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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학교자율화조치인가?

 4.15 학교자율화 조치, 이 말대로 하면 학교는 그 동안 자율적이지 않았고, 강제적이며 타율적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학교가 자율적이지 않고 강제적이고 타율적이었다면 분명 바꿔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학교’라고 두루뭉실하고 애매하게 말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지점을 얘기해야 한다. 학교의 어떤 부분이 강제적이고 타율적인가 하는 것이다.

자율화 시키겠다 하여 논란이 되는 몇 가지를 통해 교과부와 교육청의 교육 관료들이 학교의 어떤 부분을 강제적이고 타율적이라고 생각하지는 판단할 수 있다. 이를 통해 ‘4.15 학교자율화 조치’의 발상과 의도를 분명히 할 수 있다.


0교시 허용 / 수준별 이동수업 허용 / 사설모의고사 허용 / 방과후학교 운영 허용 / 학습부교재 선정 허용 / 교복 공동구매 권장 폐지 / 초등학교 어린이신문 단체구독 허용 등


0교시나 수준별 이동수업 등은 이미 허용되어 있었다. 사설모의고사, 어린이신문 단체구독  등은 지침에 의해 금지되고 있었으나 자발적인 금지지침이 아닌 학생이나 학부모 또는 교육사회의 저항에 의해 마지못해 취한 금지조치였다. 교복 공동구매의 경우는 권장 사항이었고 그 실시는 미미한 정도였다.

결국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자율화 조치라고 말하는 것의 대부분은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던 것이었다. 따라서 자율화 조치라고 말하면서 바꿔야 한다고 말한 전제에 해당하는 강제적이고 타율적인 것이 바로 자율화 조치의 내용과 일치하게 된다.

그럼 이명박 정부의 교육관료들이 자율화가 필요하다고 내세운, 학교에 존재하는 강제적이고 타율적인 것들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오히려 다른 의도가 존재한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래서 우리는 의문 하나를 더 가져야 한다.

4.15 조치 이전의 학교를 누가 타율적이고 강제적이라고 느끼는 것이며, 누구를 위한 자율화 조치인지를 4.15 조치의 내용으로 추론해야 한다. 사설모의고사나 방과후학교, 학습부교재, 어린이신문 등은 결국 학교 내에서 ‘돈’이 돌게 된다는 얘기이다. 그럼 이 ‘돈’은 누구를 위한 돈이 될 것인가가 중요한 추론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어려울지 모르나, 최소한 4.15 조치가 갖는 의미는 ‘돈’에 대한 자율화 조치이며, 결국 이 조치는 학원자본이 학교에서 이익을 획득하기 위한 자율화 조치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는 결단코 ‘돈’으로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교육이 본래적 목적인 학생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성장시키지 않은 채, 학생을 이익 획득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서열화의 강화로 다수의 학생을 열패감에 몰아넣는다면 과연 우리는 이것을 교육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자본의 자율화 조치가 아닌, 진정 교육 주체의 교육적 자율이 되도록 하기 위해 학생회, 학부모회, 교사회의 법제화를 선(先)시행하여야 한다. 법적 지위를 획득한 교육주체가 스스로의 힘으로 ‘전봇대’를 뽑도록 해야 이를 ‘자율화’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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