서 이 특별한 연구개발사업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자. 삼성이나 현대 혹은 LG와 같은 대형 기업이 아니더라도 의약 부분의 많은 기업들이 생명공학은 물론이고 종자산업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데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정부가 대대적으로 나서기 전까지, 정확하게 얘기하면 특허비가 없어서 특허출원을 못하고 있다는 딱한 사연이 전해지기 전까지 나는 민간기업에서 이 연구에 '의미 있는' 수치의 지원을 했다는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국익'이란 말까지 등장한 이 마당에,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시킬 절호의 찬스임에도 불구하고, 왜 민간기업들이 이 연구에 투자하지 않을까?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연구가 가지고 있는 미묘한 특징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국민들이 열광하고 좋아하는 사업에 대해서 왜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아직까지도' 투자하지 않고 있을까?

 

  본격적인 계산을 해보기 전에 먼저 짚어둘 게 있다. 시장논리로만 판단한다면 기업입장에서 '황우석사단'의 연구개발은 20년간의 투자기간 동안 수익이 전혀 없는 셈이다. 이 기술을 상업적으로 활용하기까지는 빨라야 30년 걸린다. 즉 기업이 투자하기에는 아직 너무나 초기단계이다. 이 점이 민간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점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기간 동안의 투자는 소위 이미지 개선 효과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지원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세계적인 맥주생산업체인 칼스버그나 하이네켄은 과거 양자역학에 연구비를 지원했던 전례가 있다. 아직도 머나먼 미래 지식에 해당하는 양자역학이 도대체 이 기업들에게 무슨 이익을 주기에 투자했을까? 아마도 사회환원 혹은 기업이미지 개선 정도의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기초과학은 물론이고 문화부문까지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는 게 오늘날의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는 그런 지원조차 없다.

  

사람들은 흔히 기업이 단기수익만을 놓고 투자한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199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윌리암슨이나 코즈와 같은 신제도주의학파는 "기업도 다양한 형태의 내부조직을 갖추고 있는 존재이고, 조직으로서의 기업은 수익만이 아니라 영속성이라는 또다른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단기적 성과만을 가지고 투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황우석 연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성체줄기세포와는 달리 매번 새로운 난자를 필요로하는 배아줄기세포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체줄기세포에서 역으로 인공난자를 만들어낼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는 여성인권에 대한 사회적 스캔들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경우 기업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 소위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진다"는 것. 짧게는 약간의 이미지 개선효과가 있지만 길 게 놓고 보면 오히려 반여성인권의 기업이미지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 즉 민간기업이 어지간해서는 이 배아줄기세포에 공개적으로 투자하거나 지원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물론 익명을 요구한 어느 기업인이 특허출원에 사용하도록 6억원을 지원한 적은 있다.

 

 

정부 입장에서 본 경제적 타당성

 

정부가 예산을 사용해서 특정 사업을 직접 추진하거나 지원할 때의 기준은, 사업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 한국개발연구원의 공공투자관리센터에서 시행하는 예비타당성 평가의 지침서를 따른다. 물론 황우석 교수의 경우는 연구개발사업이므로 반드시 예비타당성 평가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정부예산사업은 예산회계법의 절차에 근거하여 나름대로의 경제성평가를 하는 것이 정석이다. 또 기획예산처에서는 예산을 배정하기 전에 다양한 계량적 방식으로 사업의 타당성을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황우석 교수에게 2006년도에 지급될 예산을 살펴보자. 일단 '최고과학자연구지원사업비'라는 항목으로 30억원의 지원금이 마련되어 있다는 발표가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시설비를 포함해서 265억원의 예산이 지원된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어느 수준으로 정부가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 로드맵이 없어서 추산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설비지원금은 초기 5년간만 지원된다고 가정하고, 현재15억원인 순수연구비는 점차적으로 증액된다고 가정해 본다면 연평균 100억원 정도가 20년간 지원된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총 20년 사업에 2000억원의 지원규모이다. 시장에서 상업적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할 경우 이 예산이 전체 사업비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업에 의한 수익은 얼마가 될 것인가? 두 가지로 나누어 계산할 수 있다. 첫째는 상용화되었을 때의 시장규모를 추정해서 직접적인 수익과 지적재산권(특허권)에 의한 라이센스 수입을 예상해 볼 수 있다. 특허의 공업권 인정기간이 20년임을 감안한다면, 초기에 발생하는 특허는 실제로 경제적 수익을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난치병 치료와 같은 기술이 상업화되었을 때 비로소 수익이 발생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총 사업기간을 30년으로 잡고, 처음 20년간은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추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면 정부의 지원 결과 예상보다 빨리 시장이 생겨나서, 20년 후에는 정상시장이 형성된다고 가정해 보자. 이건 물론 황우석 교수에게 유리한 가정이다. 또한 난자 공급에 대한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가 시장에서 지켜진다고 할 때, 연간 100개 정도의 난자를 한국 사회가 공급할 수 있게 되고, 현실적으로 연간 100건 정도의 수술이 벌어진다고 가정한다. 물론 엄밀히 인플레이션 계산 등의 여러 조건들을 감안해야 하지만, 편의상 그냥 현재가를 적용하자. 또한 의료시장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는 일반 시장이 아니라 의료보험에 의한 공공개입이 존재하는 정상적인 선진국의 의료시장이라고 가정을 해보자.이때 사용될 수 있는 비용의 기준은 현재 인공심장이나 간이식 수술의 비용인 5000만원 정도 수준이라고 설정한다. 그리고 이 사업이 굉장한 고부가가치 사업이라는 사업자의 주장을 반영해서 이 수익에 대한 경비를 제외한 수익률이 50%라고 가정하자.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것'은 국익이 아니다.

