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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에게 죽비가 된 '응원봉 연대'의 실체

[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④] '전국 응원봉 연대' 기수 김지연씨

사회 이슬기(seulgi)

25.04.11 06:53최종 업데이트 25.04.11 06:53

"'광장에 선 여자'가 디폴트값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질문은 '왜 여자는 광장에 서는가'를 넘어서 '왜 여자는 정치적인가'라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책 <다시 만날 세계에서> 중) 책임지지 못할 저런 말을 써놓고, 자주 저 뜻을 머릿속으로 굴려 봤다. 세상이 광장에 나온 2030 여자들에 놀라고 기특해할 때, 나는 '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세상이 몰랐던(혹은 자주 잊었던), 이 '정치적인' 여자들의 기원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광장을 바꾼 여자들을 만나 들은 말들을 싣는다.[기자말]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 직후 서울 안국역 앞 거리에서 촬영한 '전국 응원봉 연대' 깃발과 응원봉들.김지연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을 선고한 가운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부근 안국동네거리에서 탄핵심판 생중계를 지켜본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천막농성을 벌였던 광화문앞까지 축하행진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행진 때 '응원봉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라는 현수막을 들었다. (사진 오른쪽)권우성

'응원봉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지난 4일 윤석열 파면 직후 민주노총이 거리 행진을 위해 꺼내 든 현수막의 문구다. 1987년 6월항쟁에 '넥타이 부대'가 있다면 2008년의 촛불집회는 '촛불소녀'와 '유모차 부대'가 있었다는 분석처럼(<경향신문>, '고비마다 촛불 이끈 아마조네스 부대', 2008/7/9), 윤석열 탄핵 광장에는 '응원봉 부대'가 있었다.

K-팝 팬덤을 상징하는 도구인 응원봉은 빛나는 발광력으로, 늘 광장에 나왔으되 주목을 덜 받았던 2030 여성들을 가시화하는 역할을 했다. 나중에는 광장에서 젠더노소(남녀노소)할 것 없이 '윤석열 탄핵'이 적힌 응원봉을 들고나왔다. 광장에 나부낀 깃발들과 함께, 여성들이 밀어 올린 시위 문화가 보편이 된 셈이다.

이같은 응원봉 문화의 한 켠에 '전국 응원봉 연대'가 있었다. 전국 응원봉 연대는 집회에 같이 갈 '동행'을 구하는 한 개인의 깃발과 X(구 트위터) 계정이었다. 그가 비상계엄 이후 첫 주말 집회에 앞서 트위터에 깃발 도안과 함께 올린 '12/7(토)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15시'는 조회수 231만 회에 '1만 알티'(RT·인용)를 타며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개설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최대 인원인 1000명이 들어왔다.

2024년 12월 7일 '전국 응원봉 연대' 이름으로 국회 앞에 모여 '윤석열 탄핵'을 외친 케이팝 팬들.전국 응원봉 연대

전국 응원봉 연대의 기수이자 X 계정주, 김지연(28)씨를 지난 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만났다.

-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97년생 김지연이라고 하고요. 야간 대학인 서울의 모 전문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전공심화 학부과정(전문대학에서 취득할 수 있는 4년제 학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대학을 중간에 자퇴했다가 재입학을 한 거라 취업을 좀 일찍한 편이었는데요. 고객센터에서 상담사로 계속 일하다 오늘(7일) 퇴사했는데, 아마 계속 같은 업종으로 갈 거 같아요. 제 정체성 중 하나를 콜센터 노동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윤석열 파면 선고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으셨어요?

"당일에 저도 헌재 앞에 깃발 들고 갔고요. 마음이 뭔가 얼떨떨하더라고요. 파면 선고 후에 노래(데이식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나왔는데, 원래 노래가 나오면 깃발을 늘 이렇게 흔들거든요. 근데 동행해 주신 저희 전국 응원봉 연대 광주지부 기수님이 깃발을 안 흔드시고 우시는 거예요. 그분을 보니까 저도 '엉엉' 이래가지고… 동행한 또 다른 응원봉 지부 두 분이랑 옆에 계시던 모르는 할머니, 또 다른 시민분과 이렇게 어울려서(?) 다같이 엉엉…"

- 왜 눈물이 났을까요?

"해방감, 성취로 인한 자기 효능감 때문인 거 같아요. 말하면서 또 눈물 나려고 하는데… 하프나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해서 딱 끝 라인을 통과하는 느낌… 다른 분들도 '마치 주마등처럼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지나갔다', '울음이 막 났다'고 하시더라고요."

- 원래 회사 출근 해야하는 시각 아니었어요?

"연차를 냈죠."

