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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먹은 독수리는 왜 납중독에 걸렸나

고라니 먹은 독수리는 왜 납중독에 걸렸나

김봉균 2018. 01. 31
조회수 3747 추천수 1
 
농약, 납 총탄 등 사체 먹은 맹금류 피해 잇따라
고라니 사체 먹이로 주기 전에 엑스선 촬영해야
 
e4.JPG» 밀렵꾼이 오리를 잡으려고 농약을 묻힌 볍씨를 뿌리자, 죽은 오리를 먹고 독수리도 농약에 중독돼 조난했다.
 
매년 겨울철이면 최상위 포식자에 속하는 독수리나 흰꼬리수리 같은 대형 맹금류가 구조되어 들어옵니다. 녀석들은 덩치도 크고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유유히 비행하는 습성을 지녔기에 누군가의 눈에 띄기 쉽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하나같이 법정 보호종에 속해 보호받아야 하는 멸종위기 야생동물임에도 누군가가 쏘아대는 총에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적 테두리를 한참이나 벗어난 야만적 행태이지요.
 
녀석들을 위협하는 것은 밀렵만이 아닙니다. 안개가 끼거나 흐린 날에는 교각이나 전깃줄, 풍력발전소의 날개와 같은 인공구조물에 부딪히곤 합니다.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즉각적인 회피 비행이 어려워 갑작스레 눈앞에 나타난 구조물을 미처 피하지 못하곤 합니다. 
 
독수리나 흰꼬리수리 같은 대형 맹금류는 종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죽은 동물의 사체도 곧잘 찾아 먹는 청소동물이기도 합니다. 사체를 먹는 동물의 습성을 부정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편견일 뿐 생태계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사람들이 먹는 고기 역시 대부분은 죽은 동물의 사체에서 비롯되는 걸요. 이상할 것 하나 없죠. 
 
e1.JPG» 독수리는 대표적인 청소동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동물이 생태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사체가 오래 방치되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이는 질병의 확산과 해충의 집단 발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요. 그런데 독수리와 같은 청소동물이 나타나 사체를 소비한다면 이런 문제를 예방하고 질병의 확산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만약 이런 동물의 개체수가 급감해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든다면 우리는 더 많은 질병에 노출되는 삶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청소동물에 대해 잘못 알려진 상식 중 하나가 썩은 고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청소동물에게 사체를 찾아 먹을 기회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녀석들에겐 꽤 간절한 기회지요. 또 최근 폐사한 신선한 먹이만을 찾아 헤맬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만약 신선한 먹이만을 선호하는 성향을 지닌 청소동물이라면 다른 개체와의 경쟁에서 쉽게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조금 시간이 지나 부패가 시작되었을지라도 그 먹이를 포기할 수 없는 거죠. 그렇다 보니 부패한 먹이를 섭취해 식중독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e2.JPG» 독수리, 까치, 큰부리까마귀가 모여 고라니 사체를 먹고 있다.
 
이처럼 사체를 먹는 청소동물에게는 ‘먹이원인 폐사체가 과연 어떤 이유로 폐사했는가'가 녀석들의 생사를 결정합니다. 만약 농약을 먹어 죽은 동물을 먹는다면 녀석들 역시 마찬가지로 농약 중독에 걸립니다. 또 누군가가 쏜 납탄에 맞고 죽은 동물을 먹는다면 납중독으로 이어집니다. 농약 중독과 납중독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소량을 섭취해도 문제가 발생하며 쉽게 분해되지 않고 축적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역에 서식하는 많은 동물이 같은 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도 합니다. 절대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문제겠지요.
 
e3.JPG» 농약 묻은 볍씨를 먹고 가창오리 수십 마리가 죽었다. 독수리는 이 가창오리를 뜯어먹고 농약에 중독됐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축산물의 야외 폐기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청소동물이 먹이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녀석들을 보호하기 위해 민간단체와 관공서에서 부분적으로나마 먹이를 공급하고 있죠. 하지만 제공되는 먹이에 도축장에서 나오는 부산물이 포함돼 있거나, 가축농장에서 나온 폐사체 등도 활용하고 있어 잠재적인 질병 감염의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정육을 제공하기에는 가격이 비쌉니다. 
 
e4.JPGe5.jpg» 농가에서 기르다가 폐사해 버린 닭을 먹는 어린 흰꼬리수리와 까치.
 
최근에는 사고로 인해 폐사한 야생동물, 특히 고라니를 먹이로 제공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폐사한 야생동물이 다른 야생동물에게 섭식 되어 에너지원이 된다는 것 자체에는 의미가 있지만, 주로 제공되는 고라니의 경우 수렵 때 사용한 납탄이 몸에 박혀있을 가능성이 있고, 이를 독수리나 흰꼬리수리가 먹게 된다면 심각한 납중독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고라니 등의 야생동물을 먹이로 제공하기 이전에는 방사선 촬영을 통해 몸에 납탄이 있는지를 우선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죠? 
 
e6.jpg» 차량충돌로 폐사한 고라니의 사체를 흰꼬리수리가 깔끔하게 발라먹은 모습. 사냥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어린 대형 맹금류에게 도로 위의 사체는 위험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먹이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2차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e7.jpg» 차량에 충돌해 구조된 고라니의 근육 속에 납탄이 박혀 있다(아래 흰점). 이 고라니가 청소동물의 먹이로 제공된다면 납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너무 많은 수의 대형 맹금류를 한 장소에 모이게 하면 예기치 못한 질병의 확산이나 오염원과의 접촉으로 대규모 피해가 야기될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독수리들이 대규모로 도래하는 지역에서 여러 마리가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단체로 조난에 처하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먹이를 안 줄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먹이 제공을 중단한다면 녀석들은 심각한 굶주림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거든요. 아주 다양한 곳에 나눠 제공하는 것 역시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겠지요. 앞으로도 이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당사자들 간의 지속적인 협의가 필요합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봄이 찾아오면 이 덩치 큰 친구들은 그들의 번식지인 몽골과 러시아 등으로 북상하게 됩니다. 그때까지 아무쪼록 잘 먹고 잘 쉬다가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꼭 내년에 새끼를 데리고 우리나라를 찾아와 다시금 만날 수 있기를, 푸른 하늘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녀석들과 오래오래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8.jpg» 바람을 타고 유유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독수리.
 
글·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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