 

  이 경우 30년간의 총 비용은 2000억원인 셈이고, 총수익은(난자의 비용과 기초경비를 제외하고) 10년간 250억원이다. (이 경우 비용편익비율은 30년간 0.125가 된다. 비용편익비율은 '1'이 넘어야 수익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보통 턴오버(turn-over)라고 부르는 원금회수기간은 순수기간이 80년, 그리고 총기간으로는 100년이 걸리지만, 이 숫자는 사실 30년 이후의 시장 예측이 불가능하므로 의미있는 숫자는 아니다. 한편 기간 중 사업 순손실은 1750억원이다.

 

  20년 후부터 30개 국가가 한국 규모의 줄기세포 임상시장을 가진다고 치고, 총 특허기술 중 절반이 사업 10년차 이후에 발생하며, 5%의 특허에 의한 라이센스 수입이 발생한다고 계산해 보자. 이 경우 연간 50억, 10년간 총 500억원의 추가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의 비용편익비율은 0.375로 개선되고, 사업순손실은 1250억원으로 개선된다.

 

  30년 후에는 기술의 상업적인 활용이 본격적으로 가능하다는, 약간은 비현실적인 가정을 적용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타상성평가서를 가지고 기획예산처 예산심사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물론 이 기간동안에 '국민들의 기분이 다소 좋아진다'는 심리적 효과는 있다. 그러나 이걸 국익으로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은 경제성보다는 정치적 고려를 가지는 정부지원사업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사업으로 지하철 역사에 장애인의 이동권을 높이기 위해서 장애인용 보조승강기를 설치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경우 비용편익비율이 사업을 추진할 수 없을 정도로 낮게 나왔다. 하지만 장애인의 이동권이라는 정부의 중대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경제적 타당성과는 무관하게 이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장애인 설비와 같은 종류의 것이라면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지더라도 추진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줄기세포 연구가 가지는 윤리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애인 설비와는 전혀 다르다. 또한 '국익'이라는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예산의 항목을 설정하기도 쉽지 않다. 기술파급 효과를 일부 평가할 수 있는데, 이것은 본래 시장의 파생효과이므로 본래 시장과 특허권 수익까지 반영한 상태에서 다시 계산하면 중복 계산이 된다.

 

 이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수술비용을 5000만원이 아니라 1억 5000만원으로 올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공공의료정책과 전 국민에 대한 의료복지라는차원에서 타당한 방법이라 보이지 않는다. 또다른 한 가지는 수술 건수를 높이는 방식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난자공급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어겨야 한다. 그도 아니면 난자공급에 관한 소위 블랙마켓이 존재해야 한다고 가정해야 하는데, 정부투자사업에서 지하시장을 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부가 연구지원을 주도하는 경우, 직접 재정지원을 하는 동시에 지하시장에서의 난자불법매매도 감시해야 하는 불편하고 모순적인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내세우는 소위 '국익'에는 줄기세포에 의한 환자들의 편익과 함께 여성인권에 대한 보호가 같이 계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가지 대안

 

 그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크게 세 가지 해법이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해법으로는 만약 정말로 이 연구사업이 장기적으로 경제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처럼 스스로 기업화하면 된다. 코스닥에 등록을 하거나 아니면 해외 증권시장에 상장해서 과학기술의 기업화를 직접 추진하고, 정부가 일반기초과학연구처럼 상식에 준하는 지원금을 주는 경우다. 이 경우 정부는 정부 본연의 과학기술지원과 소수자 보호와 지하시장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해법은 시장과 국익을 외치는 국민들의 '지불의사'에 맡기는 방식이다. 사업의 수익성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가 좋다는 사람을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경우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직접 지불하면 된다. 현재 카톨릭을 매개로 반대하는 아주 소수의 국민들이 300억원의 반대의사를 밝힌 상태다. 여기서 지불의사(willingness-to-pay)라고 불리는 소비자의 지불비용에 의한 접근법을 적용해 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준은 이 연구를 '원하지 않는' 가톨릭계가 지불한 300억원이 된다.

 '가상투자법' 등의 이론적 방법론을 동원하자면, 이 연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 집단의 이론적 지불의사는 최소 3000억에서 3조원 수준까지 커진다. 이 사실만 가지고도 경제학적으로 상당히 의미있는 숫자의 국민이 이 연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게 증명된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찬성하는 개인과 단체들은 최소 10배 이상의 현물지불의사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불되지 않은 금액이므로 현재로서는 경제학적으로 무의미하다. 따라서 찬성하는 국민들은 필요하다면 국민주 형태의 기업을 만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해외펀딩도 가능한 방법이다. 정말로 이 연구를 원한다면 예비 소비자와 이에 대한지지자들이 자신의 지불의사를 현물로 보여주면 된다.