"내가 여성들을 초대하자"

전국 응원봉 연대는 광장에 처음 등장한 조직이 아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광장에 처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걸 2024년의 광장에서 되살린 것은 지연씨였다. 박근혜 탄핵 광장 당시, 대입 재수생이었던 지연씨는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신문 1면에 등장한 또래 여성들 사진을 보며 그는 부채감을 느꼈다.

"여대 다니던 친구들이 많아서, 이화여대 시위(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 반대 투쟁)나 박근혜 퇴진 집회에 나간 애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동덕여대 공학 전환 사태 때부터 기시감, 데자뷰 같은 게 느껴지면서 이화여대와 겹쳐 보이는 게 많았어요."

동덕여대에 연대할 방법을 고민하다 맞은 계엄 사태는 '무언가 역사가 쓰이고 있다'는 자각과 함께 깃발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깃발은 그의 여러 정체성 가운데 사람들이 동질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메이저리티'(다수)한, 다수를 포괄할 만한 정체성에 입각해 만들어졌다.

"제가 그때 한창 의식하고 있던 여성 의제와 트위터에서 활동해 왔던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게 '응원봉'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제 응원봉을 들고 나가고 싶었고요. 2016년에 만들어졌던 '전국 응원봉 연대'의 트위터 계정이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오마주해서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2D(만화, 애니메이션, 웹소설 등), 3D(K팝 아이돌 등 현실 속 연예인), 버추얼(가상)을 모두 망라한 응원봉의 연대 깃발이 탄생했다. 이전 깃발에 있던 'JUST LET ME DUKJIL'은 'let us cry only for ticketing'으로 바뀌었다.

전국 응원봉 연대는 오프라인 광장에 나서기 전부터, 온라인 광장에서 먼저 '흥했다'. 모일 장소와 시각을 알린 지연씨의 첫 글은, 실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2차 가해자(피해자 실명을 SNS에 공개했고,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인 김민웅씨가 상임대표인 촛불행동에 대항한 행동이었다.

"당시 '응원봉 들고 가도 되나요?'라는 질문에 촛불행동에서 '얼마든지 들고 오시면 된다'고 메시지를 남긴 게 한창 알티를 타려고 하고 있었어요. 그걸 보니까 배알이 꼴리는 거예요. 저는 박원순(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그것과 관련해서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거든요. 저를 존중해 주지 않는 초대자가 있는 곳에 객체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차라리 '내가 여성들을 초대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지난해 12월 7일, 2024년 버전 '전국 응원봉 연대'는 처음 광장에 등장했다. 막상 약속 장소인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로 가기 전 여의도 공원 인근에서 깃발은 이에 화답하는 어마어마한 인파에 휩싸였다. 처음 함께 동행을 구했던, 오픈채팅방을 개설한 이인 '방장'을 찾을 새가 없을 정도였다.

"처음엔 방장님이 마중을 나오신 줄 알았어요. 너무 많은 분들이 나와서 '응원봉을 들고 왔다'고 환호를 해주시더라고요. 인파가 너무 많아 길이 막혀서 결국 '여기 있겠습니다' 하고 밤이 돼서 행진할 때까지 거기 있게 됐어요."

'전국 응원봉 연대' 깃발 도안김지연

'휀걸'들에게 정치는 이미 익숙하다

지연씨는 광장에 줄곧 깃발과 응원봉을 같이 들고 다닌다. 샤이니의 '샤팅스타', 뉴진스의 '빙키봉'이다. 샤이니는 2009년 '링딩동'과 '조조'를 좋아하게 된 이후로, 뉴진스는 '입덕 부정기'(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시기)를 거친 끝에 지난해 자신도 모르는 새 멤버 해린의 생일을 리디(콘텐츠 플랫폼) 비밀번호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팬이 됐다.

그에게 응원봉은 "제 마음을 지켜주는 마음속 등불, 등불 같은 이정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광장에 들고 나온 한편으로, 어두운 밤길 밝히는 등불처럼 같은 응원봉을 든 사람들끼리는 서로 알아보고 위급한 상황에 나를 도와줄 거라 안심하는 매개로도 쓰인다는 말이었다.

지연씨는 광장에서 응원봉이 주류가 된 것을 두고, K-팝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는 일로 본다.

"K-팝 역사가 누적됐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만큼 많이들 좋아하고 세대가 누적되면서 K-팝을 즐기는 인구수도 커졌다… BTS가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하면서 이제 블랙핑크가 빌보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전혀 놀랍지 않잖아요, '2030'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광장에 가면 '4050' 여성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또 한 가지, '휀걸(fangirl-누군가의 팬인 여자)'들은 이미 정치에 익숙하다. 지연씨는 연예기획사를 상대로 저항과 타협의 정치를 계속해 온 팬덤의 역사를 얘기했다. 그는 아이돌 소속사를 일종의 '정부'라고 불렀다. 내 가수를 키우고 매니징하는 사측인 동시에 팬들의 소비자적 권리나 인권 또는 가수의 노동권 침해 등에 맞서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아이돌 팬들은 부당한 소속사의 처신에 대항해 작성, 트럭 시위, 불매 운동 등을 자주 진행해 왔다.

