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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로치에바친다② <케스>내 유년기의 추억

<케스> 내 유년기의 추억
켄 로치에 바친다 ②
2006.11.08 / 김태용(영화감독) 

<가족의 탄생>을 만든 김태용 감독은 켄 로치의<케스>를 보면서 자신의 유년기를 떠올렸다. 문제아지만 학교라는 닫힌 공간보다 더 너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소년의 표정에서 켄 로치 영화의 정수를 읽을 수 있었다.


<케스>는 영화아카데미에서 공부하던 시절 처음 봤다. 친구가 좋다고 하기에 우연찮게 화질도 안 좋은 비디오로 봤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남들보다 켄 로치의 영화를 뒤늦게 접한 편인데 그 약발은 오래 갔다. 그리고는 <랜드 앤 프리덤>을 극장에서 봤다. 극장을 나오면서 함께 본 친구랑 아무런 말도 못했다. 충격과 여운으로 멍한 상태에서 말도 없이 걷다가 나였나, 그 친구였나 한번 말문이 터지는 순간 서로 앞 다퉈 영화에 대해 얘기하면서 술까지 마셨던 것 같다. 그 뒤로 <하층민> <레이디버드> 등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가장 존경하는 켄 로치의 영화는 여전히 <랜드 앤 프리덤>인데, 뭐랄까 가장 사적인 나만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영화는 바로 <케스>다.

영국 북부 탄광촌에서 살고 있는 빌리는 어딘가 좀 독특한 아이다. 집과 학교 모두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그는 힘겨운 유년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새끼 매 한 마리를 발견해 ‘케스’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키우게 되면서 삶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뒤에 나온 <빌리 엘리어트>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영화고 아이 이름도 우연찮게 똑같다. 하지만 나에겐 그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 영화다. 이것저것 아무것도 못할 것 같고 나중에 커서도 여전히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은 아이, 하지만 그 아이는 어떤 갈등 상황에 직면해서도 싸우지도 도망가지도 않으면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본다. 일탈과 저항도 없고 그렇다고 연민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소년은 자기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묘한 자신감 같은 것도 느껴진다. 재주 없는 사람의 자신감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쉽게 성장영화라고 정의할 수도 없다. 켄 로치의 영화를 보면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데 그래서 다르덴 형제와도 연결되겠지만,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켄 로치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케스>에서부터 잘 살아 있는 것 같다.

내 기억을 떠올려보면 난 초등학교 때까지 굉장히 작았다. 우리 반 남녀 통틀어 가장 키가 작아서 늘 1번이었다. 고등학교 때 많이 컸고 지금은 완전 아저씨가 됐지만 당시의 나는 작고 왜소했고 여자애처럼 생겼었다. 그 흔한 반장, 부반장도 못 해본 정말 빌리처럼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물론 <케스>의 소년처럼 굉장히 문제아이진 않았지만 당시의 나는 연극 <춘향전>에서 춘향이를 연기했을 정도였다. 서른 살이 넘어 초등학교 동창회를 나간 적이 있는데 심지어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안다고 해도 영화감독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엄청 놀랐을 정도니까. 어린 내가 느꼈던 ‘저항하지 못하는 자존감’이라고 할까? 그 당시의 느낌과 관심들이 영화아카데미 시절 만든 단편 <열일곱>에 담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속에선 매를 날리는 장면이 가장 좋고 소년이 선생님과 헛간에서 얘기하는 장면도 좋다. "어떻게 길들였나" 하는 질문에 "길들이는 게 아니라 서로 훈련되는 거"라는 소년의 얘기가 핵심이다. 그는 이미 학교를 떠나 그 스스로 ‘교육’과 인간관계의 방식에 대해 깨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남들처럼 매가 무서운 게 아니라, 매에 대해 훌륭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매가 하늘을 날면 온 세상이 조용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나중에 <케스>를 다시 스크린으로 만나면서 그런 행복한 느낌을 온전하게 받을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무척 단순한 얘기지만 소년의 표정과 더불어 쉬이 잊히지 않는 영화다.

하지만 켄 로치는 감독으로서 닮기가 참 힘든 사람이다. 브라이언 드팔마나 데이비드 핀처 같은 경우는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그 스타일을 모방하거나 흉내 낼 수 있지만, 켄 로치는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어떻게 따라 하기는 힘든 사람이다. 그래도 그처럼 언제나 사회적인 발언을 하고 노동자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늘 그 느낌으로 영화를 대하려 노력한다. 그가 나처럼 이러한 소재를 영화로 다룬다면 과연 어떤 관점으로 다룰까, 하면서 말이다. 스토리텔링의 영향을 받는다기보다 그 존재감이 너무나도 선명한 사람이다. 그것은 정말 영화감독으로서 부러운 점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실제 말하는 방식,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과 직업적으로 자신이 지향하는 것이 일치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할까. 차갑지만 냉소적이지 않고 낙관적이지만 어설픈 희망을 주진 않는다. 그가 지닌 정치적 관점과 입장을 떠나 세계를 보는 확고한 눈이 명확하다는 사실이 부럽다. 세상사람 누구나 명확한 지향점이 있어도 끊임없이 회의하게 되는데, 켄 로치 그 자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걸어왔는지 진심으로 한번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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