 

  마지막 해법은 어느 기업이 나서서 재정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정부가 난자 지하시장에 대한 충실한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상황을 고려하면, 그런 기업이 있을지 다소 회의적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유전공학 경쟁력을 자랑하는 싱가포르에서도 벌어지지 않은 이 초유의 난자지하시장 사태를 놓고, 과연 이게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그리고 정부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모든 국민이 이걸 원하는지, 또한 모든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난자 제공에 동의하고 있는 것인지, 정부가 적절하게 지하시장을 관리하고 있고,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연구진이 말하는 그 '국익'이라는 것이 대체 어떤 시장에서 발생하는 것인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도대체 우리가 목 놓아 외치는 '국익'이라는 놈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PD수첩 폐지반대 서명하러가기(미디어 다음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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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한민국이 점점 더 무섭다.

 다른 많은 사람들의 좋은 글들이 있다. 논리적이고,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은 글 들 말이다. 하여, 나까지 이번 황교수 사태에 대해 또 떠들 이유는 없지만 하도 갑갑해서 뭐라도 주절거려야 할 것 같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두서없이 되는데로 떠들 생각이다. 엉뚱한 얘기도 섞어서 말이다. 뭐 색다른 얘기는 없으니 대략 요즘의 사태를 파악하는 분들은 읽을 필요 없을 것 같다.

 



MBC가 사과함으로써 피디수첩의 완패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언론의 취재윤리를 저버린 피디수첩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국민적 영웅을 감히 언론 따위에서 검증하려 해?"라는 식의 코메디에 동의할 수는 더더욱 없다.

 

안타까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피디수첩이 황교수를 화려하게 부활시켰다는 것이다. 연구원으로부터 난자를 제공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윤리적 논란이 되는 문제였고, 그걸 계속 부인하다가 나중에 할 수 없이 시인한 것도 큰 문제였다. 난 그걸 기화로 심도있는 생명윤리 문제가 논의되길 바랐다. 그런데 피디수첩에서 연구자체의 진실여부를 문제 삼으면서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고, 아직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여론은 이미 황교수의 연구가 진실임을 기정사실화 했다. 그래, 사실이겠지뭐.(아니 사실일 가능성이 꽤 높지) 설마하니 황교수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사기칠만큼 대단한 인물이었을까 싶다.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도 아니고 말이다.

 

내가 황교수의 연구가 문제가 있다고 말한 것은 이미 그의 연구가 사실이라는 전제하에서 한 말이다. (사기친 거라면 옳고 그름을 논할거나 뭐 있겠나? 물론 그에 대한 의혹이 있다면 밝히려 노력하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의무다. 다만 방법이 정당해야지)

 

오늘 난자기증의사 전달식이란걸 했다고 한다. 무궁화가 어쩌고 저쩌고, 진달래가 등장하고... 그걸 보고 근래 보기 드물 게 우울해졌다. 그 사람들 대부분이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에 더 우울해졌다.

 

이제 상황은 "황교수의 연구가 진실임이 밝혀졌으니 전폭적으로 그를 밀어줘야 한다" 쪽으로 몰려갈 것이다. 생명윤리 문제를 제기하면 "넌 그럼 난치병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을 막을 셈이냐?"라며 아예 논의 자체를 막아 버리는 무서운 일들이 발생하는 거다. 고리타분한 윤리문제로 난치병 환자를 저 버리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아부치면 되는 거지뭐. 세상에 이렇게 쉬운 싸움이 또 있나?

 

그래 까짓거 매국노도 됐는데 파렴치한 인간 한 번 더 되지 뭐.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개발할 때도 명분은 대따 멋있었다. 생산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증가하는 슈퍼곡물이나 슈퍼 돼지 등을 운운하면서 '드디어 전세계 기아가 해결 될' 것처럼 떠들어 댔다. 그런데 세계의 기아문제가 생산부족의 문제인가? 당연히 아니다. 이건 분배의 문제다. 전세계적으로 생산되는 농산물은 전세계 인구가 충분히 먹고도 남는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국의 거대 메이저 곡물 회사는 농산물이 과잉생산되면 가격하락을 염려하여 바다에 대량으로 폐기할 지언정 가난한 나라에 주지는 않는다. (물론 유엔을 통해서 미국정부가 생색은 내지)

 

세계에서 숫자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게 하는 병은 난치병이나 불치병이 아니라 '설사병'이라고 한다. 희생자의 거의 대부분은 가난한 제3세계 어린이이고 말이다.

 

현재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조류독감이 무서운 이유는 치료방법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다. 그냥 약만 먹으면 낫는 병이다.문제는 그 '약'이 특허에 의해 보호받고 있어 독점생산되고 있으며, 조류독감이 급속히 확산되면 게네들 혼자만의 생산력으로는 약을 제대로 공급할 수 없어서 무서운 것이다. 수많은 인류의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기업의 독점적 이윤은 보장해야한다는 엿같은 자본주의 정신 때문이다. 자본주의 만세다.

