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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 침묵은 금이 아니라 죄입니다

耽讀 | 등록:2013-08-29 09:35:49 | 최종:2013-08-29 09:40:0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정부와 여당에게 묻겠습니다.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1971.12.24 성탄자정 미사

"7·4 남북공동성명이 평화 위장의 전쟁 준비 수단이나 권력정치의 기만전술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민족과 더불어 엄숙히 경고한다."-1972.08 광복절 담화

김수환 추기경 "10월 유신같은 초헌법 철권통치는 박정희에게 불행"

▲ 김수환 추기경이 1972년 8월9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7·4 남북 공동 성명과 8·3 긴급 조치에 대한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서슬퍼런 '독재자' 박정희에게 이런 일갈을 한 이는 고 김수환 추기경입니다. 특히 1971년 성탄자정 미사는 전국에 생중계 중이었습니다. 분노한 박정희는 방송을 중단시켰고, 책임자 옷을 벗겼습니다. 김 추기경은 1972년 10월 독재자 박정희가 '10월유신쿠데타'를 자행하자 "10월 유신 같은 초헌법적 철권통치는 우리나라를 큰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며 "정권욕에 눈이 먼 박 대통령 자신도 결국 불행하게 끝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은 1979년 10월 26일 성취되었습니다.

또 다른 독재자 전두환이 '12·12군사반란'을 성공시킨 후 추기경을 찾았을 때 덕담이 아니라 면전에 대고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부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 같은 결기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개신교 목사가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와 "여호수아 장군 같이 되라"고 기도한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날 기도회는 KBS와 MBC가 생중계했습니다. 1971년 성탄절 자정미사 생중계와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전두환)에게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나를 먼저 밟고 가라"

김수환 추기경은 이에 머물지 않고 1987년 '박종철타살사건'때 시국미사에서 다음과 같이 분노합니다. 이는 온 나라에 기름을 붓는 계기가 됩니다.

이 정권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라고 묻고 싶습니다.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습니까. 총칼의 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그것은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모르는 일입니다' 하면서 잡아떼고 있습니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

전두환 정권을 향해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고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라고 하면 안 된다는 추기경의 호소는 시민들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른다고 하는 것은 카인이라는 지적에 시민들은 일어났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처럼 권력이 독재를 하고, 인간존엄성을 해할 때는 한치도 머뭇거리지 않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 당시 명동 대성당에 들어온 시위대를 연행하기 위해 치안본부장과 안기부 차장에게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라는 말은 전두환도 명동성당을 짓밟지 못하게 했고, 학생들을 지켜냈습니다. 그가 지난 2009년 2월 선종했을 때 40만명이 추모한 이유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린 이유는 국정원 부정선거 개입 의혹을 두고 고등학생, 대학생, 교수, 시민단체, 시민들 그리고 종교인들이 시국선언때문입니다. 종교인들 시국선언에는 천주교 신부들과 수도자와 수녀들도 함께 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대교구 사제 262명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을 포기하면서까지 국가안보와 국익의 토대인 민주의 가치를 허물어뜨렸다"는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지난 26일 천주교 수도자 4502명은 서울 신수동 예수회센터 성당에서 신약 루카복음 19장 40절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는 말씀을 제목으로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정한 선거가 필수적"이라며 "이것을 침해하고 위협하는 그 어떠힌 행위도 자유 민주주의의 정신과 실천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공동의 선은 소수 권력자들의 특권과 지배와 불법을 용인하는 순간 아주 쉽게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고쳐지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그 어떤 공동의 가치도 기꺼이 나누려 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들은 권력의 그 어떤 불법과 특권에도 결단코 반대하며, 민주사회에서의 건강한 삶이 온전하게 회복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김수환 "카인이 되지 말라"고 했것만… 정진석 추기경 침묵

하지만, 정진석 추기경이 국정원 부정선거에 관련해 입장을 표명한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사제들과 수도사들이 국정원 부정선거에 대해 성직자와 신앙인으로 양심으로 도저히 넘어갈 수 없이 분노하고 있는데도 침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독재권력이 민주주의를 배반하고, 시민을 탄압할 때 앞장 섰습니다. 이는 이념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주의 문제입니다.

사실 정 추기경은 이명박 정권 이후, 정치 현안에 대해 침묵하거나 오히려 정권 정책에 대해 옹호하는 듯한 반응까지 보여 천주교 내에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지난 2010년 12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해 "그건 자연과학자들이 다루는 문제다"면서 "토목 공사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다룰 문제지 종교인들의 영역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발언이 알려지자 천주교 원로사제들은 "정 추기경의 말씀에 부끄럽고 비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용퇴"를 촉구하는 성명까지 발표했습니다.

명동성당은 1980년대 '민주성지'였습니다. 독재자 전두환도 결코 짓밟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학생과 노동자들은 공권력에 내몰리면 명동성동에 들어갔습니다. 구약시대 '도피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권력에 저항하다가 피해다니는 이들은 명동성당이 아니라 '철탑', '크레인', '송전탑' 위에 올라갑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권력을 비판하지 않는 정진석 추기경 행보도 한몫했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습니다. 국정원 부정선거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뻔뻔할 정도로 책임회피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 추기경이 나서야 합니다. 사제와 수도사 수 천명 시국선언보다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국정원 부정선거는 진보와 보수 같은 이념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유린 당한 일입니다. 이것을 침묵한다면, 성직자로 자기 책임을 방기하는 일입니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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