"저는 엔터사와 케이팝 팬과의 묘한 관계가, 마치 국가가 여성을 대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그들이 내놓는 아티스트를 동경하며 따라다니는 팬이자, 어떻게 보면 소비자이면서 고객이잖아요. 근데 저희는 자주 갑질을 당해요. 경호원에 폭행·성추행을 당하거나, 팬 미팅에서 성추행에 가까운 속옷 검사를 당하기도 하고요. 그런 걸 당하고 싶지 않아서 늘 싸워요."

"아이돌 홈마 계정을 운영하는 감각으로 했어요"

2024년 12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윤석열 탄핵 집회 당시 어둠 속에서 빛나던 샤팅스타(왼쪽·샤이니 응원봉)와 빙키봉(뉴진스 응원봉).김지연

'윤석열 탄핵'이라는 명료한 목표 아래,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메이저'한 정체성을 앞세우고, 부단히 가시성을 고민하며, 행정력을 풀 가동해 일을 추진하고 진행시킨다는 점에서 지연씨는 광장에서 눈에 띄는 '정치적' 인물이다. 그는 '전국 응원봉 연대'의 계정주이자 기수로 여러 일을 도모했다. 지역과의 연대를 위해 깃발 도안을 제공했고, 그렇게 서울지부, 전라-광주지부, 상주-대구지부, 대전세종충청지회가 탄생했다. 광장에서 만난 기수들에게 '전국 깃발 여행'을 제안해 지난 3월 22일 대전 집회에 다녀오기도 했다. 깃발이 닿지 못하는 곳에 대해서는, 광장의 스티커를 나눔해 발송하는 프로젝트를 꾸렸다.

"'서울의 집회가 깃발들 덕에 주목을 받았지만, 지역 집회는 그로 인해서 더 주목도가 낮아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 집회의 화려함에 넘어가서, 트위터의 빠른 소식과 네트워크 조직으로도 지역 집회 소식을 접하기가 굉장히 힘든 거예요. 반면 저는 지부 깃발들로 인해서 지역 소식을 꾸준히 접했던 거고요. 유명한 깃발이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내려온다'는 상징성이 굉장히 클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연씨는 일본 배구 만화 '하이큐'와 웹소설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의 팬픽 같은 2차 창작을 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2차 창작물의 앤솔러지(합본)에 원고를 게재하거나, 합동지를 같이 만들 인원을 구해서 기획·발간하기도 했다. 광장에 나선 경험은 윤석열 탄핵 국면이 처음이지만,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갔던 동인 행사(일본 만화, 애니메이션과 관련한 오프라인 행사)를 '인생 첫 집회'로 여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집회의 사전적 정의 '여러 사람이 어떤 목적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모임'을 생각하면 틀린 말도 아니다.

"'왜 이렇게 일이 커진 것 같지?'라고 물었을 때 제 지인들이 지적하기를, 제가 스무 살 때부터 활동해 온 동인 행사나, 책 앤솔로지 등을 기획했던 것, 콜센터 상담사로 살면서 공적 언어를 사용했던 게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마치 실존하는, 정말 '있는 단체'처럼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의 허상, 거짓된 리더십을 보고 그렇게 주목을 받았다…(웃음) 저는 딱 그 정도로 아이돌 홈마(자신이 찍은 연예인 사진·영상 등을 올리는 팬 계정을 관리하는 사람) 계정, 앤솔로지 계정을 운영하는 감각으로 그걸 했어요."

아름다운 이별

향후 스티커 나눔과 광주와 대구, 부산의 깃발 여행을 끝으로 전국 응원봉 연대의 활동도 막을 내릴 예정이다. 그는 탄핵 광장에서의 여정을 '아름다운 이별'로서 박제하는 하나의 작품처럼 마무리 짓고 싶어했다.

"깃발 들고 나간다 하니까 처음에 저희 부모님도 많이 걱정하셨거든요. 그때 부모님한테 했던 말이 '이런 건 창피한 게 아니다, 내 주변 사람들을 지키러 나가는 거다'였어요. 주변 지인들 중에 자기는 (광장에) 나가지 못한다는 얘길 하면서 '너 되게 대단하다'며 죄책감을 털어놓는 사람도 있었는데요. 저도 1월부터는 광장에 잘 못 나갔는데, 저는 온라인도 커다란 광장이라고 보거든요. 온라인 광장에서 그 의제에 관심을 가져준 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다, 이 기사를 읽는 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우리가놀랍지않다 #전국응원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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