 

황교수의 연구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혜택을 받을 사람은 극소수 가진자로 한정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하면 꼭 이러는 사람들 있다. "아무리 소수라도 그 사람들의 생명은 소중하지 않냐?"라는 따위의 저급한 반론 말이다. 누가 그렇다고 했나? 그럼 나도 같이 "그럼 넌 그 소수만 중요하고, 지금 현재도 수없이 죽어나가는 그 많은 사람은 안중요하단 말이냐? 그들을 위해 넌 뭘 했는데?"라며 똑같은 수준으로 진흙탕 싸움을 해야겠는가? 제발 싸우더라도 수준은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진달래 이벤트에서 한 여성이 그러더군. "제 언니도 백혈병을 앓고 있는데 황교수님이 빨리 연구에 성공하셔서 저희 언니뿐만 아니라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가슴이 정말 묵직해 졌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정에 가슴은 아프다. 정말이다. 하지만 행여나 연구가 정말 빨리 진행되서 새로운 치료법이 나온다고 해도 그녀의 언니가 그 혜택을 받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녀의 집안이 그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 행여 그녀는 다행히 돈이 많아  치료를 받는다면 좋겠지만 치료법이 있는데도 돈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그 많은 사람들은 뭐라고 위로하지? (물론 그러니까 다 같이 치료하지 말자고 말할만큼 바보는 아니다.)

 

내가 아는 분의 남편이 몇 달 전 백혈병으로 죽었다. 안타까운 것은 치료비용이 엄청나서 아예 시도도 못해본 치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나와있는 치료법조차 돈이 없는 사람에겐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방법이 없으면 미련이라도 안남지)

 

물론 "없는 사람이야 없어서 어쩔 수 없다 치고, 있는 사람만이라도 치료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걸 위해서 잘살건 못살건 온국민이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요즘의 분위기는 정말 저질 코메디도 아니고 황당하기 짝이 없다.

 

뉴스에서는 이번 황우석 파동을 계기로, 생명윤리 때문에 연구에 소극적이던 다른 나라들이 자기들도 체세포복제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전달하고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난치병 환자를 고치지 않으려는 파렴치한 인간들이었나?)  인류를 위해 그렇게 좋은 연구라면 그걸 우리가 해내던 남이 해내던 무슨 문제겠는가. 기왕이면 우리가 해내는 게 좀 더 자랑스러운 것 뿐이지, 그 경사스런 일을 남이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게 말이나 되나 말이다. "꼭 우리가 한 몫 단단히 잡아야 하는데..."라는 절절함이 베어있을 뿐이다.

 

황교수 자신은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연구하고 있다고 믿어줄 수도 있다. 그런데 생명공학 연구는 굉장히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럼 거기에 돈을 대고 있는 사람도 모두 숭고한 정신으로 투자하고 있는 걸까? 내 인간성이 삐딱해서 그 숭고한 사람들을 모욕하는 걸까?

 

황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것은 성공만 하면 대박인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것이다. 언론에서도 경제효과가 수십조니 수백조니 하며 떠들고 있지 않은가? 값싸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한다면 그 정도 경제효과가 있을리 있겠는가? 경제효과가 그렇게 엄청나다는 말은 바꿔서 말하면  "치료비용이 엄청나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큰병이 날수록 치료비의 대부분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현재 우리의 의료 체계에서는 앞으로 이렇게 되는 거다 '치료법이 있는데 그냥 죽게 놔둘 수는 없어서 모든 재산 다 털어서 치료비 대고, 빚까지 내서 간신히 살리긴 했는데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 모두의 삶이 망가지고 마는' 그런 상황 말이다. 그나마 빚이라도 낼 수 있다면 말이다. 뭐 부자들이야 상관 없는 얘기겠지.

 

기사를 보니 난자기증자를 모집할 때 난자채집 과정의 위험성과 부작용에 대해서는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것 역시 굉장히 윤리적으로  문제가 크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이미 황우석 신화에 뭍혀서 윤리라는 문제는 실종된 지 오래다. 황교수의 체세포 복제가 필연적으로 인간복제로 연결될 거라는 사실은 과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연구과정이던, 아님 연구가 성공을 해서 실제 치료에 적용이 되던 간에 막대한 숫자의 난자가 필요하고, 그 많은 양의 난자를 지금의 반짝 분위기에 힘입은 자발적 기증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골수만 이식하면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골수 기증자가 너무 적어서 죽어가고 있듯이 말이다)  결국 난자는 불법이던 합법이던 매매될 것이고, 생활고에 쫒겨 장기를 팔 듯 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이 판매자가 될 것이다. 그러다 가난한 동남아 여성들의 난자도 대량으로 들어오게 될 수도 있고.

이미 여성의 몸은 자본주의에서 상품화 되었는데, 이젠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여성의 몸이 상품화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자본주의 만세다. 억울하면 부자되라.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만한 얘기를 길 게 썼다. (사실 너무 짜증나서 나도 관련기사를 잘 읽지는 않는다.) 하도 갑갑해서 그렇기도 하고, 내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 중엔 바빠서 일일이 이번 이슈를 챙겨볼 수 없는 사람도 있어서 나름대로 정리해 봤다.

 

역사의 흐름을 통해서 과학은 종교의 맹신을 극복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요즘은 과학 자체가 종교가 되고 있는 듯 하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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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국노다!

거의 10년 전쯤 일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학원에서 애들을 가르칠 때였다.

그때 아마도 월드컵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예선이었는지 본선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2002월드컵 때처럼 난리 부르스를 추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쏠렸던 것 같다.

 

수업중 축구 얘기가 나왔고 난 "축구에 관심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녀석이 "선생님은 매국노에요"라고 했다.

참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민족', '국가'등을 과도하게 짖어대는 이놈의 나라에서 애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에 서글펐다.

 



논란의 여지가 무지하게 많은 황교수의 연구에 대해 무슨 민족과 국가적인 영웅이라도 탄생한 냥 언론에서 쌩난리를 쳤었다. 그러다 윤리문제가 붉어지자 정말 코메디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긴, 언론에서 그렇게 만들어주신 국가적 영웅을 국민들이 쉽게 버릴 수 있겠는가? 이미 상당수 국민들 머리속에서 황교수는 '훌륭한 분'으로 각인되었기에  안좋은 소식을 듣더라도 모든 걸 '황교수의 입장을 이해해주려는' 쪽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어제 나도 잠깐 봤는데 PD수첩에서 황교수의 윤리적 논란에 대해 다뤘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고 한다. 담당 PD에게 '민족의 반역자'라며 '찢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이번 논란이 생명공학쪽에서 한국이 앞서 나가는 것을 견제하려는 의도에서 붉어졌을 가능성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교수에게 잘못이 있는데도 면죄부를 줘야하는 것은 아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도 황교수를 보호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나보다.

그 놈의 '국익'

"황교수가 한 건 잘 터뜨리기만 하면 우리나라가 떼돈 벌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위협받으니 열라 불안하다" 이게 국익의 실체 아닌가?

다른 나라들이 '생명윤리'에 발목잡혀 체세포 복제에 진전이 더딘 틈을 타서 우리는 눈 딱감고 얼렁얼렁 해치워서 한탕 크게 하자는 거 아닌가?

솔직해서 좋기는 하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정말 한 번 잘살아 보고 싶어"라고 고백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오늘 쌀협상 비준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열린 니네당과 딴나라당이 또 그놈의 '국익'을 들어 통과를 강행했다. 정부가 농민만을 위해서 행정을 펼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농민은 국민도 아닌 것은 아니지 않은가. 

"국익을 위해서 너네 농민들이 좀 죽어줘야겠어"라는 거잖아. 게다가 "밟으면 꿈틀거리지 말고 그냥 좀 죽어줘"라고 하고 있잖아. 니들 같으면 그러겠냐? 개쌔끼들아!

 

 

**** 나를 매국노라고 한 녀석은 아직도 연락을 하고 산다. 나 때문에 자기의 인생관이 바뀌었다나 뭐라나^^  요즘도 내 블로그에 들어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때 그 사건을 기억하는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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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만 해놓고

정순택

전향장기수라서 송환 대상에 오르지도 못한 인물

2년전 쯤 정선생님을 만났을 때 귀가 좋지않아 잘 들을 수는 없었지만 건강해 보였다.

며칠전 암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다음날 한겨레 신문에도 났다.

장기수 선생님들을 만날 때 느끼는 그 복잡한 감정들..

사실 복잡할 것도 없다. 존경은 하지만 그분 들의 말씀에는 동조하기 힘든 그런 상황들.

 

 

아옌데 칠레 대통령

9월11일은 미국한테도 역사에 기록될 날이지만, 칠레라는 나라에게도 그러했다더라. 아옌데 대통령이 몰락한 날.

'칠레전투'를 보며 "이젠 힘든 것 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 뻐꾸기님의 글들도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병원 24시

어머니는 슬픈 내용의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알아서 기는 나라 대한민국

'학교급식조례'  

정부도 알아서 기고 대법원도 알아서 기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아름다운 전통이 아직도 계속되서 그러나?

 

여성의 군복무

평등, 노블리스 오블리제. 제발 웃기지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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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줌마인가?

- 아래 글은 몇 년 전에 '아줌마와 아가씨의 차이점'이라는 게시물에 내가 댓글을 단 것이다. (사람이름 몇 개를 고쳤다. 그리고 알엠의 예전 게시판에도 올린 적이 있는 글이다.) 친구와 전에 이 얘기를 잠깐 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내 블로그가 없어서 이 글을 보여줄 방법이라곤 그 게시판을 찾아가 내 아뒤를 검색해 찾아 읽어보라는 수밖에 없었다. 흔적은 안남기지만 내 블로그에는 들어오니까 이 글을 보고 있겠지. ^^


미용실에서 파마를 할 때 -아가씨: 예쁘게 해주세요! -아줌마: 오래가게 해주세요! 몇 년 전 아줌마 씨리즈가 유행할 때 들은 얘기다. 재미있었냐고? 아니, 엄청 짜증났다. 하나 물어보자. 영부인은 아줌마인가 아닌가? 백지연은? 박근혜는? 이들이 아줌마가 아니라면 아닌 이유를 말해달라. 아줌마가 맞다면 이 질문에 대답해 주시길 바란다. 이 아줌마들이 미용실에 가서 과연 "오래가게 해주세요"라고 말할까? 강남에 사는 나의 사촌 형수(50세쯤)는 절대 뽀글뽀글 파마하는 일이 없다. 당연히 "오래가게 해달라"라는 말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한다. 그럼 잘사는 강남엔 아줌마가 없는 건가? TV에 나오는 여성정치인이나 정치인들의 부인, 잘 나가는 캐리어 우먼들을 한 번 보라. 아줌마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뽀글뽀글 파마"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지. 아줌마들은 버스나 전철에서 자리가 나면 몸을 날린다고? (이 얘긴 좀 있다 다시 할 것이다.) 잘사는 집 싸모님들은 그럴 일 없다. 자가용 타고 다니던가 택시 타고 다닐 테니까. 어찌 천박하게 자리 하나 갖고 그러겠는가? 귀하신 몸인데. 사실 아줌마 씨리즈의 상당수는 중산층 이하인 아줌마들이 그 주인공이다. 까놓고 말하면, 먹고살기 힘들어 그렇게 진화(?)할 수밖에 없었던 아줌마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거다. (물론 잘사는 아줌마들 중에서도 절약하느라 그러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다.) -또 다른 관점에서 정말 대부분의 아줌마들이 버스나 전철에서 자리가 나면 몸을 날릴까? 대부분 "그렇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커다란 착각이자 기만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대부분의 아줌마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아줌마"인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본드나 부탄가스를 흡입하는 이들은 대부분 청소년들이다. 이건 사실이다. 근데 이걸 "청소년들은 대부분 본드나 부탄가스를 흡입한다."라고 말하면 옳은가? 당연히 아니다. 만일 누가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특징"을 -본드나 부탄가스를 마신다. 담배를 핀다. -선생에게 대들고 폭행을 하기도 한다. -가출을 자주한다. -원조교제를 한다. 라고 말하며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일반적인 특성처럼 말한다면 당신은 동의할 수 있는가? 중학교 때 나온 간단한 수학 한가지. "p이면 q이다"라는 명제가 참이면 그 명제의 역인 "q이면 p이다"도 참인가? 당연히 아니다.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고 그때마다 따져봐야 한다라고 배우지 않았나? 내가 아는 아줌마들 대부분은 "당연히" 자기 앞에 있는 자리가 나야 그 자리에 앉는다. 당신들이 아는 아줌마들은 다들 몸을 날리는가? 노파심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몸을 날리는 아줌마들이 있는 것 뿐이다. 다들 몸을 날리는 것이 절대 아니고. 이런 얘기하면 꼭 이러시는 분들이 있다. "그냥 웃자고 하는 건데 너무 과민반응이다"라고. 재미있자고 사람 바보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옛날에 이경규가 바보연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신문에서 독자의견을 읽었다. 그건 바보연기가 아니고 정신지체자들의 모습을 흉내낸 것이라고 말이다. 이경규의 행동이나 말하는 것이 자신의 아들과 너무나 닮았다고 말이다. 바보 연기의 대가 배삼룡(이 사람을 모르는 사람도 이젠 꽤 있겠지)의 불만도 그것이다. 요즘 코메디언들은 바보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지체자를 모욕하고 있다고. 배삼룡이 연기한 바보는 순진하고 어눌한 사람이지 정신지체자가 아니었다. "강원도 산골 사는 사람을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 데려다 놨다고 생각해봐. 하는 행동거지가 얼마나 어설프고 바보 같겠어." 배삼룡이 연기했던 바보는 이런 바보였다. 이경규의 연기를 보고 분노하는 정신지체아의 부모에게 "과민반응하지 마시라"고 말할 수 있나? * 아래 퍼다 놓은 게시물과 그림은 그나마 재미로 볼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불만 한가지. 나이 들면 살이 찌는 것은 그렇다 치고, 거기 나오는 아가씨들은 왜 그렇게 눈이 크다냐? 아줌마 돼서 살이 찌면 눈이 그렇게 까지 작아지나? 마치 영화나 TV에서 둔하고 미련한 사람역할은 살찐 사람을 쓰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뚱뚱하면 미련하다? 아님, 미련하면 살이찐다? 둘 다 거짓명제! 내가 또 오바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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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피는 여자

이 글은 내가 전에 쓴 진짜마쵸?라는 글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그걸 읽어야 이해가 갈 내용은 전혀 아니다.

 

대학에 가서 여자선배나 동기 여자들이 담배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불쾌'한 감정이었다.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불쾌한 감정을 느낄 만한 '합당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 바로 그게 문제였다. 기분 나빠할 이유가 전혀 없는 데도 불구하고 기분 나쁠 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상당수는 기분나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내려고 노력을 한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합리화 시켜본다. 모성이 어떻고, 남자든 여자든 담배는 무조건 해롭다 등등(당시 그 얘기를 담배피는 '남성'에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을 들이댔지만 까놓고 말하면 이유는 단 한가지밖에 없었다.

"어디 여자가 감히 담배를..."

그런데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쪽팔리는 일이라는 것쯤은 아는 먹물들이 여러 가지 이유들을 잘도 만들어냈다.



정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소위 진보적이라고 하는 운동권 남자들에서는 여자가 담배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는데, 여자가 담배피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자신들이 인정해주고 말고 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마치 자신들이 여성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해주는 사람임을 증명이나 하는 듯이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거의 모든 가부장적 태도는 전혀 바뀌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사회의 잘못된 편견에 길들여진 잘못된 나의 감성

 

사실 아주 단순한 문제였다. 내가 여자들이 담배피는 모습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잘못된 환경에서 자란 때문이란 것이 명백했다. 그리고 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불쾌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내자신이 무척 못나 보이고 짜증나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진짜 마쵸에서 말했듯이 난 양공주(우리 지역에선 양색시라고 불렀다.)들이 담배피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봐왔기 때문에 여자들이 담배피는 모습은 무척 익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대생'들이 담배피는 모습을 불쾌하게 여기다니!!!  이건 명백한 나의 차별의식이었다. 그래서 더 기분 나빴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이라니...

 

이성적으로만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괜찮아지는데 2년 정도는 걸린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처음이 힘들지 그 다음부터는 수월하다. 스스로에게 쪽팔리고 싶지 않았기에 노력을 많이 했다. 감정적인 부분이 노력한다고 전부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전혀 바뀌지 않는 영역도 아니다.

 

내가 라쇼몽이란 카테고리를 만들 게 된 이유까지 포함해서 꽤 긴 글을 쓸까 했는데 졸리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대학생때 나누던 이야기 스타일

 

"갠, 여자애가 무슨 담배를 피고 그러냐?"

 

- 여자가 담배피는 게 어때서?

 

"야, 좀 그렇잖아"

 

- 넌 할머니들이 담배피는 거 보고도 기분이 않좋냐?

 

"그건 좀 다르잖아

 

-다르긴 뭐가 달라. 너 지금 할머니들은 여자도 아니라고 무시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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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가 없지

'화'라는 책을 쓴 틱나한 스님(이름이 맞나?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다)이 이딴 소리를 했다고 한다. "어떤 것이던 지금의 생각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마라."

* 이 글은 알엠님의 [나는 내가 무섭다] 에 관련된 것도 같고 전혀 상관 없는 것도 같은 글이다.

 

푸른영상 타큐보기 모임에 청주에서 늦깍이 대학생이 온 적이 있었다. 뒤풀이 중에 결혼에 관한 얘기가 나왔고 이런 얘기를 했다.

 조카들에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대하다 보면 언니들이 그래요. "네가 네 자식한테도 이러는지 두고 보자"라고요.  전 결혼해서 제 자식한테도 똑같이 한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어요.

 난 "그걸 증명하고 싶어서 애를 낳을 건 아니죠?"라고 농담처럼 말하고 말았지만, 사실 그 계획이 부질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전혀 다른 성질의 두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사람이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너무 단정적으로 생각하다보면 나중에 낭패를 보기 쉽다는 것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정반대로 악용되기도 한다. 옛날부터 지겹게 들었던 말들. "네가 아직 어려서 몰라" "네가 아직 사회 경험이 없어서 그러는데..." "결혼을 하면 알게되겠지만 말이야..." "아직 애가 없서서 그런 소리를 하는데..." "나도 그맘때는 너처럼 생각했는데 말이야, 살다 보니까..." 등등. 상당수는 자신들의 허접한 현 상황을 합리화 시키려고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분명 <경험해봐 알 수 있는 것>들도 꼭 있다. 특히 아이 문제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가 생기면서 하게되는 행동들이 다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두번째 전혀 다른 이유는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서 자기 아이에게도 조카에게한 것처럼 똑같이 했다고 치자. 그럼 언니들이 "제가 자기 아이에게도 저렇게 하는 걸 보니 정말 저게 옳은 거구나"라고 생각할까? 정말 훌륭한 언니들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독한 년, 지가 뱉은 말을 지키려고 지 자식들한테까지도 저러고 있네"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렇게 되면 결국 아무 소득도 없는 거잖아? 나의 억측일까? 난 사람들의 경험을 높이 사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사람들을 그리 믿지 않는다. 자신들의 매트릭스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나도 나의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을 터인데... *딴 소리 아이들 밥먹이려고 숟가락 들고 쫓아다니는 것과, 학원 보내고 과외 시키고 입시 걱정하는 것이 같은 맥락의 문제일까? 세상은 그렇고 그렇게 흘러가긴 하지. 알엠이 밥숟가락 들고 쫓아다니는 모습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내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과외가 어떻고 입시가 어떻고 그러기 시작해도 난 계속 그러려니 하게 될까? 학원을 보내지 말라거나 과외를 시켜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럴 수도 있기는 하지만 태도가 어떠냐는 거다. (서울대를 정점으로한 학벌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게 '내 자식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서울대는 안보내겠다'고 해야 하는 것이겠는가?)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변화의 내용'이다. 사람들은 영악해서 어떻게 변하든 간에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부치기 마련이다. 남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도 말이다. 영악해서 그럴듯한 이유를 잘 갖다부칠수록 더 쉽게 망가질 수 있다. 그러지 않으려면 남들과도 많이 소통하고, 비겁해지지 말라고 자기 자신을 가끔씩이라도 쑤석거려줘야 한다. (무위도식이나 꿈꾸는 내가 왜 이런 같잖은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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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글을 퍼오다.(양성 쓰기)

맥주 한 잔 하며 인터넷을 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게시판에 올렸던 옛글들을 찾아보게 됐다. (나이 먹나?) 어떤 게시판들은 이미 사라져서 볼 수 없기도 했는데 푸른영상 게시판은 모든게 그대로 있었다.

해명 바랍니다.



소식지에 올릴 글을 보낼 때 분명 '김송범수'라고 해서 보냈는데 소식지에는 그냥 '김범수'라고 되어있더군요. 전에도 그랬습니다. 그 때는 내가 평소 습관대로 김범수라고 그냥 보냈다가 나중에 김송범수로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김범수로 실렸더군요. 그 때야 깜박 잊어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냥 넘어갔는데,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나야 원래 푸른영상에 잘 알려진(?) 인물이라 평소처럼 아무생각 없이 김범수라고 쓰셨다면 별일이 아니지만, 어쨌든 실수하신 것이니 사과하십시오. 그게 아니고 일부러 '송'을 빼셨다면 사과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까. 무슨 공문서라면 말이 되죠. 하지만 '푸른영상' 소식지에서 그랬다면 이해해줄 수가 없습니다.

난 지난 30년 동안 나의 반쪽이 '송'씨였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양성쓰기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참 좋은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송'씨라고 생각을 해보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어머니에게 빚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 운동이 그렇게 활성화는 안되더군요. 그래도 좋은 것은 나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어머니 성도 같이 쓰기로 했습니다. 인물과 사상이란 잡지 이번 호에 양성을 쓰다보면 자식을 낳았을 때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는 글이 실렸더군요. 예를 들어 김송범수와 윤김정혜사이에서 자식을 낳으면 '김송윤김철수' 라는 식의 이름이 되니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양성쓰기 운동을 제안한 분들이 이런 문제를 생각 못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괜히 맘에 안드니까 딴지 걸자는 것으로밖에 안보입니다. (이 부분만 빼고는 인물과사상에 실린 그 분의 글에 100% 공감합니다.)

그런게 걱정되서 양성을 못쓰기겠다면 제가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하죠. 그냥 어머니 성만 쓰는 겁니다. 간단하죠? 몇 백년 넘게 아버지 성만 썼으니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앞으로 한 5백년 동안만 어머니 성만 쓰기로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엔요? 그 문제는 후세들이 고민하게 맡겨둡시다. 자 이젠 동의하십니까? 지금까지 쓰던 성을 모두 어머니 성으로 바꾸면 혼란스럽고 경제적인 비용도 많이 들 거라구요? 물론 그렇겠죠. 그러면 새로 낳는 아이들부터 그렇게 하면 되죠? 그래도 비용은 좀 들겠지만 잘못된 것 고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좀 엉뚱한 비유지만 국가보안법도 고치거나 없애지 말까요? 극우보수 뿐만 아니라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우리아버지 같은 분들도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낄 것이고 가치관의 혼란이 올텐데, 70넘은 우리 노인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일입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부모들이 상의해서 성을 정하기도 하고, 야예 제3의 성을 쓰기도 합니다. 자기가 하기 싫으면 최소한 남 하겠다는 것에 딴지는 걸지 맙시다. 스스로도 얼마나 명분이 없는지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시다. 차라리 솔직해 집시다. '너희들 말이 맞기는 한데 지금까지 잘못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요. 자신의 잘못된 부분 한가지만 인정하면 되는데(고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걸 정당화 시키려고 하니 우스꽝그러운 논리만 만들어내고 있지 않습니까?

근본적으로 전 '성'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어르신들에겐 '상놈' 소리를 들을 얘기죠. 그렇습니다. 저 상놈입니다. 아니 아마도 상놈일 확률이 95%입니다. 그게 어떻다는 말입니까?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양반의 비율은 5 %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조선후기에는 80%로 증가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의 날카로운 추리력에 의하면 양반들의 '왕성한 번식력' 때문일 것 같습니다. 제 추리 맞습니까?

실제로 당신이 그 5% 안에 드는 진짜 양반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조상이 양반이었다는 게 뭐 그리 자랑스럽습니까?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 조상을 두셔서 자랑스러우십니까? 뭐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하셨나 보죠? 그렇다면 당신은요? 당신도 조상 못지않게 훌륭하십니까? 게다가 확률적으로 여러분들이 자기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그 조상이 실제 뿌리가 아닐 가능성이 위에서 보듯이 95 %입니다. 분명 양반의 뿌리는 5 %밖에 안됐는데 제 주위를 보면 왜 양반 아닌 사람이 없는거죠? 게다가 그 뿌리를 더 따라 올라가면 원시공동체 사회 아닙니까? 원래뿌리보다는 거기서 뻗어나온 곁뿌리가 더 중요한 건인가 보죠? 내 뿌리는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광산김씨'이나 '여산송씨'가 아니구요. 그 위에는요? 저도 모르죠. 그런 것 몰라도 난 사람들 사랑하며 잘 살아보렵니다. 여러분들도 잘 사시길 빕니다.

99/11/15

요즘은 양성 쓰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글을 쓴지 벌써 6년이나 지났네. 이제 와서 읽어보니 좋게 얘기해도 될 것을 참 싸가지 없게 말했군. 이젠 윤김정혜도 내곁에 없고.^^ 요즘엔 아예 성을 안쓰기도 하더만. 나도 내 성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돌림자에 작명소에서 지어준 글자 하나 붙인 내 이름도 그렇고 말이다. 난 그냥 내 스스로가 부친 '무위'란 아이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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